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은 충분히 경이로운 선善,
간신히 남겨진 단 하나의 가장 위대한 존엄
“어떠한 말로도 이 고통을 설명할 수가 없다”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김숨의
일본군‘위안부’ 소설, 그 두 번째 이야기!
▲ 이 책에 대하여
끝나지 않는 역사, 일본군‘위안부’의 아픔을 담아내는 작업
“아직 살아 계신 분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작가 김숨은 2016년 장편소설 『한 명』을 시작으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역사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몇 분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쓰게 된 소설 『한 명』에 이어 작가는 또 한 권의 일본군‘위안부’ 소녀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흐르는 편지』를 내놓는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최초 증언자 김학순 할머니(1924-1997)의 공개 증언 이후 지금까지 240여 명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가 처음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애를 문학의 장으로 이끌어낸 『한 명』(2016)을 출간했을 당시만 해도 40명의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셨지만, 2018년 7월 현재, 그 수는 27명으로 급감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전작前作이 그분들의 현재 삶을 가정하여 써 내려간 이야기라면, 『흐르는 편지』는 위안소에 살고 있는 일인칭 시점의 열다섯 살 ‘위안부’ 소녀를 등장시켜 그 시대 그 처참한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시간의 흐름으로만 따진다면 『흐르는 편지』가 먼저 쓰였어야 했지만, 작가는 그동안 취재한 증언과 자료들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고 위안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용기”가 생기기까지 2년여가 걸렸다고 고백한다.
절망을 희석해야 할 의무를 진 우리들의 이해와 공감의 여정
―설명할 수 없는 것, 전달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해 고통을 연대한다
전작인 『한 명』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 수백 개를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문학이라는 외피를 입혀냈다면, 『흐르는 편지』는 ‘지금 여기’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소녀의 자기 고백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의 내적 고통, 그 트라우마의 한복판으로 한 발짝 더 걸어 들어간다.
『흐르는 편지』의 주인공 소녀 ‘나’는 만주의 위안소에 살고 있는 열다섯 살의 일본군‘위안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이 절정에 달했던 1942년, 비단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중국까지 끌려오게 된 조선인 소녀 ‘나’의 이름은 ‘금자’이지만 위안소에서는 일본군 헌병이 붙여준 이름 ‘후유코’로 불린다. 날마다 일본 군인에게 몸을 빼앗기는 고통 속에서 이름까지 잊히게 된 ‘나’가 어느 날 자신의 몸에 생명이 깃들었음을 알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부터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어온 주인공의 절망적인 목소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저질러진 극단적이고 유례없는 성폭력”(작가 김숨)인 ‘위안부’ 문제의 참담함을 보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설명할 수 없는 것, 전달할 수 없는 것”(문학평론가 박수현)을 기어코 이야기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타인의 고통을, 절대로 이해 불가능한 이해를 진실로 이해하려는 끈질긴 시도가 이 책에 담긴 것이다.
전시戰時라는 극단적인 시공간 속에 몰려 있는 주인공 소녀는 자신이 품은 생명이 자라나는 동안에도 같은 조선인 위안부, 일본 군인들, 중국 마을의 민간인 등이 끊임없이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행렬에서 역설적으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삶의 의지임을 깨닫는다.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지 마……. 살아…….
제발 아무도 죽지 마…….
아가야, 죽지 마……. 내 아가, 내 아가…….
글을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소녀가 써 내려가는 절절한 편지글 속에서 생명의 존엄이라는 문제를 부상시켜 작가가 피력하고자 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향한 귀중한 문학적 바람과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문학이 역사를 기억하고 고통을 연대하는, 김숨의 또 한 편의 역작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 역시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밝힌다. 온전히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던 그분들의 증언을 수십 년 전부터 곁에서 도왔던 분들께도.
작가의 말을 쓰는 오늘도 한 분이 돌아가셔서 생존자는 이제 스물일곱 분이다.
아직 살아 계신 분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지난 2년 사이에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도.
10대 때 한 여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훼손당한 그분들의 생애를 생각하면 저절로 울컥해진다.
한 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그분들의 한결같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조심스럽게 이 소설을 내놓는다.
