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작 하마나카 아키의 『로스트 케어』가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신인상 예선부터 압도적인 평가를 받은 『로스트 케어』는 아야쓰지 유키토, 곤도 후미에, 곤노 빈, 후지타 요시나가 심사 위원 전원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매기며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뽑으면서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신예 하마나카 아키는 이어 발표한 『침묵의 절규』 역시 평단과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현재, 향후 추리소설계를 이끌 차세대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일명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로스트 케어』에 대해 곤도 후미에는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를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회의 어둠을 파헤쳐 인간을 깊이 있게 그려내는 걸작”이라고 평한다. 이 작품이 다루는 ‘사회의 어둠’은 총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령 인구가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에 이르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노인 개호介護’ 문제이다. ‘개호’는 일상생활에서 환자 혼자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는 행위를 뜻한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효孝를 중시하는 아시아 문화권의 정서상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전통처럼 여겨졌던 이 일은 고령화 장수 시대, 핵가족화, 저출산, 빈부 격차의 심화 등 가속화되는 현대사회의 문제들과 맞물려 새로운 사회적 병폐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마나카 아키는 20대 후반까지 실감이 없던 ‘개호’라는 것에 “어느 날 갑자기 나 자신이 당사자가 되었다”고 한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일을 직접 경험한 이후 그는 이 주제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오락성 높은 미스터리 소설로서 『로스트 케어』를 써냈다.
‘개호 대상 노인 연쇄살인’이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는 『로스트 케어』는 분명 픽션이지만 지금 누군가가 겪고 있는 이야기이자 통계와 사례로 증명된 현실의 모습이다.
◇ “사람이 죽지 않는다니,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초고령화 사회에 경종을 울린 ‘개호 노인 살인’의 전모가 밝혀진다
요코는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다른 피해자 유족들의 모습을 살폈다.
다들 하나같이 뭔가를 참는 듯이 굳은 표정이라 속마음을 읽어낼 수 없다.
재판장이 계속해서 판결 이유를 읽는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말들은 의미를 잃은 기호 같았다.
요코는 다른 피해자 유족들을 붙들고 진심을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어때요? <그>가 당신들을 구원해주었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_ 본문 15쪽
2011년 12월 2일, <그>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그>는 무려 43명을 살해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개호’가 필요한 노인이었다. 의문의 살인자 <그>에 대한 재판 장면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피해자 유족과 검사, 개호 회사 종사자 등 알게 모르게 서로 접점을 가지고 있던 사건 관계자 각자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노인 연쇄살인 사건의 전모를 드러낸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의 하나는 2007년 10월, 일본 최대 개호 기업인 콤슨사가 비리 적발로 48년 만에 문을 닫은 ‘콤슨 사태’다. 정부가 법을 개정할수록 기업에 지급되는 보수가 깎이고 종사자들은 현장을 떠나는 등 악화 일로를 걷던 회사는 결국 적자로 돌아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으나, 노인을 돌보는 일로 돈을 번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여론은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개호 업계에 뭇매를 때렸다. 당시 가족 개호를 경험하고 있어 누구보다 이 상황에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작가는 소설에서 사태의 주요 원인을 한 회사의 비리 문제로만 집중해 보도했던 현실보다 나아가 그 내막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2000년 일본 개호보험제도 실시, 2006년 개호보험법 개정, 2007년 콤슨 사태와 주에쓰 앞바다 지진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실제 현실에서 일어났던 사건 사고들에 영향을 받아 위기를 맞는 모습을 보이면서 현실감 넘치게 묘사된다.
◇ 누군가의 현실이자 모두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윤리가 무너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_『마태오의 복음서』 제7장 12절
예수가 갈리아 산 호숫가 위에서 전한 말씀으로 알려진 기독교의 윤리관인 황금률은 이 소설에서 광기와 구원이라는 저울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사람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을 지론으로 삼았던 한 등장인물은 <그>의 존재를 감지하면서 성선설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이코패스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나,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사회의 그늘을 목도하고 <그>의 살인을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과 접하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작가는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인물이 <그>의 행위 앞에서 자신이 믿던 황금률의 태도, 성선설과 성악설, 기독교적 원죄의 개념이 흔들리며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 속에 인간의 선악과 존엄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담아낸다.
