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돌봄, 그리고 비극과 희극의 작가 박지영
2010년 『조선일보』로 등단해 2013년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받은 박지영은 등단 이래 두 권의 소설집과 세 권의 장편소설, 한 권의 짧은 소설을 상자했다. 일찍이 장르소설로 그만의 횡보를 보이던 박지영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존엄한 죽음을 꿈꾸는 인물들의 모순된 욕망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 『고독한 워크숍』과 이웃이 되기 위한 필수 지출 비용 ‘이웃비’에 대한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 『이달의 이웃비』를 연달아 발표하며 자신만의 확장된 문학세계를 독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번에 발표한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는 앞선 이 두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홀로 애쓰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나를 덕질하기로 한 복미영의 용맹하고 경솔한 전복기
후지고 다정한 사람들의 위대한 입덕 선언
복미영이 복미영의 팬클럽이 되어주는 이 소설은 가장 먼저 복미영을 혐오하는 한 사람을 찾아가고, 그것은 자신을 사랑해야겠다고 깨달은 복미영의 자기 돌봄의 시작이 된다.
열다섯 살에 데이빗 보위의 팬이 된 이래 누군가의 팬이기를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복미영은 덕질하던 W가 음주운전과 뺑소니로도 모자라 불법 촬영물과 관련된 메신저 단체방 멤버였다는 것까지 알려지자 탈덕하기로 마음먹는다. 탈덕과 함께 팬으로서의 정체성에 환멸을 느낀 복미영은 자괴감과 자기 환멸로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지만 자신의 삶을 근본부터 바꾸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나 같은 것도, 아니 어쩌면 나 같은 거라서, 오히려 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38p) 누군가의 팬이기만 했던 복미영은 자신에게 팬을 선물하기로 하고, 팬클럽을 창단한다. 이름하여 복미영 팬클럽. 복미영은 자신의 팬들에게 ‘1회 버리기 신청권’을 선물하고, 자신의 안티팬을 위해 역조공, 버리기 이벤트에 나선다. 복미영은 이 이벤트에 ‘동네북살롱’의 같은 구성원이자, 자신에게 1호 팬으로 낙점된 김지은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김지은은 ‘동네북살롱’의 일원이 되며 복미영과 교류하는데, 사실 김지은이 북살롱의 일원이 된 것은 자신의 엄마 베로니카를 돌봐주던 동거인 은수 이모를 그녀의 딸 성해은에게 ‘버리기’로 마음먹고 그 조력자로 복미영을 지목했기 때문이다. ‘1회 버리기 신청권’은 김지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었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는 다층적인 의미의 겹들로 된 작품이다. 하지만 차이와 반복에 의해 이끌려가는 구성적 의미층들은, 핵심적인 흐름에서 “떠맡겨짐”이란 하나의 중심축을 유지한다. 그 중심축을 떠받치는 또 다른 테마는 사소함을 사랑하려는 노력이다. 혹은 사소한 선을 위대함으로 전환하는 역량에 관한 이야기라 해도 될 것이다.
―이성민(문학평론가)
“유려한 문장과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들 특유의 방어적이면서도 대담한, 한마디로 미워할 수 없는 비호감 캐릭터들 속에서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동적인 혁명성’ ’조용한 적극성‘을 창조”(박혜진)해, 혐오의 시대 속 고립된 인간들이 스스로의 삶을 수선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표4
실패한 덕후 복미영의 자기 돌봄 프로젝트
‘인생을 수선해드립니다’
팬클럽이란 태생부터 한 사람의 무게가 수십, 수백, 수천, 아니 수만……의 무게와 맞먹는 비대칭 관계의 정점이다. ‘복미영 팬 클럽’은 반대다. 팬클럽이라는 형식을 그대로 가지되, 팬클럽 본연의 역학을 전복함으로써 비대칭 관계를 대칭적 관계로 만 본연의 역학을 전복함으로써 비대칭 관계를 대칭적 관계로 만든다. 팬이 스타를 선택하고 추종하는 관계에서 스타가 팬을 선택하고 추종할 때, 사랑의 세계에서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문장,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명제는 힘을 잃는다. 복미영 팬클럽의 세계에서 팬, 그러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는 약자들의 고통을 착취하고 정당화하는 무례하고 이기적인 세상에 찬물을 끼얹는 한 편의 전복사다.
―박혜진, 「작품해설」 중에서
작가의 말
아주 긴 입덕 부정기를 지나 이제야 고백하건 대, 나는 소설이 좋다. 때로는 소설이 나를 왜 이렇게 사랑해, 라고 뻔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자주 내 소설 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해지지만 그건 나의 문제일 뿐, 소설은 언제나 나를 한결같이 담대하고 공평하게 사랑해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건 소설을 사랑하며 읽고 쓰는 많은 독자들, 이야기의 팬들이 소설에, 그러니까 나의 최애에게 만들어준 선한 영향력 덕분이 아닐지.
복미영의 이야기를 쓰며 내가 바라는 건 하나였다. 이 소설을 읽고 단 한 명이라도 복미영의 팬이 되는 것. 그러나 그것은 나의 소심한 바람일 뿐, 복미영은 자신이 운전하는 차의 옆자리에 앉아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독자에게라면 용맹하고 경솔하게 먼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 나의 팬이 되어라. 그리고 부디 지금부터 내가 나의 팬을 위해 준비한 작고 다정한 역조공 이벤트를 받아주길 바라. 그리고 나 역시 당신의 팬이 될 수 있도록 당장 너의 팬 클럽을 만들어라. 나는 내가 못 하는 것들을 복미영이 해서 좋다.
