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다섯 번째 책 출간!
이 책에 대하여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소설선, 이기호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43장』이 출간되었다. 2017년 8월호 『현대문학』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 소설은 사고로 자식을 두 번씩이나 잃은 우리 시대의 ‘욥’, 최근직 장로의 고통스러운 삶을 회개와 간증의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고단한 인간의 삶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장 뒤에 숨겨 낱낱이 파헤친 이기호는 이번 소설에서도 종교 이면에 가려진 한 인간의 극복할 수 없는 삶을 향한 욕망, 그 원천적인 비극성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문장으로 비루한 삶의 민낯을 바라보다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43장』은 총 열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은 모두 다른 열두 명의 서술자가 등장하여 방화 사건의 원인에 대해 추리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흡사 한 명 한 명 조사실로 불려와 ‘자백’을 받아 내는 듯한 과정을 통해 화재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만, 이 소설의 미스터리는 방화를 누가 일으켰는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 새 삶을 살게 되었다 간증하는 최근직 장로가 과연 하나님을 만난 것인지? 신실한 목사였던 최요한은 정말 신심 다해 목회를 수행했는지? 마지막 순간 목사에게 훈계를 들은 그 아이는 과연 누구인지? 작가는 소설 곳곳에 이면의 미스터리를 숨겨놓고 하나하나 답을 풀어나간다.
어느 한 군데 꼬이거나 막힘이 없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기호의 이번 소설은 그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며 갑작스런 그 진실 앞에 독자를 서게 한다. 절대신에 대한 믿음을 뒤로하고 스스로가 살기 위해 하나님 뒤로 숨어버린 최근직 장로와 최요한 목사의 모습을 통해 과연 인간의 욕망의 그 실체는 무엇인지, 끝이 향한 곳은 어디인지 자문하게 한다.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고, 이제는 욥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왜 「욥기」인가? 이 소설의 부제는 ‘욥기 43장’이다. 전체 42장으로 이루어진 성경 「욥기」의 번외로 쓰인 이번 소설은 이기호의 특별한 독후讀後이기도 하다. 처음 「욥기」를 읽었을 때 작가는 자식을 잃고도 아멘으로 화답하는 욥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나 그 스스로가 아버지가 된 이후, 서서히 다른 방식으로 욥을 이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전작의 소설 「작가의 말」에서, 등단 초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작정하고 썼으나 점점 타인에게 눈을 돌렸고, 이제는 고통받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는 작가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논리적으로 관습화된 서사적 플롯으로 고통받는 인물로 욥을 이해하지 않고 다른 눈으로 욥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자식을 두 번이나 잃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하나님의 뒤로 숨어버린 현실의 욥, 최근직 장로는 과연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종이었는지, 배반한 종이었는지…… 가족보다 신이 먼저인 아버지에게 늘 결핍을 느낀 최요한 목사는 진정한 신의 종이었는지, 지극히 인간적인 종이었는지…… 고통 앞에 좌절하는 인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설이다.
인성人性 드러내는 하나님까지 증언대로 소환하는 이기호 식의 유머와 그 의도
이기호는 이 소설의 열두 명의 증언자 중 하나로 하나님을 세우고, 신성神性이 아닌 하나님의 인성人性을 드러내며 절대 신의 존재를 희화화한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묻는 질의자에게 신은 “모른다! 나도 모른다!”라는 뜻밖의 대답을 하고, “나는 답변하는 이가 아니라 질문하는 이”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또 우리가 흔히 아는 성경 속 욥과는 전혀 다른 최근직 장로의 전말을 전하며 “너 혹시…… 너도 혹시 누군가의 아버지이더나?”는 의미심장한 말로 본인의 자백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상상한 신의 모습이 아닌 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기대한 욥이 아닌 욥의 모습으로 최근직을 그려낸다.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이기호의 이번 소설 역시 매우 유쾌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넘어가는 책장 사이에서 어느 순간 일격을 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작가 스스로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를 두고 소설가 정용준은 “독자들은 해프닝처럼 지뢰처럼 숨은 작가의 의도를 밟은 뒤 멈춰 서게 된다. 한참 웃다가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골똘히 문장을 곱씹어야 한다. (……) 그곳이 이기호의 자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참척의 고통 속에서도 그 신앙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욕망 앞에 무너진 최근직의 삶과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결국 목사로의 삶을 포기하려 한 최요한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결코 다르지 않으며 그러기에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이기호의 집필 의도를 독자들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줄거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 목양면의 한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그로 인해 담임목사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지만, 화재 발생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이 교회는 최근직 장로에 의해 세워진 교회이고 최근직 장로의 아들 최요한이 담임 목사이다. 최근직 장로는 젊은 시절 사고로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극도의 절망 속에 스스로 생명을 놓을 결심을 했으나 하나님을 만난 이후 제2의 삶을 사는 인물이다. 새로 꾸린 가정에서 아들을 낳고 그를 목사로 키워내며 절대 신과의 완벽한 교감을 이루어냈다 인정받던 그였으나, 사실 그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숨겨진 사정들이 있었다. 화재 원인을 추리하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목양면 방화 사건의 숨겨진 전말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표4
이기호는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욥기 43장』을 세 가지 문장으로 쓰고 있다.
