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말의 탑>으로 등단한 소설가 정찬의 다섯 번째 단편집. <빌라도의 예수>, <베니스에서 죽다> 등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공황상태와 자유라는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가 이전 작품들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소설의 주제 면에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가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표제작 '희고 둥근 달'은 칼리굴라 역을 맡은 배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서 영원을 추구하기 위해 칼리굴라 역에 깊이 빠져들고, 이혼한 지 오래인 아내를 찾아가 누이인 드루실라 역을 맡아달라고 한다. 이밖에도 <작은 꽃 한 송이를 들고>, <야윈 몸>, <인간의 흔적> 등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과 운명을 살아가는 몸과 영혼의 함수관계를 밀도 높게 그린 열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번 창작집은 이전까지의 소설들에서 보여준 부조리한 현실과의 불화와 저항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종교를 갖지 않고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시킬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정찬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1978년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집 『기억의 강』『완전한 영혼』『아늑한 길』『베니스에서 죽다』,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황금사다리』『로뎀나무 아래서』『그림자 영혼』『광야』『빌라도의 예수』 등이 있다. 1995년 「슬픔의 노래」로 제26회 <동인문학상>을, 2003년 『베니스에서 죽다』로 제16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이 책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공황상태와 자유라는 문제에 오래도록 천착해왔던 소설가 정찬의 다섯 번째 창작집 『희고 둥근 달』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창작집은 이전 작품들과 연장선상에 위치하지만, 소설의 주제 면에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전까지의 소설들에서 보여준 부조리한 현실과의 불화와 저항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영혼의 ‘완전한'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 이번 창작집을 정찬의 ‘순례의 서序'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작은 꽃 한 송이를 들고」의 주인공 ‘나'는 연극 무대 디자이너로 <혼령>이라는 연극 무대를 준비 중이다. 그가 짧게 잠들 때마다 비슷한 꿈을 되풀이하는 데, 여자이면서 남자고 남자이면서 여자인 혼령이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그 혼령을 꿈속에서 만나고 난 뒤 무대를 완성하고 연극을 마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 ‘펜션 하늘 정원'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데, 그가 묵은 다락방은 그 집 딸이 쓰다 결혼하며 비게 된 곳. 그는 그 방에서 그 집 딸과 꿈속의 여자와 동일화 되는 체험을 한다. 물론 그녀를 만나는 공간은 또 다른 환상 속이다. 그녀는 ‘혼령'과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와 어느새 하나로 동화되며 사라진다. 「야윈 몸」은 아버지의 죽음을 소재로 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무지개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나는 굳이 서울로 가야겠다는 야윈 몸의 아버지를 업고 기차에 오른다. 제사를 지내는 나는 어머니에 대한 감회와 상상에 잠긴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은 몸을 들여다보며 느꼈던 고통이 아버지에게 전이된다. 제사를 지내고 돌아온 아버지는 곧 응급실로 실려가고 임종을 맞는다. 장면은 바뀌어, 나는 시공을 거슬러 갠지스 강변에 서 있고, 물이 차오르자 흰 강보에 싸인, 아기로 화한 아버지의 시신을 흘려보낸다. 죽음 그 이후의 영원의 세계를 향한 여행을 떠나보낸다. 이 작품은 죽음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문학에서의 오랜 테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간략한 함축보다는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화두로 남겨지는 작품. 「나비」는 금지되는 욕망을 통해 인간의 고뇌를 살펴보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아버지는 한 여인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시작된다. 나는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치마, 백일홍이 붉게 핀 여름날 마당에 널려 있던 그녀의 브래지어……. 그런 그녀는 어느 날 나에게 이 집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이면서 아들이 아닌 ‘너'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새어머니는 스스로의 욕망을 떨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를, 아니 그녀의 환영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은 강가의 선착장에서다. 전라의 그녀가 추는 춤은 나를 위한 씻김굿처럼 희비의 모든 욕망을 거두어준다. 표제작 「희고 둥근 달」은 칼리굴라 역을 맡은 배우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서 영원을 추구하기 위해 칼리굴라 역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이혼한 지 오래인 아내를 찾아가 누이인 드루실라 역을 맡아달라고 한다. 그것이 칼리쿨라의 완성이라 믿었기에. 그리고 나는 칼리굴라와 일체를 이루며 아내이자 드루실라인 그녀를 무대 위에서 살해한다. 그리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한다. 