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가장 빛나는 시와 시인에게 주어지는, 68회를 맞은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 문학상인 ‘현대문학상’의 올해의 수상자와 수상작으로 황유원의 「하얀 사슴 연못」 외 6편이 선정되었다. 심사는 2021년 12월호~2022년 11월호(계간지 2021년 겨울호~2022년 가을호) 사이, 각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수상후보작으로는 권박 「무구와 무수」 외 6편, 김승일 「행복」 외 6편, 김현 「흑백 기계류」 외 6편, 송승언 「불량목」 외 6편, 안희연 「굉장한 삶」 외 6편, 이영광 「계산」 외 6편, 이영주 「구름 깃털 베개」 외 6편이 선정되었다.
목차
수상작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자명종
air supply
아르보 패르트 센터
에릭 사티
흰꽃 등나무 옆에서
천국행 눈사람
수상시인 자선작
사슴과 유리잔
낮눈
리틀 드러머 보이
눈사람 신비
틴티나불리
올해 가장 시적인 사건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눈사태 연주
수상후보작
권박
무구와 무수
치마
광장
임대아파트
없다/있다
포대기와 호미
drapetomania―Samuel A. Cartwright, 80 「Report on the Diseases and Physical Peculiarities of the Negro Race」, 1851
김승일
행복
현실의 무게
싫어하지 않는 마음
다 안다는 느낌
대답
부탁
안내근무자
김현
흑백 기계류
그날 저녁 연옥은
활화산
간다
느끼한 시를 쓰지 않기로 한 한 시인에 관하여
쉽게 쓴 시
정말 먼 곳
송승언
불량목
시체공산주의
불량목 다음
(웃음)
저주 이미지
새로운 뼈 묶음
깃발 든 사람
안희연
굉장한 삶
밀물
변화하는 새의 형태
하나의 새를 공유하는 사람들
망각은 산책한다
노래는 멀리멀리
물결의 시작
이영광
계산
봄은
허송 구름
미워하는 마음을
중
청송
밀접 접촉자
이영주
구름 깃털 베개
작업실
유령이 왔다
마지막 대화
소각장
광인 마그네틱
광인 마그네틱
심사평
예심
나민애 시라는 손, 희망의 전염
이근화 언어의 삽질
본심
김기택 시를 시이게 하는 힘과 자유를 향한 모험
이기성 「하얀 사슴 연못」의 향기를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수상소감
황유원 존경과 우정을 담아
심사평
황유원의 시는 쉽고 평이해 보이지만,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설명하려면 난감해진다. 다층적이고 심원한 세계를 이렇게 쉬운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번 수상작은 의미로 구축한 관념적인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시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한 운동을 체험하게 한다. 예컨대 「하얀 사슴 연못」에서 ‘백록’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이미지는 “동물이 아니라/기운에 가깝고/뛰어다니기보다는 바람을 타고 퍼지는 것에 가까워”, 그 말을 발음하는 순간 시집 표지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다시 들어오기도 하고 화자의 가슴에서 마실 물을 마시거나 머리를 백록담 찬바람으로 청량하게 헹구기도 한다. (……) 이번 수상작에서는 ‘하얀 사슴 연못’ ‘눈사람’ ‘하얀 음식’ 등과 같은 흰색 이미지가 특히 눈에 띈다. 이 흰색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는 세계, 갓 태어난 자연 상태의 순수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세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는다는/생각”이나 사람이 가는 천국이 아니라 “눈과 사람의 합산”인 눈사람이 가는 천국, 그 “영영 무구”한 순수와 무위에 대한 지향성이 보인다.
―김기택(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황유원의 시에는 오롯이 자신의 내면에서 갈고닦은 언어와 서정이 숨 쉬고 있다. 내면으로 응집하는 언어와 이를 확장하는 상상력의 힘이 균형을 이룬 시편들의 기저에는 맑고 투명한 ‘시혼’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지용의 「백록담」이 우리에게 보여준, 이제는 잊힌 시적 진경의 아련한 향기이기도 하고, 텅 빈 시집 표지에 남은 보이지 않는 사슴의 흔적 같기도 하다. 황유원은 이 사라진 ‘시혼’을 불러내어, 연못에 뿔을 담그고 목을 축이는 사슴 몇 마리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의 시를 읽으며 ‘머릿속이 청량해지는’ 순간, 우리는 ‘놀랍게도’ 각자의 내면에 한 모금의 마실 물처럼 ‘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번 수상으로 젊은 시인이 되살려낸 ‘백록담’의 향기와 품격을 독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기성(시인)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처음에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한 심정이었습니다. 저보다 좋은 시를 치열하게 쓰시는 분들이 훨씬 많은데……. 하지만 이윽고, 내년에는 이미 하기로 한 것 이상의 번역 일(현실감각 이 제로에 가까운 저의 유일한 밥벌이 수단입니다)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아니 꼭 그래야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제게 주신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뜻한 격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간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나날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이미 저당 잡혀 있는 그 수많은 시간들……. 오늘 저는 저만의 시간을 수여받은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귀한 시간을 시에 바치겠습니다.
제 머릿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문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나오는 문장으로,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 우리의 마음은 쉬지 못합니다’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당하겠지만, 저는 이 문장을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 우리 마음은 정처 없습니다’로 의역하길 좋아합니다. 계속, 정처 없겠습니다. 당신 안에서 쉬기 전까지.
―황유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