하나는 목양교회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조사하는 법의 문장이다. 그다음은 자식을 두 번씩이나 사고로 소실燒失한 우리 시대의 ‘욥’, 최근직 장로의 고통스러운 삶을 회개와 간증의 방식으로 그리는 종교의 문장이다. 마지막은 신들린 성우처럼 법과 종교의 각기 다른 목소리를 마구 오가며 이야기를 더빙하는 소설의 문장이다. 하나님마저 취조실로 끌고 오는 발칙한 상상을 통해 최근직 장로가 30여 년 전에, 그래서 과거의 욥이, 조우한 거룩한 신의 모습은 인간적인 방식으로 부정되고, 해체된다.
종교는 영혼의 문장을 통해 오랫동안 초월적 진리를 설파하였다. 법은 국가(공동체)의 문장을 통해 개별적인 인간들을 조율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소설가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인간의 문장을 통해 종교의 방식으로도, 법의 판결로도 기술할 수 없는 비루한 삶의 민낯을 바라볼 만한 것으로 그려낸다. 이기호의 소설을 의미 있게 만드는 힘은 그가 사용하는 인간의 문장에 있다.
―서희원(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중에서
꽤 오래전부터 「욥기」의 후속편을 쓰고 싶었어요.
젊었을 땐, 아무 죄 없이 죽어간 욥 자녀들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 쓰고 싶었죠.
제가 읽은 구약 속 욥은, 자신의 자식들이 고통 속에서 죽은 뒤에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는, 이상한 아버지였어요. 하지만 정작 자신의 발바닥에 악창이 나자 그때야 비로소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인물이었죠. 저는 이 아버지가 도통 이해되지 않았어요. 뭐, 이런 아버지가 다 있나? (……)
나이가 들어 아버지가 된 후에도 여러 번 「욥기」를 읽었는데, 그때도 욥이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어쩜 이리 쉽게 굴복할까? 그리 기세 좋게 하나님과 맞짱 뜨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하나님을 실제로 한 번 보고 나더니, 바로 회개, 용서받고 축복받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죠. (……)
계속 그런 마음뿐이었다면, 아마도 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죠. 지금은 좀 생각이 많아졌어요. (……) 어쨌든 욥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이니까요. 그 마음을 안다고, 이해한다고,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순 없는 거죠. 욥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본문 중에서
아, 진짜 제가 불을 낸 게 아니라니깐요! 씨발, 진짜 환장하겠네, 환장하겠어…….
(……) 글쎄 저는 거기 뒤에서 담배만 피웠다니깐요. 제가 담배를 다 피우기도 전에 거기 건물 지하 환풍기에서 연기가 몽개몽개 올라오는 것을 분명히 봤다구요. 그래서 제가 만진이하고 창수한테 ‘야, 여기 밑에서 누가 담배 피우냐?’ 묻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만진이가 ‘이 무식한 새끼야, 여기 지하가 교회인 거 모르냐? 교회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냐? 저게 이 새끼야, 하나님이야, 하나님. 연기로 변한 하나님’ 이래서 서로 낄낄거린 기억이 분명 난다구요. ‘븅신 새끼야, 하나님이 무슨 전기밥솥이냐, 취사 버튼만 누르면 올라오게?’ 그런 말도 했고요…… 그러다가 ‘어어, 이상하다? 하나님이 어째 좀 과하게 올라오신다?’ 창수가 그런 말을 했는데…… 그제야 큰불이 난 걸 알게 된 거라구요.
