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다운 개성적인 문체와 생생한 묘사로 등단 직후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김이은의 첫 번째 창작집. 총 아홉 편이 수록된 이번 창작집은 작중화자의 존재론적 고독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고통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심리적 외적 현상에 대한 적확한 묘사에 의한 선명한 이미지 획득, 그와 대비를 이루는 환상적 장치와 날개 돋친 상상력, 이 둘이 김이은 소설의 추동력이 되어 소외된 존재들의 고통스러움을 내밀하게 띄워올리고 있다.
■ 이 책은… 신예다운 개성적인 문체와 생생한 묘사로 등단 직후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김이은의 첫 번째 창작집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는 200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 3년 만의 일이다. 총 아홉 편이 수록된 이번 창작집은 작품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방민호의 말을 빌리자면, ‘평속하거나 감상적이지 않으며 세련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 작가의식 선명한 신감각풍' 소설들이다. 작중화자의 존재론적 고독을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고통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간 이번 창작집은 신예작가 김이은의 역량을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심리적 외적 현상에 대한 적확한 묘사에 의한 선명한 이미지 획득, 그와 대비를 이루는 환상적 장치와 날개 돋친 상상력, 이 둘은 김이은 소설의 추동력이 되어 소외된 존재들의 고통스러움을 내밀하게 띄워올리고 있다. 표제작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는 환상적 장치를 고안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세간의 한탄에서 따온 이름이다. 남자는 햇빛을 쏘일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려서 생쌀과 야채만 먹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는 마다가스카르휘파람 바퀴벌레를 키우고 있다. “머릿속에서 남자의 몸은 자꾸만 구석을 향해 벌레처럼 작아져갔다” 혹은 “남자는 마다가스카르 바퀴에게나 자신에게나 모두 빛이 죽음이라는 건 엄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와 바퀴벌레가 동일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살예방센터에서 일한다는 김도명이라는 여인이 그를 찾아온다. 사실 그녀는 자살예방센터에 위장취업한 채 자살 가능자를 물색중인 엽기녀. 그녀는 ‘비상구'라는 클럽 명함을 건네며, 클럽 파티의 주인공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의 자살을 돕게 된다고 유혹한다. 평생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 그는 그녀가 건넨 클럽의 명함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쥬라기 나이트」는 직업이 모델인 여자가 주인공이다. 어느 날 일어나보니 배꼽이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후 귀가 사라졌다. 다시 얼마 후 오른쪽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사라진다. 여자는 불안하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까봐. 주인공은 잃어버린 모든 것을 다 되돌려준다는 쥬라기 라이트에 대한 스팸메일을 받고 그곳을 찾아간다. 찾아가는 과정과 쥬라기 나이트라는 공간은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처럼 환상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오른쪽 손은 배꼽께로, 나머지 한쪽 손은 머리칼이 덮인 관자놀이께로 가져간 채 걷고 있던 그녀는 문득 떼놓는 걸음이 서로 엇갈려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서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처음부터 쥬라기 나이트 앞에 서서 길을 잃었던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빈이 비니」는 사랑이 결핍된 상황에서 외롭게 성장해나가고 있는 빈이라는 소녀의 내면적 고통을 비니라는 개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묘사한 수작이다. 여주인공인 빈이와 선천적인 이유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삽살개인 비니. 빈이는 자기를 사생아로 키웠을 뿐만 아니라, 사진작가로서의 욕망 실현을 위해서 자기를 외딴 섬에 방치하고 있는 어머니를 증오한다. 이는 배추벌레를 짓이기는 행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비니를 죽이고도 어머니가 죽였다고 우기며 빈이는 끝까지 자신의 행위를 부정한다. 「진미식당 블루스」의 작중화자는 전직 간호사였다. 그녀는 그녀가 다니는 병원의사의 애인이었지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면서 버림을 받는다. 그리고 진미식당에서 그를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고, 진미식당을 찾아온 서민들의 잔치판과 다운증후군에 걸린 칠 개월이나 된 태아를 죽여버리고도 태연자약한 병원 풍경과 가짜 약사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남자가 동생을 만나는 장면 등이 서로 교차되면서 주인공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매직카페」와 「일리자로프의 가위」는 김이은 씨의 소설이 가지는 장점, 폭넓은 자료수집과 디테일한 묘사가 잘 나타나는 작품이다. 