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한결같이 문학 현장의 한가운데서 활동해온 현역 비평가 이남호의 평론집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1980년 등단한 이래 수십 권의 연구서와 비평서를 집필한 저자는 특유의 명징하고 치열한 통찰력으로 문학 안팎의 세계를 탐구하며 한국 비평의 지평을 넓혀왔다.
참담하게도 문학의 쇠퇴를 체감했던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평론집을 통해 다시금 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문학의 가치를 아우른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왜 존중받아야 하는가, 문학이 인간의 형성과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문학은 미래에도 존재해야 마땅한가, 문학의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등 문학의 존엄성에 대한 암중모색을 보여준다. 또한 문학이 표상하는 것들을 넘어 앞으로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비평적 임무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저자의 이러한 일련의 문학적 고투는 전자문화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문학의 생존을 알리는 비평적 선언에 가깝다.
머리말
1부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보편성과 한국문학의 세계화
녹색문학의 새 지평
우리 시대의 독자는 누구인가
2부
삶의 허무와 마음의 평화
편안함과 자유 그리고 빈집 지키기의 고단함
금강경에 기댄 삶의 노래
자기에게로의 다리 놓기
각북으로의 초대
3부
현실의 권태와 낭만적 일탈
시대의 기록
삶의 풍운과 아이러니
일곱 편의 소설 읽기
4부
생태마을로서의 질마재
미당 시의 시간과 그 생태적 의의
미당 시에 나타난 누님의 의미
한 예술가의 자아 인식
시혼의 신대륙을 발견하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문학의 쇠퇴를 차분히 응시하고, “좋은 문학 속에 있던 가치들이 외면당하고 잊혀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문학이 소중한 까닭은 문학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좋은 문학이 마련해둔 문학적 가치” 때문임을 힘주어 말한다. “스마트한 전자제국”에서 문학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크게 눈길을 끌지 못할뿐더러 문학의 희망을 얘기할 수도 없는 작금의 사정을 받아들이면서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귀중한 문학적 가치를 비평적 화두로 삼는다. 결국 문학이 “한심한 영혼의 일”이라고까지 한 그의 고백은 빈한한 위치에 있는 현재의 문학에 표한 지극한 애정의 수사다.
1부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보편성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통해 문학의 본질과 문학이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갖추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읽어낸다. 「녹색문학의 새 지평」에서는 하성란, 은희경, 조경란의 작품을 예로 오늘날 인류가 처한 생태 위기를 녹색문학적 상상력으로 환원하고, 새로운 문학적 에너지를 모색한다. 「우리 시대의 독자는 누구인가」는 전자문화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을 주시함으로써 문학의 죽음을 선고하는 한편 이를 타개할 가능성을 살펴 보인다.
2부와 3부는 온전히 현장 비평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인간 조건 혹은 근본적 가치를 열거하며 문학의 다채로운 빛깔을 조망한다. 2부에서는 박목월, 이창기, 박진숙, 이규리, 이기철의 시집을 면면히 분석하며 한국 현대시의 다양한 현장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홍성원, 안수길, 하 진의 소설을 통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문학적 현장을 누빈다. 황순원, 서영은, 김지원, 최인호, 박민규, 김애란, 전경린이라는 1940년대부터 2010년대를 수놓은 다양한 소설 을 다룬 「일곱 편의 소설 읽기」 또한 흥미롭다.
4부에서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단연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미당 서정주의 시들을 애정 어린 독해로 마주한다. 무엇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난 시 속 공간인 질마재를 생태마을로서 바라보고, 미당 시에 나타난 시간과 그 생태적 의미, 누님의 의미, 예술가의 자아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연구해 미당의 문학사적 위치를 재정립한다.
『문학에는 무엇이 필요한가』는 평론가적 염결성으로 기록한, 진정한 문학에 대한 암중모색으로서 무엇보다 문학다운 문학의 가치를 호명하는 저자의 한결같은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 가치를 더한다.
■ 본문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문학 역시 역사적 산물이어서 흥망성쇠가 있을 것입니다. 문학이 쇠퇴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학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좋은 문학 속에 있던 가치들이 외면당하고 잊혀지는 것입니다. 문학답지 못한 문학은 거죽만 문학일 뿐 그런 가치들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문학이 소중한 까닭은 문학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좋은 문학들이 마련해둔 문학적 가치들 때문입니다. 거죽뿐인 문학과 상업적 문학 현상은 이 문학적 가치들을 훼손하고 소외시킵니다.
저에게는 문학의 변질과 쇠퇴를 막아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문학적 가치들을 온전하게 보전할 능력과 사명감도 모자랍니다. 다만 저는 제가 존경하고 또 좋아하는 문학적 가치들을 좋은 문학 속에서 만나기를 즐겨 할 뿐입니다. 때때로 제가 즐긴 좋은 문학적 가치들은 저의 평론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최근의 문학현장에서는 그러한 문학적 가치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과거의 문학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면서 저는 제가 만난 문학적 가치들을 지키는 일이 맹목적 수구守舊가 아님을 외롭게 느낍니다. 당신이 만약 저의 평론을 읽는다면, 그것은 이 외로움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스마트한 전자제국에서 문학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이제 문학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때는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연예와 오락의 큰길로 몰려가고 문학의 뒷길에는 인적이 드뭅니다. 그래도 저는 문학의 뒷길을 서성이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 서성임의 발자국이 저의 평론이라고 말해도 되겠습니다. 어차피 문학은 ‘한심한 영혼’의 일이므로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습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제가 찾아다닌 문학의 길과 가치에 호기심이나 반가움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과분의 보람이겠습니다. _머리말 중에서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만으로는 문학이 되기 어렵다. 모름지기 이야기는 모두에게 호소력을 갖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의미를 지닐 때 문학다운 문학이 된다. _36쪽
문학은 오래전부터 삶의 진정한 가치들을 추구해왔다. 아름다움, 숭고함, 약한 것에 대한 연민, 이웃에 대한 사랑, 생명에 대한 경외, 이미 있던 것들에 대한 존중, 자연과 신에 대한 동경과 기쁨을 느낄 줄 아는 능력, 고통과 슬픔에 대한 겸허한 인내 등등을 우리는 좋은 문학 속에서 만날 수 있다. _67쪽
그것들을 읽다 보면, 문학이 왜 존중되어야 하는가, 문학이 인간의 형성과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문학은 미래에도 존재해야 마땅한가, 문학의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가 등등 문학에 대한 암중모색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_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