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이 천칭을 버린 순간 시작된 인간의 정의
세 건의 살인 사건과 세 개의 수수께끼를 둘러싼 화려한 가면무도회
과연 가면 속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도쿄에서 세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 하나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가슴에 칼이 찔려 죽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 모두 사실은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이었던 피해자들은 사건 당시 소년범이라는 이유로,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라는 이유로, 현행법상 처벌 범위가 좁다는 이유로 범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형량을 받고 지금은 사회에 복귀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중이다. 결국 그들의 살해범으로 당시 유족들이 지목받게 되고, 경시청은 각각의 사건을 맡은 세 명의 경감을 소환하여 합동 수사를 지시한다.
엘리트 형사 닛타 고스케, 유능한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가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에서 재회하여 다시 어려운 수수께끼 풀이에 함께 도전하게 된 것은 바로 잠정적 용의자인 유족들이 하나둘씩 크리스마스를 맞아 호텔 코르테시아도쿄에 숙박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제4의 살인 사건은 분명히 크리스마스에 일어날 것이라는 경시청의 판단 아래, 또 하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경찰과 호텔 측은 3개 팀의 수사관들을 동원하여 저마다 호텔리어, 하우스키퍼, 프런트맨 등으로 변장해 위험한 가면무도회를 펼친다.
닛타는 야마기시의 도움을 받아 예전처럼 다시 한번 호텔리어의 옷을 입고 가면 속 진범을 찾아 기나긴 미로 같은 호텔 복도를 헤매는데…….
이 시리즈 전체의 무대인 호텔 코르테시아도쿄는 호텔이라는 익명의 공간적 특성을 극대화한 하나의 거대한 가면무도회장이다. 가명으로 입실할 수 있으며 한 번 문을 잠그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장소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과거와 사연을 안고 누군가에 대한 오랜 감정을 풀어내려 한다. 주인공 닛타 고스케 역시 평소에는 터프한 성격의 형사이지만 이 호텔 안에서는 사건 해결을 위해 누구보다 정중한 호텔리어의 가면을 쓴다.
이번 신작은 시리즈 전체를 통괄하는 이러한 설정을 ‘법과 인간의 정의’라는 시의적인 메시지 안에 녹여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는 특별한 소설이다.
행인을 폭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으나 당시 연령이 17세였다는 이유로 소년원에 다녀와 전과 기록조차 남지 않은 폭행범, 빈집을 털러 들어갔다가 가정주부를 교살하고 한 가정을 파괴했지만 우발적인 범죄라는 이유로 낮은 형량을 받고 풀려난 강도 살인범,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약취한 뒤 교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리벤지 포르노를 뿌려 자살하게 했음에도 법적 처벌 기준이 모호하여 집행유예를 받은 남자까지.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층적이고 다양한 중대 범죄들에 대하여 법은 더욱 엄정하게 법의 선만을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법의 선 밖에서 상실을 겪은 남은 자들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한 대표 캐릭터 중 특히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매력적인 형사 닛타 고스케는 이 묵직한 주제를 배경으로 한 뒤엉킨 수수께끼들을 타고난 호텔리어인 파트너 야마기시 나오미와 함께 마치 가면무도회에서 춤을 추듯 경쾌하게 해결해 나간다. 한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반전과 반전의 연속, 수많은 사연과 숨겨진 과거, 무엇보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할 스릴 넘치는 속도까지.
화려한 크리스마스이브의 특급 호텔이라는 무대의 밝은 빛 아래 사적복수와 인간의 정의라는 진지하고 내밀한 주제를 비추며 강렬하고 인상적인 대조를 보이는 이 소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각자가 쓰고 있는 가면과 각자가 판단하는 정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시선을 돌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유가족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나가기 위해 작가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 즉 범죄자의 내면을 천착하는 장치를 통해 인간이 증오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속죄만이 유족도, 그리고 범죄자 자신까지도 구원하는 길이리라.
