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을 캉탕으로 이끈 그들의 사이렌,
자기를 향해 쓴 기도이자 일기
한중수, 핍, 타나엘 세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총 3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프롤로그(0장)와 에필로그(32장)를 제외하고, 홀수 장은 3인칭으로, 짝수 장은 1인칭으로 기록되어 있다. 3인칭의 홀수 장은 핍과 타나엘을 캉탕에 정박하게 만든 사연에 관한 서사적 기록이며, 짝수 장은 캉탕으로 보낸 정신과 의사 J에게 들려주기 위해 기록한 한중수 자신의 이야기이자, 신에게 보내는 기도이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뤘으나 원인 모를 머릿속 진동의 충격으로 쓰러진 한중수, 어린 시절 읽은 『모비 딕』에 매료되어 바다를 떠돌다 우연히 배가 정박한 곳에 피쿼드란 선술집을 열고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는 핍, 유배지 아닌 유배지에서 신앙과 삶의 궤도에서 이탈한 채 실패한 자기 인생을 글로 쓰고 있는 선교사 타나엘.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대서양의 작은 항구 도시 캉탕에서 이 셋은 처음 만난다. 사이렌SIREN의 유혹에 홀린 듯 낯선 곳에 정박하게 된 이 셋은 진정한 자신의 회복을 위해 그곳에서 치열한 사투를 벌이지만 세계와 자아의 균형을 회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유령과 같은 삶을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 그들이 택한 것은 도망쳐 온 자신의 과거 속에 숨겨둔 자신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한 여인을 사랑했으나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을 자신에게 털어놓는 타나엘을 보며 한중수는 비로소 자신을 괴롭히던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부모에 대한 원망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아내 나야의 생일파티에 함께하겠다고 나선 한중수에게 더 이상 나야의 죽음을 숨길 수 없었던 핍은 비로소 나야의 부재를 고백하며 아내와 진정한 이별을 한다. 잔잔한 바다를 기원하며 제물로 사람을 바치던 풍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마을 축제의 마지막 날 타나엘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자원하며 바다에 뛰어들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그들의 고백은 그렇게 스스로를 억압하던 과거로부터 놓여나게 하고 캉탕의 바다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한중수, 핍, 타나엘, 이 세 사람을 ‘캉탕’으로 이끈 것은 그들이 의식적으로 거부하거나, 기꺼이 몸을 던져 받아들인 세이렌의 노래이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귀를 틀어막고 지냈던 과거의 죄책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들든 사랑의 목소리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실연과 살인의 핏빛 어둠을 세계의 운명으로 치환시켜준 종교의 종말론이었다. (……) 인간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캄캄하고 조용하기만 한 배”의 갑판 위를 거닐고 있는 영혼 없는 육체, 혹은 육체 없는 영혼에 지나지 않는다. 이승우는 심연을 오래 바라본 고래의 시선으로 소설을 쓰는 드문 작가이다.”(서희원)
표4
『오디세이아』와 『모비 딕』이 멈춘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 기도이자 일기
우리는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가. 그 걸음이 곧 삶이고 걸음의 끝에 우리의 죄가 있다고 할 때, 삶은 곧 우리 자신을 향한 수행일 것이다. 그러니 수행의 기록인 『캉탕』을 ‘자기를 향해 쓴 기도이자 신을 향해 쓴 일기’라 불러도 좋겠다. 이때 ‘기도’와 ‘일기’는 이승우의 오랜 주제인 ‘신앙’과 ‘삶’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글쓰기 양식일 뿐 아니라, 더욱 거짓 없이 쓰고자 하는 작가의 윤리적 일신一新이기도 하다. 또, 이러한 문학적 주제가 고전 텍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더욱 검푸르고 탕탕하고 깊고 아득한’ 텍스트의 바다로 나타났다는 점은 한국 문학에서 이승우가 차지하는 대체 불가능한 자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지은, 「작품해설」 중에서
본문 중에서
“젊을 때 『모비 딕』에 미친 사람이야. 멜빌의 소설 말이야.” 한중수를 되도록 멀리, 이곳의 인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떠나보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J의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이 실제 인물이라고 믿었다니까. 작가가 젊은 시절에 몇 년간 고래잡이배를 탔다고 해도, 그건 작가의 상상력을 너무 얕잡아 보는 처사지. 안 그래? 아무튼 그 양반, 고래를 잡겠다고 배를 탔어.
