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음감과 의미를 정교하게 균형 잡는 ‘스타일리스트’, 혹은 ‘말과 소리의 리얼리스트’로 평가받는 소설가 서정인의 연작소설집 『모구실』이 현대문학 창간50주년기념 창작선으로, 최일남의 『석류』, 김채원의 『지붕 밑의 바이올린』에 이어 출간되었다. 빈틈없는 구성과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였던 초기 작품들을 거쳐 구어적 화법의 실험성 강한 『용병대장』에 이르기까지 소설가 서정인의 작품세계는 정체되기를 거부한다. 특히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연작소설집 『모구실』은 실험성 강했던 전작들에서 한층 더 나아가 실험성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말(대화)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표현주의 극과도 같은 형식, 탈중심적인 병렬 나열의 연작 형태, 동서양 신화와 고전을 무작위로 유입시키는 무거운 배치 등은 한국 소설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소설집만의 특징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집에 실린 열네 편의 작품은 제각기 완결되는 단편소설로 읽히기도 하고, 전체를 한 축 위에 놓고 읽으면 막(幕)으로 분할하고 있는 장편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를 두고 평론가 김윤식 선생님은 작품해설에서 발화가 되는 한 작품이 “증식을 일으켜 자기성장을 이루어”내는 “자기증식형 연작소설”의 형태를 구축한다고 평하고 있다.
서정인 소설가. 1936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종합교양지 월간 [사상계] 신인작품공모에 단편 소설 <후송>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1962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집 <강>(1976년), <가위>(1977년),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1980년), <철쭉제>(1986년), <붕어>(1994년),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1999년), 중편 소설 <말뚝>(2000년), 장편 소설 <달궁>(1987년), <달궁 둘>(1988년), <달궁 셋>(1990년), <봄꽃 가을열매>(1991년), <용병대장>(2000년), 산문집 <지리산 옆에서 살기>(1990년), 등이 있으며, 한국문학작가상(1976년), 월탄문학상(1983년), 한국문학창작상(1986년), 동서문학상(1995년), 김동리문학상(1998년), 대산문학상(1999년), 이산문학상(2002년),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 이 책은 언어의 음감과 의미를 정교하게 균형 잡는 ‘스타일리스트', 혹은 ‘말과 소리의 리얼리스트'로 평가받는 소설가 서정인의 연작소설집 『모구실』이 현대문학 창간50주년기념 창작선으로, 최일남의 『석류』, 김채원의 『지붕 밑의 바이올린』에 이어 출간되었다. 빈틈없는 구성과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였던 초기 작품들을 거쳐 구어적 화법의 실험성 강한 『용병대장』에 이르기까지 소설가 서정인의 작품세계는 정체되기를 거부한다. 특히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연작소설집 『모구실』은 실험성 강했던 전작들에서 한층 더 나아가 실험성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말(대화)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표현주의 극과도 같은 형식, 탈중심적인 병렬 나열의 연작 형태, 동서양 신화와 고전을 무작위로 유입시키는 무거운 배치 등은 한국 소설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소설집만의 특징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집에 실린 열네 편의 작품은 제각기 완결되는 단편소설로 읽히기도 하고, 전체를 한 축 위에 놓고 읽으면 막(幕)으로 분할하고 있는 장편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를 두고 평론가 김윤식 선생님은 작품해설에서 발화가 되는 한 작품이 “증식을 일으켜 자기성장을 이루어”내는 “자기증식형 연작소설”의 형태를 구축한다고 평하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쉰을 넘긴 천수건이 산간벽촌 모구실을 찾아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구실은 한두 차례 버스가 오가는 게 교통수단의 전부인 외진 마을의 이름. 등산복 차림의 천수건이 모구실의 모후산을 찾아가는 건 그곳에 소재한 보건소의 소장으로 있다는 딸을 만나기 위함, 무슨 연유에선지 딸은 그와 소식을 끊고 이곳까지 잠적해 들어와 있다. 