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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기는 어렵다 Трудно быть богом (1964)

  • 저자 아르카디 스트루가츠키ㆍ보리스 스트루가츠키 지음
  • 총서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 역자 이보석
  • ISBN 978-89-7275-333-9
  • 출간일 2020년 05월 26일
  • 사양 372쪽 | 126*194
  • 정가 14,000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러시아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 초기 문학의 패러다임

지적이고 상징적이며 강렬하고 신선한, 소비에트 시대 SF의 랜드마크
20세기 러시아 SF의 개척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형제 작가 초기 문학의 패러다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비에트 SF 작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초기 걸작 『신이 되기는 어렵다Трудно быть богом』(1964)가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노변의 피크닉』에 이어 현대문학에서 선보이는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의 두 번째 권으로, 봉건사회 체제의 외계 행성에 파견된 지구인 역사 연구원을 통해, 자신의 유토피아적 개입이 인간 역사의 자연스러운 진보를 방해할 수 있기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지 못한 채 관찰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신’의 불완전한 입장에서 오는 딜레마를 그렸다. 이번 한국어판 『신이 되기는 어렵다』는 스탈케르출판사의 2003년판 「스트루가츠키 형제 작품집」 11권 제2쇄(2차 수정본) 원고를 저본으로 삼았으며, 2014년 시카고리뷰프레스 영역판에 실린 「하리 쿤즈루 추천사」와 2003년 동생 보리스 스트루가츠키가 펴낸 회상록 『지난 일들에 관하여』의 『신이 되기는 어렵다』 부분 「후기」를 함께 수록했다.

 


 

     책 속으로 ●

[…] 그는 6년째 이 이상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고 점점 여기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문득문득, 예를 들면 지금처럼, 조직적인 야만성이라든가 강요된 회색성 같은 건 실재하지 않으며 그를, 루마타를 주연으로 한 기이한 연극이 상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대사를 특별히 잘 읊으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고 객석의 시험역사연구소 평가위원들이 감격해 외치는 것이다. <바로 그거야, 안톤! 그거야! 훌륭해, 토시카!> 그는 실제로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꽉 찬 객석이 아니라 통나무가 다 드러나서 이끼가 끼고 그을음이 겹겹이 쌓여 새까매진 벽들뿐이었다.
     _「제1장」

 

[…] “스스로 정한 원칙에 우리의 손과 발이 묶여 있는 게 불쾌합니다. 그걸 무혈관여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도 불쾌하고요. 제가 목도하는 상황에서 그건 학문을 핑계 삼은 나태입니다…… 뭐라고 반박하실지 잘 압니다! 이론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론 문제가 아닙니다. 이곳에서 전형적인 파시즘이 작동하고 있어요. 짐승들이 끊임없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요!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지식은 부족하고 금은 공급이 늦어져서 가치를 잃고 있고요.”
     _「제1장」

 

 “다 이해하네.” 그가 말했다. “나도 다 겪은 일이니. 예전엔 그랬네. 무력감과 자기기만이 가장 끔찍했지. 그랬던 시절이 있었어. 나보다 약했던 이들은 그걸 견디지 못하고 미쳐 버려 지구로 소환됐고 지금은 요양 중이네. 후배여, 난 가장 끔찍한 게 뭔지 깨닫는 데 15년 걸렸어. 인간의 모습을 잃는 게 끔찍한 걸세, 안톤. 영혼을 더럽히고 잔인해지는 것. 안톤. 우리는 여기에서 신이네. 이곳 종족이 자신의 형상과 형태를 본떠서 만들어 낸 신보다 더 현명해야만 하고. 그런데 우리는 구덩이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지 않나. 발을 잘못 디디면 진창에 빠져 그 흔적을 평생 씻어 내지 못할 거야. 이루칸 사람 고란은 『도래의 역사』에서 이렇게 썼지. <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매 피탄 늪에서 나온 종족에게 가시니, 그분의 발은 진창에 빠져 있었다.>”
     _「제1장」

 

“[…] 나는, 후배여, 이제 꿈에서도 지구를 보지 않네. 서류를 뒤지다가 한 여자 사진을 봤는데 누구였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했어. 때로는 공포에 휩싸여 내가 연구소 직원이 아니라 그 연구소 박물관의 전시품, 봉건주의 상인공화국의 대법관이라는 전시품은 아닐까, 박물관에 내가 진열된 전시실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네. 가장 두려운 게 뭔지 아나. 역할이 되어 버리는 걸세. 우리 안에서는 저열한 귀족과 공산주의자가 싸우고 있네.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이 그 저열한 놈 편이지. 공산주의자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어. 지구는 천 년 하고도 또 천 파섹 떨어져 있으니.” 돈 콘도르는 무릎을 응시하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안톤.” 그가 힘주어 말했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로 남으세.”
     _「제1장」

