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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상실사 罗曼蒂克消亡史

  • 저자 청얼 지음
  • 역자 허유영
  • ISBN 978?89?7275?996?6
  • 출간일 2019년 07월 19일
  • 사양 260쪽 | 126*194mm
  • 정가 13,000원

중국의 천재 영화감독 청얼의 작가 데뷔작
장쯔이, 거요우 주연 영화 원작 소설

■ 책 속으로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우리는 여전히 자주 만나 맥주, 담배, 침묵, 한숨으로 계절의 순환과 무관하게 늘 적막한 밤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날 이후 그 일에 대해 다시 얘기한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X군의 계획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고 내가 약속한 삼천 위안도 줄 필요가 없어졌다.

X군은 그녀에게 집을 얻어주었다고 말하지 않았고, 나도 그녀에게 집을 얻어주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성가신 여자였고 그저 긴 밤 시간을 죽이기 위한 이야깃거리였을 뿐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X군과 나의 알량한 선의에 가한 고통은 순간적이었으며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_「인어」, 24~25쪽

 

가벼운 미소가 아니었다. 그게 그의 진심이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고마워.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씁쓸함이 담긴 미소였다. 그녀는 하마터면 그의 모든 걸 용서할 뻔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그가 단호하게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문이 닫히며 허공으로 울려 퍼진 둔중한 소리의 여운이 천천히 내려앉을 때쯤 그녀가 탁자 위에 있는 상자를 집어 들었다. 상자를 열고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다이아몬드는 언제나 휘황한 광채를 발한다. 밤이든 낮이든 그 어느 때든.

_「여배우」, 50쪽

 

“그 교수에게 밥을 샀지. 술도 마셨어. 교수라 그런지 점잖고 고상하더라.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갑자기 이러는 거야. 자기 집이 너무 좁은데 수십 년이 되도록 학교에서 아파트를 바꿔주질 않는다고. 어쩔 수 없이 마누라랑 한 방을 쓰지만 자신은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고 있는데 마누라는 옆에서 쿨쿨 잘도 잔대. 코까지 골아가면서 말이야. 그래서 매일 밤 침대에 눕기만 하면 마누라를 죽여버리고 싶다나.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마누라를 도끼로 찍어서 두 동강 내고 싶다고 했어.”

_「닭」, 57쪽

 

가끔 손님이 돌아가고 난 뒤 그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올 때 그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그가 측은해 못 본 척하려고 했지만 흘러내린 눈물에 상처가 젖을까 봐 손수건으로 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닦아주다가 그녀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그만큼이나 괴로웠다.

그녀는 날마다 십자가를 향해 어서 빨리 그의 몸이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며칠에 한 번씩은 그의 몸이 다 나은 뒤 자신을 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_「영계」, 102~103쪽

 

첫 심미의 시도와 깨달음, 첫 영혼의 형성과 각인. 그는 그때껏 눈이 멀었던 것이다. 그제야 볼 수 있었다. 놀라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평생 먹구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행히 모든 게 끝났다. 그는 드디어 새 몸을 찾으러 갈 것이다. 그 무엇도 영혼을 가두어둘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이런 시멘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 몸을 찾아내 자기 영혼이 그걸 입는 상상을 했다. 찰나의 미시와 거시, 해학과 장엄, 또 다른 탐색, 끌림, 희롱, 결합의 오르가즘일 것이다.

‘탐색’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는 만족스럽게 두 눈을 꼭 감았다—기다림의 정적.

_「몸의 시편」, 178~179쪽

 

“당신들이 누구인지도 모르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오해라고 할 게 뭐가 있겠소? 어제 특별히 부인께 선물을 보낸 것도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오. 내 체면을 봐주시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처음에는 아내를 걸고 맹세하더니 그래도 두 선생이 믿지 못하자 “제 어머니를 걸고 맹세하지요. 저희가 한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두 선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두 선생은 그 순간 북부 손님과 그의 뒷배에 있는 세력의 기세를 판단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후 십수 년밖에 남지 않은 그의 인생에서 그가 내리는 많은 결정에 판단 기준이 되었다. 성패를 장담할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그 덕분에 거리에서 두들겨 맞거나 똥통을 나르는 수모는 겪지 않을 수 있었다.

_「로맨틱 상실사」, 187~188쪽

 

어쩌면 더 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든 걸 포기했다. 모든 게 좋아지고 있지 않았어? 힘들고 슬픈 과거도 지나가고 있었잖아? 환골탈태하려고 준비하고 있지 않았어? 왜 더 버티지 못한 거야? 왜 그랬어? 이것도 이른바 살아 있는 자의 무의미한 미련일 것이다. (…) 나약한 내가 값비싼 펜으로 비장하게 ‘시간을 죽일 것인가, 나를 죽일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따분한 말을 쓰고 있을 때, 죽음을 향해 달리는 길고 긴 여정에서 너는 또 제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너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나간 것일 뿐,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_「세 번째 X군」, 249~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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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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