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도 우리와 한통속』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프의 세번째 소설. 신랄한 풍자와 장난기 넘치는 문체로 서글프고 비장한 우리의 일상을 행복한 글 읽기로 바꾸어 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군더더기 없는 가벼운 문체로 인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권태와 인생의 의미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생애 최초로 자동차를 구입하는 나이에 (‥‥‥) 묘지를 사기로 결정"한 독특한 주인공 앙투완. 그는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상당한 액수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가장으로서의 의무, 일상적인 잡무 등 인생의 모든 번거로운 과정에서 놓여날 수 있는 '행복한 나날'이 시작된 것. 그리하여 그는 서른 다섯에 양로원에 입주한다. 삶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그는 양로원에서 만난 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생의 의미란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군가의 생명을 사랑할 때 느끼게 되는 영혼의 떨림임을 깨닫게 되고, 그의 삶은 반전된다.
■ 지은이 로랑 그라프 로랑 그라프는 서른다섯 살이며, 갈리마르 출판사 자료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두 번째 소설 『그 사람도 우리와 한통속』 이후 문단의 주목받는 신예작가로 부상했다. 『행복한 나날』은 그의 세 번째 소설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은 신랄한 풍자와 장난기가 넘치며, 서글프고 비장한 우리의 일상을 행복한 글 읽기로 바꾸어 놓는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또한 2001년 프랑스 서점협회에서 수여하는 밀파쥬상을 수상했다. 미국, 독일, 그리스 등지에서 이미 번역된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배우 조니 뎁이 판권을 샀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는 『행복한 나날』의 주인공 앙투완처럼 현재 매우 건강하며, 삶의 현장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기를 즐기며, 주어진 명이 다할 때까지 오래 살고 싶어 한다. ■ 옮긴이 양영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잠수복과 나비』『테오의 여행』『나의 연인 뒤라스』『서양과 불교의 만남』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김훈의 『칼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옮겼다. ‘코리아 헤럴드' 기자, ‘시사저널' 파리 통신원으로도 근무했다.
■ 이 책은 인간 속의 인간을 들여다보는 소설! 삶과 죽음의 최저점까지 가차 없이 던져지는 시선, 그리고 명징한 문체와 신랄한 아이러니. 주인공 앙투완은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인생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믿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독특한 인물이다. 삶에 대한 그의 냉소주의는 그가 생의 모든 권태로움에서 벗어나 삶의 원천 의미를 얻기 위함인 죽음의 현장에 뛰어들어 죽음을 지켜보는 단순한 선택을 하게 한다. 이것은 삶에 대한 지극한 회의가 아니라 그가 인간을 탐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는 한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란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군가의 생명을 사랑할 때 느끼게 되는 영혼의 떨림임을 깨닫게 되고, 그의 삶은 반전된다. 살아 있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만큼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 것을, 인생이 무의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기대할 것 없었던 것들로부터 깨닫게 됨을 보여준다. 앙투완은 이미 늙어버린 사람처럼 사회생활에는 무관심한 서른다섯의 젊은 남자. 그는 “열여덟 살에 대체로 평범하다 싶게 인생을 메꾸는 그렇고 그런 일들, 예를 들어 연애나 일, 이상과 야심, 실망과 권태 등을 모두 겪었다고 생각”하는 삶의 권태로움을 탈출하려고 꿈꾸는 젊은이. 더욱이 그는 이제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 어떤 놀라운 경이로움”도 기대할 수 없으리란 생각으로 “아무런 야심도 없이 체념한 채 살기로 결심”한 낙천주의자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부모님들이 저축해준 돈을 찾아 “영구 임대” 묘지 구입 결정을 내린다. 이유인즉 “하나의 돌로 나의 인생을 구획 짓고” 싶다는 것. 묘지를 매매하는 관리소에 난데없이 등장한 열여덟 살의 젊은이. 어쨌든 그는 우여곡절 끝에 묘지를 구입한다. 그리고 내친김에 장의사를 찾아 비석까지 그럴듯하게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이 미래에 묻히게 될 그 자리를 때때로 방문하는 게 그의 소일거리가 된다. 