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장밋빛 인생』등을 발표한 작가 정미경의 신작 장편소설. 무한욕망 시대를 표류하는 군상들의 화려한 꿈과 허무한 사랑을 그렸다. 작품은 숫자광이자 일중독자, 질주광이기도 한 주인공 이중호가 도로 위를 180km로 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르주아 모더니티를 상징하는 이중호의 질주는 군중의 질주에 의해 방해받으며 마침내 질주를 멈춘 질주광이 '정지'의 의미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의 존재는 파괴되고 만다. 또 다른 주인공 오윤희는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모방욕망'의 종국을 보여준다. 작가는 질주와 혁명, 질주와 부르주아 모더니티 간의 상관관계를 예리하게 보여주며, 모방욕망에 사로잡힌 채 끝을 모르고 질주하는 자들의 비극적 불안을 그린다.
■ 이 책은 무한 욕망의 시대를 표류하는 군중들 그 화려한 꿈과 허무한 사랑의 스펙트럼!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가 정미경의 신작 장편소설 2002년 『장밋빛 인생』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정미경의 신작 장편소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기법’과 ‘주제’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으며, “화려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 “흔치 않은 역량의 신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정미경은 발표작마다 ‘재미’와 ‘완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성공적으로 그려내 한국문단이 가장 주목하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작품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작가 정미경이 ‘질주와 혁명’, ‘질주와 부르주아 모더니티’ 간의 상관관계를 얼마나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이는 우리 시대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질주정(疾走政) 사회로의 변화과정에 대한 보고서라 평하고 있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80년대를 살아온 다섯 젊은이들의 허무한 사랑과 욕망을 그린 장편소설로 정미경의 날카롭고 냉소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들의 거침없는 욕망의 질주에 맞춰 속도감 있는 문체,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정미경식 혜안, 단문 속에 포함된 은유와 여운 등이 팽팽한 긴장과 재미를 주며, 읽는 이를 강렬한 카타르시스의 정점에 올려놓아준다. 소설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최한석, 이중호, 김동주, 유지원, 오윤희. 그들은 1986년 6월 혁명을 겪은 이들로, 서로 얽히고설켜 소설 속에 각기 다른 욕망 표출의 성을 쌓아놓는다. 서로에 대한 이 욕망은 수많은 삼각형들을 그려놓으며, 소설을 이끌어주는 주요 모체가 된다. 먼저 지원을 두고 한석과 동주가 그린 삼각형, 한석을 두고 지원과 윤희가 그린 삼각형, 윤희를 두고 중호와 한석이 그린 삼각형, 다시 지원을 두고 한석과 중호가 그린 삼각형. 이 많은 삼각형들은 우리 시대에 팽배한 욕망의 간접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단서들이다. 소설은 철저한 부르주아 모더니티의 숭배자 이중호의 질주로부터 시작된다. 애널리스트인 그는 “목적지까지는 브레이크를 쓰지 않고 가속페달만으로 운전”하는 질주광이자 숫자광이며 일중독자로 질주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의 인물이다. 다음은 최한석. 80년대 학생운동의 선두에 서 있던 그는 타고난 웅변가이자 현재는 여당의 대변인이다. 마지막 남자 주인공 김동주. 미술학도였으나 비장함과 격정의 옷을 입고 열정을 솟아나게 하는 최한석에 매료되어 학생운동을 한 인물. 학생운동으로 한쪽 눈을 잃고 현재는 잡지사 기자로 활동 중이다. 