-pp. 9-10
화재 당시엔 최요한 목사 혼자 지하 1층 교육관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5시 20분경 최요한 목사의 아버지인 최근직 장로가 잠시 교육관에 들렀다가 나간 것이 확인되었고요, 이분이 나가고 교회 전도사인 고수종 씨가 15시 37분경까지 교육관 사무실에서 수요예배 준비를 하다가 자신의 숙소인 4층 원룸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16시 14분경 지하 교육관에 자신의 휴대전화 충전기를 가지러 내려왔는데, 그때까지도 교육관에는 최요한 목사 혼자 남아 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p. 29
안해와 자석들을 우리 장로님이 마흔일곱 살 때…… 한날한시에 모두 잃어뿔고 말았어라…… 그해 대학생이 된 첫째랑 그 동무들일랑 온 가족이 다 함께 기차로 경기도 워디에 있는 먼 고아원에 봉사 간다고 나선 길에 그만…… 사고를 당해버렸지라…… (……) 장로님도 온몸에 큰 화상을 입어 벵원에 의식 읎이 누워 있었고라…… 우리 장로님이 멫 날 메칠 만에 눈을 떠봉게 모든 게 바람처럼 훅 사라져버리고 저 혼자 시상에 남겨져버린, 그런 처지가 되어부렸다는 거 아니오…….
-p.39
그리 하나님을 직접 영접하고 우리 장로님이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회개하지 않았것소. 그기 다 깊디깊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예정되심을…… 잠시나마 독헌 생각으로 괌을 지르고 자기 목심까정 파토 내려 했던 맴을 고쳐먹고 주변이 푸르스름하게 벤할 때까정 기도를 했다는 거 아니어라…… 으심을 앞세웠던 이 죄인을 용서해주시어라. 주님을 향헌 원망을 거두고 다시 주님께 무릎을 꿇겠나이다…… 우리 장로님이 그렇게 기도하고 그 새복 산길을 홀로 뚜벅뚜벅 걸어서 다시 내려왔다는 거 아니어라…… 제대로 기어가지도 못했던 다리가 어느새 말짱해져 뚜벅뚜벅 걷더라, 이 말 아니어라…….
-p. 43
목사님하고요? 아니요,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요…… 목사님하고 우리 장로님 사이는 그렇게 언성을 높이고,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뭐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네,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럼요. 목사님이 장로님께 순종하죠. 그만큼 장로님이 잘해주기도 하시고요.
-p. 48
글쎄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지금 교회 건물을 다 지었을 때가 막 최요한 목사님이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무렵이었으니까요. 목사님에게 교회를 세워주고 싶은 마음도 있으셨겠죠. 그런데, 그게 뭐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어차피 다 하나님 사업을 하는 거고, 교회를 지어서 무슨 이윤을 얻으려고 하셨던 것도 아니고…… 우리 장로님이 올해 여든여섯이신데, 이 건물 말고도 재산이 많으세요. 원래 저쪽 농공 단지 쪽 밭도 다 장로님 거였거든요. 그쪽에서 보상도 많이 받으시고 해서…….
-pp. 52~53
목사님이 화재 현장에서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금식 탓이 클 거예요. 장로님 말씀대로 목사님은 그날부터 계속 금식하면서 기도했으니까요. 밤늦게까지 교회에 머무르는 날도 많았고…… 주일예배 설교할 때도 보니까 얼굴이 거무튀튀하고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좀 조마조마했거든요. 저러다가 쓰러지고 말지, 저러다가 큰 병 나고 말지…… 제가 그만두시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 화재가 나버린 거예요…….
-pp. 60~61
다 수작인 거죠, 수작. 딱 보면 몰라요? 나 아프다, 나 안쓰러운 놈이다, 나 인생이 괴롭고 불쌍한 사람이다, 계속 자기 좀 봐달라고, 자기 좀 어떻게 해달라고 졸라대는 거죠. 아니, 씨발. 목사가 아프고 인생이 괴로우면 하나님한테 부탁을 해야지, 왜 그러지 않아도 삶이 팍팍한 우리 언니한테 신앙 간증을 하냐구요? 씨발, 뭐 우리 언니가 정신과 의사야? 뭐 뭐, 성모 마리아야? 하여간…… 한국 남자들은 그게 기본 코스라구요. 목사나 아이스크림집 사장이나, 모델하우스 실장이나, 덮치기 직전에 하는 예비 수작들.