본문 중에서
* 사실 덕질이라는 건 말이야, 그 헛짓거리를 하려고, 헛짓거리를 열정적으로 몰입해서 하려고 하는 거거든. 허공에다 살을 날리는 거랄까, 꽃으로 치장한 살 같은 걸. 그러니까 좋아 죽겠다, 라는 마음 말이야, 너무 좋아서 죽을 거 같은 그런 저주 같은 걸 나비 날개처럼 투명하고 곱게 접어서 하늘하늘 날리는 거. 세상에 진짜 고결한 거, 숭고한 거, 그런 건 헛짓인 줄 알면서 하는 헛짓거리뿐인 건 아닐까
-24쪽
* 이렇게 좋은 기운을 남들에게만 퍼주며 살고 있었네. 이제부터는 내가 내 팬이 되어보자. 그러자 복미영은 처음 최애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들뜨고 신나는 마음에 입 안 가득 말간 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죄다 쓰레기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결국엔 쓰레기로 판명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설마 나도.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런 것은 다 맥거핀에 불과하다고, 그때의 복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40쪽
“아니, 팬클럽이 있다고 하시니까 궁금해서요. 팬이 있다는 건 어떻든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데.”
“그건 아니고요.”
복미영이 민망해하며 웃더니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추스르며 중얼거렸다.
“제가 실은 좀, 그래요.”
“좀 그렇다니, 뭐가요?
“그게,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치도 않아요. 그래서요.(……) 그러니까 팬클럽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위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필요하잖아요, 팬클럽 같은 게. 그래서 제가 만들었어요, 복미영 팬클럽.”
-56-57쪽
* “미영아, 자기야, 이제 그만 자기 인생 살아. 내가 책 수선 전문가로서 말하는데, 책은 고쳐 쓸 수 있어도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잖아. 나는 연예인한테 뇌도 의탁하고 희로애락도 의탁하고, 그런 사람 보면 이해가 안 가더라. 돈 쓰고 마음 주고 그래서 남는 게 뭐니. 인생 망할 일 있니?”
-61쪽
* 도래할 나중이 늘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겠지만, 꼭 해피엔딩일 필요가 있나. 계속 열린 엔딩인 채로 우리가 서로 얼마나 어떻게 어디까지 호환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헛다리 짚으며, 동반자로서의 안전지대를 미숙한 채로 조금씩 확장시키며 나아가볼 뿐. 세상은 녹록지 않다
-237쪽
* 절망은 쉽고 낙관은 어렵다. 그러나 세상의 시간은 절망의 속도가 아니라 낙관의 속도로 움직인다. 아마도 용맹한 박자로, 경솔한 리듬으로. 낙관한 사람들이 먼저 도달한 나중의 세계에서 열어놓은 문을 통해, 지금의 세계 역시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중과 지금의 경계는 불확실해지고, 지금 이미 와 있는 나중을 우리가 발견하기만 하면 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말들을 하는 건, 정말로 믿기 때문이 아니라, 믿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환한 나중은 도래하기 때문에.
-243-244쪽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쉰다섯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분기별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출간되었거나 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출간)
018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2019년 9월 25일 출간)
019 임 현 『당신과 다른 나』(2019년 10월 25일 출간)
020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년 11월 25일 출간)
021 박민정 『서독 이모』(2019년 12월 25일)
022 최정화 『메모리 익스체인지』(2020년 1월 25일)
023 김엄지 『폭죽무덤』(2020년 2월 25일)
024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2020년 3월 25일)
025 이영도 『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2020년 4월 25일)
026 듀 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2020년 5월 25일)
027 조 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2020년 6월 25일)
028 백민석 『플라스틱맨』(2020년 7월 25일)
029 김희선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2020년 8월 25일)
030 최제훈 『단지 살인마』(2020년 9월 25일)
031 정소현 『가해자들』 (2020년 10월 25일)
032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2020년 12월 25일)
033 최진영 『내가 되는 꿈』 (2021년 2월 25일)
034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2021년 4월 25일)
035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2021년 6월 25일)
036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2021년 8월 25일)
037 우다영 『북해에서』 (2021년 10월 25일)
038 김초엽 『므레모사』(2021년 12월 25일)
039 오한기 『산책하기 좋은 날』(2022년 2월 25일)
040 서수진 『유진과 데이브』(2022년 4월 25일)
041 한정현 『마고麻姑―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2022년 6월 25일)
042 이주란 『어느 날의 나』(2022년 8월 25일)
043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2022년 10월 25일)
044 이서수 『몸과 여자들』(2022년 12월 25일)
045 천희란 『K의 장례』(2023년 2월 25일)
046 문진영 『딩』(2023년 4월 25일)
047 임솔아 『짐승처럼』(2023년 6월 25일)
048 강화길 『풀업』(2023년 8월 25일)
049 김지연 『태초의 냄새』(2023년 10월 25일)
050 이장욱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2024년 1월 25일)
051 김 솔 『행간을 걷다』(2024년 4월 25일)
052 김멜라 『환희의 책』(2024년 7월 25일)
053 안보윤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2024년 10월 25일)
054 예소연 『영원에 빚을 져서』(2025년 1월 25일)
055 박지영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2025년 7월 25일)
056 위수정(근간)
057 문지혁(근간)
058 조해진(근간)
059 장강명(군간)
현대문학 × 아티스트 윤석남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윤석남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중퇴하고, 프랫 인스티튜트 1년 과정과 아트 스튜던트 리그 오브 뉴욕을 수료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을 개척했으며, 회화, 설치, 조각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이루었다. 서울, 베니스, 뉴욕, 토리노, 시드니, 상하이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으며, 영국 테이트갤러리, 서울 88올림픽공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호주 퀸즈랜드 아트 갤러리, 일본 후쿠오카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중섭미술상〉 〈국무총리상〉 〈김세중 조각상〉 〈이인성 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국민훈장모란장〉을 수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