여자주인공 유지원과 오윤희는 정미경의 작가적 관심의 출발선상에 있는 여성성 탐구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여전히 냉소와 독기를 머금고 있는 작가 정미경의 시선은 그의 초기 작품 「비소 여인」에서처럼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서도 유지원과 오윤희를 통해 양육자와 팜므 파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유지원은 세 명의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인물로 화가이다. 80년대 최한석을 사랑했고, 김동주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며, 현재는 이중호의 사랑을 받는 인물이며,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어머니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오윤희는 80년대 공장에서 일했다. 야학에서 유지원, 김동주, 최한석 선생님을 만났고, 최한석을 사랑했으며, 그의 아이까지 가졌으나 최한석에게 배신당했다. 현재는 고급 콜걸이자 배우. 다섯 젊은이의 엇갈린 욕망을 보여주면서 정미경은 속도와 질주, 욕망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사회의 병폐와 폐해를 그려냈다. 먼저 대표적인 부르주아 모더니티 이중호의 죽음이 그것. 오 분 단위로 쪼개 살던 일상을 떠나자 이중호는 무료함과 우울증을 느끼고, 결국 최한석이 보낸 자객의 총을 받고 이스탄불에서 죽는다. ‘정지는 죽음이다’라는 폴 비릴리오(Paul Virilo)의 명제를 반영하듯 질주를 멈춘 순간, 이중호는 죽고 만 것이다. 오윤희는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보편화된 모방욕망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누구보다 많은 돈, 누구와 같지 않은 옷, 누구보다도 큰 명성, 누구보다도 강렬한 사랑 등등. 그러나 오윤희를 중심으로 이중호, 최한석 역시 모방욕망의 포로들로 보여진다. 그들 역시 누구보다 많은 돈,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작가 정미경은 모방욕망에 사로잡힌 채 끝을 모르고 질주하는 자들의 비극적 불안을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정미경은 인생의 허무함 역시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고 있다. 질주광인 이중호가 나비잡기를 일생의 꿈으로 여기며 살았던 점, 중호가 지원이 그린 나비그림을 보고 호접몽을 떠올린 점. 이는 허무하고도 허무한 삶의 덧없음에 대한 정미경의 시선이다. 한석, 중호, 윤희, 동주, 지원, 그들이 나비를 꿈꾼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나비, 그것도 제 욕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질주했던 불나비들이었음을 소설 결말에 가서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 말미에 오윤희가 느끼는 ‘이상한 슬픔’은 모방욕망이 보편화된 우리 시대의 ‘원더랜드’ 앞에서, 제 자신이 연출하고 있는 비극적 결말을 직감한 불나비의 불안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덧붙여,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언뜻 후일담 소설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기존의 후일담 소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후일담 소설이 향수와 퇴행이 주조를 이뤘다면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서 작가 정미경은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신중하고도 진정성 있는 태도”로 들여다보고 전대가 아닌 당대가 갖는 차이와 변화의 진폭을 이성적으로 예리하게 가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기존의 후일담 소설에서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 책 속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엑스터시. 1과 열두 개의 동그라미로 이루어지는 숫자가 내 계좌에 기록되는 순간의 느낌도 이러하지 않을까. 눈을 감고도 엔터키 치는 소리만으로 매도주문과 매수주문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극도로 몰입해서 거래를 하고 결국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수익을 확인하는 그 순간의 느낌처럼. 그 느낌을 찾아 장이 끝나는 금요일 밤엔 꼭 도로로 나서게 된다. 코스는 늘 똑같다. 목적지까지는 브레이크를 쓰지 않고 가속페달만으로 운전하는 게 혼자 하는 이 경주의 룰이다.-9쪽 이 민족은 너무 다혈질이야. 파란색 티셔츠 입고 저 속에 들어갔다간 밟혀죽을 분위기네. 