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쉰 번째 시집으로 구현우의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을 출간한다. 레드벨벳,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의 히트곡들을 작업한 작사가이자 2014년 『문학동네』로 등단한 구현우 시인이 세 번째로 묶어낸 이번 시집에는 드넓은 세계를 향한 무언의 바람과 영혼을 노래한 30편의 시와 고요의 시간에 존재한 또 다른 나를 삽화로 담아낸 에세이 「아주 오래된 대화」가 실려 있다.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고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야기 솜씨”(이문재), “서사적이면서 동시에 논리적”이며 “다양한 해석을 받아낼 구조가 튼튼히 갖추어져 있다”(신형철)는 평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한 시인답게 그는 이번 시집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에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부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송가頌歌를 담았다. 담담한 서사와 관조의 시어詩語가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 속에서 극대화된, 선명한 묘사와 세련된 은유와 상징 등이 어우러진 시편들이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담담한 서사, 관조의 시어詩語들이 뿜어내는 공감과 위로”
구현우 시인의 『버리기 전에 잃어버리는』
구현우 시인의 이번 시집은 “곁에 있었으나 지금은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노크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눌어붙은 인류애 같은 것을 문지르다 보면 / 미약하게나마 시간이 가고 / 저는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처럼 지금은 곁에 없는 누군가를 향한 독백으로, 때로는 “너를 떠났으므로 내가 버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모종의 삽」)과 같다는 자조自照 섞인 푸념으로, “없는 네가 나와 나란히 걷는다. 없는 너의 발자국은 선명하고 정작 나의 발밑에는 무게가 없”(「백야」)음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상실의 아픔이다. 구현우 시인이 소재로 삼은 사랑, 이별, 아픔, 죽음 등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고 가야 하는 숙명 같은 것들이다. 그런 화두를 대수롭지 않게 풀어내는 시인의 솜씨는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누구나 마음을 다독일 시간은 필요하고 유예된 시절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긴 힘들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인은, ‘아직 괜찮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지금 행복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더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시를 써서 나아질 것은 없을지언정 시를 통해서만 보이는 생각의 이면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모호한 아픔’보다는 ‘구체적인 아픔’을 아는 게 어느 시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시인은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약을 먹어야 하는데 제때 그러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그럼에도 더 고통스럽지는 않은 걸 보”며 “잘 지내고 있”(「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강을 오래 보면 우울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고 강을 안 본다고” “뭐가 달라”(「여의도」)지지 않는다는 체념이나 “네가 없이도” “무의식적으로” 자꾸 나오는 “한숨”(「무의식적으로」)처럼 불현듯 밀려드는 아픔과 슬픔을 관조의 시선으로 덤덤하게 들여다본다. 시인의 시는 잠이 오지 않는 밤, 곁에서 “나도 그래”라고 속삭여주며 우리를 보듬는다.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멀리 떨어져 자신을 객관화하고 이성의 힘으로 사유하는 그의 시 세계가 그런 까닭에 독자들을 위로하고 공감을 끌어내며 매혹시키는 이유이다.
핀 시리즈 공통 테마 <에세이>_‘친구’
에세이 「아주 오래된 대화」는 어린 시절의 영지에서 시작해서 청년기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에피소드에서 시작해 자신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담백하고 단정한 서사로 풀어낸다. 네 개의 소제목은 ‘노랑’으로 시작해 ‘노랑’으로 끝나지만 ‘노랑’의 정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시인은 이에 대해 “눈에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손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이상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토로한다. 마치 빨강과 초록 사이의 노랑, 혹은 아침과 저녁 사이의 노랑처럼. “나타났을 때처럼 그는 말도 없이 떠났습니다. 머리맡 조명을 조금 더 아늑한 색으로 바꾼 날부터였습니다. 그는 내 말에 대답을 해주지도 맛있는 것을 같이 먹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가장 슬플 때 울도록 두었습니다. 기쁠 때도 웃도록 두었습니다. 그 점이 좋았습니다”(「아주 오래된 대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친구’처럼 시인은 성인이 된 지금도 시를 통해 ‘불투명한 현실의 대기’ 어디쯤에 있는 ‘사이 존재’를 불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