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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 저자 김숨 지음
  • ISBN 978-89-7275-659-0 03
  • 출간일 2013년 04월 26일
  • 사양 320쪽 | 무선
  • 정가 13,000원

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가 김숨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진화하지도 멸종하지도 못한 채 화석인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인들의 이야기

▲ 이 책에 대하여

 2012년 4월호부터 11월호에 이르기까지 『현대문학』에 총 8회에 걸쳐 절찬 연재되었던 김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출간을 앞둔 지난겨울 EBS ‘라디오 연재소설’의 연재작으로 선정되어 전편이 낭독된 이 작품은 청취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출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김숨은 1997년 『대전일보』, 1998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그 뒤 세 권의 소설집과 다섯 권의 장편소설을 상자했다. 발표되는 작품들마다 폭력에 대한 공포와 불안, 감시에 대한 두려움, 실존의 고립감과 무기력, 자본주의 사회의 분열의 징후 등을 섬뜩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각종 문학상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장편소설 『노란 개를 버리러』로 <허균문학상>을, 2013년에는 단편소설 「그 밤의 경숙」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해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은 그동안 보여왔던 김숨 특유의 소설세계를 잇는 동시에 더 한층 넓고 깊은 시선으로 자기 세계를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숨은 유령처럼 살아갔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복원해낸다. 그 ‘어머니’는 우리가 그간 ‘훼손될 수 없는 영역’으로 규정했던 것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경제적 가치에 침윤되어 존재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오늘날의 현실 자체와 대면하게 한다. 적을 만났을 때 카멜레온의 일시정지처럼 화석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는 시어머니,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일회용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저임금의 하위 서비스직 종사자 며느리,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아들이자 남편, 그들의 가족 해체의 과정을 섬뜩할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출산 예정일을 닷새 앞둔 날까지 마을버스에,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으며, 크래커를 녹이며 입덧을 견뎌야 했던’ 며느리를 통해 인간 감정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가시화한다. 시어머니의 건강보다 발병이 야기하게 될 비용 문제를 먼저 고민하고, 직장생활 때문에 동거를 시작했던 시어머니를 자신의 퇴직과 함께 불필요한 잉여노동력으로 해석하는 그녀의 속물성은 자본의 거센 압력에서 필사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전략이다. 김숨은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 그녀를 경유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감정이 화폐가치로 환원되는가가 아니라 감정의 상품화가 개별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고 그 사람이 맺는 사회적 관계들을 어떻게 왜곡하는가를 짚어낸다.

 

▲ 줄거리는

두 여자가 있다. 침이 말라가는 여자(시어머니)와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회용품처럼 쓰이다 버려진 여자(며느리). 그녀들의 동거는 5년 전, 홈쇼핑 콜센터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일반적 시선에 의하면 두 여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와 같은 일반적 속성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속성을 지워버린 원인은 돈이다.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면서 따뜻한 인간성을 상실하고 기업이 요청하는 감정만을 강요받던 며느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우울과 수치심, 열등감, 타인을 향한 적대적인 감정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그녀에게 잉여적인 존재로 전락한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짜증으로 표출된다. 며느리는 침이 고갈되는 구강건조증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를 향해 자주 ‘침’ 같다고 말한다. 며느리에게 침은 하등 중요할 것 없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의 다른 이름이다. (‘뱉어버리는 게’ 바로 침이다.)
이런 며느리의 모욕에 대해 시어머니가 대응하는 존재방식은 화석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는 것. ‘화석인류’를 자처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인류 최초의 인간이자 여성인 루시, 즉 최초의 어머니로 돌아가는 것이다. 왜 하필 마르는 것이 침인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입안의 침이 마르면서 시어머니의 몸 또한 침처럼, 어쩌면 침보다 더 말라간다. 마르면서 점점 인류 최초의 인간이자 여성인 루시를 닮아간다. 루시와 침이 상징하는 바는 동일하다. 동물적인 모성애로 대표되는, 루시가 살았던 시대의 가치관으로 돌아가는 것. 더럽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 진통제가 함유된, 인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침처럼 ‘신장이 고작 1미터밖에 안’ 되었던 루시는 그러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이다. 루시가, 혹은 루시로 상징되는 모성성이 없었다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외관은 차츰 루시를 닮아가는데 그러나 침이 마르고 있다! 며느리의 모욕이 가중될수록 시어머니의 입속 침 역시 점점 더 말라간다. 루시 시대의 가치관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어머니의 열망이자 선택은 급기야 공사현장 구덩이 속에 들어가 눕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극대화시킨다.
종의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낳고자 하는 R전략가인 시어머니와 치열한 종내 경쟁을 뚫기 위해 최소의 자손만 낳겠다는 K전략가인 며느리의 공존은 가능할 것인가. 시어머니를 향해 모욕의 말을 던지는 며느리의 모습은 추하기보다는 오히려 서글프다. 그것은 며느리의 운명 역시 옆집이나 아랫집 혹은 한 골목에 살고 있는 이웃쯤 되는 화석인류의 삶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이 우리를 깊이 공감하게 하는 것은 이 책의 작가가 화석이 되어가는 ‘오늘’ 우리시대의 슬픈 초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섬뜩하면서도 예리하게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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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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