천수건은 대충 보건소의 위치까지 파악했지만 막바로 딸에게 가지 않고 허름한 점방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며 주인 노파와 한담을 주고받는다. 호칭 문제, 있는 사람들 별장 이야기, 벌초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천수건은 노파로부터 보건소 딸의 이야기를 얻어듣는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과 진료를 성실히 한다는 것 등등. 결국 모구실에 도착할 때부터 그를 발견하고 있던 딸이 그를 찾아와 상면하게 되지만, 살갑기는커녕 빨리 돌아가라는 딸의 성화에 천수건은 슬그머니 보건소를 빠져나와 마을 폐교로 가 폐교를 지키는 서존만과 점방 아들 조성달과 술판을 벌이며 온갖 세상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 소설집의 본론이 시작되고, 동서양 고전과 신화,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술기운에 달아오르고 남도 사투리에 젖어 걸지게 풀어진다. 그리고 지문은 현저하게 줄어 거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서존만 모친의 개가, 조성달 아들놈은 몇 년이 넘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 천수건 집안 사정 등, 밑바닥 이야기부터 고담준론에 이르기까지 기복이 심한 이야기들이 한판의 마당극처럼 휘몰아친다. 등장인물도 거의 일정하게 3인으로 압축돼 있고, 한 사람이 퇴장하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이 입장해 자리 메꾸기를 한다. 그러다가 등장인물이 둘로 압축되고, 종국에 마지막 작품 「불나방」에 와서는 거의 독백에 가까운 장문의 일장 연설이 극을 이룬다. 물론 듣고 이따금 질문의 역할을 맡은 서존만이 등장하지만 그는 후렴꾼 정도의 역할에 머문다. 그리고 천수건은 선문답 같기도 하고, 유장한 철학담론 같기도 한 이야기를 토로하는 논객이 된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귀결인, “생물학적”으로나 “화학적”으로 모두에게 균등하게 돌아가게 마련인 “죽음”에 대해 화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한다. “죽음에 이름표가 있냐? 부자의 죽음과 빈자의 죽음, 미인의 죽음과 추물의 죽음이 서로 다르냐? 니, 권주가 헛들었구나. 죽음은 다 같고, 그것에 대한 해석들이 다르다. 의견들이야 보는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많겠지. 나는 가능하면 평가들도 같았으면 좋겠다. 이베리아 반도 바닷가나 히말라야 산맥 산골 어디의 죽음도 정중히 애도하고, 우리 동네, 우리 집의 그것도 애이불비,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으면, 평화가 온다. 죽음들을 원근간에 친소간에 같다고 생각하면, 어느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학대하는 일은 없을 거다.” 다음과 같은 『모구실』에 대한 김윤식 선생님의 평가는 가감 없이 이 작품집의 질량을 추출해내고 있다 할 것이다. “자기증식형 연작을 가능케 한 자질이 씨에게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을 터. 곧, 동서고금의 고전(철학)으로 뚫고 나가기가 그것. 희랍 고전, 논어를 비롯한 동양 고전이 지닌 인류 정신사의 고귀성으로 잡스러운 소설을 끌어올리기.” 끌어올려진 소설의 고도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 그것은 이제 한국 문단의 지속적인 숙제가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걸어요? 어디를요? 아이고, 못 걸어요. 지금 걸어도 차보다 늦게 들어간단 말이요. 차는 여그서 타나 도중에서 타나 시내요금 육백 원은 마찬가진디, 왜 그렇게 멍청헌 짓을 헌다요?” 그녀의 일행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래, 그래, 옛날 같았으면, 이십 리가 뭐냐, 삼십 리도 팽팽하게 발뒤꿈치에서 먼지를 일으키면서 걸었다. 가만히 앉아서 갈 수 있는데 왜 걷냐, 미련하게? 그는 그들이 옳다고 생각했다. ―「모구실」11p 중에서 “나 말이냐? 내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내가 뭘 잊어버렸냐? 여기 이 깡촌에도 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 사람이다.” “조씨와는 어떻게 어울렸어요?” “성달이 말이냐?” “아예 통성명까지 했어요?” “다섯 시간을 술을 마셨는디, 이름도 모르고 마셨겠냐? 니가 가라고 해서 집에 갈라고 큰길로 나와서 차를 기다리다가, 오줌이 매려워서, 마침 축대가 있길래, 그 밑으로 내려갔다. 누가 닭의 새끼를 잡고 있더라. 