-pp. 71-72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최 목사가 답답하긴 답답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런 오해도 받고 그러지…… 장로님도 장로님이지만, 그 부인은 또 얼마나 깐깐한 서울내기인데…… 그럼, 결혼해서 저기 면사무소 뒤에 장로님 댁 있잖아, 거기 2층에서 살아. 장로님이 1층, 최 목사네 부부가 2층. 결혼한 지 벌써 7, 8년은 넘었는데 아직 아이는 없어…… 최 목사랑 같은 대학교 무슨 교육과를 나왔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자가 아주 똑똑하긴 똑똑해. 성경도 구절구절 모르는 게 없고, 기도도 잘하고…… 밖으로 나다니지 않고 얌전히 집에만 있는 것 같지만, 또 그건 아니라고 하더라구. 이번에 불난 저 건물도 며느리가 세금이다 뭐다 다 알아보고 교회 앞으로 명의를 돌렸다나봐…… 원룸 보증금이니 월세도 다 며느리 통장으로 들어가고…… 최 목사는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 뭐.
-p. 85
최 목사님은 자꾸 그런 생각을 하셨나 봐요. 목양교회의 담임목사는 누구인가? 나인가, 아버님인가? 신도들은 과연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일까, 아니면 아버님의 도움을 받으러 오는 것일까? 네…… 저도 그럴 수 있다고 봐요. 담임목사는 분명 최 목사님이었지만, 온전히 최 목사님의 교회가 아닌 건 맞죠. 그걸 예상하고 내려온 것도 맞고요. 하지만 짐작이나 예상보다 최 목사님에겐 그게 더 힘들게 다가왔나 봐요. 교회 중직들도 언제나 시아버님께 먼저 의견을 구했고, 교회 작은 재정 하나 최 목사님 뜻대로 집행할 수 없었으니까요. 최 목사님은 분명 담임목사였지만, 그분들께는 그저 아버님께 내려준 하나님의 은총,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거였죠…… 그래도 최 목사님이 묵묵히 그런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참아냈는데…… 어머님이 소천하신 뒤부턴 이젠 다른 회의까지 더해진 거였죠. 자기는 최요한인가, 아니면 최성한 대신인가……? 거기까지 의심이 되고…….
-pp. 103-104
이건 진짜 제 오래된 감으로 말씀드리는 건데…… 우리 최 목사는 와이프한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만 뜨고 싶은 생각을 했나 봐요. 아무래도 와이프가 알면 반대할 게 뻔하고…… 또 모르죠, 저도 모르게 다른 여자가 있었는지도…… 어쨌든, 그래서 제가, 제 비즈니스도 너무 바쁜데, 우리 최 목사를 위해서 친절하게 다 가르쳐주었다는 거 아닙니까? 와이프나 아버님 몰래 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p. 120
최근직이 김진목 전도사를 찾아가 회개할 때,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만났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그것이 내가 시킨 일 같더냐? 내가 만난 적 없는 자에게, 나를 만났다고 거짓말을 시킨 것 같더냐? 그건 나도, 최근직도,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말이었느니라. 최근직의 수치심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거짓말이었느니라. 그렇게라도 최근직은 고통을, 모욕을 잊으려 했던 것이니라. 그것을 내가 만든 것 같더냐? 내가 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느니라.
-p. 158
싸우는 소리요? 네, 저도 들었죠. 그럼요, 제가 교회 교육관에서 제일 늦게 나왔는데…… 에이, 아니에요…… 그게 정확하게 말하면 어른끼리 싸우는 게 아니었구요, 목사님이 어떤 아이한테 하는 말이었어요. 너 또 그러면 네 엄마한테 다 말한다, 뭐 그런 말요. 네, 그랬다니까요. 아이 참, 그런데 그 꼬마가 아주 당돌하더라구요. 목사님이 계속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씨발, 목사님이 뭔데요, 목사님이 뭐 우리 아빠야, 우리 아빠냐고, 하면서 소리치는데……. 거 참, 아주 크게 될 아이 같더라구요. 네, 그랬다니깐요.
-p. 164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월간 <핀 소설>, 그 다섯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매월 내놓는 월간 핀이기도 하다. 매월 25일 발간할 예정이 후속 편들은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001부터 006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 출생하고,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사이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진다.
007부터 012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출생하고, 2000년대 중후반 등단한, 현재 한국 소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발간되었거나 발간 예정되어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001 편혜영 『죽은 자로 하여금』(4월 25일 발간)
002 박형서 『당신의 노후』(5월 25일 발간)
003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6월 25일 발간)
004 윤성희 『첫 문장』(7월 25일 발간)
005 이기호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8월 25일 발간)
006 정이현(9월 25일 발간 예정)
007 정용준(10월 25일 발간 예정)
008 김금희(11월 25일 발간 예정)
009 김성중(12월 25일 발간 예정)
010 손보미(2019년 1월 25일 발간 예정)
011 백수린(2019년 2월 25일 발간 예정)
012 최은미(2019년 3월 25일 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