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근원적 고독과 허무, 실존의 고통을 다루는 김채원의 여덟 번째 창작집.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발표한 열한 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김채원 문학의 총 결산이기도 하다. 그동안 김채원이 추구해온 존재의 '실체 없음'과 '모호함'이 결국 '삶'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삶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허무의 정점에서 보다 깊고 밀도 높은 시선으로 바라본 삶의 철학적인 주제들을 보여주는 것.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비사회적인 해결방식을 고집하며 그 고집을 지키려한다. 한밤의 거리에 혼자 남겨지는 '푸른 미로', 가장 평범한 생활에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자정 가까이', 표제작 '지붕 밑의 바이올린'은 중년 여성의 나이듦과 삶의 무정형성을 보여줌으로써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보여준다.
김채원 1946년 경기도 덕소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5년 「밤 인사」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창작집으로 『초록빛 모자』 『가득찬 조용함』 『봄의 환幻』 『장미빛 인생』 『달의 몰락』 『미친 사랑의 노래』, 『가을의 환』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 『형자와 그 옆사람』 『달의 강』등이 있다. 1989년 중편소설 「겨울의 환」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이 책은 삶의 근원적 고독과 허무, 그리고 실존의 고통을 퀼트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김채원의 여덟 번 째 창작집! 김채원의 여덟 번째 창작집 『지붕 밑의 바이올린』이 현대문학 창간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올해부터 새로 기획된 <현대문학 창작선> 두 번째 권으로 최일남의 『석류』 다음이다. 이번 소설집 『지붕 밑의 바이올린』은 가장 최근작인 연작소설 「지붕 밑의 바이올린」 표제작을 포함,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발표한 총 열한 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198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중편 「겨울의 환幻」을 필두로 네 편의 “환” 연작을 묶은 연작소설집과 1995년 출간된 『달의 몰락』을 제외한 10여 년의 김채원 문학을 총 결산, 그의 모든 문학세계를 보여준 소설집이다. 또한 그동안 김채원 문학이 끊임없이 추구해온 주제인 “실체 없음”과 “모호함”이 결국은 “삶”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작품집이다. “환” 연작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모호성과 불확실성, 허무의 정점에서 보다 깊고 밀도 높은 시선으로 삶의 철학적인 주제들을 한 단계 끌어올려 주고 있다. 『지붕 밑의 바이올린』은 중년 여성의 나이 듦과, 삶과 존재의 실체 없음, 모호한 근원적 고독과 허무, 불확실성, 무정형성 등을 김채원만의 시선과 풍부한 색감으로 회화적으로 그려내며 삶과 실존, 그리고 허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허무의 정점에서 김채원은 바깥으로부터 안쪽으로, 다시 삶의 앞뒤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중첩되고 모호한 여러 삶의 주제들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주제로 연결시킨다. 삶에는 크고 작은 주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조각조각 이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는 것이며, “모호하고 허무”로 가득 찬 것이 바로 “삶” 자체임을 김채원의 소설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들은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버스가 어디에 서는지 모르고, 지하철과 버스가 끊겨버린 한밤중에 집으로 가는 방법을 몰라 망연자실 서 있는가 하면, 옷을 사려다가 입고 간 옷까지 잃어버릴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비사회적인 해결방식을 고집하며, 그 고집을 지키기 위해 금전과 시간의 손해를 감수한다. 「푸른 미로」의 주인공을 보면 백화점 버스의 방향을 물어보기 싫어서 아무 차에나 올라타 낯선 아파트 단지를 헤매며 시간을 고스란히 까먹고, 오천여 원 남은 버스카드의 액면가에 못 미치는 거리만큼을 이동한 후, 한밤의 거리에 혼자 남겨진다. ?자정 가까이?는 가장 평범한 생활에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남편과 화자, 영오는 모두 세상살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인물들이다. 무기력한 자신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와 욕망, 그리고 삶의 두려움을 알아버린 이들은 현실 속에서 생활부적응자로 남게 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뿐이다. 