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는 버몬트의 외딴곳에 있는 대저택에서 삼촌과 함께 살고 있었다. 저택에는 멋진 도서실이 있었다. 이 도서실에는 창살을 끼운 창문과 6센티미터 두께의 두꺼운 참나무 문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에서 문 양쪽 벽에 견고하게 고정된 걸쇠에 육중한 나무 빗장을 걸어야만 잠글 수 있었다. 비밀 통로 같은 것도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방은 딕슨 카의 탐정들이 기뻐할 만한 곳이었고, 에드거의 목적에도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희생자는 물론 에드거의 삼촌 대니얼이 될 것이다. 안 그래도 희생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지만, 삼촌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자립 철학의 신봉자로서 에드거가 자립할 수 있는 인간으로 거듭나도록 돕기 위해 조만간 유언장을 고쳐 에드거의 상속자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공표한 상태였다.
에드거는 삼촌의 더러운 돈 위에서 남은 평생을 뒹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언장이 변경되기 전 반드시 노인네를 처단해야만 했다.
_18~19쪽,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포드가 벽을 넘어 방 안쪽으로 들어갔고, 몬티는 시멘트가 든 들통을 건넸다. 그러고 나서 벽 바깥쪽에서 한참 동안 포드를 바라보았다.
“포드?”
“응?”
“어떻게 된 거였나?”
“사고 말이야?”
“그래. 나한테 그 얘긴 한 번도 안 해줬잖아. 심리 때 진술한 것 말고는.”
금고처럼 생긴 방 안쪽에서 꿀꺽꿀꺽 소리가 나더니, 술병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해가 막 넘어간 후였어.” 포드가 말했다. “차를 몰고 자네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지. 그리고, 진입로를 막 지나치려는데, 헬렌이 갑자기 뛰어들었어. 내 차 바로 앞으로.”
“피할 순 없었나?”
“자네도 시신이 놓인 자리를 봤잖아, 몬티. 거의 도로 한복판이었어.”
“경찰 말로는 자네가 술에 취해 있었다던데.”
“피트 플레이스에서 한잔하긴 했었지. 바텐더는 내가 딱 한 잔만 마셨다고 증언했어. 자네도 그 친구가 말한 거 기억하지? 난 취하지 않았어, 몬티. 그건 그냥 사고였네.”
_44~45쪽, 「읽지 않은 남자」
하벨은 신중하게 편지를 읽었다. “세상에 홈스만 한 경찰은 없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이게 핵심 문구임이 틀림없어요. 그리고 당신 이름은 왓슨이죠.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을 읽어보셨습니까, 왓슨 씨?”
“셜록 홈스 시리즈 몇 편 정도요.” 내가 말했다. “그냥 테리라고 부르시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부르니까요.”
“좋아요, 테리. 당신 이름이 존이 아니라 아쉽군요. 소설 속 왓슨 박사처럼요. 그렇다면 모든 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을 텐데.”
_95쪽, 「아서 코넌 도일을 읽은 남자」
“내가 방에 들어갔을 때, 도킨스는 얼핏 보기엔 죽은 것 같았어.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숨을 쉬고 있더라고.”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단 말이야? 칼이 꽂힌 채로?” 도러시가 놀라 침을 꿀꺽 삼켰다.
“응.” 에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었잖아. 전등은 하나만 켜져 있었고. 킵스는 방 안을 대충 보고 도킨스가 죽은 줄 알았던 거야. 경관이 확인을 했어야 했지만, 그 친구도 자세히 보지는 않았던 거지. 사람들은 시체에 다가가는 걸 싫어하잖아. 경찰이라고 다를 것 없어.”
도러시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_169~170쪽, 「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이 망할 집이 내 머리 위로 무너지려나!” 스트랭 씨가 현관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는 동안 배러시가 등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위스키 병이 선반에서 뛰어내리질 않나. 문이 저 혼자 열리질 않나. 이 집은 귀신 들린 게 틀림없어.”
스트랭 씨는 대꾸하지 않고 결정적인 증거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방을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그는 사이먼 배러시가 체커 게임, 찰스 디킨스, 그리고 사악하리만큼 독한 시가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곧바로 알게 되었다. 이 중 어느 것도 경찰의 관심 대상은 아닐 터였다.
