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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피플 Millennium People(2003)

  • 저자 J. G. 밸러드 지음
  • 총서 JGB 걸작선
  • 역자 조호근
  • ISBN 979-11-6790-021-0
  • 출간일 2022년 01월 17일
  • 사양 536쪽 | 120*188
  • 정가 16,000원

“우리는 신시대의 프롤레타리아”
중산층의 혁명과 목적 없는 테러의 시대
21세기의 예언자, 20세기 SF 최후의 거인
J. G. 밸러드의 묵시록적 스릴러

해외 서평 

  • 문학사에서 가장 우주적인 애수를 띤 작가. 밸러드를 읽는 사람은 그의 지성에 깃들인 조수의 중력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_ 조너선 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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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의 세계관은 통찰력의 정밀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근미래에서 보내온 속달우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황량하고 아름답다. 언뜻 중산층에 대한 안락사의 우화 같은 『밀레니엄 피플』은 테러리스트와 그들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를 연결 짓는 비틀린 심리를 해부한다. _《뉴스테이츠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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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의 소설은 복잡하고 강박적이고 대개 시적이며, 항상 불안을 조장하는 연대기들이다. 이들은 인간에 반기를 든 자연의 연대기, 기계효율의 세계에서의 야만의 존속에 대한 연대기, 엔트로피, 아노미, 붕괴, 파멸의 연대기다. 그의 인물들이 거주하는 폭파된 풍경은 외부 환경뿐만 아니라 마음 상태도 이야기하는 것이다. _《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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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레니엄 피플』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지켜 온 가정假定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밸러드의 병적인 예지에서 첼시마리나의 반란은 점점 더 무의미해질 가능한 모든 폭력의 설계도다. 밸러드는 다가올 미래의 모습The Shape of Things to Come에 명백히 괴로워하는 도덕주의자이자, 확고부동한 맹렬함을 품은 문학적 파괴자다. _ 이언 톰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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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의 유려한 산문은 최면술을 펼치며, 음울하게 아름다운 대목이 곳곳에 있다. _《데일리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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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에 대한 밸러드의 직감은 두렵기 짝이 없다. 극소수의 작가만이 이런 종류의 지성을 소유한다. 지성에 재치까지 더해지니 이는 거의 범죄가 아닐지. _《인디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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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편하고 전복적이다. 그의 우아하게 잔혹한 공식화와 그가 세상을 연주하는 환위換位에는 최면에 가까운 무언가가 있다. 지독히도 훌륭하다. _《선데이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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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J. G. 밸러드를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영국 소설가로 손꼽는가? 셰퍼턴의 교외형 주택에 들어앉아, 밸러드는 한 치의 어긋남 없는 혜안으로 현대세계에 대한 일련의 회보를 발행했다. 다른 작가들은 묘사하지만 밸러드는 예지한다. 그의 단편소설의 제목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그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들의 근미래의 전설을 선사했다. 『밀레니엄 피플』은 밸러드의 고전이자, 새로운 출발이다. _《프로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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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뚤어진 욕망의 매개이자 계급 반란의 표상으로서 부서진 자동차라는 모티브가 병리학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밸러드 작품의 특징이다. 『밀레니엄 피플』은 혁명과 테러리즘으로 경련하는 평행 세계의 런던을 보여 주지만, 이 소설은 현대적 안온함의 불임성과 반란에 내재한 최음제적 전율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_《월스트리트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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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G. 밸러드는 영국의 필립 K. 딕이자, 조지프 콘래드와 H. G. 웰스의 후계자다. 극단으로 치닫는 현재가 미래를 예견한다는 점에서 바로 그렇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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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세상이 마침내 밸러드를 따라잡았다. _《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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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크리트의 섬』은 텅 빈 인간, 즉 알맹이 없는 의견들의 맹공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만 무력한 이성을 묘사하는 밸러드의 방식이다. 그는 정체성 정치의 종족중심주의와 발칸화로 야기된 폭력을 용인하는 세계를 폭로한다. _《뉴잉글리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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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의 작품은 문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전제를 무너트리면서 우리 어둠의 심연을 밝히려고 한다.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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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내주게 비튼 블랙코미디. 여전한 관록을 자랑하는 밸러드의 소설에서 섹스, 폭력, 급진주의의 강력한 조합은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밀레니엄 피플』은 끝장나게 진지하면서도 군데군데 헛웃음을 불러오는데, 어쨌든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심란해진다. _《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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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는 시의적절했다. 『밀레니엄 피플』을 읽을수록 디스토피아 맹신자조차 세상을 좀 더 괜찮은 곳으로 바라보게 된다. _《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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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레니엄 피플』의 톤은 사이코드라마와 패러디를 줄기차게 오가고, 동시에 고양되고 위축되는 감정들에 탐닉하며, 표현 방식에 있어 오페라풍에서 일상적인 쪽으로 행동이 돌변하는 등장인물들을 내보인다. 밸러드 유머의 상당 부분은 허무주의를 해방하려는 정신 나간 수법을 탐구할 때조차 영국인다운 태도를 결단코 잃지 않는 그의 주인공들에게서 비롯된다. _《시애틀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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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코미디 『밀레니엄 피플』에서 J. G. 밸러드는 디스토피아를 통해 현대성을 언술한 20세기의 주요한 기록자로서 그를 우뚝 서게 한 여러 주제로 돌아간다. 이 작품에서 그는 충격적인 선견지명과 명료함으로 미래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묘사한다. 『밀레니엄 피플』은 우리 중산층을 떠받치는 토대가 이전보다 불안정해짐을 느끼고, 종말론의 강박과 소비문화의 허무주의에 대한 망령들 전부가 밸러드가 연이은 픽션에서 창조해 낸―어쩌면 경고했던―세계와 점점 더 닮아 갈 때에 도래했다. _「살롱Sal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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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어떤 도서관도 20세기 소설의 위대한 거장이 제시한, 새로운 세기의 문제들에 대한 이 기발한 견해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_《도서관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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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소설. 