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제52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움직이는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하고 다양한 생활현실의 이모저모를 포용하여 구성의 묘와 삶의 중층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는 평을 받으며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최정례의 작품과 자선작을 실었다. 또한, 김경미·김신용·문인수·손택수·엄원태·이정록 등 7인의 수상 후보자들의 작품, 역대 수상시인인 정현종·오규원의 근작시,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최정례의 수상소감 등을 함께 수록하였다.
수상작 최정례「그녀의 입술은 따스하고 당신의 것은 차거든」 외 4편 수상시인 자선작 「칼과 칸나꽃」외 7편 수상후보작 김경미 「바닷가 절, 불타다」외 6편 김신용 「까치 감옥」외 6편 문인수 「동백 씹는 남자」외 6편 손택수 「초승달 기차」외 6편 엄원태 「애가」외 6편 이정록 「개나리꽃」외 6편 정끝별 「백년 묵은 꽃숭어리」외 6편 역대수상시인 근작시 정현종 「찬미 귀뚜라미」외 6편 오규원 「고요」외 6편 김기택 「껌」외 6편
최정례 1955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고려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햇빛 속에 호랑이』『붉은 밭』『레바논 감정』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이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심사평 중에서 움직이는 일상의 한순간을 포착하고 다양한 생활현실의 이모저모를 포용하여 구성의 묘와 우리 삶의 중층성을 보여주는 것이 최정례 시편의 미덕인 것으로 생각된다.……한순간이나 계기를 통해서 우리 삶의 중층성을 드러내어 거침이 없는 점을 사서 최정례 시편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그 밖의 표준적 단시에서도 단아한 성취가 이루어져 있어 시인의 수련과 솜씨를 엿보게 한다. ―유종호(문학평론가) 최정례 시인은 독자적인 어법과 시적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개성적인 시인이다.……시인이 낯설게 보여주는 우리의 일상은 통속, 상투, 신파, 억지의 굳은 껍질에 갇혀 있다. 시인은 우리의 삶이 말도 안 되는 코미디요 신파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인은 유희적인 언어와 이미지로 삶의 한심寒心에 들어 있는 신파조를 냉소조로 조바꿈시킨다. 최정례 시의 개성과 매력은 이 조바꿈 솜씨에 있는지 모르겠다. ―이남호(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 수상 소감 지난여름,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보았다. 석 달간 미국 아이오와 창작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세계 각국의 작가들과 만나, 낯선 언어로 바뀌는 내 시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보았었다. 아이오와를 떠나던 날, 비행기 창가에 앉아서 어디가 내가 그 동안 남의 나라 말로 떠들며 지내던 곳일까 찾아보았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고 대신 들판 위에 드문드문 빛나는 작은 호수들만 볼 수 있었다. 어떤 호수는 햇빛을 반사하여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면서 내가 탄 비행기의 항로를 따라왔다. 그리고는 11월 23일 서울에 도착하던 날 현대문학 측으로부터 내가 현대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혹시 비행기 속에서 비몽사몽간에 쫓아오던 그 다이아몬드 호수들이 변하면서 내가 무슨 몽상 속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분명 이 상은 게을러진 내게 정신 차리라고 주는 것만 같다. 감사히 받고 겸손하게 엎드려 시 써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시적 순간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부리고 있었다. 이젠 시적 순간들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런 순간들을 기다리기 이전에 끈질기게 시의 끈을 놓지 않음으로써 그 순간들이 나를 찾아오게 해야 할 것이다. 철조망에 싹이 나고 잎이 날 때까지, 밤나무에 주렁주렁 수박덩이가 매달릴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날이 계속되어도 투덜대지 않기로 한다. 나보다 더 빛나는 시를 쓰지만 이상하게 운이 닿지 않아서 번번이 상을 놓치고 마는 동료 선배 시인들을 생각한다. 그들보다 내가 먼저 이렇게 큰 상을 타서 그들의 행운을 가로 챈 거 같아 미안하다. 앞으로 열심히 좋은 시 쓰는 것으로 그들에게 진 빚을 갚아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