-23쪽
어떤 사람에게 바다가 큰 배에 다름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이 큰 버스나 기차일 수 있다. 배에 탄 사람이 그런 것처럼 버스나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도 그곳에 사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두루 갖춰져 있고, 그곳에 아주 오래 머문다고 하더라도 다만 이동하고 있을 뿐 진정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차할 때까지는 이 세상에서 내리지 않는다.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다는, 이 세상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26-27쪽
고래잡이배의 선원인 핍이 다가갔을 때 그녀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반주 삼아 부르는 노래만 있었다. 세이렌이 그런 것처럼 그녀는 오직 노래로만 존재했다. (……) 이 노래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하지 못하는데도 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근원적이다.
-33-34쪽
낯선 언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은 자기를 객체로, 남으로, 낯선 이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있던, 익숙한 세계로부터 자기를 숨기는 행위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기를 숨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세계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자신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완벽한 숨음이다. 익숙한 언어는 와글거리는 숲과 같다. 와글거리는 숲은 사방이 눈인 파놉티콘과 같다. 와글거리는 사방의 눈을 피해 낯선 언어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모국어를 잊음으로써 과거를 잊는다, 잊기를 강요당한다, 잊기를 강요당하기를 선택한다.
-66-67쪽
그의 글은 일기와도 같고 기도와도 같았다. 자발성과 자구적 성격에 있어 일기와 기도는 같다. 일기는 자기를 향해 쓴 기도이고, 기도는 신을 향해 쓴 일기이다.
-83-84쪽
축제의 절정은 돛대를 상징하는 높은 나무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이 행사는 축제의 마지막 날 열린다. 전에는 제비뽑기를 해서 뽑힌 사람만 바다로 뛰어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오래전의 의식, 바다의 신을 달래기 위해 뱃사람들이 행한 인신 공양의 흔적이다. 제비 뽑힌 사람은 죄인이고, 죄인이지만 바다에 빠짐으로써 이 배, 즉 공동체를 구하기 때문에 영웅이다. 죄인만이 구원자가 된다. 신의 낯을 피해 배의 밑창, 가장 깊은 곳에 누워 잠자고 있던 요나는 제비뽑기를 통해 바다에 던져질 자로 정해진다.
-94-95쪽
피쿼드의 구석 자리에서 무언가를 쓰는 남자,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고 예수를 흉내 내어 말한 남자는 자기를 들춰내는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것은 왜 어려운가. 그것이 곧 제비뽑기이기 때문이 아닌가. 밝히고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면 그는, 그렇게 어려운데도,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데도 왜 그 일에 매달리는가. 왜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뽑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닌가. 제비를 뽑아 들춰내지 않으면 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제비에 뽑힌 자, 죄인임이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닌가. 자기를 구하려면 자기를 들춰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나 침대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등불은 등경 위에 둔다.”
-95-96쪽
마침내 나는 그때 한중수 씨가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말을 하는 방식으로 자기 글을 쓰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펜으로 노트에 쓰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내 귀에. (……)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 있습니다. 입으로 귀에 쓰는 건 가장 안전합니다. 적히는 순간 휘발되어 날아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쓸 수 있습니다.
-140-141쪽
저기 올라가서 발밑의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지 아나, 젊은이? 아찔하지. 다리가 후들거려. 하지만 그건 잠시야. 아래에서 부르는 손짓이 느껴지면 두려움이 싹 가시지. 물결이 묘하게 일렁거리는 것이 꼭 어서 뛰어내리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206쪽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열일곱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이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렸고,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013부터 018은 지금의 한국문학의 발전을 이끈 중추적인 역할을 한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사이 출생 작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발간되었거나 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발간)
018 하성란(근간)
019 임 현(근간)
020 정지돈(근간)
021 박민정(근간)
022 최정화(근간)
023 김엄지(근간)
024 김혜진(근간)
현대문학 × 아티스트 정희승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정희승
1974년 서울 출생. 홍익대 회화과 졸업. 런던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 사진학과 학사와 석사과정 마침.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아트선재센터를 비롯한 국내와 뉴욕, 런던 등지에서 수차례 전시 개최.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박건희문화재단 다음작가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