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현대문학상 수상작은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정이현의 작품으로 그의 작품과 수상작가의 자선작을 수록하고 있다. 수상작인 <삼풍백화점>은 백화점 붕괴 당시의 시간을 주변 환경과 그 시절만의 독특한 문화현상을 통해 사실적으로 압축해나간다. 오백여 명이라는 숫자로 집단화된 죽음 중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한 아가씨의 죽음을 통해, 비록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 간 그녀라 하더라도 그녀의 생애는 아무하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와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치밀하고도 깊은 시선으로 그려낸다. 또한 수상작 외에도 예심과 본심에 올랐던 작품들과 역대 수상작가 윤후명, 김인숙, 조경란의 작품 등을 함께 수록했다.
수상작 정이현 | 삼풍백화점 수상작가 자선작 정이현 | 어두워지기 전에 수상후보작 김경욱 |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 박민규 | 비치보이스 이응준 | 약혼 정지아 | 풍경 한창훈 | 나는 여기가 좋다 역대 수상작가 최근작 윤후명 | 태평양의 끝 김인숙 | 어느 찬란한 오후 조경란 | 달걀 심사평 [예심] 서영채·박혜경·김형중 2000년대 문학을 기대하다 [본심] 김윤식 | 서초역 사거리의 향나무 - 글쓰기의 기원에 부쳐 박완서 |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시선 김화영 | 경쾌함 뒤의 긴 여운 수상소감 정이현 | 항로에 없는 길을, 혼자서, 지독하게…
정이현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을,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과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산문집 <풍선>, <작별>이 있다.
■ 심사평 중에서 작가 정이현 씨의 글쓰기의 기원이랄까 기억들의 단층을 보여줌에 있어 삼풍백화점은 썩 투명하다. 여학교 동창생 R의 부탁으로 삼풍백화점 일일점원으로 나갔을 때, 그 단층이 선명하여 인상적이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자 생각보다 무거웠으나, 일을 끝내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자 이번엔 평상복이 오히려 무겁지 않겠는가. 기억 속의 이런 단층의식이 글쓰기의 기원이 아니었을까. 백화점 삼풍의 그 위풍당당함과 그것이 한순간 무너져 감쪽같이 사라짐에 그 기억의 단층이 선명하다. 허구와 현실이 한순간 엇갈리는 그 장면이란 일종의 공백이자 죽음과 같은 순간이다. 글쓰기로서의 소설은 이 단층이 만들어내는 공백의 체험에서 비로소 탄생한다. 그 단층의 순간이 얼마나 순진한가를 아울러 보여주는 것도 이 작품이 지닌 미덕이다.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은 벌써 우리의 기억에 가물가물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우리의 고도성장의 상징 같은 부정과 날림의 성이 단 일 초 동안에 무너져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오백여 명은 대부분 구조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어떤 대형사고든지 기적적인 구사일생이나 특별히 억울한 죽음 아니면 유명인사가 당한 불행에 관심이 집중되다가 잊혀진다. 인명에 대한 기억력은 날림공사에 대한 분노나 비웃음보다도 오히려 그 지속시간이 짧다. 10년이면 잊혀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작가는 10년 전 그날까지의 시간을 주변 환경과 그 시절만의 독특한 문화현상을 통해 사실적으로 압축해들어가면서, 오백여 명이라는 수자로 집단화된 죽음 중에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 한 아가씨의 죽음을, 비록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 갔을지라도 그녀의 생애는 아무하고도 바꿔치기하거나 헷갈릴 수 없는 아름답고 고유한 단 하나의 세계였다는 걸 치밀하고도 융숭 깊은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박완서(소설가)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은 결격사유가 전혀 없는 문장들이 찰고무 공처럼 통통 튄다. 가독성과 개성에 있어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가 특유의 통통 튀는 문장은 바로 그 경쾌함 때문에 위태롭게 느껴지는 때가 없지 않았었다. 「삼풍백화점」의 경우, 경쾌함은 그 뒤에 숨어 있는 억제된 쓸쓸함으로 인하여 문득 긴 여운으로 변한다. 흘러간 십 년의 세월, 있었던 것은 없어지고 없었던 것이 새로 생기는 그 세월을 사회학적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이 모든 말들의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는 침묵의 공간이다. 그 비어 있는 곳에 던져놓은 작고 “불완전한” 은색 열쇠 하나가 의문부호처럼 빛난다. -김화영(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 수상소감 삼풍백화점은 이제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거대한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으니까요. ‘삼풍백화점'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 난 얼마 뒤, 그 건물 일층 회전초밥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색색의 띠를 두른 접시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접시마다 생선초밥이 두 점씩 놓여 있었습니다. 날것인 채 얇게 포 떠진, 다른 동물의 살점들. 그것을 어금니로 꼭꼭 씹어 목구멍 속으로 삼켰습니다. 초식동물이 아니라는 것에 스스로 환멸을 느끼는 순간이 이따금 찾아옵니다. 요즈음, 글을 쓰는 행위가 참 무서웠습니다. 언젠가 그곳에 살 때 “처녀귀신이 나올 텐데 이 동네에 어떻게 살아요?”라고 묻는 택시기사의 잔인한 상상력 앞에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와 비슷한 종류의 무력감이 숨통을 짓누르던 참이었습니다. 닿고자 하는 기슭이 어디인지라도 안다면 좀 쉬울 텐데. 낭만주의자이기보다 현실주의자인 저는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투덜대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