『밀레니엄 피플』을 읽는다는 것은, 삶을 떠받치는 모든 판자가 하나씩 제거되고 그 밑에 놓인 잔인성과 공허를 마주하도록 떠밀리는 것과 같다. _《스코츠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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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 붕괴 직전의 영국 사회에 대한 대단히 설득력 있는 상상. 다시 한번, 밸러드는 문명화의 틈새에서 비어져 나오는 사회를 능수능란하게 묘사한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현대의 인간 조건에 정면으로 맞선다. ‘밸러드풍Ballardian’이 영어 사전에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며, 이는 작가에게 최고의 찬사가 되리라. _《리터러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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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에 대해 무언가를 예상하려 했다면 헛수고한 것이다. 밸러드는 반드시 그 예상들을 전복시킨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쓸 소설들을 어느 누구도 쓸 수 없고,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다. _《옵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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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당신은 이제 빠져나오기 어려운 교령회에 붙들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수법이 그렇게 강력하다. _《더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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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마어마한 창의력의 작가. 밸러드는 칼비노처럼 현대의 삶의 공허하고 박탈당한 공간을 상상의 보이지 않는 도시와 경이로운 세계로 채우는 놀라운 재능을 가졌다. _ 맬컴 브래드버리(작가ㆍ문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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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에 대해 우선 하고 싶은 말은 그가 최고의 SF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당대 최고의 작가다. _ 앤서니 버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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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체와 내용의 선지자. 가히 문학에서의 살바도르 달리나 막스 에른스트라 할 만하다. _《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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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는 실로 문학적 초현실주의자이며, 그의 몽환적인 내러티브는 카프카의 더욱 음울한 우화들,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조지 오웰의 『1984』, 그리고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윌리엄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를 연상시키는 정신분석학적 강렬함을 보인다. _ 마이클 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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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는 이국적인 상징과 심리적인 통찰을 결합시켜 영어권에서 가장 정련되고 농밀한 산문을 창조해 냈다. _ 마이클 무어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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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인 나는 J. G. 밸러드를 사랑했다. 10대였던 나는 J. G. 밸러드를 사랑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J. G. 밸러드를 사랑했다. _ 닐 게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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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과 악몽의 결혼, J. G. 밸러드는 ‘풍요한 사회’의 취약성을 폭로한다. _《시티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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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G. 밸러드는 창작의 다양성과 서술 언어의 풍성함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_《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러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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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연의 상상력을 점차 상실해 가는 왜소한 세계에서 J. G. 밸러드는 홀로 우뚝 서 있다. 선견지명을 가진 희대의 이단아로서. _《아이리시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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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는 문단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초현실주의 작가이며, 가장 불편한 현실에 대한 핫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높은 수준의 그의 산문은 빈틈없이 들어찬 이미지의 덩어리일 뿐만 아니라, 수은과 같이 밀도 높고 영롱하며, 소설보다 낯설다. _ 앤절라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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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문학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설득력 있고, 개성적인 상상력. _ 윌리엄 보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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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는 지난 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영국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원맨 장르로. 그와 같은 이를 본 적이 없다. 그는 확고부동하게 독자적이다. 그의 크림 같은 경이로운 산문, 심상의 불가사의하고 돌연한 확장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_ 마틴 에이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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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시대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고 지적인 목소리. _ 수전 손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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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소설의 위대한 마술사. _ 브라이언 W. 올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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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후 소설의 가장 빛나는 별. _ 킹즐리 에이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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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러드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는 환상적으로 썼고, 환상적인 작품을 썼다. 라디오헤드부터 게리 뉴먼, 조이 디비전, 심지어 버글스까지 모두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 물론 그는 작가로서의 나에게도 확실하게 영향을 끼쳤다. _ G. P.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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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G. 밸러드는 현대문학을 재정의했으며, 영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_ 마크 커모드(영화 평론가)

