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영 시집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선 시집과 작가들의 친필사인이 담긴 한정판 양장세트 별도 발매
아트 컬래버레이션, 핀 라이브 등 다양한 특색들
반년간마다 새롭게 출간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2018년 상반기를 책임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Ⅰ』의 시인들은 박상순, 이장욱, 이기성, 김경후, 유계영, 양안다 6인이다. 한국 시단의 든든한 허리를 이루는 중견부터 이제 막 첫 시집을 펴내는 신인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은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Ⅰ』을 통해 현재 한국의 시의 현주소를 살피고 그 방향성을 짐작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면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 셈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Ⅰ』의 다섯 번째 시집은 유계영 시인의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으로, 201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래 독특하고 낯선 시 세계를 그려온 유계영의 두 번째 시집이다.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두고“시랑 나랑 잘 맞았다”라고 말한 시인 유계영은 스무 편의 시를 통해 전복을 향해 가는 예측 불허의 순간들을 포착하여 일상을 뒤틀고 일탈하려 든다. “남편의 목을 조른 손으로 바구미를 골라냈다/같은 손으로 쌀을 씻고 흰살생선을 구웠다” “사랑은 사랑이 바닥나기 전에 끝장나게 하시라……/사랑이 아직 사랑일 때 바닥나게 하시라……/죽은 생선을 움켜쥐어본 적도 없이 끝날/딸의 볼륨 없는 사랑”(「버닝 후프」) 당당한 목소리로 세계에 의문을 갖고 불신을 던지는 전작의 태도를 이어가면서, 시인은 모호하고 불확실한 세계를 기민하게 엿보며 “풍경을 붙들어 매는 놀라운 시선”(시인 이근화)을 보여준다. ‘공장’을 테마로 한 에세이에서는, 앞으로 닥칠 여자로서의 흔한 인생을 거부하고 서울 가리봉동 공단으로의 과감히 탈주를 감행한 어머니의 체험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생각”해보라는 딸의 목소리로 이야기한 「공장 지나도 공장」이 수록되어 있다.
‘여섯 시인의 여섯 권 신작 소시집’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만큼이나 시집의 판형이나 구성에도 차별화된 특색을 갖췄다. 가로 104센티 세로 182센티의 판형은 보통의 시집보다 가로 폭을 좁히고 휴대성을 극대화해 말 그대로 독자들의 손안에 ‘시가 쏙 들어오는’ 사이즈로 제작되었다. 시편이 끝나고 나오는 오른쪽 면은 여백으로 남겨 시와 시 사이의 숨을 고를 수 있도록 가독성 또한 높였다. 관행처럼 되어 있던 시집의 해설이나 작가의 말 대신 20여 편의 시편과 함께 같은 테마로 한 에세이를 수록한 것 또한 주목할 만할 점이다. 이번 6인의 시인들은 ‘공간’이라는 공통된 테마 아래 ‘카페’ ‘동물원’ ‘박물관’ ‘매점’ ‘공장’ ‘극장’이라는 각각 다른 장소들을 택해 써 내려간 에세이들이 시집 말미에 수록되어 시인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선명히 드러내주고 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Ⅰ』은 시리즈 론칭을 기념하여 6인 시인의 낭독회 행사와 함께 독자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500질 한정으로 발매되는 6인 시인의 친필사인과 메시지가 담긴 양장본 세트(전 6권)가 그것이다. 일반 무선 제본으로 제작되는 낱권 소시집과 동시에 출간된다.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 이 책에 대하여
핀, 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첫 번째 컬렉션북 출간!
현대문학의 새로운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첫 선을 보인다. 2017년 7월호 월간 『현대문학』에서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그들의 신작을 집중 조명하는 작가 특집란이다.