▲ 작품해설 중에서
우리는 무엇의 참가치를 상실의 목전에서야 발견한다. 그것을 박탈당하는 순간까지 아슬아슬하게 가보고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죽음이 널리고 널린 전시의 상황은 인간의 존엄을 박탈해 갔지만 생명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이것은 극한 상황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양면성이다. 그녀는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 간 폭격에서 은실과 군인들이 필사적으로 살기 원하는 모습을 목도했고, 죽은 에이코를 화장하면서 그녀의 고통을 상상적으로 느꼈다. 결국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289쪽)다는 마음으로 아기의 생존을 바라게 된다. 삶의 의지를 점화한 것은 단지 죽음에 대한 거부다. 즉 삶에서 거창한 의미를 발견해서가 아니라 단지 죽기 싫기에 살고 싶어진 것이다. (……) 삶은 삶이기에 삶의 이유와 당위를 제공한다. 형언 불가능하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지고의 미덕은 결국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위이며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박수현(문학평론가 ? 공주대 교수)
▲ 본문 중에서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p. 7)
나는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두 손을 배로 끌어당긴다. 생리가 없는데도 내 몸에 아기가 들어섰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606호 주사를 맞아 한두 달씩 생리가 끊기고는 했으니까. 달포에 한 번 군의관은 내 아래를 살핀다. 두 동강 난 탑의 반쪽처럼 생긴 나무 의자에 올라가 가랑이를 찢듯 벌리게 하고서. 대머리에 송곳처럼 찌르는 눈빛을 가진 군의관은 내 아래가 조금만 이상해도 팔뚝에 606호 주사를 놓는다. 피를 맑게 해준다는 그 주사는 오줌빛이 도는 주사약으로 팔뚝 안쪽에 놓는데 맞을 때 도끼로 찍는 것 같다. 처음 그 주사를 맞고 나는 너무 아파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맞은 주사이기도 하다. (p. 16)
낙원위안소에 온 첫날 악순 언니는 내게 물었다.
“너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지?”
조선말로 물었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자신에게 묻고 묻는다. 너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지?
정말,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조센삐가 되었을까. (p. 26)
살아서 돌아오라고 빌어달라는 군인들이 있다.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 애인, 누이들은 너무 멀리 있으니까. 전투를 앞두고 겁에 질린 군인을 보면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빌어준다. 죽지 말고 살아 돌아오라고. 내가 빌어줄 때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 애인, 누이들은 뭘 하고 있을까. 쌀을 씻고 있을까, 바느질을 하고 있을까. 나는 살아 돌아오라고 빌어주면서도, 살아서 돌아올까봐 겁이 난다. 살아서 돌아와 다시 나를 찾아올까봐.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들이 다시 나를 찾아오는 이유는 뻔했으니까. 살아 돌아온 군인들 대개는 반쯤 미치광이가 되어서 나를 짓뭉개고, 깨물고, 찔렀다. (p. 29)
우리는 이곳에 오게 된 까닭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려 애쓴다.
우리에게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인 오지상조차도.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할 줄 모르는 해금은 자신이 어수룩해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한다. 악순 언니는 부모 없는 고아 신세라서, 점순 언니는 자신의 팔자가 사나워서, 끝순은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요시에는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을숙 언니는 직업소개꾼에게 속아서. 애순 언니는 그냥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린다.
죄를 지어서 그 벌로, 혹은 사나운 팔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리는 게 나을까.
나는 이곳이 어딘지 잊어버리려고 애쓴다. 그런데 나는 이곳이 어딘지 모른다. (p. 52)
“내 이름은 금자…… 네 이름은?
여자애는 내게 이름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열다섯 살…… 너는?”
여자애는 나이도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비단 짜는 공장에 가는 줄 알고 왔는데 너는 어디 가는 줄 알고 왔니?”
여자애의 입이 살포시 다물리더니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p. 92)
나는 편지를 쓰다 말고 강물로 얼굴을 가져간다. 두 눈을 감고 얼굴을 강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내 얼굴을 강물에 떠내려 보내고 싶다.
두 귀가 강물에 잠기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한순간 나는 눈을 뜬다.
내 몸 안에 떠도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메아리처럼 떠도는 소리들이. ‘엄마, 엄마…… 엄마, 아무 데도 가지 마…… 살려줘……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집에…….’ (p. 134)
나는 군인이 내 몸 위에서 죽을까봐 겁이 난다.
“너도 불쌍하고, 나도 불쌍해…… 전쟁이 아니었으면 너도, 나도 고향을 떠나…… 이 먼 데까지 오지 않았겠지…… 너는 일본 군인…… 나는 조선 여자……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 하니까 나는 당신을 위로하지…….”
늙은 여자처럼 한탄하던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p. 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