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은 기억으로 서로의 삶을 연대해온 이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
조해진 작가의 이야기는 불쑥 들어와 심장을 쥐어짠다. 우리는 그제야 산 자들이 견뎌온 무수한 세월을 아프게 감각한다.
-예소연(소설가)
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해 24년차 소설가가 된 조해진은 그간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의 굵직한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발표한 소설집과 장편소설에서는 탈북자, 여성, 노인, 이주민 등 주류 세계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들을 담담한 문장으로 조명하며 그들의 삶을 위무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발표한 『우리 세희』는 일본에 사는 재일 한인, 자이니치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런던으로 출장을 온 ‘연주’가 일본에 있는 ‘센세’(선생님의 아내)로부터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선생님과 센세는 자이니치인 연주의 엄마, 오세희와 대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존재들로, 서로의 삶을 오랫동안 지켜봐온 가족 같은 관계이다. 연주는 위독한 선생님을 떠올리며 북촌에서 처음 그들을 만났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재를 교차시키며, 엄마와 선생님 부부가 어떤 시대를 통과해 왔는지, 자이니치들이 어떤 차별과 상실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상기하며 자신의 삶과 가족의 역사를 마주한다.
또한, 런던에서 일본계 영국인 예술가 ‘제이비 류’를 취재하며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그의 작품을 통해 자이니치의 역사와 폭력의 기억, 그리고 국가와 경계가 개인의 삶에 남긴 흔적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현재의 런던, 과거의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선생님의 죽음을 예감하는 시간 속에서 연주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 떠나간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을 소환한다. 소설은 한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하지만, 곧 국적과 언어, 경계와 차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의 삶 전체를 조명하고, 작가는 특정한 역사적 비극을 전면화하기보다, 그것이 한 사람의 말투와 몸짓, 침묵과 관계 안에 어떻게 스며드는지를 집요하게 응시하며 역사와 개인, 상실과 애도, 떠남과 귀환이 포개진 자리에서 끝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역사와 소설의 관련성을 질문하며 팩션faction으로서 이야기의 가치를 논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실제 역사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역사 서술 주체에 따른 타자화의 문제 및 그 시대의 주된 이념과 가치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해진의 소설이 실제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삼아 그 시대를 살았음 직한 인물을 내세워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기왕의 구분과 의미 자체를 허무는 무엇이다. 주체와 타자, 이념과 반-이념, 선과 악, 행과 불행 등 인간 사회가 이분법적으로 만들어놓은 의미의 경계를 무화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것. 달리 말하면 기억들의 사이를 벌려놓으면서 지나간 일들이 매끄럽게 하나의 사건으로 봉합될 수 없게 만드는 감각적 존재를 관찰하고 그들의 연결이 빚어내는 새로운 해석, 혹은 세계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하는 데 그의 소설의 독보적인 존재 의미가 있다.
-김나영(문학평론가)
기억과 애도, 디아스포라의 역사, 그리고 끝내 누군가를 기억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문장 속에 담으며, 상실 이후에도 끝내 누군가를 기억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조용하면서도 깊게 탐색하는 작품이다.
표4
때로는 폭풍 같았을, 때로는 노래 같았을 삶을
작은 역사로 살아낸 모든 자이니체에게 보내는 헌사
이 소설은 어떤 존재가 어떻게 지워지는가를 세밀하게 쓰면서 동시에 바로 그 쓰기의 과정에서 되살아나는 존재를 보여준다. 때문에 소설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 역시 누군가를 되살리는 일에 자연히 동참하게 되고 그 도중에 무엇의 재생을 희구하는 일이 과거의 한 부분을 복원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부분을 포함한 전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하게도 된다. 그렇게 쓰여지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라는 살아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게 하면서 현재를 새삼 낯설게 실감하게 한다.
―김나영(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고故 서경식 선생님의 책을 접한 이후부터 ‘자이니치’(재일조선인)는 내게 알고 싶고 알아가야
하는 하나의 영토가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델이 되어준 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그들이 책과 필름에 남긴 그들의 가족과 친구, 친척과 이웃의 삶에도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큰 빚을 졌다.
(……) 작년 11월, 소설을 위해 오사카의 이쿠노구를 찾아가 인물들의 동선을 상상하며 나는 소망했다.
그때의 그 소망대로…….
때로는 폭풍 같았을, 때로는 노래 같기도 했을 저마다의 삶을 작은 역사로 살아낸 모든 자이니치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
차 례
우리 세희 7
작품해설 152
작가의 말 174
본문 중에서
* 그들에게 고향은 마음이 다치고 몸이 상한 채로 돌아가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곳이었다. 살면서 겪어온 모든 서러움을 헤아리고 상처를 봉합해주는 그곳에서 싱그럽도록 젊은 아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리라고 그들은 믿었다.
이미 버려진 적이 있으면서, 배신당한 채 다시 떠나오기도 했으면서, 그들은 투명한 수정구처럼 그 믿음을 보듬었다.
보듬을 수밖에 없었다.
끝내 탈피하지 못한 번데기도 꿈에서는 잃어버린 날개를 찾듯이.