만약 “오래 살았다는 것만으로 존엄이 훼손되는 상태가 된다면”(본문 340쪽)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내야 할 것인가.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우리 시대에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는 『로스트 케어』는 이제 더 이상 어느 누군가의 일만이 아닌 모두의 현실이 될 미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 지은이 하마나카 아키葉?中 ?
1976년 도쿄 출생. 도쿄학예대학 교육학부를 중퇴했다.
2009년에 어린이를 위한 소설 『라이벌』로 심사 위원들로부터 “정교한 스토리 전개가 신인을 넘어섰다”라는 평과 함께 제1회 가도카와 학예 아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 시기에 다른 필명으로 블로거 활동을 시작하며 유명세를 탄 그는 2011년부터 《주간 소년 선데이》에 연재한 만화 『개 동아리! 우리들의 꼬리 전기?記』를 비롯해 각종 만화 시나리오와 학습지 기사의 필자로도 참여했다.
2013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초고령 사회의 노인 개호 문제를 다룬 『로스트 케어』로 제16회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향후 추리소설계를 이끌 차세대 대형 신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신인상 수상 이후 펴낸 첫 작품인 『침묵의 절규』에서 고독사한 한 여인의 삶을 추적하는 독특한 서사를 선보이며 제36회 요시카와에이지 신인상과 제68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같은 해 발표한 단편소설 「카레의 여신님」은 일본 추리작가협회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단편들을 엄선하여 발행하는 선집 『더 베스트 미스터리 2015』에 수록되었다.
일명 ‘로스트 제너레이션’ 세대로서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는 시기를 겪은 그는 자신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파고드는 주제를 오락성 높은 미스터리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새로운 장르적 시도로서 《소설 겐다이》지에 신작 공포소설 「블랙 도그」를 연재하며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
■ 옮긴이 권일영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일보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소설 번역은 1984년 무라타 기요코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남비 속』으로 시작했다. 옮긴 책으로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저택섬』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아야쓰지 유키토의 『암흑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기리노 나쓰오의 『다크』 『인』, 하라 료의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 존 딕슨 카의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을 비롯해 오리하라 이치, 와다 료, 미야베 미유키 같은 여러 작가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 줄거리
경제 거품이 꺼진 도시 X현의 야가 시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노인들이 살해당한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그들의 죽음은 모두 자연사로 판정된다…….
2006년 11월 4일, 검사 오토모 히데키는 친구 사쿠마의 소개로 개호가 필요한 아버지를 억대의 고급 유료 실버타운인 <포레스트 가든>에 모신다. 개호 업계 1위인 포레스트사의 영업부장 사쿠마는 오토모에게 ‘개호 비즈니스’의 밝은 전망과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이듬해 여름 포레스트는 부정행위가 감사에 걸리면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하고, 수많은 개호 난민이 발생할 위기가 닥쳐온다. 포레스트 사태가 악화되는 사이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를 벌이던 사쿠마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오토모가 근무하는 X현의 고객 데이터를 팔아넘긴다. 한편 오토모가 백발 남자와 스쳐 간 날, 포레스트 계열 야가 케어센터 직원 시바 무네노리는 개호 사무소에서 어떤 ‘변화’를 알아채는데…… 그날도 또 한 명의 개호 노인이 죽음을 맞이한다.
