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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지나간 후 Juste après la vague (2018)

  • 저자 상드린 콜레트 지음
  • 역자 이세진
  • ISBN 978-89-7275-155-7
  • 출간일 2020년 03월 06일
  • 사양 412쪽 | 140*207
  • 정가 15,000원

거대한 재앙에서 살아남은 일가족 11명
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는 배의 정원은 8명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거대한 재앙에서 살아남은 일가족 11명

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는 배의 정원은 8명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차세대 프랑스 누아르 소설가 중 가장 뛰어난 작가로 손꼽히는 상드린 콜레트의 『파도가 지나간 후Juste après la vague』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거대한 쓰나미로 파도에 포위된 섬에서 살아남은 일가족 11명이 정원이 8명인 배를 타고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자연의 무자비함이 자아내는 긴장감과 생존 앞에 내몰린 인간의 이성과 본능이 일으키는 갈등의 딜레마가 숨을 멎게 하는 심리 스릴러이다. 그뿐만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가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게 하여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파도가 지나간 후』는 출간되자마자 ‘아름답고 훌륭한 텍스트로 다수에 대한 소수의 선이라는 실존적 딜레마를 탐구한다’, ‘강렬한 분노와 인간애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감동 소설’, ‘마치 성경 속 세상의 종말을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된 이 소설은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등 유럽 및 영미권의 유수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은 수작이다.

 

 

■ 책 속으로

 

그들은 비에 홀딱 젖은 새끼 고양이처럼 넋 나간 눈을 하고 서로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뜨거운 빗방울과 세찬 바람의 등쌀에 이따금 눈만 끔벅거렸다. 어차피 눈앞은 바다, 온통 바다였다. 아니, 앞뒤 좌우 가릴 것 없이 사방 천지가 바다였다. 고작 6일 만에, 미처 적응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그들도 진즉에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한 식구는 그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아홉 명의 아이들은 미쳐 날뛰는 날씨와 거의 쉬지도 않고 퍼붓는 폭우에 시달린 나머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그들은 집과 그 주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_「프롤로그」, 10쪽

 

사랑도 이제 없어. 명예도 이제 없어.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어. 하지만 마디는 파타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말로 육신과 영혼을 난도질할 필요가 있을까. 파타는 많은 것을 책임지고 있었고, 침묵으로도 충분했다. 그 침묵이 지나고 난 후, 애들 아빠가 먼저 진정하고 말을 꺼냈고 일은 벌어졌다. 이제 엄마의 무언, 그녀가 하지 않은 말이 영원히 파타의 머릿속에서 맴돌 것이다. 파타는 매일같이 그 말에 일말의 진실은 없는지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맹세도 할 수 있었다. 섬에 남을 세 아이를 마지못해 선택했지만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한 적 없었다. 마디가 자기 멋대로 그렇게 생각한 거다. 마디는 결국 그 말을 뱉었다. 속에 담고 있기에는 너무 버거운 말이었으니까.

“절름발이, 애꾸, 난쟁이. 그러니까 제일 성치 못한 애들을 남기자는 거네. 타고난 불운에 어미 아비가 쐐기를 박는 셈이야.”

_「8월 19일 아침, 섬에서」, 44쪽

 

그녀는 속이 두 갈래로 찢어지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는 것밖에 몰랐다. 한 갈래는 여기 이 배에 여섯 아이와 함께 있었고, 나머지 한 갈래는 세 아이와 함께 섬에 남아 있었다.

아니, 말 같지 않은 소리였다. 한 갈래고 나발이고 간에, 그녀가 섬에 남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가슴이 찢어진다 한들 무슨 소용 있나? 넋만은 여기서 뛰어내려 섬에서 아이들을 보호한다 한들 무슨 소용 있나? 다 헛소리다. 그런 건 다 알량한 자기 위로에 불과하다. 그깟 위안으로는 그녀 안의 공포도, 소리 없는 통곡도 다스릴 수 없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아이들은 섬에 자기들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터였다.

_「8월 19일 아침, 바다에서」, 152~153쪽

 

이제 사는 것처럼 사는 사람은 저 어린것들밖에 없다. 그가 다음의 일, 다음 끼니를 앞질러 고민할 때 과거를 잊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순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저 아이들이 백 번 천 번 옳다. 파타는 어린 딸들의 동물적인 자발성이, 계산이 깔리지 않은 생동감이 부러웠다. 그 아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지 않고 내일로 나아가니까. 선악을 모르는 백지 같은 영혼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들은 이기적이고 눈부셨다. 파타는 딸들을 눈 속에 품고 한두 시간쯤 선잠을 잤다. 딸들이 없었다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_「8월 19일 아침, 바다에서」, 215쪽

 

길지도 않은 밤이었지만 파타는 몇 번이나 소스라치며 일어났다. 그는 불행은 항상 마지막 순간에 닥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꼬맹이들이 잠들기 전에 육지에 가면 어떻게 살게 될지 종알거릴 때에도 그는 손가락을 내밀며 아무 말도 못 하게 했다. 쉿. 유령과 사악한 영들을 깨워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들을 무시하고 김칫국부터 마셨다가는 큰코다친다. 그는 딸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속삭였다. 내일이 되어보면 알겠지.

_「8월 19일 아침, 바다에서」, 221쪽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세 아이 중 어느 하나가 불행을 끌어들이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도 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두 발 뻗을 겨를도 없이, 서광이 비칠 틈도 없이, 희망을 품을 새도 없이 이처럼 악재에 악재가 거듭될 수 있을까. 숨 한번 들이마실 새도 없이 이러는 게 어디 있나.

그들에게 악운이 따라다닌다면 셋 다 문제가 있는 걸까, 어느 한 명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 아니면, 세 명 모두의 탓일까. 애초에 온전치 못한 데가 있어서 한쪽으로 밀려난 아이들 아닌가. 이 사실이 가슴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웃기는 일이겠지. 그리 대수롭게 여겨지지도 않았던 기형이 어느 날 문제가 된 거겠지. 아, 그래, 저 셋은 좀 모자란 데가 있어. 자연 혹은 운명에 버림을 받은 게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세 아이만 섬에 남겨졌던 것은 아닐까. 콕 집어서, 절름발이와 애꾸와 난쟁이가 남겨진 이유가 달리 있을까.

실수로 태어난 아이들.

이제 곧 죽을 아이들.

_「8월 28일, 섬에서」, 373~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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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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