처음부터 없던 날개인 줄도 모르고.
―74P
* 욘주, 나는 준비가 된 것 같아.
상상의 통로를 지나온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울지 않기 위해 내 운동화만 내려다봐야 했다.
하지만 센세와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잠시 뒤 나는 속으로만 웅얼거렸고 선생님은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마침내 목구멍 안에 갇혀 있던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나왔을 때, 선생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부재하는 그의 자리, 부재를 예감하게 하는 내 자리, 소리가 안내하는 긴 여정의 끝에서 나는 쓸쓸해졌다.
선생님의 환영은, 그날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86-87P
* ‘세’ 뒤에 ‘희喜’를 넣어 ‘세희世喜’를 완성한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다. 세이지sage의 꽃말은 ‘구원’. 그러니까 ‘세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스스로를 구원하면서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히로코가 그저 몸에 맞는 옷이라면 세희는 보호막 같은 옷에 가까웠다고 엄마는 말했다.
세희야, 라고 불리면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고도.
-95-96P
* “부탁 하나 해도 될까?”
주사를 맞고 몽롱해하던 엄마가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우리 오마니와 아바이, 그리고 오빠를…….”
“…….”
“잊지 말아줄래?”
물으며, 엄마는 밀려오는 약기운에 투항하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잊지 않아…….
잠든 엄마 곁에 앉아 그렇게 되뇌던 그때처럼, 3년여가 흐른 지금, 이 낯선 도시에서 나는 가만히 속삭였다. 불러보고도 싶었다,
세희야, 라고.
우리 세희야.
-100P
* 지켜주겠노라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처마 밑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에도, 휴지나 왜곡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도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도록, 반드시…….
살아 있는 한, 반드시, 언제까지라도.
-120P
* 그 순간 대합실 문턱을 넘어선 선생님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철로를 따라 하염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내 눈에는 보였다. 그는 결국, 그 길을 끝까지 가볼 작정인 모양이었다. 엄마처럼, 그의 어무이와 아부지처럼, 내 외삼촌과 외할아버지처럼, 그토록 덧없이, 다만 혼자서…….
물론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마흔아홉 시간 뒤 선생님이 누워 있는 삼나무관 앞으로 걸어간 내가 내 귀에만 들리
는 욘주 왔구나, 그 목소리에 이렇게 대답하리란 것을.
세희도 같이 왔어요.
세희, 우리 세희도요
-147P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쉰여덟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분기별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2026년 첫 출간되는 057번부터는 기존 6권, 4권 단위로 한 명의 표지 작가의 작품으로 묶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 권 한 권이 한국 문학의 대표성을 가지는 것으로 새롭게 큐레이션되고, 기존 25일이던 출간일을 5일로 바꿔 내놓는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출간되었거나 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출간)
018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2019년 9월 25일 출간)
019 임 현 『당신과 다른 나』(2019년 10월 25일 출간)
020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년 11월 25일 출간)
021 박민정 『서독 이모』(2019년 12월 25일)
022 최정화 『메모리 익스체인지』(2020년 1월 25일)
023 김엄지 『폭죽무덤』(2020년 2월 25일)
024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2020년 3월 25일)
025 이영도 『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2020년 4월 25일)
026 듀 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2020년 5월 25일)
027 조 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2020년 6월 25일)
028 백민석 『플라스틱맨』(2020년 7월 25일)
029 김희선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2020년 8월 25일)
030 최제훈 『단지 살인마』(2020년 9월 25일)
031 정소현 『가해자들』 (2020년 10월 25일)
032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2020년 12월 25일)
033 최진영 『내가 되는 꿈』 (2021년 2월 25일)
034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2021년 4월 25일)
035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2021년 6월 25일)
036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2021년 8월 25일)
037 우다영 『북해에서』 (2021년 10월 25일)
038 김초엽 『므레모사』(2021년 12월 25일)
039 오한기 『산책하기 좋은 날』(2022년 2월 25일)
040 서수진 『유진과 데이브』(2022년 4월 25일)
041 한정현 『마고麻姑―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2022년 6월 25일)
042 이주란 『어느 날의 나』(2022년 8월 25일)
043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2022년 10월 25일)
044 이서수 『몸과 여자들』(2022년 12월 25일)
045 천희란 『K의 장례』(2023년 2월 25일)
046 문진영 『딩』(2023년 4월 25일)
047 임솔아 『짐승처럼』(2023년 6월 25일)
048 강화길 『풀업』(2023년 8월 25일)
049 김지연 『태초의 냄새』(2023년 10월 25일)
050 이장욱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2024년 1월 25일)
051 김 솔 『행간을 걷다』(2024년 4월 25일)
052 김멜라 『환희의 책』(2024년 7월 25일)
053 안보윤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2024년 10월 25일)
054 예소연 『영원에 빚을 져서』(2025년 1월 25일)
055 박지영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2025년 7월 25일)
056 위수정 『fin』(2025년 10월 25일)
057 문지혁 『나이트 트레인』
058 조해진 『우리 세희』
059 장강명(군간)
060 이주혜(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