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슐러 K. 르 귄, 엘리자베스 문, 케이트 윌헬름을 잇는 SF계의 그랜드 데임 낸시 크레스의 중단편선 『허공에서 춤추다』가 폴라북스에서 출간되었다. 네뷸러 상과 휴고 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그녀를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린 걸작 「스페인의 거지들」과 네뷸러 상과 스터전 상을 수상한 「올리트 감옥의 꽃」, 네뷸러 상, 휴고 상 각 최종 후보작이자 《아시모프》지 독자상 수상작인 「허공에서 춤추다」등 현대 과학소설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13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국내 첫 출간되는 낸스 크레스의 작품집인 이 책은 출간 당시 SF 판타지 잡지 《로커스》에서 ‘올해의 단편집’ 5위에 선정되었으며, “최고의 SF 작가 중 한 사람에 의해 쓰인 이 책의 모든 작품은 대단히 뛰어나다!”(크레이그 엥글러Craig E. Engler), “미묘하고 다층적이며 뇌리에 새겨질 만큼 인상적이다!”(코니 윌리스Connie Willis)라는 찬사를 받았다.
낸시 크레스는 서문에서 “20세기 물리학적 지식이 변했듯이, 21세기에는 생물학적 지식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유전공학의 응용에는 사회적, 윤리적 의문이 뒤따른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작품들 역시 이 새롭게 발견된 지식과 그 응용을 통해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 하는 질문들을 시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작품 속에서 유전공학적 기술은 때때로 정치·경제적인 이해관계 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라는 이름의 생명체들이 힘없이 스러져가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그려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녀가 들추는 과학기술의 허상 앞에서 끝없는 인간의 탐욕을 목격하고,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성찰과 만나게 된다.
서문·7
스페인의 거지들·11
파이겐바움 수·149
오차 범위·179
경계들·193
딸들에게·275
진화·293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337
성교육·357
오늘을 허하라·389
올리트 감옥의 꽃·403
여름 바람 ·467
언제나 당신에게 솔직하게, 패션에 따라·485
허공에서 춤추다 ·511
옮긴이의 말 ·603
작품 연보 ·611
■ 지은이 _ 낸시 크레스 Nancy Kress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을 소재로 머지않아 인류에게 닥칠 빛과 그림자를 매혹적이면서도 섬뜩하게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1976년 SF 잡지 《갤럭시》에 단편소설 「지구 거주자The Earth Dwellers」를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1981년 첫 장편소설 『모닝벨의 왕자The prince of Morning Bells』를 출간했지만, SF 작가로서 주목을 받은 것은 1986년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Out Of All Them Bright Stars」로 네뷸러 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이후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거나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으나, 1990년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 그 이듬해에 발표한 「스페인의 거지들」로 네뷸러 상과 휴고 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올리트 감옥의 꽃」 「나이의 샘Fountain of Age」 「가을 후에, 가을 전에, 가을에After the Fall, Before the Fall, During the Fall」 「어제의 킨Yesterday’s Kin」으로 네뷸러 상을, 「에르드만 결합The Erdmann Nexus」으로 휴고 상을, ‘확률 우주’ 시리즈 중 하나인 『확률 공간Probability Space』으로 존 W. 캠벨상을 받는 등 SF 분야에서 권위 있는 상들을 모두 수상했다. 지금까지 스물다섯 편 이상의 장편소설과 백여 편에 달하는 중단편소설을 썼으며 《라이터스 다이제스트》에 꾸준히 칼럼을 기고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세 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들은 현재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전 세계 10여 개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있다.
