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마침내 스스로를 인정하고 한걸음 앞으로!
2020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작가 강화길의 신작 『풀업』이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 첫 장편 『다른 사람』, 두 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 등에서 여성의 삶과 그 안의 부조리와 혐오 등을 치열하게 그려내며 자신의 문학세계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는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는 그 부조리와 혐오를 딛고 자신을 향해 나아가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운동이라고는 거들떠본 적 없고, 살면서 누구에게 험한 말 한 번 해보지 않은 지수는 전세 사기를 당하고 엄마 집으로 들어온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던 지수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러닝을 하는 여자를 눈여겨보고 그 여자가 다니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된다. 늘 같은 시간에 와서 운동하는 성실함에 칭찬까지 받고, 지수는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일들에 집중하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가꿔나간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도 잘한 미수는 늘 가족의 자랑이다. 미수는 어렸을 적부터 모든 게 늦된 언니 지수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지수는 힘닿는 대로 자신의 몫을 감당했다 생각하지만, 미수에게는 늘 모자란 언니일 뿐이다. 지수가 PT를 받고 있다고 하자 미수는 놀라고, 미수의 얼굴에서 지수는 미수의 생각을 읽어낸다. “네가 원하는 나의 삶은 뭐야? 언제나 너보다 못난 언니로 살아가는 것. 나를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비루하게 나이 먹어가는 것. 네가 계속 한심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런 기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거야?”
엄마 영애 씨는 모든 것을 미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지수는 그런 엄마가 서운하다. 그러나 영애 씨의 속마음은 지수의 짐작과는 달랐고, 자매는 엄마의 진심을 알 길이 없다. 영애 씨는 자매를 똑같이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웠다. 정작 딸들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지수와 미수가 한 카페에 마주앉았다. 갑작스런 지수의 독립 선언에 미수는 엄마의 안위를 걱정하고, 서로 싸워본 적 없던 둘은 처음으로 격렬하게 말싸움을 벌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지수는 미수에게 숨겨왔던 자신의 진심을 내비친다.
지수는 가족을 사랑했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미워했다. 지수는 이런 자신의 마음을 내버려두기로 한다. 월세 집을 계약한 날 지수는 새로운 헬스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헬스장으로 자신을 이끈 그녀가 하던 풀업 운동 기구를 보게 되고, 풀업 운동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지금보다 더 크고 강하고 편한 몸으로 변할 수 있을까?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게 된다면 그곳이 자신의 ‘궁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는다.
지수는 이제 안다. “가족이란 절대 헤어질 수 없는 관계”라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닌 것”이라는 사실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면 어느 한쪽이 희생하며 애써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가족이라는 이름과 관계의 유지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희생된 한쪽을, 즉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돌보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말미에서 지수가 풀업에 도전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 지수는 지금의 감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간 새롭게 몸의 감각을 익히며 가족 내에서의 소외와 자기혐오를 극복하였듯 지금의 새로운 감각을 발판 삼아 자기 서사를 재구축할 수 있으리라. 자신의 힘으로 사라지는 주체성을, 그것을 표현할 언어를 되찾은 이의 도전은 더없이 아름답다.
―소유정(문학평론가)
표4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토해내지 못했던 감정!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진심으로 미워하는 그들의 이야기
“엄마가 너만 보고 있을 때…… 부담스럽지?”
『풀업』은 삶의 자극점을 찾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단번에 깨우칠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다. 온몸을 관통하는 통증을 참아내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지 몸을 관통하는 통증을 참아내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지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수가 자신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사이, 자신의 언어를 잃은 초점 화자에 힘을 실어주는 건 괄호 안의 목소리다. 강화길의 소설에서 괄호 안의 서술자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 풀업의 괄호는 그와 같고도 다르다. 괄호 안의 여전히 핍진하고 세밀하지만, 침묵하는 지수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우리를 인물 곁에 더 가까이 닿게 만든다. 그리고, 지수가 자신의 언어를 찾게 되는 때, 그러니까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괄호를 벗고 그녀의 목소리와 한 몸이 된다. 동시에 지수는 이제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소유정, 「작품해설」 중에서
본문 중에서
* 엄마가 어색하다고? 딸이? 그럴 수 있나? 보통 엄마와 딸은 친밀하지 않나? (미수와 영애 씨 사이가 무척 가까웠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러나. 문제가 있나. 엄마에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맞나? 그래서 지수는 더 수다스러워졌다. (……) 영애 씨와 함께 있으면 지수는 언제나 힘이 들었다.