그리고 나는 무대가 아닌 병원에서 깨어나 진술서를 마저 작성한다. “무대의 본질은 허구이며, 허구의 존재에게 죄를 물을 수가 없”다고. 「폐역을 지나, 부서진 다리를 건너」에서 아버지는 상습 가출자로 폐염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나는 평생 유랑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그의 삶을 조립한다. 여섯 살에 북경에서 살며 일본인 학교에 보내진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길러지고, 아버지는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으로 침묵을 선택한다. 모국어를 잃은 아버지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신학을 통해 굶주림을 풀어나간다. 그 시절 운명적으로 어머니를 만났으나 아버지는 곧 다시 떠돌기 시작한다. 나는 유언이라는 형식으로나마 아버지의 내밀한 언어를 보고 싶어 한다. 「유랑극단」에서의 유랑이란 의미는 ‘모든 인간을 묶어놓고 고정시키고자 하는 세계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정의된다. 화장실에서 만난 여자는 마치 혼수상태인 것처럼 멍하게 울고 있다. 춥다는 말에 나를 그녀를 안아준다. 얼마 뒤 사람들이 몰려오고 나는 경찰서로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된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녀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유폐된 자궁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그녀에게 달빛으로도 씻을 수 없는 투명한 혼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한다. 「인간의 흔적」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가 온다. 소설 <실종>을 보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김우현)는 나를 만나 묻는다. “산양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산양이 화석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산양의 영혼과 만난 한 노인을 설악산에서 만나 본격적으로 산양을 찾아나섰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올무에 걸려 죽은 산양으로부터 누군가 걸어나오는 인기척을 느꼈다고 말한다. 김우현은 이러한 진술이 ‘나'의 소설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후 노인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들판에서 숨진 노인이 산양의 영혼으로 변신하여 산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황금빛 거품」은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먼 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이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그녀를 상담하게 된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지만 일시적 장님이 된 전환장애자. 나는 상담을 하며 그녀가 이혼한 어머니를 미워하고 이혼당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허공을 걷다」는 영원의 세계를 그린 작품. 나는 모스크바에서 한 집시소녀를 따라 걷게 된다. 나는 그녀를 통해 과거를 만나고 영혼을 만나고 시간 이후의 시간, 즉 구원을 만나게 된다. 「낙타의 길」은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영혼을 비참하면서도 아름답게 보여준다. 전쟁이 한창일 때 바그다드 알킨디 병원에서 이브라힘을 처음 만난다. 그는 자신은 죽지 않는 존재라고, 죽어가며 말한다. 자신은 딜문에서 살아남은 자이며, 티그리스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어부이며, 또한 자신이 사서로 있을 때 호메로스를 만나기도 했으며, 십자군 전쟁의 폐허에서 죽기도 했었다고 말한다. 그를 통해 나는 영원을 향해 유랑하는 것, 그것이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길임을 깨닫는다. 정찬은 이번 작품집을 통해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과 운명을 살아가는 몸과 영혼의 함수관계를 밀도 높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인간이 종교를 갖지 않고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시킬 것인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때문에 정찬이 내세우는 인간 상은 또 다른 의미의 차라투스트라로 작품 속에서 겹쳐지며 강조된다. ■ 작품해설 중에서 정찬이 소중하게 여기는 영혼이 육체와의 단순한 이분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의 종교적 성향은 배타적 독선적 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에서 발견한 공허한 무상성과 삶에서 나타나는 허공의 깊이를 알고자 하는 그의 유랑자의 운명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혼을 천착하는 그의 소설은 천박한 현실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끝없는 상상의 세계에서의 유랑이다. 그것은 때로 정찬 소설을 관념적인 것으로 폄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정찬 소설을 사실주의 소설로도 환상소설로도 분류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정찬 소설은 일반적으로 한국 소설이 가지고 있는 단순성을 벗어나 복합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의 문학적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수 없는 두께와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도 거기에 영혼의 목소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천천히 읽는 사람에게 작가 정신의 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영혼의 목소리와 같은 감동을 안겨준다. ―김치수(문학평론가·이화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