「바다의 거울」은 무엇인가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득 차 있는, 여기가 아닌 어디, 이것이 아닌 저것이 있으리라는 막연한 생각, 막연한 대상을 찾아 평생을 끊임없이 방황하고 헤맨다. 「지붕 밑의 바이올린」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보여주고 있다. <꿈의 흐름>에서는 어느 날 우연히 베란다에 찾아든 비둘기 두 마리에게 멸치 대가리를 주고, 비스킷과 팝콘을 놓아주는 “나”의 이야기이다. <부르는 소리>는 남편과 사별 후 학원 강사일로 생활을 꾸려야 했던 정애는가 자신의 집안일을 돌봐주는 보배 엄마의 가족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는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문득 인생을 한바퀴 돈 이 지점에서 어릴 때 느끼던 저 태산준령이 아직 문 밖에 버티고 있음을 본다. 문 밖으로 나서지도 않은 걸까. 문 밖에 나서서 조금 올라가 보았을까. 아득해진다. 친구를 문학이라고 말해보아도 좋으리라. 저 태산준령만 넘으면 된다고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건만, 아니 저 태산준령을 오르는 일이야 할 수 있으니 태산을 넘어서 친구를 볼 수만 있다면 하고, 태산준령 넘는 것보다 친구 보는 일을 더 어렵게 말하고 있건만 산을 오르지조차 못하고 있는 자신을 이제 바라보는 것이다. 슬픔이 인다.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오직 나만의 것을 하고 싶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중요한 것은 일견 산만해 보이는 삶의 조각들을 무리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맞추어서 하나의 전체에 담아내는 작가의 역량이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종잡을 수 없던 삶의 윤곽이 문득 잡혀지는 느낌 때문에 황홀해진다. (중략) 삶의 앞뒤를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아름다움.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이른 어느 봄날에서야 비로소 맞추어놓을 수 있게 된 ‘깨진 항아리’의 조화로운 전체성, 그것은 ‘삶 전체를 들어올리고 또 들어올리는 듯한 음률’처럼 아름답다. _ 김화영(고려대 교수, 문학평론가) 풍부한 색감과 미세한 떨림을 간직하고 있던 김채원의 소설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를 끊임없이 목마르게 했던 근원을 찾는 것이다. 그 목마름은 ‘본원의 어떤 것에 대한 깊은 동경과 향수’, ‘그저 있는 그대로가 선이고 미이고 진이 되는 세계’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상처에서 연유된 것이기도 하다. (중략) 그것은 작가의 맨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원체험이며, 어떤 방식으로든지 풀어내야 할 필생의 매듭이다. 그것이 곧 김채원 소설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인 셈이 아닐까. _ 문혜원(문학평론가) ■ 본문 중에서 그녀들은 서로에게 무엇을 그리 사양하며 타인에게 들어가 함부로 휘젓지 않으려 노력하는가. 보다 단순하게 그녀들은 서로를 더 이상 바라바고 싶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가, 결핍을 느끼는가. 이 세상에서 오직 같은 어머니 아버지의 한 핏줄을 받은 유일한 존재, 같은 유전인자의 그 인因을 바라보고 싶지 않은 걸까. 그러나 오늘 그녀들은 양산 밑에서 서로를 떳떳이 바라보았다. 한번 바라보기 시작하자 바라보는 데에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 <인 마이 메모리> 358p 중에서 c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인가 고물거리고 있었는데 결국 자기를 부둥켜안고 울고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둥켜안은 자기란 남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 남과 같은 자기를 안고 몸부림치는 그곳이 이 세상이었다. 이 세상은 하나의 무대였다. 모든 사람들이 난리치며 한 세상 살아보는 그곳은 에게게 바로 이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지 몰랐다. -「푸른 미로」 319p 중에서 “아이들은 무의식 속에서 막연히 벌써 인생이라 하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던가. 저기야 저기, 저기까지만 가면, 하고 살 길을 만난 듯 죽을 힘을 끌어내어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가보면 숫돌에 칼을 가는 주인을 만나게 되리라는……” - <자정 가까이> 131p 중에서 “온갖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세상에서 죽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화되어 있는 속에서 그러나 저는 오직 내 마음 속 정경들에 이렇게 목이 멥니다. 거기서부터 저의 아픔은 시작되고 이 세상 전부가 접혀 들어갑니다.” - <2000년의 꽃밭> 347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