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실패한 혁명가와 그 혁명을 계속해서 좌절시켜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 이 소설은 주인공이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는 2018년 1월 3일부터 2018년 3월 24일까지의 이야기를 블로그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문학과 영화, 특히 시에 관심이 많고 프랑스 코딩 학교인 에콜42에 입학할 꿈을 가진 대학원생 주인공 ‘나’는 서울스퀘어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의 얼굴이자 관문으로 상징되던 거대한 적벽색 빌딩, 대우그룹의 본사였지만 매각과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스퀘어로 다시 태어난 그곳에서 ‘나’는 ‘국제야간경비원연맹’의 아시아 지부장 조지훈을 만난다. 조지훈과 나는 가끔 새벽 시간 서울로7017로 올라 서울스퀘어의 파사드 위로 흐르는 LED의 불빛을 바라본다. 서울로7017은 2013년, 서울로가 아직 고가도로일 때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자가 분신자살했던 장소이며, 2017년 고가도로가 서울로7017로 조성된 지 10일이 지난 어느 오후, 카자흐스탄에서 온 노동자가 투신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조지훈에게는 꿈이 있었다. 서울스퀘어의 메인컨트롤러를 장악해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에 경비원들이 모든 빌딩을 점거했으며, 다국적 기업과 건물주의 소유에서 건축을 해방시킬 것이며, 도시를 정책의 수단에서 분리시켜 거리를 사람들에게 돌려줄 것이며, 서울은 시민의 것이다 등등의 메시지를 송출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실제로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서 보낸 프로그래머(해커)가 ‘나’와 조지훈의 도움을 받아 서울스퀘어로 잠입, 메시지를 코딩하는 일이 발생한다. 언론은 조지훈과 프로그래머들을 도시해커로 포장하고, 이 사건이 서울의 무분별한 개발, 다국적 기업의 침투와 신자유주의의 종말에 대해 경고하는 메시지라고 보도한다. 그 일로 조지훈은 구속되고 프로그래머들은 추방된다.
실재하는 것들에서 일부분을 차용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글쓰기 방식을 즐겨 사용하는 정지돈은 이번 소설에서도 도시의 빌딩을 지키는 야간 경비원을 세계의 전복을 꿈꾸는 동시에 도시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를 원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가장 오랜 시간 빌딩에 존재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이뤄지는 업무들에서는 철저히 배제된 존재인 야간 경비원, 그래서 그들은 도시해킹에 앞서 “나는 여기에 없다”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해킹에 나선다. 일정 부분 원하는 바를 이루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회의 주변인일 뿐이다. 죽거나, 수감되거나.
“소설을 읽고 나면 ‘그러니까 작가는 세계를 다르게 만들기 위해 버둥거리는 사람은 이제 어떤 의미로든 힙스터일 수밖에 없으며 이 빌어먹을 신자유주의와 4차 산업혁명시대에 진정으로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힙스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 그런데 이 소설을 쓴 정지돈 역시 힙스터 아닌가? (......) 정지돈은 지금 자기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자기는 힙스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 중요한 건 나에게 정지돈이 이 소설은 세계에 대한 저항을 ‘힙’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출구 없는 현실에 대한 소설적 스케치처럼 보인다는 것뿐이다.” (한영인, 문학평론가)
정지돈의 소설 중 예외적이리만큼 당면한 현실에 저항하는 기상천외한 발상과 구도로 야심차게 쓴 이 소설은 그 폐부에 깊은 허무와 우울을 숨기며 실존 시인의 전력을 차용해 현실을 창조하는 포스트 휴먼의 세계를 탄생시키고 있다. 리얼리티와 픽션을 넘나드는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로 독자성을 구현한 작품이다.
누군가 귓가에 대고 그런데 리마가 사라졌다고 그가 이미 죽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캄캄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었고 어디예요 물으니 서울역이라고 하였다.
제가 출근해야 하거든요.
기사님.
네.
저는 야간 경비원입니다.
본문 중에서
이것은 밤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밤 도로 위를 떠도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며 여성 혐오와 가난에 대한 이야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두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다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야. 이 이야기는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을 실현하지 않고 그것을 하는 것.
-09쪽
야간 경비의 수호성인 중 하나로, 구소련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정체불명의 어느 시인은 우리 시대를 ‘건물주와 야간 경비원의 시대’라고 했다. 역시 야간 경비의 수호성인이자 부코비나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국립대학을 나온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소비에트 연방 최초이자 최후의 파울 첼란 전공자인 블라디미르 니키포로프는 야간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사실 자체가 반체제주의자라는 의미라고 했다. 건물주와 야간 경비는 체제와 반체제, 애널리스트와 시인,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서사와 반서사, 시와 반시, 휴머니즘과 안티 휴머니즘, ‘자본주의’ 리얼리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포스트 미디엄과 포스트 미디어를 뜻한다.
-12쪽
도시 위를 걷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고가도로는 위대한 발명품이다.
문제는 이 도로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도시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고 건물의 주인
이 우리가 아니고 골목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고 길을 건널 때도 눈치를 봐야 하고 지하보도에서 잘 때도 눈치를 봐야 하고 광장에 모이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하늘은 먼지로 가려져 있고 땅은 시멘트로 덮여 있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갖지 못하는데 사실상 누구도 이곳을 볼 수 없고 주인이 될 수 없어요. 부자나 권력을 가진 자가 주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끝없이 유예되는 거예요.