가능성은 없지만, 16강에라도 든다면 경제 쪽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에 들어가야 되겠지. 하긴. 하릴없는 인생들. 저런 낙이라도 있어야겠지. 도로로 걸어다니는 인간들 때문에 도대체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빵빵. 짜증스럽게 클랙슨을 울리자 주위의 차들이 신나게 화답을 한다.-13쪽 난 아니야. 저런 애들과는 연애 안 해. 결혼은 더욱. 언젠가는 여기서의 내 삶을 지워버릴 거야. 말끔히. 이 바닥에 타고난 인연만 해도 지겨운데 어떻게 끝까지 얽힐 생각까지 하는지. 좁고 더러운 골목은 솥 안처럼 후끈거렸다. 공장도 싫고 야학도 싫고 골목 끝의 집은 더더욱 싫었다. 부랑한 바람이 골목 안으로 등을 떠밀었다. …… 최한석이라고 했던가. 쏘는 듯 독한 눈빛을 가졌던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러운 슬래브 건물 안에서 셔츠를 땀으로 흠뻑 적셔가며 아이들을 가르치긴 하지만 윤자나 경순이나 그의 인생 바깥에 서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며 온몸을 때리는 여름비가 그렇게 가르쳐주었다. 온통 젖은 채 들어서는 윤자를 보자마자 엄마는 습관처럼 욕을 퍼부었다. 미친년. 싸돌아다닐 시간 있으면 방바닥이나 한번 훔치지. 엄마 혼자 용쓰다 죽어도 눈도 깜짝 안 할 년. -21쪽 “티셔츠의 색깔이 붉은색이 아니라 초록이나 푸른색이었다 해도 저토록 거대한 열광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모르지. 지난 시절의 스포츠는 굴곡진 정치 현실 위에 의도적으로 토핑된 달콤한 시럽 같은 것이었지만, 저 붉은색은 그 때 우리가 개인적 미래와 사소한 행복과 목숨마저 내놓았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그날, 에 이르게 해줄지도.” “피와 목숨으로도 얻지 못한 걸 유희의 열광 끝에 얻어낸다? 우린 애국가 한 소절조차 흥겹게 부르질 못했는데.” -79쪽 공포와 탐욕 중 공포가 더 강해. 탐욕이 허기진 자의 식탐이라면 공포는 피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야. 죽음의 공포에 가깝지. 잔액에서 하나씩 사라져가는 동그라미를 보고 있으면 실제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아. 그런데 말야. 어느 순간 탐욕이 공포를 잊게 만들어. 시장이 제 예상대로 간다 싶으면 트레이더는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은 오디세우스처럼 자신을 묶고 있는 공포의 밧줄을 끊고 돈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발광을 하게 되는 거야. 최정우. 탐욕과 공포를 오가며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 그게 인간이야. -175쪽 이 사람은 누구일까. 매일 수십 억의 돈을 거래하면서 호텔 커피숍에선 카페인 때문에 손이 떨려올 때까지 리필을 하는 사람. 상해 있던 범퍼로 불쌍한 남자에게 백만 원을 뜯어내면서 윤 신부님께 거액의 기부금을 송금하는 사람. 자신의 최음제는 돈이라고 얼굴도 붉히지 않고 말하면서 결국 자신에게 돈이란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데이터일 뿐이라고 어느 순간 냉소하는 사람.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사람. 처음 부티크를 열었을 무렵엔 고객의 전화를 즉시 받기 위해 한번도 욕조에 들어가서 목욕을 한 적이 없었다는 가엾은 사람. 방심한 순간엔 너무 딱딱한 갑옷을 입은 소년의 실루엣을 흘리는 남자. 세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까닭 없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뒷모습. -245쪽 오 분 단위로 쪼개 살던 일상을 떠나니 무료함보다 우울증이 먼저 몸을 덮쳤다. 펜션 앞엔 체중계를 내놓고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가 하나 있다. 중호는 외출했다 들어올 때면 체중을 재보았다. 중호 외에 체중을 재는 사람은 하나도 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정작 할아버지 얼굴엔 아무 근심이 없다. 이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기에 저런 표정을 간직하고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체중은 조금씩 줄어든다. 할아버지가 중호의 체중을 기억하는지 어제는 무어라 한참 떠들어댔다. 아마 많이 먹으라거나, 너무 말랐다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3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