할머니 가게에 막걸리는 떨어졌지만, 두 홉들이 쇠주병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가 찾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생각나더라. 셋이서 마셨다.” “아예 동네 단합대회를 해요.” ―「진료소」51, 52p 중에서 “승화와 설사가 같냐? 배설이면 다 같은 배설이냐? 몸 밖으로 밀어내기만 하면 능사냐? 물똥은 배탈 때문에 누고, 배앓이는 소화불량 때문에 생긴다. 가짜는 거짓이고, 허위는 소화가 잘 안 된다. 기관총 두 번 쏘고 세 번 쏴봐라. 사람 탈진헌다.” “진이 빠질 때 빠지더라도 우선 시원허다.” “후련하지. 감정의 정화는 정신건강에 좋지. 공포와 연민을 통해서 그런 감정을 순화하는 것은 우리의 까막눈을 뜨게 해주고 우리의 작은 키를 키워주지. 가짜 감정도 감정이냐? 울면 다 배설되냐? 감상주의는 호도와 허위로 우리들을 사실에 눈멀게 한다. 진실은 대부분 고통스러워서 안 보면 더러 위안이 되는 수가 있다. 그리고 더 큰 병을 키운다. 마비. 바보상자 앞에 한 시간 앉아 있던 사람이 그것의 최면으로부터 깨어나자면 그만한 시간이 또 필요하다.” ―「의료원」157, 158p 중에서 “없는 것이 귀하면 뭣할 것이오? 누구 약 올리요? 없으면 없을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오. 아쉽지만 있는 것 가지고 삽시다.” “니가 살자고 안 해도 그렇게 살고 있다. 말도 못 허냐? 없는 것이 없는 줄을 모르면, 있는 것을 완벽한 것으로 믿기 쉽다. 완전한 것을 완전하다고 믿는 것도 오만하고 위험하다. 있는 것은 온전하지 않다. 그것을 온전하다고 믿으면 그 착각이 그것을 망친다.” “원시가 야만이 아니라 현대가 미개요? 사람은 그것을 향해서 초속 백 미터로 숨가쁘게 달려왔소?” ―「되고개」193p 중에서 “니는 옳은 소리를 가끔 한다. 바보 같은 소리도 더러 한다. 나는 많이 맞고 가끔 틀린다. 우리는 둘 다 옳기도 하고 잘못되기도 한다. 이왕이면 교대로 하자. 내가 정신이 들 때는 니가 넋이 나가고, 내가 나사가 빠질 때는 니가 꽉 조여라.” “친구 좋다는 것이 무엇이요?” “질병과 죽음은 무엇일거나? 성장이냐, 세뇌냐?” “그야 공포 아니요?” “나는 크기라고 생각한다.” ―「쟁몽두」319p 중에서 “법 앞에서 만민은 불평등해도,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소.” “그것 참 좋다. 너는 일찌감치 진리를 얻었구나. 암. 똑같지.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같고, 죽은 뒤 화학적으로 같다. 사람들이 왜 그것을 모르냐, 그래? 퍝 잔 먹새 그녀 쿜 퍝 잔 먹새 그녀. 곳것거 산노코 무진무진 먹새 그녀.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퍥 거적 더퍼 주리혀 큟여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우러 예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퍥 흰 달 캱콋 비 굴근 눈 쇼쇼리 킞람 불제 뉘 퍝 잔 먹쟈 퍞고. 퍛물며 무덤 우퍥 퉥나비 퍈람 불제 뉘우틎쾗 엇더리. 나는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죽음이라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시기 전까지 죽음을 남의 일로 생각했다. 친척, 친지, 친구들이 점차 죽어가자 그것은 더욱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하도 많이 죽어서, 나는 가끔 심심하면 열 손가락들을 폈다 굽었다 하면서 헤아려본다, 나의 한 부분이 떨어져나간 것 같다. 누구를 위해서 종이 울리는지 알아볼라고 하지 마라. 그것은 너를 위해서 운다. 시인은 사람이 죽으면, 아무나 간에 죽으면, 인류가 그만큼 줄어들었고, 너는 그것의 한 부분이니, 그것의 손실은 바로 너의 손실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 나의 관심을 나 밖으로 그렇게까지 멀리 확장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불나방」374, 375p 중에서 ■ 작품 해설 중에서 다인행→3인행→2인행으로 향하기, 다인행 이 자기증식형 연작의 도달한 지평을 보시라. 무대가 있고, 관객도 있고, 합창단도 있습니다. 무대 위엔 3인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차츰 지나자, 무대 위에 3인행은 어느새 2인행으로 되지 않겠는가. 2인행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무대도 객석도 사라지고 없지 않겠는가. 또 조금 지나자, 2인행도 사라지고 오직 ‘나' 혼자의 독백이 있지 않겠는가. 또 시간이 지나자 독백조차 사라지고 합창단(코러스)의 목소리만 들려오지 않겠는가. 자기증식형의 도달점이 아닐 것인가. 예술의 완결형인 조각이 숨쉬고 있던 그 희랍의 원형 노천극장에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지 않겠는가. -김윤식(문학평론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