 

 “아버지가 매일 보고서를 베껴 쓰고 있어.” 그녀가 절망하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가 베껴 쓰는 문서들에는 다 피가 묻어 있고. 아버지는 그걸 즐거운탑에서 받아 오는 거야. 당신은 왜 나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 줬지? 매일 저녁, 매일 저녁…… 아버지는 고문 기록을 베끼고 술을 마셔…… 너무 무서워. 너무나 무섭다고! ‘이것 봐라, 키라. 우리 이웃 서예가는 사람들에게 쓰는 법을 가르쳤지. 그런데 그의 정체가 뭐였는 줄 아느냐? 고문하는 중에 마법사이자 이루칸의 첩자로 밝혀졌다. 세상에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느냐? 내가 바로 그에게 읽는 법을 배웠는데’라고 했어. 그리고 오빠는 순찰을 돌고 나서 맥주에 취해 돌아오는데 손에는 온통 피가 말라붙어 있어…… ‘전부 다, 12대손까지 죽여 버릴 거야……’라고 말하지. 아버지한테는 대체 왜 읽고 쓸 줄 아느냐고 따지고…… 오늘은 친구들과 어떤 사람을 집으로 끌고 와서는…… 때렸어. 사방에 피가 튀었어. 맞던 사람은 소리도 지르지 못할 지경이 됐고. 이렇게는 살 수 없어. 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어……!”
     _「제3장」

 

 3년 전 하잘것없고 눈에 띄지 않는 관료였던 그가, 비굴하고 창백했으며 어떻게 보면 파리했던 그가 케케묵은 궁정 관료계의 밑바닥에서 기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총리가 돌연 체포되어 사형 당했다. 공포에 질려 바보가 되어 버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관들 몇몇도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그들의 시체 위로 창백한 버섯이 자라나듯 이 끈질기고 무자비한 보통의 천재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아무도 아니었다. 출신도 보잘것없었다. 그는 나약한 왕국에 출현한 강력한 지성이 아니었다. 역사가 알던, 전제정치 체제를 위한 통일 전쟁이라는 이념에 일생을 바치는 위대하고 무서운 인물이 아니었다. 금이나 여자 생각밖에 없거나 권력을 잡으려고 사방의 적을 죽이는, 혹은 죽이기 위해 권력을 취하는, 왕의 탐욕스러운 충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를 두고 돈 레바가 절대 아니라고, 돈 레바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저자가 도대체 누군지 모르겠다고 하는 얘기마저 귀엣말로 전해진다. 누가 알겠는가. 인간으로 둔갑한 괴물인지, 분신인지, 요정이 바꿔치기해 놓은 자인지……
     _「제3장」

 

 ‘나는 이제 이론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한 가지는 알겠다. 인간은 이성의 물질적 매개라는 것. 인간이 이성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전부 악이라는 것. 그리고 악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루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 무슨 수를 써서든? 정말 무슨 수든 써도 괜찮은가……? 아니, 무슨 수든 써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니면 무슨 수든 괜찮나? 쓸데없는 생각 집어치우자!’ 그가 자기 자신에게 속으로 말했다. 결정해야 한다. 늦든 빠르든 어쨌거나 결정해야 한다.
 불현듯 도나 오카나가 떠올랐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한다, 그가 생각했다. 이 문제부터 시작하자. 화장실 청소를 하는 신에게 깨끗한 손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이는 것보다 낫다. 오물이 피보다 낫다. […]
     _「제3장」

 

[…] 왜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려서부터 배워 온 우리 같은 자들, 인간, <인간>이라는 놀라운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신뢰는 어디로 사라진 건가? 나는 구제 불능이다, 그가 끔찍한 감정에 사로잡혀 생각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증오하고 경멸하지 않나…… 나는 그들을 가여워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을 증오하고 경멸한다. 나는 방금 지나친 청년의 어리석음과 야만성을, 사회적 여건이라든가 가혹한 성장 환경이라든가 하는 요인을 이해하려면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지금은 저 청년이 나의 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의 적, 내 친구들의 적, 내가 가장 성스럽다고 여기는 것의 뚜렷한 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를 이론적으로, <전형적인 인물>로서의 그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라는 인간 자체를, 그의 인격을 증오한다. 침 범벅인 그의 낯짝을, 씻지 않은 몸의 체취를, 그의 눈먼 믿음을, 성행위와 술 외의 모든 것을 향한 그의 적개심을 증오했다. […]
     _「제5장」