우리는 서울역을 지나 만리동 방향으로 걸었다. 작게 조성된 공원과 지하를 파서 광장 형태로
만든 윤슬이 보였다. 계단을 따라 도로 위로 내려갔다.
그래서 저는 서울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려고 합니다.
-46-47쪽
서울 시장에 나가시려고요?
조지(훈)이 나를 경멸의 눈으로 쳐다봤다.
제도적인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럼 웃자고 하는 얘기예요?
아니요.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예요.
조지(훈)은 국제야간경비원연맹이 자유 소프트웨어재단과 연대를 맺었다고 말했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건물과 그 안에 설치된 하드웨어와 하드웨어 안의 세계. 이 세계와 연결된 그 안의 세계. 두 세계를 전복해서 하나의 자유로운 세계로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예요.
-47-48쪽
에이치에게 선물로 뭘 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시집을 줬다. 최악의 선물, 사이코패스, 히키코모리, 낙오자, 문청, 룸펜, 변태, 감상주의자, 촌놈, 힙스터, 대학원생, 가난뱅이로 몰릴 수 있는 선물인 건 알고 있지만 줬다. 리영리의 시집이었는데 내가 자카르타 출신의 시인인
데 어쩌고 하면서 주절주절하니까, 그만 하라고 했다.
읽어볼게.
-83쪽
이성복 시인의 이름을 쓴 것에 대한 정중한 이의 제기가 있었다.
우선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답변을 드리면
1. 글에 등장하는 이성복은 실제 시인 이성복
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2. 이런 걸 굳이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3. 관련이 있다 한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4. 이제 그는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110-111쪽
조지(훈)은 나에 대해 함구했고 경찰들도 세세하게 캐묻지 않았다. 예상 외로 언론은 사건을 크게 다뤘다. 알고 보니 도시해킹이라고 제1세계에서는 이미 유행한 적이 있는 개념이었다. 도시해커들은 금지되고 제한된 장소를 탐험하고 점거한다. 예술가, 사회운동가, 학자,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 등이 도시해킹을 시도했다. 『도시해킹』의 저자 브래들리 L. 개럿은 도시해킹을 “보안을 잠식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시민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규정하는 말끔한 서사에 위협을 가하여 부당하게 제약받아온 도시 속 우리의 권리를 되찾는 행위.”
-113쪽
니키 타르는 수송동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고 일주일가량 머문다고 했다. 우리는 의정부 교
도소로 밴을 타고 이동했다. 니키 타르는 내가 야간 근무 중인 빌딩에도 방문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왜 그만뒀냐고 물었는데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하자 니키 타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야간 경비도 예전 같지 않다네, 과거에는 망명 작가들의 안식처였고 도시의 구전설화와 혁명의 바리케이드, 부활의 전초 기지였지만 이젠 그저 시시덕거리는 놈팡이 놈들뿐이지, 라고 말했다. 나는 나와 함께 일했던 야간 경비원들을 떠올렸다.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그곳에 있었다. 잘 모르겠네요
-121쪽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스무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이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렸고,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013부터 018은 지금의 한국문학의 발전을 이끈 중추적인 역할을 한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사이 출생 작가,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등단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졌으며, 019부터 024까지는 새로운 한국문학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패기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발간되었거나 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2018년 4월 25일 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2018년 5월 25일 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2018년 6월 25일 발간)
004 윤성희 『첫 문장』(2018년 7월 25일 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2018년 8월 25일 발간)
006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2018년 9월 25일 발간)
007 정용준 『유령』(2018년 10월 25일 발간)
008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2018년 11월 25일 발간)
009 김성중 『이슬라』(2018년 12월 25일 발간)
010 손보미 『우연의 신』(2019년 1월 25일 발간)
011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년 2월 25일 발간)
012 최은미 『어제는 봄』(2019년 3월 25일 발간)
013 김인숙 『벚꽃의 우주』(2019년 4월 25일 발간)
014 이혜경 『기억의 습지』(2019년 5월 25일 발간)
015 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2019년 6월 25일 발간)
016 최 윤 『파랑대문』(2019년 7월 25일 발간)
017 이승우 『캉탕』(2019년 8월 25일 발간)
018 하성란 『크리스마스캐럴』(2019년 9월 25일 발간)
019 임 현 『당신과 다른 나』(2019년 10월 25일 발간)
020 정지돈 『야간 경비원의 일기』(2019년 11월 25일 발간)
021 박민정(근간)
022 최정화(근간)
023 김엄지(근간)
024 김혜진(근간)
현대문학 × 아티스트 송지혜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송지혜
1985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섬유예술과와 동 대학원 졸업. 경기도미술관, 슈페리어갤러리, 롯데갤러리, 박영덕화랑, 에스플러스갤러리, 가나아트에디션 등 국내외에서 수차례 전시.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2014, 북라이프), 『시간의 방』(2015, 북라이프) 시리즈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26개국에 판권 수출. 국내 단행본 사상 최고 금액으로 북미 판권 수
출. 한국, 미국, 영국, 대만 베스트셀러. 2015년 미국 아마존 <올해의 작가>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