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버트 조지 웰스 (세계문학 단편선 06) Country of the Blind and Other Stories (1911)
- 저자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 총서 세계문학 단편선
- 부제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편
- 역자 최용준
- ISBN 978-89-7275-665-1
- 출간일 2014년 03월 10일
- 사양 656쪽 | 145*207
- 정가 16,000원
과학의 상상력과 문학을 접목시킨 SF의 창시자 허버트 조지 웰스
21세기인 현재까지도 SF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웰스가 펼쳐 보이는 SF의 원형질들
아주마지는 홀로이드가 기회를 줄 때마다, 마음을 홀리는 그 커다란 발전기를 만져 보고 다뤄 보았다. 그리고 햇빛이 닿으면 눈이 부셔 어지러울 정도로 반짝거리게 그 발전기를 깨끗이 닦고 광을 냈는데, 그러면서 신비로운 섬김의 기분을 느꼈다. 아주마지는 발전기에 올라가 회전하는 코일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곤 했다. 아주마지가 섬기던 신들은 모두 멀리 있었고, 런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숨겨 놓고 있었다. - 「발전기의 왕」
나는 대체로 포킨스가 해플리보다 더 진실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플리는 언변이 무척 뛰어났고, 과학계 사람답지 않게 남을 비웃는 데 재능이 있었으며, 에너지가 엄청났고, 멸종된 종의 문제에 관해서 쉽게 모욕감을 느꼈다. 반면 포킨스는 우둔하게 생기고, 지루하게 말하고, 몸은 커다란 물통 같지 않다곤 말할 수 없었으며, 감사를 표하는 데 지나치게 신중하고, 박물관 자리에 부정하게 앉았다는 의심을 받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해플리 주위에 모여 갈채를 보냈다. 처음부터 악의가 깃든 긴 싸움이었고, 결국엔 무자비한 대립으로 변했다 - 「나방」
해플리는 적을 거꾸러뜨렸고, 포킨스를 끝장낼 생각으로 계속 잔인한 공격을 가했다. 그 공격은 나방의 전반적 발육에 대한 논문 형태로 이루어졌는데, 참으로 엄청난 양의 정신적 노동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그 논문은 격한 논쟁 조로 쓰여 있었다. 그토록 격렬함에도 불구하고, 편집부 단신에는 이것도 완화해 수정된 것이라 되어 있다. 포킨스의 얼굴은 분명 수치심과 혼란으로 가득해졌을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은 전혀 없었다. 주장은 살인적이었고, 어조는 완전히 모욕적이었다. 경력의 만년을 보내는 이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 「나방」
이상한 짐승이 나타나는 꿈에서 화들짝 깨어났을 때, 나는 침대에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누구나 알 듯이 그런 불길하고 격정적인 꿈을 꾸다가 깨어나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입안에서 이상한 맛이 느껴졌고, 사지는 피곤했으며, 살갗에서는 불쾌감이 일었다. 나는 이물감과 공포가 사라지기를, 그리고 다시 잠이 들기를 기다리며 베개에 머리를 누인 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기분 나쁜 느낌만 커져 갔다. 처음에는 주위가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방에는 희미한 불빛이 있었는데, 너무나도 희미해서 거의 어둠과 마찬가지였고, 그 완벽한 어둠 속에 서 가구들이 흐릿한 얼룩처럼 서 있었다. 나는 이불 바로 위로 가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고 엘브스햄 씨 이야기」
하플로테우시스 페록스는 이렇게 데번셔 해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이 사건이 가장 심한 경우이다. 피선 씨의 진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일련의 배 사고와 해수욕하던 사람들의 실종, 그리고 그해 콘월 해안에 유독 물고기가 없었던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그 게걸스러운 심해 괴물 무리가 연안 해안선을 따라 느릿느릿 배회하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놈들을 이쪽으로 몰고 온 것은 굶주림 때문이라고 여겨지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햄즐리의 이론을 더 믿는다. 햄즐리는 그 생물 무리가 우연히 심해에 가라앉은 배를 통해 사람 고기 맛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 맛을 찾으려고 익숙한 서식지를 빠져나왔다고 주장한다. 처음 에는 배를 습격하고 쫓다가 대서양 항로를 통해 우리 해안에 접근했다 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햄즐리의 설득력 있고 감탄할 만한 논지에 대해 다루는 것은 이 글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 - 「바다의 침입자」
사후에 부검을 해보자는 생각에 고트프리트 플래트너가 반감을 가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플래트너의 몸 전체에서 오른쪽과 왼쪽이 바뀌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늦춰질 수도 있고, 어쩌면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플래트너의 이야기의 신빙성이 주로 그 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플래트너 이야기」