 

 

 

본문에서 

두 여성을 연결해 주는 분노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칼로는 강철 레일이 자궁을 관통하는 바람에 평생 고통받은 사람이었다. 샐리는 낯선 땅에서 좌우를 제대로 살피지 않고 거리를 건넜으며, 자신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녀를 다시 걷지 못하게 막는 요인은 그 사고의 무작위적 속성에 대한 흥미로운 집착뿐이었다.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휠체어를 떠나지 못하는 장애인이라 주장하며, 자신의 역경을 다른 의미 없는 사고의 희생자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파업 중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 대해서 혼자 자리에 앉아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답을 기다리고 있는 거거든요, 마컴 씨.” 그녀는 세 개의 커다란 베개에 몸을 기대며 머리카락을 비비 꼬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말이에요.”
“그 질문이 뭔가요.”
“‘왜 나야?’ 대답해 봐요. 할 수 없을걸요.”

_ 42~43쪽 「3 “왜 나야?”」에서

 

제정신이든 아니든, 말이 되든 안 되든, 온갖 종류의 항의 집회는 런던에서 일상의 거의 모든 측면과 접점을 가진다. 거대한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된 시위가, 보다 의미 있는 세계에 대한 온갖 간절한 열망을 건드리는 것이다. 실험실이나 상업은행이나 핵연료 집적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오소리 굴을 지키기 위해 비포장도로를 터벅터벅 걸어 다니고, 시위꾼 종족의 공적이라 할 수 있는 내연기관을 저지하기 위해 고속도로에 드러누우면서 주말을 보낼 준비를 마친 관심 집단들은, 인간에게 가능한 거의 모든 활동을 목표로 삼았다.
이런 이들은 이제 주변 집단이 아니라 런던 시장의 퍼레이드나 애스콧 경마 주간이나 헨리리개타 보트 경주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 시민 전통의 일부가 되었다. 이따금 동물실험이나 제3세계 부채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새로운 종교가, 숭배할 신을 찾아 헤매는 신앙이 태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찾아, 머지않아 열정과 맹신의 향기를 풍기며 교외의 쇼핑몰이라는 광야에서 모습을 드러낼 그런 인물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신도들인 것이다.

_ 64~65쪽 「5 올림피아의 대치」에서

 

“관광 여행이야말로 최고의 최면술이에요. 대규모 신용 사기인 데다 인생에 뭔가 흥미로운 것이 존재한다는 위험한 사고방식을 주입하죠. 의자 뺏기 놀이를 뒤집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녹음된 음악이 멈출 때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추고, 원 안에는 더 많은 의자가, 더 많은 요트 정박지와 메리어트 호텔이 추가되죠. 그래서 저마다 자기가 승리했다고 착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조차 사기인 거로군요?”
“완벽한 사기죠. 현대의 여행자들은 어디든 실제로 가는 게 아니니까요.”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청중에 의해 방해받아 본 적이 없는 강사의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나름의 열정적인 자세로 너저분한 거실을 마주하고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자기 존재를 아무리 개선해도 결국 똑같은 공항과 리조트 호텔로, 똑같은 피냐 콜라다 어쩌고로 이어지게 마련이잖아요. 여행객들은 햇볕에 탄 피부와 번쩍이는 이빨을 보며 자기네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선탠은 그들의 정체를 숨기는 역할만 할 뿐이에요. 미국의 쓰레기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봉급을 받는 노예라는 정체를요. 여행은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환상이에요. 어디든 일단 가기만 하면 자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죠.”

