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사평 중에서
수상작 「알파의 시간」은 가족 이야기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중년의 딸 이야기. 그러니까 일견, 우리가 흔히 보는 풍경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흔하고 일상적인 외피 뒤에 감추어져 있는 세계를 풍성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내면의 세계 즉 과거의 기억과 회상의 세계이다. 이 기억과 회상이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시간의 힘이 작용한 때문이다. 상처는 고통스러웠지만 회상의 여로를 통과하여 이윽고 도달한 각성과 화해는 아름답다. 이런 내면의 풍성한 세계로 이 소설은 독자를 이끌어준다.
-이동하(소설가)
「알파의 시간」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흐르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을 살고 있으며 그 시간이 비록 상처와 비루함으로 점철된 것이라 할지라도 살아감이란 바로 그것들을 긍정하고 따뜻이 감싸안는 것이라는 전언을 담고 있다.
이 소설에는 기법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도나 실험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안정된 구도와 이 작가가 기왕에 보여주었던, 치밀함과 주제를 향한 집요한 천착 등의 개성을 유감없이 펼치면서 한결 깊어진 시선으로 삶과 시간에 대한 성찰이라는 문학 본연의 미덕을 보여준다.
-오정희(소설가)
▶ 수상소감
먼 이역땅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른 아침의 전화에 불안해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어서 뜻밖의 전화벨 소리에 시간부터 확인하고 보았다. 아침 여섯 시 무렵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이렇게 이른 시간에 수상 소식을 듣게 된 사람으로는 처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곳이 여섯 시이니 서울은 오후 한 시쯤 되었겠다. 수상 소식은 그렇게 시공간을 초월해 어느 날 우리집 앞에 떨어진 닥터 후의 전화박스만큼이나 얼떨떨했다.
그곳에서도 새벽 네 시에 깨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시차와 빡빡한 일정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의외로 머릿속은 명징했다. 하루, 이틀 글을 쓰는 습관에서 벗어나면 몸은 어느새 편안함에 길들여져 다시 그 앞에 앉기까지 쉽지 않다는 것을 수차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끝내지 못한 원고를 붙들고 앉아 문장 하나하나를 뽑아내면서 이곳에까지 와서 자신을 재우쳐야만 하는 현실이 끔찍하기만 하던 차였다.
(…) 앞으로도 수많은 날들 나는 새벽 네 시에 깨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편안함을 찾아가려는 몸을 재우쳐 나는 자꾸자꾸 광야로 내 몸을 몰아부칠 것이다. 나는 홀로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처럼 천천히 갈 것이다. 나는 수많은 시간 묵묵히 한 길을 가고 있는 선후배와 동료들을 알고 있다. 그것을 알기에 그분들에게 송구한 마음을 다해 기쁘고 기쁘게 이 상을 받는다.
수상작
하성란 「알파의 시간」
수상작가 자선작
「그 여름의 수사修辭」
수상후보작
김 숨 모일, 저녁
박민규 근처
이기호 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장욱 고백의 제왕
최수철 갓길에서의 짧은 잠
황정은 야행
역대수상작가최근작
윤대녕 대설주의보
성석제 해설자들
김경욱 러닝맨
* 수상자 약력∥하성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소설집으로 『루빈의 술잔』『옆집 여자』『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웨하스』,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삿뽀로 여인숙』『내 영화의 주인공』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이수문학상><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