「매직카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주인공을 통해 비교적 단순하기는 하지만 마술을 부리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다. 「일리자로프의 가위」는 연골무형성증에 걸린 작중화자의 고독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절망적인 의지를 대단히 강렬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문득 『산해경』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름이 장우長右요, 귀가 넷인 동물이 있는데, 신음하는 듯한 소리를 가진 이 동물이 나타나면 마을에 큰 물이 진다……' 는 구절이 말입니다. 귀가 많으면 무슨 일이든 더 많이, 더 깊이 듣게 될 테지요. 자연 아프고, 힘들고, 슬픈 일들이 더 많아지게 될 겁니다. 그래서 흐른 눈물이 골이 패고, 줄기가 되어서는 급기야 큰 물이 지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보았습니다. 그래서…… 귀에서부터 마음으로 이르는 길을, 그 가느다란 선을 잘라버려야 할까? 나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고, 지금처럼 줄곧 진창에 구르더라도 온전히 아파하고, 제대로 앓아내자! 그것이 요즘 내가 생각하는 순리입니다. ■ 작품 해설 중에서 김이은 씨는 실업생활을 이어가는 남자의 삶을 극한적인 수준으로 밀어붙여서 마다가스카르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로 그려나간다. 남자는 곧 살아 있는 화석, 화석화된 생명, 빛을 감당할 수 없는 바퀴벌레 같은 존재다. 이런 이미지들은 김이은 씨가 소외되었거나 도태되어가는 약자들,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고 새로운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근의 작가들 가운데 이처럼 이미지의 소설을 보여주는 작가들은 많지만 김이은 씨처럼 그것을 사회적으로 열악할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구사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러면서도 진부하거나 감상적이거나 평속한 느낌을 주지 않고 세련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김이은 씨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 방민호(문학평론가) ■ 본문 중에서 남자는 머릿속으로 머리가 잘린 바퀴가 어항 속을 헤매는 상상을 한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하나의 뇌가 죽고 난 마다가스카르 바퀴는 어항 속에서 삶을 끝내고 나서도 다시 또 삶을 살아가겠지. 그러다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면 마다가스카르 바퀴는 나머지 삶도 끝낼 것이다. 첫 번째 죽음이 자신의 뜻이 아니었던 것처럼, 바퀴는 두 번째 죽음도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겠지…. 생각해보니 죽을 때의 방법을 스스로 택할 수 있다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닌 것 같다. 좁은 어항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34p 어릴 때, 화가, 꿈…. 여자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수선방을 걸어 나온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짝 소리를 한쪽 귀로 들으며 발을 떼놓는다. 여자의 머릿속에서는 구두 수선방 안의 선반이 그려진다. 선반 위에는 어느새 여자 자신이 올라 앉아 있다. 살펴보니 사라졌던 배꼽과 한쪽 귀도 온전히 원래 자리에 붙어 있다. 대신 여자는 새끼손가락만한 길이로 작아져 있다. 동시에 여자는 돌고 돌아 자신이 다시, 이 구두방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구두코의 스틸 장식이 햇살을 받아 반짝, 여자의 눈을 아프게 한다. 여자는 시린 눈을 꾹 눌러 감는다. -69p 여자는 콩나물국을 한 숟가락 뜨다말고 그만 닭 토막내는 소리에 귀가 거슬린다. 아줌마는 양쪽 날개를 잘라내고 이제 막 닭다리에 칼을 내리치고 있다. 칼은 단단한 뼈를 단번에 뚫지 못하고 두세 번 연속으로 내리찍고서야 겨우 닭다리를 잘라냈다. 그 서슬에 엄지 손톱만한 살점 하나가 여자의 테이블로 날아든다. 떨어져 나온 살점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섬뜩했다. 놀란 여자는 순간 살점을 집어서는 입안에 넣어 씹어 삼켰다. 익히지 않은 생살은 잘 씹히지 않아 한참을 꾹꾹 씹어야 했다. 날비린내가 입안 가득했다. -168p 마지막 성찬을 즐길 줄 모르는 배추벌레를 보면서 나는 끌끌 혀를 찼다. 자갈돌을 고쳐 쥔 나는 벌레의 끝 쪽부터 쿡쿡 찍기 시작했다. 연초록 물이 바닥에 조금 번지면서 배추벌레가 짓이겨지고 있다. 다 끝낸 다음 이걸 엄마 책상 위에 갖다놓으면 어떨까. 나는 열기 때문에 뻑뻑한 눈을 깜박이면서 어느새 일어나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비니를 보며 생각했다. 형체도 없이 짓이겨진 배추벌레의 시체를 보면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입 밖으로 저절로 웃음이 새나왔다. 그치려고 해도 입 모양은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질 뿐이다. 뭐가 불안한지 비니가 코를 킁킁거리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잠시 배추벌레 따위는 잊어버리고 비니의 목을 끌어안고는 귀 뒤쪽과 턱밑을 긁어주자 다시 눈을 감고 내 곁에 누웠다. 나는 돌로 찍어 배추벌레 죽이기를 그치지 않았다. 살이 물크러지고 내장이 찢겨졌다. -20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