_ 90~91쪽 「7 심야의 탈출」에서

 

[…] “여행 대행사를 공격하려 시도했다고 했지요. 아무래도 더 큰 목표물을 노리던 것 같습니다만. 혹시 첼시마리나입니까?”
“그보다도 더 큽니다.” 다시 긴장을 푼 덱스터는 손을 들면서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목표물 중 하나죠. 바로 20세기입니다.”
“끝난 줄 알았는데요.”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와 사고방식을 규정짓고 있지요. 20세기에 대해 좋게 말해 줄 요소는 거의 없을 겁니다. 대학살을 수반한 전쟁이 벌어지고, 세계의 절반이 기아에 시달리고, 나머지 절반은 뇌사 상태로 몽유병에 빠져 돌아다니던 시대지요. 20세기의 싸구려 꿈을 계속 받아들이다가 깨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된 겁니다. 저 수많은 하이퍼마켓과 문을 굳게 닫아건 공동체들을 보시지요. 일단 문이 닫히면 절대 나갈 수 없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데이비드. 알고 있으니 기업을 고객으로 받는 거겠지요.”
“그렇지요. 하지만 이 쓰레기통 같은 사회에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중산층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좋아한다는 거지요.”
“물론 그렇겠죠.” 조앤이 끼어들었다. “노예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중산층은 신시대의 프롤레타리아인 거예요. 100년 전의 공장 노동자와 똑같죠.”

_ 105~106쪽 「8 몽유병자들」에서

 

“충분히 윤택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거든요. 급여는 고정되어 있죠. 조기 퇴직의 위협도 등장했고요. 일단 마흔 살만 돼도 막 나온 졸업장을 손에 쥐고 눈을 반짝이는 졸업생을 고용하는 쪽이 훨씬 싸게 먹히니까요.”
“반발이야 있을 법하지요. 하지만 왜 하필 여기, 첼시마리나입니까? 킹스로와 가까운 상류 주거 단지 아닌가요……”
베라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 부동산업자예요? 이 동네는 똥통이라고요. 보수 정비는 거의 하지도 않는데 관리비는 끝없이 오르기만 하죠. 이 아파트는 우리 아버지가 평생 벌어들인 것보다 더 비싸게 먹혀요.”
“경관이 좋지 않습니까. 여기서 행복하지 않나요?”
“그건 생각을 좀 해 봤죠.” 그녀는 검은색 매니큐어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행복이라? 개념 자체는 괜찮지만, 들인 노력만큼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게다가……”
“지적으로 온당치 않다는 거겠지요?”

_ 128~129쪽 「10 혁명에의 예약」에서

 

“그러니까 우리 목표물은 계급 구조인 거로군요. 보편적인 현상 아닙니까. 미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물론이죠. 하지만 계급 구조가 정치적인 통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곳은 여기뿐이에요. 그 실제 목적은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는 게 아니라 중산층을 억제해서 얌전히 굴종하게 만드는 거고요.”
“그리고 트위크넘이 그 목적을 실행에 옮기는 수단의 하나라는 겁니까?”
“바로 그거예요. 이곳 사람들은 중산층의 꿈이라는 강렬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어요. 삶의 목적이 그거죠. 자유주의적인 교육, 시민의 도리, 법규 준수 따위요. 자기네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사로잡혀서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거예요.”

_ 140~141쪽 「11 어둠의 심연」에서

 

[…]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기에서 넘어온 불로소득 생활자입니다. 모든 것을 용인하지만, 동시에 자유주의의 가치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려고 고안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대면하면 겁에 질립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유한한 자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진보와 이성의 힘을 믿으면서도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이라는 망령에 시달립니다. 성에 집착하면서도 성적 상상력을 두려워해서 터부로 만들어진 거대한 체제의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평등을 믿지만 하층민은 혐오합니다. 자신의 육체를 두려워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자연 속에서 우연히 탄생한 존재일 뿐인데도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합니다. 망각으로부터 고작 몇 발짝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어떤 식으로든 불사의 존재라 여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20세기 탓이라는 겁니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요. 우리가 자신에게 돌아가는 문을 잠그도록 도왔으니까요. 우리는 과거 세대의 수감자들이 지은 유화적인 정권의 교도소에 살고 있는 겁니다. 때론 탈옥을 할 필요가 있지요. 2001년의 세계무역센터를 향한 공격은 미국을 20세기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위대한 시도였습니다.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비극이지만, 그 밖의 점에서는 의미 없는 행동이었으니까요. 바로 그게 본질인 겁니다. 국립영화극장에 대한 공격과 동일하지요.”