그동안 전통적 의미의 문학이 맞닥뜨린 위기 속에서 문학 작품을 향한 보다 다양해진 변화의 목소리 속에 『현대문학』이 내린 결론은 오히려 문학, 그 본질을 향한 집중이었다. 갈수록 줄어드는 문예지의 창작 지면을 오히려 대폭 늘려 시의 경우 신작 시와 테마가 있는 에세이를, 소설의 경우 중편 내지 경장편을 수록해 가장 『현대문학』다운 방식으로 독자 대중과 조금 더 깊게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했다. 작품을 통해 작가를 충분히 조명하는 취지의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 결과물로서 월간 『현대문학』 2017년 7월호부터 12월호까지 실린 시인 6인―박상순, 이장욱, 이기성, 김경후, 유계영, 양안다의 작품들을 시리즈의 신호탄이자 첫 번째 컬렉션북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Ⅰ』으로 가장 먼저 출간한다. 이는 현대문학의 새로운 시리즈의 출발점인 동시에 1955년 창간 이래 유수한 시인들을 배출해온 현대문학이 다시금 시인선을 출발시킨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핀pin’이란 주로 사물을 여미거나 연결하는 데 쓰는 뾰족한 물건을 의미이지만, 또는 꽃이나 웃음 등이 개화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흔히 무대 위의 피사체나 세밀한 일부분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해 쏘아주는 빛도 ‘핀’ 조명이라 하는데, 우리가 표방하는 ‘핀pin’은 이 모두를 함축하는, 정곡을 찌르는 의미라 할 수 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Ⅰ』의 작가들은 단행본 발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를 이루어 큐레이션된다. 현대문학이 새롭게 시작하는 시인선인 만큼, 개별 소시집이 이루어내는 성취는 그것 그대로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에세이의 테마 선정과 표지화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동반한 개성적인 6권 세트는 서로 조응하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세트로 독자들에게 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문학과 독자를 이어주는 ‘핀’이 되려는 새로운 플랫폼 <현대문학 핀 시리즈>.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가 가지는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기대한다.
현대문학*ARTIST-정다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탄생된 시집 표지이다. 각각 개별의 시집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도 볼 수 있는 이번 VOL Ⅰ 시집들의 표지는 패브릭 드로잉 작가 정다운(b. 1987)의 작품들로 장식하게 되었다.
동덕여대 회화가 출신의 정다운 작가는 신진 시각예술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기획프로젝트 ‘2017 아티커버리(articovery)’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TOP 1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중국, 홍콩,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임의의 구성에서 우연의 결과를 얻고, 이렇게 반복되는 행위들은 규칙성을 갖고 하나의 화면을 완성하는 정다운 작가의 작업 방식은 한 권 한 권의 소시집이나 여섯 권 세트로 큐레이션되는 핀 시리즈와도 그 의미가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우리의 첫 시리즈 시집 첫 번째 협업 아티스트로 정다운 작가를 선정했다.
▲ 작가의 말
여자가 생산한 것 중 하나인 여자의 딸, 나는 전구 공장이 마음에 든다. 나는 여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전구 제조 과정이라든지 공장의 사건들에 대해 말해달라 조른다. 혹시 화재 사고나 정전 사고는 없었는지, 누군가 다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한 적은 없는지. 아니면 운동권 대학생들의 위장 취업이나. 여자는 나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딸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대체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인가.
뭐하러 그런 걸 기억하고 있겠어.
여자의 말에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중얼거린다.
생각이 안 나도 생각하려고 해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여자는 자신의 딸만큼은 불량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이럴 때 보면 도저히…….
―에세이 「공장 지나도 공장」 중에서
▲ 본문 중에서
불행을 느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을 탓하기
다지증의 발가락처럼 달랑거리는
다섯 아닌 여섯, 외롭지 않게
모르는 사람의 기념사진에 찍힌
나를 발견하듯이
오늘날의 태양은 상상의 동물이 되었다
아름다운 건 왜 죄다 남의 살이고 남의 피일까
강물에 돌을 던지고 물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던진 돌을 잊어버린다
―「언제 끝나는 돌림노래인 줄도 모르고」 부분
신발을 늘리려고 신고 잤다
구겨진 티셔츠는 입고 잤다
풍만한 어둠이 밤새도록 나의 피부를 걸치고 있다
아침이면 알맞았다
덩굴손이 창살을 한 바퀴 더 감았다
―「영혼성」 전문
은총은 어쩜 이리 가벼워
무일푼이 가득한 성금함을 들고
지옥의 안락의자 위에서
잠든 자들이 자신의 따귀를 때리며 깨어나는 곳
앉지 않으면 오후의 뒷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청춘이 물 건너갈 것처럼
빈자리를 벌리며 호들갑 떠는 늙은이와
앉은뱅이 중력과 함께
강을 건넌다 건너갔던 것을 다시 건너간다
―「썬 앤 문」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