■ 옮긴이 _ 정소연
서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2005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스토리를 맡은 만화 「우주류」로 가작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 창작과 번역을 병행해왔다. SF 단편집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백만 광년의 고독』 『아빠의 우주여행』 등에 작품을 실었으며, 최근 소설집 『옆집의 영희 씨』를 출간했다. 옮긴 책으로는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어둠의 속도』 『화성 아이, 지구 입양기』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초키』 『플랫랜더』 등이 있다. 과학 에세이집 『미지에서 묻고 경계에서 답하다』, 연구서 『상상력과 지식의 도약』에도 참여하는 등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을 소재로 머지않아 인류에게 닥칠
빛과 그림자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가
이 책의 원제인 ‘Beaker’s Dozen’은 ‘13’을 의미하는 ‘baker’s dozen’이라는 표현을 살짝 비튼 것이다. 원제는 단어 그대로 ‘실험실의 비커에서 나온 13편의 이야기’를 뜻한다. 실험실에서 비커를 통해 가열·냉각·교반 등의 조작을 해 화학 반응을 지켜보듯이, 낸시 크레스는 과학적인 통찰에 기반한 냉철한 사고가 돋보이는 13편의 작품들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놀랍고도 예측 불가능한 우리 삶의 변화를 섬뜩하지만 매혹적으로 펼쳐 보인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갈등, 이상과 목표에 대한 처절한 집념을 생명공학과 발레의 조합으로 아름답게 써 내려간 「허공에서 춤추다」는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바이오개량 시술을 받아 우월해진 기량으로 무대 위에 선 발레리나의 모습을 통해 맹목적이고 비인도적으로 실험되는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만약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스페인의 거지들」은 유전자 조작을 가한 ‘불면인’과 평범한 인간인 ‘수면인’의 대립을 통해 강자와 약자, 엘리트와 대중, 지배층와 피지배층의 계급 간 갈등을 그린다. 인간 복제를 둘러싼 윤리적 문제를 아이의 순수하고도 명료한 시선으로 바라본 「성교육」과 과학기술이 지닌 방법론적 한계를 다룬 「오차 범위」 등은 유전공학이 우리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밖에도 「올리트 감옥의 꽃」은 기억 조작 뇌 실험이 이루어지는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누구도 쉽게 침해할 수 없는 생명의 자기결정권과 그 존엄함을 다루고 있고, 「경계들」은 ‘J-24’라는 신경약제를 통해 절대적인 교감에 대한 갈망과 인간관계의 허망한 이면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깊고 섬세한 질감으로 그려내는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
낸시 크레스의 소설은 입체적인 인물과 지능적인 플롯을 즐기는 독자라면 누구나 만족할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것만큼이나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를 세밀하게 구축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데,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들도 인물의 감정과 행동, 인물들 간의 관계를 비중 있게 다룬다. 또한 그녀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인간관계는 네 가지 정도뿐이라면서,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 사이와 같은 친밀한 관계를 자주 다루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중편소설은 다른 소설들에 비해 등장인물의 수가 많지 않고 다루는 시간선도 짧은 편이다. 흥미 본위의 황당하고 무리한 설정보다는 현실감 있는 인물과 배경 설정을 통해 공감과 이해의 폭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낸시 크레스는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현실에 가까운 SF작가”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출간은 중편소설만 단독으로 출간하기 힘든 현실을 고려할 때 더욱 의미 깊다. 중편은 그 애매한 길이 때문에 작가 개인의 소설집이 출간되거나 장편으로 개작되지 않는 한 독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SF 작가의 중편을, 그것도 한 작가의 대표작만 모아 읽을 기회는 더욱 드물다. 중편에 능한 소설가로 평가받는 낸시 크레스 본인도 ‘장편소설보다 밀도가 높으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중편에 대한 애정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허공에서 춤추다』는 작가의 대표 중편이 다수 실려 있다는 점과 더불어 최고의 SF 작가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중요 작품들이 실려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한 단행본이다. 시공간이 확장되는 상상력을 통해 정교하게 재현된 미지의 세계와 깊고도 섬세한 질감으로 그려내는 인간 존재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울림과 경이감을 선사해줄 것이다.
이 소설들의 가정이 모두 현실이 되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단 하나도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소설들이, 최소한 빛이 아니라 생각의 속도로
우리에게 달려들고 있는 세상에게 의문을 제기하기를 바란다.
_<작가 서문> 중에서
■ 언론 리뷰
★★★★★ SF의 가장 주요한 미학적 논점은 ‘과학’과 ‘소설’이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가 하는 것이다. 낸시 크레스의 작품에서는 조야한 과학 지식의 과잉이나 형식적이고 단선적인 인물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작품에는, 때로는 철저하고 상세하며 때로는 과감하게 외삽한 과학적 지식은 물론, 생생한 인물들(혹은 다른 지적 생명체들) 간의 현실감 넘치는 심리적 갈등이 담겨 있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 낸시 크레스는 현대 과학소설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_《아날로그》
★★★★★ 낸시 크레스는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머지않아 인류에게 닥칠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보여준다. _《아마릴로 뉴스 글로브》
★★★★★ 낸시 크레스의 소설은 미묘하고 다층적이며 뇌리에 박힐 만큼 인상적이다. 이 책에는 낸시 크레스 소설의 정수가 담겨 있다. _코니 윌리스(SF 작가)
★★★★★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낸시 크레스가 인간의 심연을 파고드는 탐색가이자 SF소설과 판타지의 서사적 진실을 탐구하는 탐문가이고, 대단히 전복적인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 _존 클루트,(《인터존》, SF 작가 ·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