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리고 예술과 시간에 대한 우화
죽음을 예술이라는 산도로 통과시켜 탄생시킨 천희란의 첫 소설집
정체불명의 사유가 만들어낸 죽음의 세계,
당대의 징후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상징화한 소설!
삶과 죽음에 대해 작가가 가질 수 있는 문제의식을 가장 문학적인 방식으로 다루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신예 천희란의 첫 소설집 『영의 기원』이 출간되었다.
2015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등단한 천희란은, 심사 시작 5분 만에 만장일치로 당선이 결정되었을 만큼 소설의 독특한 매력과 집중된 사유의 문장력을 익히 인정받은 바 있다. 등단 3년도 안 돼 소설집 한 권이 묶일 만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천희란은 <2017 젊은작가상>을 받는 등 평단과 독자들의 고른 호응을 얻으며 “대체 불가능한 한 명의 작가로” 이미 그만의 작품세계를 이루어가고 있다.
“당대의 징후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상징화한”(소설가 이기호) 등단작 「창백한 무영의 정원」에서부터 시작된 ‘어떻게 죽음을 인식하고 기억할 것인가’라는 작가 특유의 묵직한 물음은 첫 소설집에 실린 총 8편의 소설 속에서 그동안 써 내려간 끈질긴 고민과 천착의 흔적으로 또렷이 형상화되어 있다.
“살아남은 우리들이 취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
-빛으로 죽음을 그려낸 작가 천희란의 첫 소설집
천희란은 주로 여성 화자를 내세우거나 혹은 화자 주위의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여 급작스럽게 찾아온 친구의 죽음에 대한 성찰(「영의 기원」), 묵시록적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죽음과 추모(「창백한 무영의 정원」), 사회적 약자가 강요받는 부당한 죄의식(「신앙의 계보」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예술가이자 성 소수자인 여성들의 삶과 사랑(「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등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소재들을 테마 삼아 그의 첫 소설집 전체를 “죽음으로 완성되는 삶 혹은 작품”(문학평론가 신샛별)의 세계로 집요하게 그려내고 있다.
페미니즘과 여성 작가의 강세로 요약되는 최근 한국 문학계의 의미 있는 흐름과도 결을 같이하는 작가 천희란의 면모와 무관하지 않을 이 소설들 속에서, 작가는 위계 폭력과 여성 혐오의 시대에 외부를 향한 투쟁 못지않게 내적 투쟁의 중요성을 제기하며 “끝없이 분열하는 자신과 싸워온 사람들 모두”의 연대를 제안한다. “혁명은 모든 개인의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어디서 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문장을 곱씹었다. 그러면 정말로 혁명이 시작될 것 같았다.”(「영의 기원」) 이러한 작가의 목소리는 소설 속 곳곳에 포진돼 있는 여러 형태의 죽음에 대한 사회학적 맥락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행위를 통해 살아 있는 우리들이 응당 행해야 할 공동체적 일원으로서의 노력의 가치를 절실하게 전달한다.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에서 작가는 예술가로서의 숙명을 죽음과도 같이 막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암시하듯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미리 삭제된 몇 개의 장면이 존재하며,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삭제된 바로 그 장면들이다. 나는 영원히 달아나지 못한다.”
죽어 있는 삶을 살아 있는 죽음으로 맞바꾸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고스란히 녹아든 그의 첫 번째 소설집 『영의 기원』. 독자들은 빛으로 죽음을 그리는 일에 몰두해온 천희란만의 소설 세계에서 그가 발산하는 소설의 힘, 그 독특한 쾌감을 만끽할 것이다.
▲ 작가의 말
수없이 많은 것을 그토록 쉽게 버려왔는데 왜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못했는지, 줄곧 궁금했고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즐거웠던 적은 거의 없다. 매번 유서를 쓰는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쓰면서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한 소중한 친구는 말했다. 언제나 끝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내심은 그 끝이 멀리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 이야기들을 쓰기 위해 결코 가볍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그러므로 누군가 한 명쯤 오래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겠다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책이 출간되기까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들 곁에 오래 머물고 싶다.
