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박상순의 작품과 수상시인의 자선작을 수록했다. 대담한 환상, 현재와 과거의 혼성, 이미지의 빠른 회전을 통해 무겁지 않은 언어로 감정과 의미를 보여주는 박상순의 13여 편의 작품을 담았다. 또한 김신용, 윤제림, 이재무 등 7인의 수상 후보자들의 작품과 역대 수상시인인 천양희, 김사인, 장석남의 근작시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김사인의 수상소감 등을 함께 수록했다.
수상작 [박상순]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 죽은 말의 여름휴가 공구통을 뒤지다가 폭포 앞에서 봄. 이케와키 치즈루의 무덤 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수상시인 자선작 |신작시| 철새의 죽음 별이 빛나는 밤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 양 세 마리 너 혼자 빨리 걷다 의사 K와 함께 가수 김윤아 수상후보작 [김신용] 도장골 시편 - 벌레길 도장골 시편 - 민들레 꽃 도장골 시편 - 赤身의 꿈 도장골 시편 - 담쟁이 넝쿨의 푸른 발들 도장골 시편 - 부레옥잠 도장골 시편 - 재봉틀 도장골 시편 - 목탁조 [윤재림] 손목 노인은 박수를 친다 어느 날인가는 소쩍새 지하철 정거장에서 죽은 시계를 땅에 묻는 다 - 해시계 1 천년 묵은 시계가 있다 - 해시계 2 [이재무] 邪離庵을 찾아서 젊은 꽃 예술론 신발을 잃다 아버지 과수원 解産 [장철문] 하늘 골목 秋夕 늦단풍 지겹다 그 집 늙은 개 뒤란의 눈을 위한 다례 茶禮 하느님의 부채 [조용미] 자미원 간다 꽃잎 바람의 행로 큰고니 모란낭 面壁 벌어진 흉터 [차창룡] 긴여행 기러기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 여자의 짝은 결국 여자였다 행복은 슬프다 - 송일곤 감독의 영화 <깃> 우물 예술의 전당 꽝 칼 가는 집 역대 수상시인 근작시 [천양희] 뒤편 시인은 시적으로 지상에 산다 너무 많은 입 마들은 없다 벌새가 사는 법 바람을 맞다 구멍 [김사인] 봄밤 귀가 밥 花津 늦가을 겨울 군하리 봄바다 [장석남] 묵집에서 意味深長 여름의 끝 글씨를 말리고 푸른 손 달밤 간송미술관 뒤뜰의 芭蕉들 심사평 [예심] 이혜원·김춘식 시인들의 철저한 개별적 약진과 개성에 눈을 돌리게 한 시단 [본심] 유종호 자명성의 전복 [정현종] 멀고 외로운 길 [최승호] 독특한 스타일과 시의 격조 수상소감 [박상순] 시에게 보내는 편지
박상순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 『6은 나무, 7은 돌고래』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Love Adagio』 등이 있다.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하였다.
■ 심사평 중에서 박상순 씨의 작품들은 대담한 환상, 현재와 과거의 혼성, 이미지의 빠른 회전을 통해서 자명한 세계의 전복을 이루어내고 있다. 가령 목화밭에 얽힌 추억과 환상과 이미지의 빠른 회전은 흡사 환등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은근한 음률성을 확보하고 있어 뻑뻑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가령 공구통을 통해서 시간의 질서에서 해방된 화자의 일생을 역시 환등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무의미의 시를 연상케 하는 시행의 비약이 신선하고 상쾌하다. 자명한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꿈을 꾸는 것처럼 호습기도 하다. 수상자의 전위적이고 집중된 모색과 노력이 자명성의 전복을 통해서 새로움의 공감을 구축하는 데 보다 큰 성과 있기를 기대한다. 수상을 축하한다. - 유종호(문학평론가.연세대 교수) 박상순의 작품은 위에서 말해본 특징 때문에 아주 독특한 영토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특징을 두어 가지 더 얘기하자면 그 언어가 감정이 한껏 탈색된 언어라는 점이다. 그래서 끈적끈적하지 않고 경쾌하다. 또 시간을 계기적 진행에서 해방하여 과거-현재-미래라는 구분을 없애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시간 속에서 겪었거나 겪는 일들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의지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감정과 의미를, 역시 무겁지 않은 언어로,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가령 「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에서 다른 삶들과 마찬가지로 멀고 외로운 길을 가는 “나”를 보여주며, 「죽은 말의 여름휴가」에서는 나의 ‘미래 없음’에 관한 도저하게 어두운 그림을 보여준다. - 정현종(시인.연세대 교수) 최근에 발표한 박상순의 시들을 보면 어조가 전보다 훨씬 여려져 있고, 리듬이 유연해져 있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절망, 견딜 수밖에 없는 고독과 비애가 깔려 있는 듯하다. 「죽은 말의 여름휴가」 「돌아가야 한다」 「폭포 앞에서」는 그의 시적 역량이 한껏 무르익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시의 정조는 외로움이 지배한다. 나는 그 외로움이 그동안 단절의 문법, 독해가 불편한 문법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문법이었는지 모른다. 박상순의 시는 오랫동안 이해받기를 기다려왔다. 거부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수상을 축하한다. - 최승호(시인) ■ 수상소감 다시 또 봄이 오고 진달래건 철쭉이건, 은행이건 참외건 다 뒤집어 증오로 슬픔으로 귀신같이 섞어버린 뒤에도 죽지 않는 나의 봄. 그런 나의 봄을 보는 것은 나의 몸. 그런 나의 몸을 보는 것은 나의 봄. 그런 몸의 봄과, 봄의 몸 바닥에서 내 청춘을 마감하고, 차마 죽지 못한 내 몸에 죽음을 선언하는 시여. 뒤엉킨 내 청춘의 가시줄기를 거세하여 나를 사실의 세계에서 진실로 살게 하는 극사실의 섬세함이여. 언어여. 너로 인해 나의 청춘은 죽고 너로 인해 나는 혁명이 된다.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오히려 이런 글을 소감으로 적어 높은 장막을 둘렀습니다. 장막 뒤에서 안 숨은 척, 씩씩한 척해보지만 결국 강해지고 싶은 연약함을 발견할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제게 주신 이 과분한 격려를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