마치 죽음에 대한 보험처럼 그는 자신의 묘지를 아낀다. 그렇다고 그가 생이든 죽음이든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경우란 거의 없고, 어쩌면 양쪽 모두 심드렁하게 여길 뿐이다. 결국 그는 대학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중퇴하고, 어느 유통 회사의 화물트럭 기사로 일자리를 얻고, 또 “수줍음 많이 타며” 아직도 위대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여자를 오랜 탐구 끝에 만나 결혼까지 한다. 그런대로 화목했던 가정생활은 아이 둘을 낳을 때까지였고, 그 후 아내는 “다른 현실에 대한 꿈이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결국 12년간의 결혼은 파국을 맞고, 그 무렵 얼굴도 모르는 대부로부터 행운의 유산을 상속 받는다. 그는 그 행운을, 세상이 주는 모든 권태로움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맞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을 가지고 양로원, 즉 ‘행복한 나날'에 입주한다. ‘행복한 나날'에서의 앙투완은 이렇다할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보단, 노인들의 건강을 위해 마련된 일련의 프로그램에 그냥 잠잠히 동참하는 정도가 전부다. 예를 들어 사파리 관광이라든지, 마술쇼나 시의원 선거유세를 나온 얼간이를 구경하는 게 일상의 전부였지만, 오히려 앙투완은 그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끼며, 자신을 방해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에 만족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한 나날'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을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이틀 전에 입주한 예순을 넘긴 말기암 환자, 미레이유란 노인이다. 앙투완은 무엇에 이끌린 듯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고 애정을 갖기에 이른다. 앙투완은 그녀의 산책을 돕고 그녀의 식사 시중을 기꺼워한다. 조촐한 송년회가 지난 1월 어느 날, 그는 그녀로부터 뜻밖의 바다 여행 제안을 받는다. 그녀는 앙투완에게 마지막 여행을 떠나게 해준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말한다. 앙투완은 그것을 “마지막 미친 짓”, “임종의 은총을 받기 전의 섬광”이라 생각하며, 가능한 한 빨리 죽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여행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오랜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 도착한 겨울철 노르망디 해변의 텅 빈 바닷가, 모래 언덕에 앉아 그녀는 손주들의 사진을 꺼내 보곤 눈물을 짓는다. 그 눈물은 고해의 바다에 떨어지는 몇 방울의 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삶에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소금기가 포함되어 있다”고 앙투완은 읊조린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만난 절벽가의 벤치에 미레이유를 앉히고 함께 고동을 먹으며 그녀를 통해 생애 최초로 완벽한 사랑을 경험한다. 앙투완의 그 순간의 감정은 “도덕적 의무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끼게 된다. 죽음으로 말하자면, 그는 20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었다. 미레이유는 그날 밤 호텔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는다. ■ 책 속에서 유머와 풍자, 재치와 통찰력이 번뜩이는 이 길지 않은 소설은 요즘 한창 유행하는 스케치풍의 트렌디 소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가벼운 문체를 빌어 모랄리스트적인 관심을 부추기는 정통적인 소설 쪽에 가깝다. 로랑 그라프는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선 젊은 작가로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는 프랑스 작가이다. 그의 글쓰기는 우리 일상을 신랄하게 파헤침으로써 “인간 속에 내재한 인간 탐구”를 추구한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머리에는 하얀 눈발을 덮어 쓰고 벤치에 앉아 바늘을 들고 펜싱하듯 고동과 씨름하는 미레이유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연민을 넘어선 진정한 애정이, 사랑의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갑자기 미레이유가 천진함과 힘이 넘치는 사람인 것처럼, 다시 말해서 소박하고 어린아이 같은 구원받은 존재처럼 여겨졌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명, 움직임이 느껴지는 한 생명을 내 두 손 안에 붙들고 있으며, 그 생명은, 비록 아주 미약할지라도, 이 세상의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었다. 절벽 위에서 나는 모든 껍데기를 벗어버린 생명과 죽음의 무게를 저울질한다. 나는 당연히 생명 쪽으로 기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