_296쪽, 「스트랭 씨 대 스노맨」
지은이_ 윌리엄 브리튼William Brittain
1930년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브록포트 주립교원대학교(현 뉴욕주립대학교 브록포트 캠퍼스)와 호프스트라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며 틈틈이 작품 활동을 했다. 뉴베리상 수상작인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는 마법의 카드』를 비롯해 아동·청소년 문학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미스터리 독자들에게는 기발하고 참신한 단편 추리소설을 쓴 작가로 기억된다.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 《앨프리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등에 7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특히 추리소설 거장들을 모티프로 한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시리즈와 중년의 과학 교사 ‘스트랭 씨’를 주인공으로 아기자기하면서도 탄탄한 일상 미스터리를 선보이는 「스트랭 씨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브리튼은 2011년 세상을 떠났지만, 2018년 엘러리 퀸의 오마주 작품들을 수록한 『엘러리 퀸의 불운한 모험The Misadventures of Ellery Queen』에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가 실리면서 그의 작품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하여, 그해 흩어져 있던 단편들을 한데 모은 소설집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가 출간되었다.
옮긴이_ 배지은
서강대학교 물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동안 휴대전화를 만드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을 전공하고 소설과 과학책을 번역하고 있다. 『인형의 주인』 『엿보는 자들의 밤』『밤의 새가 말하다』 『열흘간의 불가사의』 『꼬리 많은 고양이』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아파트먼트』 『물질의 탐구』 『입자 동물원』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수학의 함정』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클래식 미스터리 팬들을 열광시킬 작품” _퍼블리셔스 위클리
허점 많은 방구석 추리 덕후부터
냉철한 두뇌를 가진 천재적 모방범까지
미스터리 애호가들이 펼치는 유머와 전율의 대활약상!
평범한 독자들도 명탐정처럼 멋지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추리소설 거장과 그들의 작품을 모티프 삼아 미스터리 애호가들의 다채로운 활약상을 그린, 윌리엄 브리튼의 소설집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브리튼은 평생 70여 편에 달하는 단편을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앨프리드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에 발표한 작가이자 열렬한 추리소설 마니아이기도 했다.
브리튼 사후 출간된 유일한 소설집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에는 2008년 일본의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해외판에 이름을 올리고 한국에서도 추리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널리 읽혔던 대표 단편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를 포함해, 에드거 앨런 포, 애거사 크리스티, 대실 해밋, 조르주 심농, 아이작 아시모프 등 전설적 추리 작가들을 오마주한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시리즈 11편을 담았다. 또한 중년의 과학 교사를 주인공으로 탄탄한 일상 미스터리를 선보이는 오리지널 시리즈 「스트랭 씨 이야기」 5편을 통해 브리튼만의 고유한 매력도 함께 소개한다.
추리 문학의 별들에게 바치는
브리튼의 가장 특별한 ‘러브레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간을 쪼개어 글을 썼던 브리튼은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에서 자신처럼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성실하고 평범한 인물들을 만들어냈다. 요양원의 도난 사건을 해결하고 단숨에 영웅으로 떠오른 80세 ‘엘러리 퀸’ 마니아(「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 억울하게 죽은 이웃을 위해서 아마추어 탐정으로 변신한 젊은 사제(「체스터턴을 읽은 남자」). ‘존 크리시’ 소설을 읽고 학교 숙제를 하다가 얼떨결에 살인범을 잡은 소녀(「존 크리시를 읽은 소녀」).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을 모방해 추리 모임을 결성한 시골 마을 아저씨들(「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은 남자들」). 마치 우리 곁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주인공들이 때로는 거장들도 상상 못 할 완전범죄를 꿈꾸며 엉뚱한 사고를 일으키고, 때로는 자신이 동경하는 명탐정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기도 한다. 사소한 단서에서 출발해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는 엘러리 퀸의 추리법이나 『셜록 홈스』의 명대사를 이용한 기발한 말장난 트릭, 심농의 소설 속 ‘매그레 반장’처럼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등장인물을 보며 원작과의 숨겨진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것은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후반부에 실린 브리튼의 오리지널 단편 시리즈 「스트랭 씨 이야기」 또한 탄탄하고 유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무심한 듯 배려심 깊은 ‘스트랭 선생님’의 일상 속 활약상을 그린 다섯 편의 단편들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다. 학생들과 아웅다웅하다가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날카로운 추리력을 발휘하는 스트랭 씨의 모습이 때때로 작가 윌리엄 브리튼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와 작품, 탐정들을 모티프로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들을 선보이는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이 책은 윌리엄 브리튼이 추리 문학의 별들에게 바치는 가장 특별한 ‘러브레터’이자, 미스터리 애호가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