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쉰한 번째 시집으로 이서하의 『마음 연장』을 출간한다. 2016년 『한국경제』 신춘문예로 등단해 “몸이 기억하는 상처를 우주적 명랑함으로 치환한 낙천성”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은 이서하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서하 시인에게 있어 시를 쓰는 일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해석 불가능한 소리를 듣고 그것을 펼쳐 보이는 일”이며,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거기에 답을 달아보는 일”(『한국경제』인터뷰)이어서 그가 난민, 여성, 이미지, 장애인, 성소수자, 비인간처럼 차별받는 세계에 집중하는 이유다. 그는 2018년 제주에 도착한 예멘 난민들에 대한 혐오를 기록한 책을 읽고 난민들에게 ‘정착’의 의미는 ‘연장’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덜 춥고 덜 불행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장을 들어 균열을 수선함으로써 삶 전체를 집으로 연장(延長)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금이 간 곳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시를 통해 세계 혹은 삶의 균열을 이어붙임으로써 그가 이미 알고 있던 세계와 조금은 다른 세계, 조금은 넓고 깊은 세계에 가닿는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VOL. Ⅷ』은 민구, 구현우, 이서하, 김이강의 개성을 담은 시집을 분기별로 선보일 예정이다.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한국 시 문학이 지닌 진폭을 담아내는 이번 시리즈는 세계적인 ‘숯의 화가’ 이배 작가의 표지 작업과 함께해 예술의 지평을 넓혀간다.
세상의 균열로 인해 무너진 마음을 재건하는 따스한 시어들
이서하 시인의 『마음 연장』
이서하 시인은 세계에서 배제된 제3의 목소리들에 집중한다. “십여 년 동안이나 귀가 없어도 들리는 것이 있었”(「어떤 꿍꿍이」)던 식물은 스스로를 증언할 “목소리의 자리”(「집 연장하기」의 인용문 「‘증언을 듣는 자’에 대한 증언」)가 없지만, 귀가 없음에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존재한다. 시인에게 있어 시를 쓰는 일은 이러한 존재들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존재의 집”을 “연장”해주는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존재의 집”은 수많은 상처로 불안한 곳이지만 시인은 언제까지나 그 집에 머물며 변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살아 있음에는 변화가 수반되지만, 변화하면서 생기는 “차이는 행동을 규제하고”(「텅 빈 중심」) “살아 있음을 과시하는 것들에게 해는 언질을 주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에(「예외 상태」) “모두가 덜 춥고 불행하면 좋겠”다는 시인의 마음은(「알음알음」) 삶을 연장할수록 늘어나는 해害를 줄여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가 택한 방법은 마음으로 ‘연장’을 들어 균열을 수선하는 것이다. 삶에 난 균열을 메우고 그 둘레에 울타리를 쳐서 “땅에 발을 붙”일 수 있도록, “앞뒤로 잘 구워 놓쳐도 깨지지 않게 같은 자리에서 단단”(「뒤로 더 뒤로」)하게 “깨어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이어 붙인 후에 그 부위에 금칠을” 하는 긴츠키 기법처럼 말이다. 그렇게 “금이 간 곳에서 비로소 빛이 나”(「긴츠키」)오듯이 “인간의 속은 살아 있는 어둠뿐”인데도 빛이 비쳐올 수 있는 이유를 이서하 시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워야 할 벽 뒤에는 조금씩 어두워지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검은 것 위에 흰 것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다. “갈라진 곳에 어둠이” 깃들어도 빛이 쏟아져 나오듯이(「불운에서 탈출하는 법」), 속이 어둠뿐이어도 빛이 비쳐 나오듯이. 빛이 지탱하는 것 또한 검은 것의 윤곽”(「같은 것이 아니다」)인 것이다.
“슬프면 울어도 된다고,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 여기 있다고, 우리에게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삶을 연장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무엇보다 그의 시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고.”
-정재율(시인)
핀 시리즈 공통 테마 <에세이>_‘친구’
에세이 「기만한 습관들」에서 그는 자신의 습관들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그는 걱정이 많고, “정리가 필요한 것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흘러나오는” 혼잣말을 자주 하고 강박적으로 주변 사물을 정리한다. 그는 “걱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나의 혼잣말은 이런 식으로 저 혼자 커진다”고 토로한다. 그가 통제 불가능한 것들을 보이는 것에 이입하는 이유는 “실체가 없는 상태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물로 인해 보이게 되는 것만으로도 상태는 통제가 가능할 것처럼 여겨”져서이다. 또한 “예상을 빗나가는 시를 쓰기를 바라면서 정착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자신을 모순적이라고 여긴다. 그는 스스로 “예민하다”고 말한다. 예민함은 종종 자기 검열로 드러나는데, 무관함에서 오는 생각이나 행위, 태도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 더 벼르고 날을 세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는 그에게 시인이란 “내가 서 있는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경계하려는 파수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