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관계에 다가서려는 시도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어갑니다”
시인이자 소설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더러 있어왔지만, 어느 순간 한쪽으로 치우쳐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 시 부분으로 등단하고,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시인이자 소설가가 된 임솔아는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장편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을 연이어 내놓으며, 문단에서 보기 드문, 시, 소설 모두에서 당대 최전선으로 부상했다.
도망친 유기견을 찾는 사연과 자매의 갈등과 화해, 두 개의 고리로 연결된 임솔아의 이번 신작 『짐승처럼』은 가출 청소년이자 학교 폭력 피해자인 한 인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전작 『최선의 삶』의 프리퀄(전편)이자 스핀오프(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지만 캐릭터가 다른 파생작 번외작), 시퀄(후속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때때로 다니러오던 이종사촌동생 채빈이 우리 집에 남겨진 날, 엄마는 채빈이 사촌동생이 아닌 내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상치 못한 엄마의 고백 이후 가족이 된 우리는 서로에게 맘을 열지 못한다. 맘 둘 곳 없는 채빈은 길에서 만난 동물과 아이들을 계속해서 집으로 끌어들이던 어느 날 엄마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고,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한 채빈은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아무 설명 없이 집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나는 “타인의 손을 덥썩 잡는 것이 위험”(74쪽)하다고 생각하며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채, 철저히 혼자의 삶을 살아간다. 엄마의 죽음 이후 10년 만에 나타난 채빈과 나는 다시 함께 살게 되며 유기 동물을 집으로 끌어들인 사람이 채빈이 아닌 엄마였으며, 엄마의 죽음에 관한 뒷이야기들을 채빈으로부터 그제야 듣게 된다. 별나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키우며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던 나와 채빈은 별나의 어미인 유나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유나를 찾아 나서며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비로소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짐승처럼』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과 동물이 맺는 깊은 유대를 가부장제의 외부로, 혈연 가족의 범주를 넘어서 상상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 『짐승처럼』은 동물에 관한 최근의 관심을 가로질러 타자들에게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누가 행위를 하고 있으며 무엇이 가능할지, 어떻게 세속의 행위자들이 서로를 책임감 있게 대하면서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해하는 문제와 결부된다. 『짐승처럼』은 친족으로서 동물이 어떻게 소설에 기입되는가를 보여주는 새로운 소설인 동시에 책임감 있게 대하며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는 페미니즘적 탐구이다.
―김주원(문학평론가)
작가의 전작인 『최선의 삶』이 최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고 하면 이번 작품은 그 외로운 과정의 끝에 ‘가족’을 발견한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작가는 이 과정에 과한 억지 감정을 이입시키지 않으며 “서늘하도록 선명하고 넓으며, 위태로우면서도 태연하다”는 ‘임솔아 유니버스’를 확장해나가며 세상 속으로 한 발짝 의미 있는 걸음을 내딛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에 다가서려는”(김다솔) 유의미한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말
베타 한 마리와 함께 산 적이 있다. 나는 그 베타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는데,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너무 인간의 방식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름이 있고 없고가 우리 둘은 전혀 상관없었다. 말을 걸고 싶어지면 어항에 다가가 베타를 바라보면 되었다.
베타가 죽고 난 뒤부터 난감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종종 생각이 났고, 그리웠고, 그러면 이상하게도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부를 이름이 없다는 걸 알아챌 때마다 손잡이가 없는 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막막해졌다. 하지만 죽고 난 뒤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내가 잘못했을까. 베타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않은 것이 가끔은 후회되었고, 후회하는 마음을 또 가끔은 후회하였다.
이 후회조차 너무 인간의 방식이라는 생각 속에서 이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우리 집 강아지가 책상 아래에서 내 발가락을 핥아주다 잠들곤 했다.
이 소설은 애석하게도 인간의 언어로 꽉 차 있어서 인간동물만 읽을 테지만, 비인간동물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적어둔다.
표4
짐승처럼 다가와줄 당신을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임솔아의 『짐승처럼』은, 단언컨대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더 구체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에 다가서려는 시도라고도 말해볼 수 있겠다. (……) 임솔아는 지금까지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꾸준히 구체화해온 작가다. 시의성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소설이 유독 돋보이는 건, 공존의 이상적인 측면뿐 아니라 미묘한 불협화음마저도 함께 부감하는 특유의 기민함 덕분일 것이다. 그 바탕에는 인간이 비인간과 나란히 행위자로 묶이기 위해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종차별적 불평등까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경각심이 있다. (……) 임솔아식의 공생은 차등까지 모조리 끌어안아야 하기에 위태롭지만, 그렇기에 현실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지는 힘이 있다. 이 힘을 되새기며 『짐승처럼』은 인간이 스스로를 제명시킨 짐승이라는 심연에 한 발을 내디뎌보는 중이다.
