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가장 빛나는 소설과 소설가에게 주어지는, 68회를 맞은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 문학상인 <현대문학상>의 올해의 수상자와 수상작으로 안보윤의 「어떤 진심」이 선정되었다.
심사는 2021년 12월호~2022년 11월호(계간지 2021년 겨울호~2022년 가을호) 사이, 각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수상후보작으로는 문진영, 「내 할머니의 모든 것」 박지영,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이서수, 「엉킨 소매」 위수정, 「몸과 빛」 윤보인,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 이승은, 「우린 정말 몰랐어요」 이장욱, 「요루」가 선정되었다.
수상자 약력 – 안보윤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나 2005년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소년7의 고백』, 중편소설 『알마의 숲』,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 『오즈의 닥터』 『사소한 문제들』 『우선멈춤』 『모르는 척』 『밤의 행방』 『여진』이 있다.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했다.
심사평
뉴스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워낙 소란하여 도대체 곡진하고 거짓 없는 마음을 어디에 쓸까 싶은 나날이지만, 이번 심사는 이런 시대에도 진심이 어디론가 가닿고 있다는 걸 소설을 통해 확인하는 자리였다. (……) 안보윤의 「어떤 진심」에 나오는 인물에게는 누구나 진심이 있다. 하지만 어떤 진심은 꿈을 짓밟고 어떤 진심은 모멸감을 준다. 어떤 진심은 효용을 감지한 후에야 위로의 말을 건넨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하는 마음도 진심이고 속이는 마음도 진심이라면, 그때의 진심이란 얼마나 섬뜩하고 무서운가. 무엇보다 누군가를 외면할 때의 진심과 이후 그 순간이 야기한 죄책감을 되새기는 마음은 얼마나 가까운가. 안보윤은 이처럼 여러 겹의 진심으로 다양한 마음의 결과 행방을 되새기며 진심의 쓸모를 캐묻는다. 좋은 소설은 인간의 얼굴을 사면상처럼 묘사하기 마련이다. 각도에 따라 한 사람의 안색이 달라 보이게 마련인데, 안보윤이 「어떤 진심」에서 그려낸 인물의 얼굴이 그러했다.
― 편혜영(소설가 • 명지대 교수)
안보윤의 「어떤 진심」은 악의 구조에 갇힌 개인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주인공 오유란은 아홉 살 때 엄마를 따라 들어간 교회를 자신의 집이라고 여기도록 배웠고, 그 교회 공동체 내에서 자라, 그 지도자인 황 목사가 영혼의 구원자라는 신념을 한때 가졌다. 그러나 교회 생활은 황 목사와 내연관계였던 엄마를 그녀에게서 앗아 갔음은 물론, 학교의 또래들로부터 그녀 자신을 고립시키고 말았다. 그녀는 황 목사의 선교 사업이 아동 착취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에서 시작한 아이들 상대의 전도사 노릇을 스물네 살인 현재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진심」은 종교 집단들의 비리에 관한 폭로 저널리즘을 답습하고 있지 않다. 사실, 이 작품의 핵심은 어떤 수상쩍은 교회의 악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살고 있다는 확신 혹은 살고자 하는 용기를 주는 열렬한 믿음, 제목의 어휘를 빌리면, “진심”의 행로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읽고 나면 믿음을 이용해서 서로 사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한편으로, 어떤 경우 믿음의 동기를 이루는 무지 혹은 광기를 생각하게 된다.
― 황종연(문학평론가 • 동국대 교수)
수상소감
견디기 어렵다, 라는 감정을 나는 소설을 통해 배웠다.
스무 살 무렵만 해도 나는 세계와 무관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었다. 적절히 갈무리된 마음과 표정으로 매일을 살았다. 손 편지를 쓰지 않으면 답장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나는 타인을 곁눈질하고 닥쳐온 불행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삼켰다. 이상하리만치 쉬운 날들이었다.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감탄을 흉내 내고 실수를 떠넘기면서 의심도 연민도 없이. 그런 삶이 나쁜가 하면. 모르겠다. 다만 쓸쓸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는 진심을 불행과 함께 조금씩 찢어 삼켜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비루해진다. 간혹 평온했다가 끝내 외로워진다. 선물이 될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이 나를 비루하게 만들고 그럼에도 눈 감지 않는 누군가의 의지가 나를 평온하게 만든다. 거울 속 일그러진 얼굴은 화가 난 게 아니라 고독해서다.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 역시, 나는 소설을 통해 배웠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고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기어코 써버린 문장이 당혹스러워 온몸으로 문질러 지우던 날들이 있었다. 수상소식은 내게, 그런 시간조차 헛된 것이 아니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았다. (……)
부서진 진심에 대해 쓰고 나서야 진심을 믿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모든 것이다.
― 안보윤(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