“침착해야 해! 초에 불을 붙여야 해.” 나는 충격 속에서도 짐짓 익살스레 말하며 벽난로 선반의 촛불을 켜기 위해 잠시 성냥을 더듬거렸다. 손이 너무 떨려서 거칠거칠한 성냥갑을 두 번이나 잡았다 놓쳤다. 벽난로 선반이 다시 어둠에서 벗어나는 동안, 맞은편 창문 끝의 촛불 두 개가 꺼졌다. 하지만 손에 든 성냥불로 큰 거울 쪽 촛불과 문 근처 바닥의 촛불을 다시 켠 덕분에 어둠을 막았다. 그러나 곧 구석마다 켜져 있던 촛불 네 개가 일제히 꺼졌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급히 성냥에 불을 붙였지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 「붉은 방」
쿰스 부인도 제니를 따라갔다. 클래런스 씨가 날쌔게 피하려고 다탁에 거세게 부딪히며 그 위를 넘어가는데, 쿰스 씨가 클래런스 씨의 옷깃을 움켜쥐고 그의 입에 버섯을 쑤셔 넣으려 했다. 클래런스 씨는 기꺼이 옷깃을 버리는 쪽을 택했고, 얼굴에 붉은 광대버섯 조각들을 붙인 채로 복도로 몸을 날렸다. “그이가 못 나오게 문을 닫아야 해요!” 쿰스 부인 은 그렇게 외치며 문을 닫으려 했지만, 부인의 지원부대가 부인을 버렸다. 제니는 가게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그쪽으로 사라지며 문을 잠가 버렸고, 클래런스 씨는 다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쿰스 씨는 문에 몸을 쿵쿵 부딪쳤고, 쿰스 부인은 열쇠가 집 안에 있다는 걸 깨닫고는 재빨리 2층으로 올라가 여분의 침실에 숨은 뒤 문을 잠갔다. - 「보라색 버섯」
“과학은 체계적 지식이에요. 체계에 들어오지 않는 생각은…… 어쨌거나 부정확한 생각인 게 분명합니다.” 힐은 자기가 말하고도 이게 현명한 말인지 우둔한 말인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청중은 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힐이 유물론자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곱사등이가 무턱대고 말했다.
“물질을 초월한 게 하나 있죠.” 힐이 즉각 말했고 이번엔 자기가 훨씬 그럴듯한 말을 했다고 느꼈으며, 등 뒤 문간에 누가 있는 것도 인식했기에 그 여자를 위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바로, 물질을 초월하는 뭔가가 있다는 망상입니다.” -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
내가 공공연한 무신론자에 대해 확신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무신론자들은 바보이고 통찰력이 떨어지고 성스러운 곳에 대해 욕을 하고 말을 거칠게 하고 유해한 악당일진 몰라도(보통은 그러하다), 거짓말을 하는 건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타협이라는 개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그냥 자유주의 국교도라 해야 맞다. -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
여러분은 포더링게이 씨가 지구의 회전을 멈췄을 때에 지표면 위에 있는 움직일 수 있는 온갖 사물들에 대해서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구는 매우 빠르게 회전하기 때문에 실제로 적도는 거의 시속 천 마일이 넘는 속도로 움직이고, 이곳의 위도에서도 그 절반 이상의 속도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마을과 포더링게이 씨와 메이디그 씨,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들이 거의 초속 9마일이 넘는 속도로 갑자기 앞으로 끌어당겨진 것이며, 대포에서 쏘아질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충격을 받게 된 것이다 - 「기적을 행하는 남자」
윈첼시 양은 로마로 갈 계획이었다. 윈첼시 양이 한 달 동안 그 얘기만 하자, 로마에 간 적이 없거나 갈 가능성이 없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윈첼시 양에게 반감을 품게 되었다. 일부는 로마가 소문만큼 멋진 곳은 아니라고 윈첼시 양을 헛되이 설득하려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등 뒤에서 윈첼시 양이 ‘그놈의 로마’를 가지고 지독하게 거드름을 피운다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 「윈첼시 양의 사랑」
그 모험 이후로, 기번 교수는 꾸준히 약의 사용을 통제해 왔고, 나는 여러 차례 약을 먹었지만 기번 교수의 지시대로 정량만을 먹었기에 나쁜 결과는 조금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약을 먹었을 때는 두 번 다시 감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약을 먹고서 이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그침 없이 끝까지 다 썼다. 중간에 한 딴짓은 초콜릿을 조금 갉아 먹은 게 전부다. 6시 25분에 시작했는데, 내 시계는 지금 거의 31분을 가리킨다. 약속으로 가득한 한낮에 길고 연속적으로 일할 시간을 확보하는 게 얼마나 편리한 건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 「새로운 촉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