-29-30쪽
* 영애 씨가 키운 식물들. 시들지 않는 식물들. 항상 싱그러운 향기를 피워내는 식물들. 순간 지수는 말하고 싶었다. 영애 씨의 식물들이 저렇게 파릇파릇할 수 있는 건 애초 시들시들한 식물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 영애 씨는 살아남은 식물들에게만 애정을 품었다! 시들어가는 화분에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저건 쟤 운명이야. 어쩔 수 없어.”
올리브 나무 뒤쪽, 영애 씨가 숨겨놓은 작은 화분 하나가 보였다. 시들다 못해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있는 제라늄.
지수는 컵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손에 묻어난 물기를 천천히 매만졌다.
-32쪽
* 언제부터 그 일들이 모두 지수의 몫이었지?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거지? 지수는 반발심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돈을 다 갚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틀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 적어도 영애 씨와 미수 앞에서는 그랬다. 두 사람 모두 지수에게 갚을 필요 없다고 했지만, 솔직히 그게 진심일 리 없었다. (지수가 가족을 정말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고 싶다.) 그러니까, 지수는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이 여전히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바로 영애 씨와 미수에게.
-58-59쪽
* 운동을 배운 지 겨우 한 달 반이었지만, 지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수의 몸이 변화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매일 새벽 지수를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건 바로 그 감각이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삶의 다른 것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69쪽
“미수의 눈을 마주하며 지수는 말을 삼켰다. 어쩌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 아니, 어쩌면 줄곧 해왔을지도 모르는 말. (……) 나는 뭘 좀 배우면 안 되니? 변화를 원하면 안 되는 거야? 네가 원하는 나의 삶은 뭐야? 언제나 너보다 못난 언니로 살아가는 것. 나를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비루하게 나이 먹어가는 것. 네가 계속 한심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것. 그런 기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거야?
-87-88쪽
지금보다 더 크고 강한 몸. 편안하게 움직이는 팔과 다리. 정말로 그런 날이 올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래 그럴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곳은 지수의 궁전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 정말 그랬다. 그러자 문득 지수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기대와 마음, 생각들이 정말로 내 것이었나? 마치 꼭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그래,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
-116-117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마흔여덟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격월 25일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출간되었거나 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출간)
018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2019년 9월 25일 출간)
019 임 현 『당신과 다른 나』(2019년 10월 25일 출간)
020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년 11월 25일 출간)
021 박민정 『서독 이모』(2019년 12월 25일)
022 최정화 『메모리 익스체인지』(2020년 1월 25일)
023 김엄지 『폭죽무덤』(2020년 2월 25일)
024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2020년 3월 25일)
025 이영도 『마트 이야기―시하와 칸타의 장』(2020년 4월 25일)
026 듀 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2020년 5월 25일)
027 조 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2020년 6월 25일)
028 백민석 『플라스틱맨』(2020년 7월 25일)
029 김희선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2020년 8월 25일)
030 최제훈 『단지 살인마』(2020년 9월 25일)
031 정소현 『가해자들』 (2020년 10월 25일)
032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2020년 12월 25일)
033 최진영 『내가 되는 꿈』 (2021년 2월 25일)
034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2021년 4월 25일)
035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2021년 6월 25일)
036 윤고은 『도서관 런웨이』 (2021년 8월 25일)
037 우다영 『북해에서』 (2021년 10월 25일)
038 김초엽 『므레모사』(2021년 12월 25일)
039 오한기 『산책하기 좋은 날』(2022년 2월 25일)
040 서수진 『유진과 데이브』(2022년 4월 25일)
041 한정현 『마고麻姑―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2022년 6월 25일)
042 이주란 『어느 날의 나』(2022년 8월 25일)
043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2022년 10월 25일)
044 이서수 『몸과 여자들』(2022년 12월 25일)
045 천희란 『K의 장례』(2023년 2월 25일)
046 문진영 『딩』(2023년 4월 25일)
047 임솔아 『짐승처럼』(2023년 6월 25일)
048 강화길 『풀업』
049 이장욱 근간
050 김지연 근간
현대문학 × 아티스트 이연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이연미
국민대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도쿄갤러리 개인전을 시작으로 갤러리 현대, 서울시립미술관, 상하이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자신만의 정원을 구축하고,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간극을 극대화시키며 거칠게 날이 선 나무와 신비롭고 낯선 형상의 동식물이 뒤섞인 서정적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