-김다솔, 「작품해설」 중에서
본문 중에서
* 집에 돌아와 채빈은 별나에게 통조림을 주었다. 별나가 처음으로 먹어보는 통조림이었다. 별나는 순식간에 통조림을 먹어 치웠다. 빵빵해진 별나의 배를 채빈은 어루만졌다.
“졌네.”
나는 채빈에게 말했다. 채빈은 옆으로 누워 별나의 손과 발을 만지작거렸다. 채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졌다.”
별나를 사랑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채빈은 그 순간 포기했다.
-71-72쪽
* “원래 알고 있었어?”
내가 채빈에게 물었다.
“뭘?”
“이런 마음을.”
“그럼.”
“왜 나한텐 안 알려줬어?”
별나의 눈곱을 떼어주며 내가 물었다. 채빈이 웃었다. 채빈과 나는 비로소 자매가 되어갔다. 삐약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채빈이 엄마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그때처럼. 하루하루가 완벽했다.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원해왔던 삶이 시작된 것 같았다.
-78쪽
* “유나를 찾았어?”
채빈이 물었다.
“모르겠어. 나는 유나를 알아볼 수가 없었어.”
별나는 풀 냄새를 맡았다. 매일 오가는 똑같은 길이었지만 바람이나 온도에 따라 풀 냄새는 변할 것이었다.
“엄마가 옥상에서 떨어지던 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채빈에게 물었다. 채빈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언니.”
채빈이 나를 불렀다.
“응.”
“그날 다 말했어.”
-130쪽
* “말하고 싶었고. 말 안 하고 싶었어. 언니가 물었잖아. 이런 마음을 원래 알고 있었느냐고. 이런 마음이 뭔지, 언니도 알길 바랐어.”
채빈이 말했다.
-136쪽
“유나도 데려올까?”
채빈이 말했다.
“걔가 유나든 아니든. 같이 살다 보면 알 수 있겠지.”
“무엇을?”
“그게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나는 드라이기를 꺼내 왔다. 별나의 발이 뽀송뽀송해질 때까지 말려주었다.
“난 이제 우리가 가족 같아.”
-137-138쪽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마흔일곱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격월 25일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출간되었거나 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출간)
018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2019년 9월 25일 출간)
019 임 현 『당신과 다른 나』(2019년 10월 25일 출간)
020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년 11월 25일 출간)
021 박민정 『서독 이모』(2019년 12월 25일)
022 최정화 『메모리 익스체인지』(2020년 1월 25일)
023 김엄지 『폭죽무덤』(2020년 2월 25일)
024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2020년 3월 25일)
025 이영도 『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2020년 4월 25일)
026 듀 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2020년 5월 25일)
027 조 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2020년 6월 25일)
028 백민석 『플라스틱맨』(2020년 7월 25일)
029 김희선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2020년 8월 25일)
030 최제훈 『단지 살인마』(2020년 9월 25일)
031 정소현 『가해자들』 (2020년 10월 25일)
032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2020년 12월 25일)
033 최진영 『내가 되는 꿈』 (2021년 2월 25일)
034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2021년 4월 25일)
035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2021년 6월 25일)
036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2021년 8월 25일)
037 우다영 『북해에서』 (2021년 10월 25일)
038 김초엽 『므레모사』(2021년 12월 25일)
039 오한기 『산책하기 좋은 날』(2022년 2월 25일)
040 서수진 『유진과 데이브』(2022년 4월 25일)
041 한정현 『마고麻姑―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2022년 6월 25일)
042 이주란 『어느 날의 나』(2022년 8월 25일)
043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2022년 10월 25일)
044 이서수 『몸과 여자들』(2022년 12월 25일)
045 천희란 『K의 장례』(2023년 2월 25일)
046 문진영 『딩』(2023년 4월 25일)
047 임솔아 『짐승처럼』(2023년 6월 25일)
048 강화길 근간
049 이장욱 근간
050 김지연 근간
현대문학 × 아티스트 이연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이연미
국민대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도쿄갤러리 개인전을 시작으로 갤러리 현대, 서울시립미술관, 상하이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자신만의 정원을 구축하고,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간극을 극대화시키며 거칠게 날이 선 나무와 신비롭고 낯선 형상의 동식물이 뒤섞인 서정적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