_ 228~230쪽 「17 절대영도」에서

 

폭약 무더기처럼 가득 쌓인 분노가 불붙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는 확성기로 집 밖의 군중에게 BBC가 60년이 넘도록 중산층 세뇌의 첨병 역할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온건과 상식을 통한 치세와, 교육과 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리스주의의 기치는, 모두 수동적인 태도와 자제력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용도의 화려한 연막에 지나지 않았다. BBC는 국가를 지배하는 문화를 규정했고, 중산층은 그 속임수에 넘어가서 절제와 시민 도덕이 전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_ 245~246쪽 「19 방송국 포위전」에서

 

풀럼의 내국세 수입국이 주요 컴퓨터 관리자들의 파업 때문에 업무를 중단하기에 이르자, 마침내 관료들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산층이 소비사회를 거부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용인하면 세수에 치명적인 하자가 발생할 테니 말이다. 보건부의 조사관들이 설문지를 들고 첼시마리나를 돌아다니면서 불만의 근원을 판별해 내려 시도했다.
선택한 목표물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라 공통된 심리 분석을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피켓 시위대가 입구를 막은 피터존스 백화점과 런던 도서관, 레고랜드와 대영박물관, 여행사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헨든의 쇼핑몰과 흔해 빠진 사립학교 사이에는 중산층의 삶을 거부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셀프리지 백화점의 식료품 코너와 자연사박물관의 공룡 전시관에서 터진 두 개의 발연탄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도 찾을 수 없었지만, 양쪽 모두 하루 동안 폐관하게 만들었다. 마리네티를 추앙하는 미래파의 ‘박물관을 파괴하라’는 구호가 놀라울 정도로 공감을 받는 상황이었다.
지역 보궐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투표함을 훼손하려는 생각으로 투표장을 방문한 케이와 베라는 시민의 협조 거부가 민주주의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국회의원 선거는 오랫동안 중산층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숙련된 집계원 몇 명이 참가 거부를 표한 것만으로도 선거가 연기되었고, 의회 민주주의를 중산층을 거세하려는 그리 교묘하지 못한 시도라고 간주하던 첼시마리나의 주민들은 이런 상황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_ 251~252쪽 「19 방송국 포위전」에서

 

“중산층이 짜증을 내는 거지. 우리가 착취당하고 있다고 느끼니까. 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위한 진보적 가치와 인도주의적 배려 따위에 말이야. 우리 역할은 보다 낮은 계층의 행동을 막는 거지만,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를 규제하고 있었던 거지.”
헨리는 참을성 있는 얼굴로 위스키 잔 건너편의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말을 전부 믿는 건가?”
“누가 알겠나? 중요한 점은 첼시마리나 사람들이 믿는다는 거지. 아마추어적이고 유치하지만, 애초에 중산층이란 아마추어적이며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야.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내무부의 자네 친구들이 걱정할 만한 사태라고.”
“그 사태란?”
“점잖고 온건한 사람들이 폭력에 굶주려 있다는 거지.”
“진실이라면 불길한 일이군.” 헨리는 자기 위스키 잔을 내려놓았다. “무엇을 겨냥한 폭력인데?”
“목표는 뭐든 상관없지. 사실 이상적인 폭력 행위란 아무런 목적도 없는 것이니까.”
“순수한 허무주의인가?”
“정반대야. 우리 모두 바로 그 지점에서 틀렸던 거지. 자네도, 나도, 애들러도, 자유주의 여론도. 무를 향한 탐구가 아니었던 거야. 의미를 향한 탐구였던 거지. 증권거래소를 날려 버리면 국제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행위가 되지. 국방부에 폭탄을 보내면 전쟁에 반대하는 거야. 굳이 전단을 나눠 줄 필요도 없어. 하지만 정말로 아무 의미도 없는 폭력 행위는, 이를테면 군중에 무작위로 총을 쏘는 행동은, 몇 개월 동안 사람들의 주의를 사로잡지. 논리적인 동기가 부재하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 나름의 중요성을 가지게 되는 거야.”

_ 316~317쪽 「23 마지막 타인」에서

 

“그렇습니다. 그곳의 수많은 죽음은 무의미하고 불가해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바로 그게 요지일지도 모르니까요. 동기 없는 행동은 우주의 움직임을 궤도 위에서 멈추게 합니다. 제가 당신을 죽이려 들면, 그건 여느 부랑자 범죄나 다를 바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실수로, 또는 아무 의미도 없이 죽이면, 당신의 죽음은 단 하나뿐인 중요성을 획득하는 거지요. 우리는 세계를 제정신인 곳으로 인식하기 위해 동기에 매달리고, 인과관계에 의존합니다. 그런 지지대를 전부 걷어차 버리면 무의미한 행동이야말로 진정 의미가 있는 유일한 행동임을 깨닫게 돼요. 저도 깨닫기까지 한참 걸리기는 했지만, 당신의 ‘죽음’이야말로 제가 기다리던 청신호였던 셈이지요.”

_ 416~417쪽 「30 아마추어와 혁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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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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