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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終末のフール (2009, 2006)

  • 저자 이사카 고타로 지음
  • 역자 김선영
  • ISBN 978-89-7275-726-9
  • 출간일 2015년 02월 27일
  • 사양 380쪽 | 127*188
  • 정가 13,000원

세상의 종말 앞에서 분노하고 체념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따스하고 경쾌하게 그려 낸 여덟 편의 드라마
오늘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묻는 걸작 연작소설

3년 후에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8년 후 소행성이 충돌하여 지구는 멸망한다.’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발표가 있은 지 5년― 자살뿐만 아니라 폭동, 살인, 방화, 강도, 사기 등 범죄가 만연하고 질서는 붕괴되어 대혼란에 빠졌던 세계도 이제는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센다이 북부의 아파트 ‘힐즈 타운’의 몇 안 되는 살아남은 주민들 역시 가까스로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 남은 3년의 인생을 새로이 마주 보게 되는데……

 


 

영화가 시작되었다. 이번 영화는 방금 전 호러 영화와는 달리 비교적 평범한 줄거리였다. 말기 암에 걸린 주인공이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다. 총질을 하는 소리가 조금 시끄러웠던 것만 빼면 나름대로 볼만했다. 정신없이 빠져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꽤 재미있었죠?” 시즈에도 비디오테이프를 되감으면서 감상을 말했다.
“그래.”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물었다. “이런 때에, 이런 식으로 영화나 보고 있다니 바보 같지 않아?” 스스로가 몹시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바보면 어때요.”
“그런가?”
“그럼요.”
“야스코 말인데.” 나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미워서 소행성이 떨어지기 전에 날 죽이러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럴지도 모르죠.”
“어이.”
“농담이에요.”
_「종말의 바보」 33~34쪽


“속고 있는 기분이야.” 나는 오셀로 판을 한 번 더 쳐다보고 물었다. “어라, 누구 차례지?” “당신.” 미사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에 검은 말을 자신 있게 두고 흰 말 두 개를 해치웠다.
“속고 있다니 무슨 뜻이야?”
“우리가 지금 아이를 포기하면 소행성의 충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가 그렇다면 충돌시켜야겠구나, 하고 판단할지도 몰라.”
“어딘가의 누군가라니, 누구?”
“몰라. 아득히 멀리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무언가겠지.”
“예를 들면 신?”
“3번가에 사는 야마다 씨 같은 존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해. 어쨌든 내 생각은 그래. 그래서 말인데, 반대로 우리가 출산을 선택하면 말이야.”
“소행성이 피해 간다?”
“예를 든다면 말이지.”
“그거 꼭 무슨 종교 같다.”
_「태양의 딱지」 72~73쪽


“필사적이었지. 필사적. 필사적으로 살았어.” 고마쓰자키 씨의 입가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너희 집도 그랬겠지만 사람은 정말 나약해. 여기저기에서 소란이 터졌잖아. 다행히 우리처럼 가난한 아파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버젓한 집들은 꽤 털렸어. 멍하니 길을 걷고 있으면 금세 폭도가 튀어나오질 않나. 내가 처음 만난 놈은 창백한 오이처럼 빼빼 마른 놈이었는데 방망이를 들고 서 있더군. 돈이라면 지금 없고, 애초에 세상이 끝난다면 돈도 필요 없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고 지껄이는 거야.”
“그게 아니라고요?”
“한 번쯤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고 지껄이더군.”
나는 이해가 갔다. “그런 사람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좋게 말하면 ‘모두가 해방’되었던 거고 나쁘게 말하면 ‘자포자기’한 것뿐이야.”
“고마쓰자키 선생님은 해방되었나요?”
“난 머리가 좋잖아?”
“그랬던가요?”
“그래서 속지 않았지. 여기서 집중력이 떨어지면 덫에 걸린다,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간신히 살아남았어. 자포자기하면 지는 거라고 말이야. 집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식량을 모아서 간신히 버텼지. 일단 오늘 하루 버텨 보자, 하고 다음 날이 되면 또 오늘 하루 버텨 보자, 하고 그날그날을 살아왔어.”
“덫이라니, 누가 친 덫인가요?”
“운석이지, 운석.”
_「동면의 소녀」 166~167쪽


5년 전까지 양복을 입고, 머리를 싹 빗어 넘기고, 해외 출장 때 샀다는 좋은 가방을 들고 출근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 그 남자는 어디로 갔어? 착란에 빠져 내게 덤벼드는 눈앞의 남자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아버지, 그 남자를 돌려줘. 분했다.
“그만들 해.” 어머니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나와 아버지 중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숨을 헐떡이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곧바로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탁상시계를 집어 던졌다.
반사적이었다. 나는 몸을 쓱 옆으로 피한 다음, 왼발에 체중을 싣고 오른쪽 다리를 들어 아버지의 정강이를 찍었다. 아버지의 왼쪽 정강이에 맞고 발등에 충격이 느껴졌다. 동시에 아버지가 꼴사나운 비명을 질렀다. 몸이 기우뚱하게 꺾였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어서 이번에는 하이 킥을 날렸다. 연습 때 몇 번이나 반복했던 동작이었다. 훅, 콧김을 내쉬며 몸을 꺾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노려 오른발을 움직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어째서인지 나에바 씨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이, 나. 나는 이런 나를 용서할 건가?’
_「강철의 울」 211쪽


“그건 그렇다 치고 넌 어떻게 생각해? 3년 후에 소행성이 떨어져. 모두 멸망해. 네가 좋아하는 별 때문에 죽게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이야?”
“어떤 기분이냐고 물어도.”
“충돌할 때 넌 어쩔 거야?”
거기에서 니노미야가 뺨을 누그러뜨리고 평소의 긴장한 눈매에서 힘을 빼더니 나를 향해 웃었다. “당연히 망원경을 봐야지.”
“당연한 거냐?”
“그야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에서 몇십만 킬로미터 아니면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혜성을 보면서 기뻐했어. 그걸 훨씬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이쪽으로 다가오는 거니까.” 말할수록 흥분하는 그에게 나는 압도당했다. “굉장하지 않아? 진짜로, 만약에 정말로 떨어진다면 굉장한 일이야. 지금부터 잠이 안 올 정도야.”
_「천체의 돛배」 258쪽


“필사적으로 사는 건 권리가 아니라 의무야.”
“의무.” 나는 그 말을 되뇌었다.
“그래. 그래서 모두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살아남으려 하지. 혼자만이라도 살려고. 추하게 사는 거야, 우리는.”
“추하게……”
“남을 발로 차 떨어뜨리더라도 악착같이 살아가는 거야.”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센스 있는 얘기인가 싶었더니 뭔가 불쾌하고 현실적인 얘기였네요.”
“그야 그렇지. 이건 불쾌하고 현실적인 얘기야.”
_「심해의 지주」 328~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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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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