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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Sofia si veste sempre di nero (2017)

  • 저자 파올로 코녜티 지음
  • 역자 최정윤
  • ISBN 979-11-90885-50-8
  • 출간일 2021년 01월 15일
  • 사양 312쪽 | 124*195
  • 정가 14,500원

이탈리아 스트레가상 · 프랑스 메디치상 수상작 『여덟 개의 산』의 작가
파올로 코녜티가 선사하는 불안한 시대의 청춘들을 위한 소설

■ 책 속으로

 

어느 날 밤, 소피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중 그녀는 자동차 경적 소리를 들었다. 창밖을 보았고 남자의 승합차가 주차장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조등이 깜박였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에 서서 그 메시지의 내용이 명확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남자가 차에서 내려 창문 쪽을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모두 피웠다. 그런 다음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마치 그녀를 짓밟듯이 신발로 뭉갠 뒤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켜고 출발했다.

“소피아.” 간호사가 소리 내어 말했다. “태어나는 게 뭔지 아니? 전쟁터로 떠나는 배와 같은 거야.”

그날 아침 소아과 의사는 아기가 위기를 넘겼다고 진단했고, 마침내 아기는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

_ 「여명」, 14쪽

 

 

마르타는 그 그림들의 가치가 얼마이든 간에 로사나에게는 용기를 주고 로베르토의 기를 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원시인으로 만들지 마.” 단둘이 있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난 요리사도 웨이트리스도 베이비시터도 되어달라고 요구한 적 없어. 로사나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해도 난 상관없어.” 하지만 그의 무관심은 그 반대를 의미했다.

식탁 아래에서 소피아는 고모 앞에는 엄마의 샌들을, 엄마 앞에는 아빠의 모카신을 놓아두고 그렇게 서로의 신발을 바꿔치기했다. 마르타는 소피아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이 아이가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이런 가족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니? 좋은 생각이라도 있니? 아니면 너도 이미 보잘것없는 여성으로 낙인찍힌 거니?

_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82쪽

 

 

클리닉에선 소피아가 나가기를 바랐다. 밤이면 병실을 돌아다녔고 몇몇 간호사들과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규칙을 지키는 법이 없었고 다른 환자들에게는 최악의 본보기였다. 어느 날 아침 마르타는 클리닉으로부터 이번이 마지막 통보이니 진료비를 수납하고 이제 그만 소피아를 퇴원시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게 뭐야, 폭동이라도 계획하고 있는 거야?” 주말 면회 때 소피아에게 물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는 하루도 못 배기겠니?”

소피아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병원에서 놔주는 신경안정제 때문에 자신이 엄마처럼 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가끔 엄마의 영혼이 느껴졌고 밖으로 튀어나오려 해서 있는 힘껏 내쫓아야 했다고. 뭔가를 박살 내는 것도 효과가 있지만 간호사들에게 못된 말을 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된다고 했다.

(…) 마르타가 소피아에게 물었다. “매 순간 감시당하는 걸 끝내고 네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 하고 싶은 거 없어?”

“연기를 하고 싶어요.” 소피아가 주저 없이 말했다.

_ 「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106~108쪽

 

 

“뭐가 있어요?” 엠마인지 로사나인지, 동시에 두 사람인지 그 여자가 그에게 물었다. “뭘 봤어요?”

로베르토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난 본 게 아니라 보지 못한 거예요. 한낮에 그림자가 옆을 쓱 지나가는 게 느껴질 때가 있죠? 그러면 그게 새인지 구름인지, 뭐였는지 보려고 위를 올려다보지만 그땐 이미 늦었죠. 그게 뭐든 간에 이미 지나갔잖아요?

하지만 그건 로베르토와 같은 사람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는 대답했다. “그냥 자동차예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편이 더 현명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언뜻 본 장면을 혼자만 간직했다.

_ 「바람에 이끌려」, 154~155쪽

 

 

“내 생각에.” 아빠가 말한다. “네가 관계에서 지나치게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

“뭐가 지나치다는 거예요? 약간의 사랑이 아빠 눈에는 지나쳐 보여요?”

“사랑이 지나치다는 게 아니라 네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쳐 보인다는 거야.”

“제가 뭘 어떻게 표현한다는 말씀이세요?”

아빠는 한숨을 쉰다. “누군가에게 함께 있는 것을 요구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과 네 인생을 하나로 합치지 않고 말이야. 사랑한다고 그런 것을 요구한다면 모두가 너를 실망시킬 거야.”

“아빠, 그건 너무 슬프잖아요.”

“그렇지 않아.”

“함께하는 거요? 아빠는 결혼한 지 20년이 됐고 그게 전부잖아요?”

“있잖아.” 아빠가 말한다. “난 네 엄마와 잘 지낸단다. 너와 함께 있는 것도 좋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 행복해. 그런데 사랑은 어느 순간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찾아온단다. 난 네 인생을 위해 많은 것을 해줄 수 없어. 네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로마에 가서 너의 길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말이야. 딱 거기까지인 거야. 그리고 너도 내 병을 대신 앓아줄 수 없잖니.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말이야. 이 안에는 나 혼자야.”

_ 「무정부 상태가 언제 올까」, 184~185쪽

 

 

다음 장면에서 같은 여자가 카페 뒤편에 홀로 있다. 화장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선이고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베이스와 드럼이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이제야 그녀가 브루클린 강변에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한편에는 설탕 공장의 굴뚝들이 보이고 반대편에는 맨해튼 미드타운의 고층 빌딩이 보였다. 안뜰은 울타리가 둘러져 있고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봉투와 얼룩진 눈덩이가 쌓였고 그녀는 뒷문에서 새어나온 불빛을 맞으며 담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평범한 웨이트리스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선원 모자를 쓰고 추워서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홀로 가만히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소녀 같았다.

(…) 그러니까 우리는 전쟁 중이고 적들에게 포위되었고 도시의 중심에는 한 소녀가 있다. 그 소녀는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인물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외출은 밤에만 가능하다. 극한의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인류에 대한 신뢰, 심지어 포용력도 있는 사람이다. 이상주의자가 아닌, 현실적이고 생각보다 사람들을 신뢰하는, 결단력 있는 우리 세대의 여자이다.

_ 「브루클린 세일러 블루스」, 250~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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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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