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1922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니혼 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서 수학했다.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릴케의 영향을 받아 삶의 비극적 상황과 존재론적 고독을 탐구하였고, 이후 십여년의 암중모색을 거쳐 1960년대 말부터 '무의미시'를 주창, 자기만의 시세계를 구축했다. 82년 명예 문학박사(경북대) 학위를 받았다. 65년 경북대학교 문리대 교수, 78년 이후 영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81년 11대 국회의원(민정), 86년 방송심의위원장, 91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한국시인협회상, 자유아세아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등을 받았다. 첫 시집 [구름과 장미] 이후 [늪], [기], [연인],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의자와 계단] 등의 시집과 [처용], [처용이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등의 시선집, [의미와 무의미], [시의 표정] 등의 시론집을 냈다.
탈속의 노래, 혹은 투명한 맑은 悲歌 대여 김춘수 시인은 1945년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하면서 문단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 초기에는 릴케의 '관념주의'의 영향을 받아 꽃을 소재로 한 연작을 통해 관념시 계열의 작품을 남기며 '암중모색의 시기'를 가졌다. 1960년대부터 '시에서 관념을 빼는'시, 즉 이미지 자체만을 드러내는 <무의미시>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1991년도에 발표한 <처용단장>은 무의미시의 결정판이었다. 이번 시집 <쉰 한편의 悲歌>는 그동안 끊임없이 실험과 변화를 거듭하면서 시인이 도달한 존재의 심리적 '해방'을 위한 '무상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비의(秘義)적인 요소'가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 작품에 접근하기가 한결 '수월'하고 편안해졌다.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느슨해지고 '해이해?병募?뜻은 결코 아니다.' 이전의 지적이고 비판적인 통찰력은 시어 하나하나에 생생하다. <悲歌> 시편들에서는 형식상 무의미시와 관념시의 세계가 변증법적인 합일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해결되지 않는 이율배반성', 즉 없는 '구원'과 '현실' 세계의 괴리에서 오는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비극이 <悲歌> 시편들의 주된 정서를 이루고 있다. <悲歌> 시편들은 비극을 노래하고 있음에도 그 비극적 상황을 희석시키는 서정적 울림이 가득해 깊은 슬픔마저 투명해 보이지 않을 정도에까지 이른다. "하늘에는 눈물이 없다. 하늘에는 / 구름이 있고 바람이 있고 / 비가 오고 눈이 내린다." 그가 지양하는 세계, 현실과 이상이 분리되지 않는 세계는 '눈물'이 없는 세계이다. 현실에서 해방된 순간이다. 그러나 곧 "사람이 살지 않아 하늘에는 / 눈물이 없다."라는 인식에 다다른다. 바꿔 읽으면 '사람'이 사는 이 현실 세계는 '눈물'로 상징되는 비극의 세계다. '눈물'의 세계의 사람들은 '눈물'의 세계의 사람들일뿐 '하늘'에 속하지는 못한다. 때문에 '눈물' 그 자체인 인간은 다음처럼 변주된다. "눈물은 어느날 길모퉁이 / 땅바닥에 떨어졌다. 한 번 다시 / 날개를 달기 위하여 눈물은 / 꿈을 꾼다. 그러니까 / 그러니까 눈물의 고향은 / 하늘에 있다." '눈물'과 '하늘' 이 둘의 이율배반성이 시인으로 하여금 <悲歌>를 노래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마도 이처럼 비극적인 인식을 이처럼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표현한 시인은 없었을 것이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내놓은 <쉰한 편의 悲歌>는 시적 대상과 서정적 자아가 너무도 투명하게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을 "시작 행로의 또 하나의 과정"이라고 밝혔다. 읽는 이는 그 행로를 따라가며 행간 행간에 멈춰 서기만 해도 '현실'이 투명하게 밝아져,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루는 해방감을 맛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