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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 黑水

  • 저자 핑루 지음
  • 역자 허유영
  • ISBN 978-89-7275-832-7
  • 출간일 2017년 08월 18일
  • 정가 13,000원

사람이 죽고 살인자는 죗값을 받았다.?
하지만 소설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대만을 충격에 빠뜨린 카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역작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왜 말해야 하지? 사실 자전이 정말로 관심 있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기 자신도 명확하게 알 수 없는데 어떻게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셴밍이 신간 에세이 몇 권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녀는 몇 장 뒤적이다가 이내 옆으로 밀어놓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이 있다니. 그녀는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을 경멸했다.
_ Ⅰ. 그날, 37쪽

 

바람 부는 어느 저녁 혼자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그녀는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대했다. 잘 잤느냐는 한마디 인사를 기다렸다. 그저…… 건성으로 건네는 말이어도 상관없었다. 겨울날 한밤중에 눈을 떴는데 발가락이 얼어붙은 듯 뻣뻣하고 종아리에 한기가 스몄다. 계절풍이 베란다로 파고들어 와 휭휭 휘파람 소리를 냈다. 몸을 모로 돌려 이불을 둘둘 감았다. 그녀는 누군가 옆에 있어주길 사무치게 바랐다. 음습한 밤공기를 조금이라도 쫓아줄 더운 숨결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숨결에 맞추어 그의 몸에 기대고 싶었다. 그토록 습하고 추운 겨울밤에는 메슥거리는 대머리 냄새도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_ IV. 모퉁이, 그 모퉁이, 130쪽

 

늙은 남자에 대한 혐오감일까, 동정심일까, 아니면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다른 무엇일까? 
감당하기 힘든 열정에 숨이 막혀서인지, 훙보의 용기가 두려워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전은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 순간 자전은 저항 능력을 잃었다. 그녀는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로 되돌아갔다. 남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하든, 부드럽게 쓰다듬든 거칠게 주무르든, 붙잡힌 팔다리가 부서질 듯 아프든, 아니,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저 몸을 내맡겼다. 그 순간 자전은 아빠를 갈망하는 어린 소녀로 돌아갔다.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 그녀는 “싫어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_ Ⅴ. 소원의 거리, 147쪽

 

그녀는 엄마가 될 자격을 박탈당했다. 깊숙한 기억 속에 감추어놓았지만 그때의 모멸감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남편은 그녀가 아이 낳는 것을 성가신 일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일들을 묵묵히 욱여 삼켰다. 남편이 그녀에게 끼얹은 모욕과 상처, 보상받을 수 없는 인생에 대해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은 공허하게 보낸 수많은 날들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잘근잘근 씹혀 뭉그러졌다. 생리적인 욕구도 벌레 먹은 잎사귀처럼 서서히 시들어버렸다. 
_ Ⅴ. 소원의 거리, 162쪽

 

만일 그때 자전이 셴밍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두 사람이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았더라면 그 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편의점에서 자전은 셴밍의 선한 미소를 보고 바닥에 떨어진 팝콘을 주우며 말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때를 놓치고 나자 자전에게 “훌훌 털어버려. 과거의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아니야”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자전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그녀에게 “잠깐 기다려. 넌 지금 길모퉁이를 잘못 돌았어. 어서 멈춰. 빌어먹을 그 생각을 떨쳐버려!”라고 외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_ VI . 행복의 거리, 174쪽

 

사실 돌이켜보면 경고음이 여러 번 울렸다. 결혼 전 누군가가 나이도 많고 살아온 내력이 불분명한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며 그녀를 말렸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은 일본에서 일시적으로 돈이 돌지 않는다며 그녀에게 생활비를 부담해달라고 했다. 그때 그녀는 남편의 재산이 중매인이 말한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을 중매해준 친구는 그가 어떤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일본의 어느 작은 섬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저 작은 섬이라고만 했던 것이 속임수였다. 그가 소유한 섬이란 한 푼 가치도 없는 무인도였다. 언젠가는 보상금도 없이 정부에 수용되거나 아예 바다에 잠겨버리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이 남자가 자신과 결혼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_ Ⅶ . 기수 지역, 201쪽

 

“훙보가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됐다고 했습니다.” 
자전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훙타이가 점점 바빠져서 커피를 마시러 갈 시간이 없을 거라면서요.”
판사가 물었다.
“그래서 훙보의 계획대로 했나요?”
“계획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한 사람에서 두 사람으로.”
_ Ⅹ. 빛의 거리, 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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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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