■ 일본 미스터리문학대상 심사 위원의 평
“하마나카 아키의 『로스트 케어』는, 과장 없이 ‘걸작’이다. 심사에서 전원의 의견이 순조롭게 일치하여 이 작품에 대한 시상이 정해졌다. 매우 현대적이고 보편성을 지닌 큰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당당한 사회파 작품이다. 동시에 대담하고 세심한 계산에 의해 만들어 올린 아주 기교적인 미스터리기도 하다. 전편을 읽은 후, 다시 프롤로그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_아야쓰지 유키토
“서두에서 대략적인 구조는 보였다고 생각해 조금 차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보기 좋게 배신했다. 미스터리 구성의 능숙함, 사건 해결의 방식, 그리고 ‘개호’라는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공정함에 감탄했다.” _곤도 후미에
“나무랄 데 없는 걸작. 멋진 구성에 완전히 속았다.” _곤노 빈
“등장인물의 의견과 삶을 잘 대비하면서 주제를 탐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과 마주하는 자세일 것이다. 이런 작품을 만나서 무척 만족한다.” _후지타 요시나가
■ 책 속으로
안으로 들어간 <그>는 부엌을 지나 시즈에가 있을 침실로 향했다. 천천히 침실 미닫이를 열었다. 잠이 들었을 줄 알았는데 침대에 누운 시즈에는 눈을 뜨고 있었다. 인지증 때문에 밤낮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자세히 보니 시즈에는 벨트로 침대에 묶여 있었다. <그>의 파우치에는 손발을 묶기 위한 수건도 있지만 오늘은 그걸 사용할 필요는 없겠다.
시즈에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여보?”
시즈에가 <그>에게 말했다.
세상을 떠난 남편과 닮았나? 어쩌면 <그>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백발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그분은 벌써 돌아가셨죠.”
<그>가 천천히 말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시즈에의 안색이 바뀌었다.
남편이 벌써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누군지 혼란스러운 걸까?
“누구죠?”
시즈에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_본문 65쪽
시바가 보기에 감정노동에 맞는 사람이 있고 전혀 아닌 사람이 있다.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은 반드시 유키처럼 성실한 사람들이다.
개호 현장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한 교류나 감동적인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폭언과 폭력, 성희롱 같은 불상사도 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 개호 대상 노인은 틀림없이 약자다. 지켜줘야 할, 배려해야 할, 친절하게 대해야 할 약자.
_본문 122쪽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때리는 소리와 용서를 비는 시어머니의 목소리.
잠시 후, 며느리가 흐느끼는 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흑흑…… 왜. 어째서…….>
울면서 때리는 건가.
가족 개호에서 학대는 늘 있기 마련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다. 하지만 몸이 자유롭지 못한 가족을 재미로 때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실이 사람을 조종하는 것이다.
이 며느리도 분명 그러하리라. ‘어째서’라고 묻는 대상은 가즈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다.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며느리는 매일 시어머니를 돌보러 다니는 생활이 한계에 이르렀을 것이다.
<미안하구나. 내가 이런 꼴이 되어서. 아예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며느리의 목소리에 비해 가즈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_본문 153쪽
“[……] 그렇지만 일주일 뒤의 날씨를 예측하기는 상당히 어렵죠. 1년 뒤가 되면 거의 점을 치는 거나 매한가지일 겁니다.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고. 이건 날씨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주가나 경마, 프로야구 우승팀도 그렇듯이 미래에 관해서는 대개의 경우 어떤 고등수학을 쓰더라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거든요. 그야말로 도박의 대상이 될 정도죠. 다만 예외적으로 꽤 먼 미래까지 안정된 예측을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숫자에 강한 시나 사무관은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인구예요. 인구 추계라는 것은 10년, 20년 정도는 대략 어긋나는 일이 거의 없죠. 지금 고령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은 20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겁니다.”
_본문 163~164쪽
분명히 포레스트는 부정을 저질렀고, 회장은 청렴결백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하지만 조금만 조사해보면 개호 업계 전체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걸 무시하고 한 기업과 개인을 목매달아 그 모습을 전파에 실어 전국에 내보내고 있다.
미쳤다.
돈을 벌다니, 언어도단이라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어?
저 사람들이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저러고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돈을 받지 않고 사심 없이 다른 사람의 밑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무서울 정도의 상상력 부족.
시바는 포레스트에서 일하는 동안 지겨울 정도로 보아온 개호에 쫓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_본문 171~172쪽
“역시 고급 실버타운이라 안심이 되겠군요. 우리야 복권이라도 당첨되기 전에는 어머니를 그런 곳에 모실 수 있으려나?”
형사는 자조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안심……?
오토모는 생각했다. 분명히 포레스트 가든은 마음 놓을 수 있는 안전지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주하려면 억 단위의 돈이 든다.
형사 말대로 일반인은 복권이 당첨되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아버지를 그곳에 모시기는 했지만 나중에 오토모 자신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_본문 1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