 

[…] 이것이 인간인가? 이들에게 어떤 인간성이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길가에서 도륙당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집에 들어앉아서 순종적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다들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도륙하는 자의 냉혈한 야만성, 도륙되는 자들의 냉혈한 순종성. 냉혈함, 이것이 가장 두렵다. 열 사람이 공포로 마비되어 서 있다. 그리고 순종적으로 기다린다. 한 사람이 다가와 희생양을 고르고 냉혈하게 그를 도륙한다. 이들의 영혼은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순종적으로 기다리는 매분 매초 점점 더 더러워진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이 숨어 있는 집에서 비열한 자들이, 밀고자들이, 살인자들이 비밀스레 태어난다. 공포에 패배하는 일생을 산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자기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공포가 무엇인지 가혹하게 가르칠 것이다. […]
     _「제7장」

 

 저자가 뭔가를 생각할 리 없다. 뭔가를 생각해 내기엔 아직 이르다. 그런데 저이 같은, 망치 만드는 대장장이 만 명이 분노한다면 누구든 없앨 수 있지 않은가. 그보다 간단한 게 어디 있는가. 하지만 그들에겐 아직 분노라는 감정이 없다. 공포뿐이다. 다들 자기만을 위하고 신만이 모두를 위하지.
     _「제8장」

 

[…] “[…] 악과 싸운다, 라니! 그런데 악이 도대체 뭡니까? 다들 꽤나 제멋대로 그 말을 이해하오. 우리 같은 학자들에게는 무지가 악이지만, 교회에서는 무지가 축복이라고, 모든 악은 지식에서 나온다고 가르치지요. 농부에게는 세와 가뭄이 악이지만, 빵 가게 주인에게 가뭄은 선이오. 노예에게는 술에 취한 악랄한 주인이 악이고 수공업자에게는 탐욕스러운 고리대금업자가 악이오. 상황이 이런데, 어떤 악에 맞서 싸워야 한단 말입니까, 돈 루마타?” 그는 우울하게 청자들을 바라봤다. “악은 없앨 수 없소. 그 누구도 세상에서 악의 총량을 줄일 수 없소. 어느 정도는 자신의 운명을 개선할 수 있지만, 그건 언제나 타인의 운명을 타락시킴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왕은 늘 있을 겁니다. 더, 혹은 덜 잔혹한 왕이 있을 것이고 더, 혹은 덜 야만스러운 남작들이 있을 것이고 무지한 민중이, 자신을 억압하는 자들은 경외하고 자신을 해방시켜 주는 자들은 증오하는 민중이 늘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건, 노예가 아주 잔혹한 주인일지라도 자유를 주는 해방자보다 자기 주인을 훨씬 더 잘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노예가 주인의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해 줍니다. 반면 사사로운 이해에 휘둘리지 않는 해방자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인간이 이렇소, 돈 루마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고.”
     _「제8장」

 

[…]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겠소. 인간들이 무엇보다도 노동과 지식을 사랑하도록 하는 거요. 노동과 지식이 삶의 유일한 의미가 되도록!”
 ‘그래, 그건 우리도 시도해 보려고 했었다.’ 루마타가 생각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최면 감응,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재도덕화. 석 대의 적도 위성에서 시도하는 정신 교란……’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루마타가 말했다.
 “하지만 인류에게서 역사를 빼앗을 필요가 있을까요? 한 인류를 다른 인류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한 인류를 땅에서 없애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인류를 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_「제8장」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말았어야 합니다.” 아라타가 불쑥 말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은 우리에게 해만 끼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소. 적어도 우리는 아무도 해치지 않소.”
 루마타가 부드럽게 말했다.
 “아니, 해치고 있습니다. 근거 없는 희망을 불어넣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 말이오?”
 “나한테요. 당신은 내 의지를 약하게 만듭니다, 돈 루마타. 예전에 나는 나 자신만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뒤에 당신의 힘이 있음을 느낍니다. 전에는 싸울 때마다 마지막처럼 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결정적인 싸움을 염두에 두고 몸을 사리고 있더군요. 왜냐하면 당신이 그 싸움에 참여할 거니까…… 이곳을 떠나십시오, 돈 루마타. 원래 있던 곳으로, 하늘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이 가진 번개의 힘을 빌려주십시오. 아니면 당신의 그 철로 만든 새라도…… 그것도 안 된다면 당신이 직접 검을 뽑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_「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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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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