‘용서할 때를 기다렸다’라는 가미야 요시미의 말의 무게가 참으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스토리였다. 「옮긴이의 말」에서
추천의 말
★★★★★ 시리즈 최고 걸작입니다. 말 그대로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중 가장 뛰어난 소설입니다. 작품의 묵직한 테마를 빠져들어 읽어 내려가도록 쓰인 책입니다. 이 책 덕분에 근사한 휴일을 보냈습니다. 『아마존 독자평』
★★★★★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라는 테마 아래 삶과 죽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삶의 방식이란 진정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비춰 줍니다. 한편 ‘죽어 마땅한 인간이란 존재하는가’라는, 인터넷 사회에서 더욱더 열띤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명제에 대해 이 소설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 너머 ‘구원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철학적인 관점까지 포괄합니다. 그러나 엘리트 형사의 사건물이라는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어려운 방향키를 잡은 의욕 넘치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꼭 한번 읽어 보세요! 『아마존 독자평』
★★★★★ 우선 내달리듯 읽히는 책입니다. 살인의 종류가 반전을 거듭하는 한편 SNS(익명 SNS나 데이터 소거 SNS 등)를 이용하여 수수께끼는 점점 늘어만 갑니다. 추리소설과는 상관없이 올바른 형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읽고 나니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마존 독자평』
책 속으로
이리에 유토―상해죄(소년원 송치). 피해자 가미야 후미카즈, 유족 가미야 요시미(모친)
고사카 요시히로―강도 살인죄(징역18년). 피해자 모리모토 도시에, 유족 모리모토 마사시(장남)
무라야마 신지―리벤지 포르노(징역3년 집행유예 5년). 피해자 마에지마 유카, 유족 마에지마 다카아키(부친)
(…)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나가키가 화이트보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과거에 사람을 죽인 자들이 연달아 살해됐다. 그리고 그 과거 사건의 피해자 유족 세 명이 오늘 똑같은 호텔에 숙박하기로 했다……?”
“우연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겠지요.” 닛타가 말했다. 43~45면
“원한을 가진 사람 여러 명이 협력해 당사자 대신 차례차례 복수를 해준다. 그 사이에 당사자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둔다……. 참 생각도 잘 했지 뭐야.” 노세가 소시지를 한 손에 들고 말했다. “이번 일련의 사건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게 될까. 상부상조 복수 살인? 합동 천벌 살인? 아니, 아니, 그도 저도 신통치 않네. 역시 닛타 씨가 말했던 로테이션 살인이라는 게 가장 근사해.”
“상부상조, 합동, 로테이션…….” 98면
우리나라는 사람을 죽여도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하지 않고 형기가 20년 이하인 경우가 너무도 흔합니다. 살인 이외의 범죄는 당연히 그보다 더 낮아서 이를테면 업무상과실치사상의 경우는 5년 이하입니다. 절도범도 10년 이하로 정해져 있는데, 건물 위에서 물건을 떨어뜨려 행인이 사망했을 경우에도 과실이라고 주장하면 지갑을 훔친 경우보다 더 가벼운 처벌에 그칩니다. 그런 처벌을 유족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 우리나라의 형벌 판정 시스템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그로 인해 피해자 유족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 철저히 규명해보고자 합니다. 171면
가미야 요시미는 별반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봉투를 받아든 뒤, 데스크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사진, 궁금했던 모양이지요?”
“죄송합니다. 멋진 사진이라서 저도 모르게 들여다봤습니다. 아드님이십니까?”
가미야 요시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라이팅 데스크 앞으로 갔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도 이렇게 사진을 놔두지 않으면 어쩐지 불안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 애에게 잘 잤느냐는 인사부터 하고, 그걸로 겨우 하루가 시작되거든요.”
“그러셨군요.”
“벌써 6년이 됐어요, 세상 떠난 지.”
“아……. 깊은 위로의 말씀 올립니다.” 249면
형법 제39조에는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 심신모약자(心身耗弱者)의 행위는 그 형을 감경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심신상실 및 심신모약의 예로서는 병적 질환이나 정신장애, 혹은 약물중독, 음주에 의한 명정상태 등이 있고, 증상의 심각성에 따라 둘 중 하나로 나뉩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되었다고 합시다. 체포된 범인에게는 형사책임능력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 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나라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292면
“누군가를 계속 미워한다는 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에요. 게다가 거기서 새로운 뭔가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지요. 그걸 잘 알면서도 계속 미워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미련한 것 같아 점점 싫어지더라고요. 4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