▲ 해설 중에서
작가란 평생 한 가지 이야기만을 할 뿐이라는 말을 흔히 듣지만 그것은 달리 말하면 한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이 결국 가장 궁극적인 진실 하나를 말하지 못하고 방황한 흔적들이라는 뜻이 된다. 어쩌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그 한 가지 진실을 포기하지 않고 말하기 위해 자신을 끝없이 학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예술가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화가와 작가를 탄생시키고 그들을 통해서 예술가의 숙명을 응시하고 있는 우리 앞의 이 작가, 천희란은 누구인가.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되는 작품을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들을 그려내는 동안 천희란의 내면에는 어떤 직시와 회피의 긴장이 있었을까. 바꿔 말해 천희란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그러나 생이 다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결국 최종적인 버전을 만들어내게 될 그 진실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혹은 말하지 않기 위해 이토록 죽음으로 가득한 책을 쓴 것일까. 어째서 그는 이토록 빛으로 죽음을 그리는 일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야만 했던 것일까.
―신샛별(문학평론가)
▲ 줄거리
창백한 무영의 정원
돌연사한 아버지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여동생, 이어 발생한 어머니의 실종. 많은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죽어가는 묵시록적 세계 속에서 주인공 ‘나’는 죽은 여동생의 휴대폰을 통해 인터넷 비밀 모임에 접속하게 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죽음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언자들
하루하루 종말의 도래를 기다리는 세상 속에서 네 번째 현이 끊어진 바이올린으로 마지막 날까지 음악을 연주하는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여자’와 사형선고를 받아 형이 집행되었지만 시체안치소 비닐 팩 안에서 깨어나는 ‘남자’의 이야기.
영의 기원
친구 ‘영’의 죽음을 전해 들은 ‘나’는 동전을 던지며 ‘영’의 죽음이 사고인지 자살인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남겨진 ‘나’는 문서 작성용 프로그램을 열어 사고를 의미하는 앞면은 1로 자살을 의미하는 뒷면은 0으로 기록하며 ‘영’과 ‘영’이 남기고 간 것들을 기억한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딸을 둔 어머니이자 한 여성의 연인이었던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그녀의 딸과 옛 연인이 주고받은 열 통의 편지 형식에 담긴다. 예술가이자 성 소수자인 여성들의 사랑과 절망, 화해와 불화의 조각들이 아름답고 정교한 서사를 통해 하나의 퍼즐 작품으로 완성된다.
신앙의 계보
신부 'P'는 천주교 박해와 원폭 피해의 상흔이 남아 있는 나가사키의 우라카미성당을 방문해 신의 뜻에 관한 그의 의구심을 해소하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그를 옭아매온 상처와 죄의식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경멸
미술기자인 ‘당신’이 겪은 화가 ‘그’의 기이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불멸의 인간이라고 주장하며 기자의 눈앞에서 자살을 해 보이는 화가를 두고 기자는 황급히 현장에서 도망을 치지만 기자의 눈앞에 정말로 화가가 다시 살아 돌아오게 된다.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유학 업체 사무원으로 일하는 ‘형인’은 특별 관리 학생인 ‘수진’의 입학시험 접수에서 실수를 저지른 탓에 사장과 ‘수진’의 부모로부터 부당한 요구에 시달린다. 모멸감을 느끼며 공항으로 ‘수진’을 마중 나가게 된 ‘형인’에게 ‘수진’은 자신의 비밀 한 가지를 털어놓는다.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그’는 아이가 이사해 나간 방에서 아내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화성 여행의 시대가 도래한 세상에서 아내는 화성을 다녀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중간중간 찢겨 나간 일기장의 내용을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채워 넣으면서, 아내의 자살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 본문 중에서
내게 하나뿐이던 여동생은 머리맡에 짧은 메모를 남기고 죽어버렸다. 나는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사랑해. 용서해줘. 사랑해. 그녀는 두 번이나 사랑한다고 썼다. 거기에는 자신의 결정이 지체되는 것을 피하려는 자의 다급함이 있었다. 아마 그녀는 자신이 두 번씩이나 사랑한다고 쓴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그녀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어머니가 그걸 버틸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머지않아 죽어버릴 거라고,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아니 어쩌면, 나의 전망이 그녀의 죽음을 견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창백한 무영의 정원」, p. 18
