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심야 주차안내원, 생맥주집 아가씨,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와 아줌마 파마를 불사한 파출부 일. 오직 소설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세상과 맞선 어느 소설가 지망생의 기상천외 고군분투기! 올해로 등단 20년째를 맞는 소설가 채희윤의 첫 장편소설 『소설 쓰는 여자』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지난해 소설집 『곰보 아재』를 펴내는 등 최근 들어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채희윤은 그간 표준어와 사투리를 넘나드는 독특한 어법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장편소설을 통해 작가는 주인공의 소설 작법 과정을 소설의 소재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구성으로 삶과 소설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 책 소개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여자의 이야기 사생아로 태어난 기생집 딸, 열일곱 살에 당한 성폭행, 더러워진 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첫사랑. 『소설 쓰는 여자』에 등장하는 서른두 살 여주인공 서희의 프로필은 어둡고 우울한 과거로 가득 차 있다. 그녀에게 삶은 온전히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처럼 결손투성이다. 그 부족함 때문에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자 갈망한다. 하지만 세계와 단절된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간 그녀의 욕망은 이야기를 하려는 발화자로 전환된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여자, 삶을 향한 치열한 몸부림을 소설로 산화시키고자 했던 여자. 과거의 삶 속에 묻혀 늘 주변을 배회하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소설 쓰기를 결심한 뒤 비로소 현실의 ‘삶'에 정면으로 대응한다. 소설 창작과 이론, 삶이 어우러진 독특한 구성 소설 창작을 위해 문학 강좌를 들은 주인공은 무엇보다도 발상과 경험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를 위해 파출부 일을 나가기로 한다. 이로써 『소설 쓰는 여자』는 주인공이 체험하는 세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구성을 갖게 된다. 실전 경험을 위해 파출부 일을 나가는 두 집의 이야기, 그리고 이와 맞물려 소개되는 소설 창작 교수의 강의 내용이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주인공이 소설을 쓰기 위해 겪어가는 일련의 과정이며, 이는 다시 작가가 연출한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재치 있게 어우러진다. 소설을 쓰려는 주인공의 욕망과 소설 창작 이론, 그리고 인간의 삶이라는 테마를 작가는 정교하게 짜여진 모자이크처럼 구성해내고 있다. 소설을 통해 찾아가는 진정한 삶의 내면 파출부 일을 나가며 타인의 삶을 배회하던 주인공은 주인집의 남자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소설적 경험으로서의 불륜을 저지른다. 하지만 불륜이 발각된 뒤 결국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어머니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좌절과 눈물, 어둠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는 고향 광주. 그곳에서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들여다본다. 왜 소설을 쓰려고 했는가. 소설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주인공의 명제는 이제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소설을 쓰고자 했던 욕망의 발로는 단순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인간의 삶과 인생을 진지하게 조명한다. ■ 줄거리 철학과를 졸업한 서른두 살의 소설가 지망생 서주희. ‘素姬'라는 기생집의 딸로 열일곱 살에 지배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그녀는 소설 창작 강좌에서 중요하다고 들은 경험과 발상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대형마트의 주차 안내원, 생맥주집,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거쳐 급기야는 파출부 일까지 하게 된다. 무표정한 안주인 여자, 공인회계사인 남편과 버릇없는 사춘기 아들이 살고 있는 미세스 월수금 집. 한국전과 월남전을 겪은 장성과 여교수 며느리, 시대에 맞지 않게 왕가 부흥운동을 벌이고 있는 남편이 살고 있는 화목토 집. 월수금과 화목토로 번갈아 두 집에 파출부 일을 나가는 그녀는 두 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적 발상을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렇게 파출부 일이 날을 거듭할수록 여자는 그들의 삶 속 깊이 침투하면서 때로는 어이없고 웃을 수밖에 없는 특이한 경험들과 맞닥뜨린다. 파출부 일이 익숙해질 무렵, 미세스 월수금 집에서 일어난 남편과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그녀는 결국 기생집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의 집으로 귀향한다. 고향 광주로 돌아와 십대 시절 헤어졌던 첫사랑과 재회한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 갇혀 있던 소설 쓰기의 욕망, 그리고 삶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 본문 중에서 발상을 위해서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대형 마트의 심야 주차안내원에서, 생맥주집 아가씨 등등. 염색한 머리카락으로 나이를 속여 편의점의 야간 아르바이트가 마지막 지금이죠. 그러나 밤을 새워가며 내가 만났던 손님들은 소위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일회성 관계. 값싼 상품의 매매로 만나는 사람들이란, 그 상품의 용도가 주는 것 이외의 정보를 거래할 수 없죠. 더구나 취객들이나 중딩 고딩의 계집아이들, 때도 덜 벗겨나간 십대 녀석들, 밤을 새워 논 휑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내게 던져준 것이라곤 고리도 제대로 맺지 못할 조각난 그들 삶의 단편들이었죠. 소용되지 못한 것들을 저장한다는 것이 오히려 내게 고통이었습니다. 악성 버그로 꽉 차 수리 맡긴 내 노트북처럼. - 본문 중에서(11쪽) 모처럼 업된 기분을 미세스 월수금이 톡하고 꺾어버렸어요. 퇴근 때 그녀는 갈비 한 도막을 비닐봉투에 싸주더군요. 자존심 무너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구요? 천만에요. 들립니다. 내 혈관을 지나며 들끓는 분노의 울음을 분명히 들었어요. 동시에 어떤 유혹, 이것을 들고 가는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과, 또 대문 앞에 버리고 가는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알고 싶어 머뭇거렸어요. 나는 호기심에 손가락이 가려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엄지손톱으로 중지의 첫 매듭을 아프게 긁었습니다. 비굴함은 모호하게 와서 그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해놓고 일단 길들여지게 한 다음에 자리를 잡는 게 그 속성이죠. 나는 수첩에 적어두고 싶었죠. 이 기분을. 그러자 고장을 핑계로 서비스센터에 맡겨둔 노트북의 자판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안 돼.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더 깊이 알고, 더 많이 부딪혀야 하니까요, 사람들을. - 본문 중에서(40쪽) 채희윤의 『소설 쓰는 여자』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욕망으로 가득 찬 한 소설가 지망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에게 소설 쓰기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나의 기술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소설을 쓰려는 욕망과 소설 창작의 이론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교직해나가면서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 못지않게 소설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 그 자체를 소설의 소재로 끌어들이는 독특한 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의 독특한 구성은 소설쓰기와 소설쓰기에 관한 이론적 서술들을 병치시키는 서술 형식을 통해 소설 창작과 이론의 함수관계에 대한 메타적 자의식을 전경화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 <작품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