종말은 불시에 찾아오지 않았다. 종말의 날짜가 모두에게 공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종말이 도래하리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예상보다 너무 멀리에 있다는 데에 당혹감을 느꼈다. 새로운 인생을 꿈꿀 수 있을 만큼 멀지는 않았으나, 다급하게 삶을 정리해야 할 만큼 가깝지도 않았다. 작별의 인사를 전할 사람들의 목록 대신에 남아 있는 계절의 숫자를 헤아렸다. 초읽기가 시작되자 온갖 종교가 앞다투어 포교에 나섰고 수많은 천국이 상품처럼 진열되었다. 거리에 폭동이 일어날 때면 종말보다 지옥이 앞서는 듯했다. 최후의 존엄을 외치는 운동가들이 있는가 하면, 이 종말이 실패하리라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학자들의 예측과 무속인들의 전언은 혼동되었다. 그러나 그중 무엇 하나도 종말을 실감케 하지는 못했다. 종말의 징후들이 포착되고, 종말의 날이 거듭 확정되는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종말은 너무 멀리에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절망이나 희망이 아니라,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일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예언자들」, pp. 41-42
자정을 0시라고 부르는 걸까. 0은 11의 다음에 오는 숫자가 아니고, 23의 다음에 오는 숫자가 아니며, 0은 12와도 24와도 같지 않다. 0은 1의 앞에 올 수 있으므로, 자정을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시계는 둥글고, 1부터 12의 숫자를 가지고 있고, 시침과 분침과 초침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맴돈다. 하루에 두 바퀴를 돌며, 하루에 두 번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동시에 12를 가리키고, 두 번 중의 한 번은 오늘과 내일에 동시에 속한다. 시계는 계속해서 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런데 왜 0일까. 마치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측량이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오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그것은 눈앞에 영이 앉아 있지 않았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질문이다.
―「영의 기원」, pp. 80-81
그때 한 여자가 멀리서 언 강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어. 네 엄마였다. 부동의 풍경을 휘젓고 있었지. 동작이 크기 때문만은 아니었어. 너무 멀어서 구체적인 생김새나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두꺼운 검정 점퍼 아래 자줏빛 스커트가 펄럭이고 있지 않았다면, 그것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몰라. 아무튼 발목을 다 덮는 자줏빛 스커트는 풍경 안의 다른 색들을 모두 무채색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강렬했지. 아름다웠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구나. 걷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어. 작은 발을 얼음 위로 지치며 미끄러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강의 중심을 향해 저절로 빨려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pp. 115-116
그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 속에 피폭된 성모상의 검은 두 눈이 떠올랐다. 다시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눈을 뜨자, 이번엔 붉은 카펫이 깔린 까마득히 긴 복도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문이 닫히고, 그가 또다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신앙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은 눈 속엔 텅 빈 어둠만이 가득했고, 엘리베이터는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중이었다.
―「신앙의 계보」, p. 187
당신은 보았다. 불멸의 인간이 당신 앞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홀로 오래 살아남은 자의 눈은 영화 속에서 보아왔던, 혹은 소설 속에서 읽고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서늘하지도, 삶의 무상함을 깨달은 깊은 심연을 간직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탁하고 불투명했다. 드러내는 것보다는 감추는 것에 능했다. 더한 것도 뺀 것도 없이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눈은 마치 얼음강과도 같았다. 그 얼어붙은 수면 아래로 흐르는 물의 깊이와 유속을 도저히 가늠할 길이 없었다고 당신은 말했다.
―「경멸」, pp. 191
수진을 묶고, 그녀의 입과 귀를 막고, 형인은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당신들이 나를 모욕한 대가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조금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당신들이 제외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당신들도 깨달아야 한다. 당신들의 딸은 온전히 돌아가지 못할 거야.
―「사이렌이 울리지 않고」, pp. 254-255
우리는 그가 이해하는 바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완전히 삼켜버리도록 늪과 같은 그림자 속에 자신을 던진 바, 그의 아내가 보여주려 하지 않았기에 드러나지 않았던 그 사건들처럼, 그가 스스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것을 우리 또한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언제나 미리 삭제된 몇 개의 장면이 존재하며,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삭제된 바로 그 장면들이다. 나는 영원히 달아나지 못한다. 다만, 이제 불을 끌 시간이다.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p.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