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쓰는 작품을 실제로 경험하는 소설가
세상의 기인들을 모은 궁정의 주인
할리우드 고전 영화배우의 몸을 입고 벌레들의 행성에 간 사람
병 속에 담긴 뇌를 팔러 다니는 미래의 외판원
교리문답대로 나무인간을 창조한 아이
어느 날 납치되어 좀비가 된 남자……
<세계환상문학상><에드거 앨런 포 상><네뷸러 상>에 빛나는
환상문학의 대가 제프리 포드가 초대하는 이야기 만찬
폴라북스에서 에드거 앨런 포와 카프카의 뒤를 잇는다고 평가받는 환상문학의 대가 제프리 포드의 단편집 『환상소설가의 조수』가 출간되었다. 이 단편집은 제프리 포드가 처음으로 엮어 냈던 단편집으로서, 수록된 단편 중 3편이 수상작이고 단편집 또한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환상소설가의 조수』에는 표제작 「환상소설가의 조수」를 포함하여 1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열여섯 편의 단편은 작가의 어린 시절이나 대학교에서 작문과 문학을 가르치던 시절을 투사하여 자전적인 바탕 위에 환상적인 사건을 덧입힌 것부터 시작해서, 먼 미래에 인류의 먼 우주 개척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뚤어진 사랑 이야기,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사족을 못 쓰는 벌레 외계인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 영화배우의 껍질을 입고 벌레들의 행성으로 간 사람 이야기, 인간의 뇌를 병 속에 담아 전자 시스템으로 쓰이는 이야기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고 있다. 이 작품들은 자칫 일상과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비치기 쉽지만, 제프리 포드의 문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 다양하고 비틀린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변하지 않는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 그리고 자신의 꿈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노력을 통해 그저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작품마다 작품을 쓸 당시에 작가가 어떤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얻었는지, 작품의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 적은 후기가 딸려있다. 작품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 특히 창작의 열망을 품은 독자에게 더욱 유익한 부분이 되리라고 본다.
『환상소설가의 조수』는 여름밤, 또는 어떤 시간에라도 잠시 동안 팍팍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문학과 환상을 체험하고 자신의 꿈을 돌아보기에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 포드의 단편은 독창적인 비전을 섬세하게 빚은 보석이다. 또한 이 시대 환상문학의 위대한 본보기이기도 하다.
★★★★★ 이 이야기들은 꿈 같지만, 꿈과 달리 고유한 논리와 공식을 가지고 있고, 포드의 언어술과 순수한 스타일로 정제되었다.
★★★★★ 이 책은 작가가 되고 싶게 만드는 유형의 책이다. 모든 이야기는 바로 전의 것보다 더 훌륭하다. 포드의 글 솜씨는 굉장히 놀랍고 누군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가 없다. "머스트 해브 북".
- 아마존 독자 서평 중에서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같은 작가들을 예로 들며 “나는 한 번도 판타지 소설과 소위 ’문학 작품’ 사이에 다른 점을 보지 못했다(2007년 actuSF와의 인터뷰 중에서)”던 본인 말마따나 그의 소설은 언제나 환상성을 품고 있되, 특정한 장르 틀에 갇혀있지는 않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특히 더 그렇다. 어떤 장르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기묘한 환상성, 고전과 현대와 미래가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없는 지적인 경향과 섬세한 결은 독자들이 익숙하게 보던 기존 판타지나 SF와는 다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세계는 특정 장르보다는 장르 ‘사이’, 혹은 ‘경계’라는 표현과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 이수현 (옮긴이의 말 中 )
이 책은 2002년에 골든그리폰에서 출간된 『The Fantasy Writer's Assistant and the other stories』를 번역한 것으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제프리 포드가 다른 지면에 발표했거나 이 단편집에만 실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폴라북스에서는 작가의 동의를 얻어 단편의 배치 순서를 바꾸었다.
다음은 각 단편과 단편이 실린 지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환상소설가의 조수 The Fantasy Writer's Assistant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기 미래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는 독서가 메리는 인간적으로 고약한 외모와 성품을 가졌지만, 인기 있는 판타지 소설 시리즈 작가의 조수로 취직한다. 어느 날, 작가가 자신이 쓰는 작품 속이 보이지 않는다며, 메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소설을 쓴다는 것, 자신의 꿈을 찾아낸다는 것에 대한 문학적인 답.
이 작품은 2000년에 《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픽션》에 실렸으며, <세계환상문학상> 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픽션》은 1949년부터 출간된 유서 깊은 장르 잡지다. 현재는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픽션》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약자인 F&SF로 많이 불린다. 대니얼 키스의 『앨저논에게 꽃다발을』, 할란 엘리슨의 『제프리는 다섯 살』, 커트 보네거트의 「해리슨 버거론」 등이 발표된 지면이며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도 이 잡지에 단편으로 처음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격월간으로 발행한다.
머나먼 오아시스 The Far Oasis
먼 미래, 우주에 나간 개척지에서 게임의 명수 사익스는 자신이 이긴 상대인 메시나라는 여자에게 홀딱 반한다. 그러나 메시나는 사익스의 비밀 수법을 빼내고 나서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메시나를 그리워하던 사익스는 말다툼 끝에 그녀를 살해하고, 다른 별로 추방당한다. 그 별에서 인간과 닮았지만 수명이 무척 짧은 생물을 발견한 사익스는 기억속의 메시나를 되살릴 무시무시한 전략을 생각해낸다. 집착과 외로움이 빚어낸 비뚤어진 사랑 이야기.
이 작품은 2000년에 웹진 《사이픽션SCI FICTION》을 통해서 발표되었다. 이 웹진은 사이파이 채널에서 만들고 앨런 대트로가 편집장을 맡아서 뛰어난 작가들의 신작을 다수 내놓고 고전 중단편을 엄선해서 수록했다. 비록 2000년부터 2005년까지만 운영되었지만 SF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웹진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 Creation
주인공은 교리문답 시간에 들은 창세기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인간을 창조해보려고 한다. 숲 속에서 나무와 풀들로 몸을 만들고, 아버지에게서 가져온 숨결을 흘려넣고, 교리문답의 질문들을 읽어주고 나서 다음 날 가보았더니 정말로 그 인간이 일어나서 사라진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주인공은 큰 비밀을 안고 괴로워하다가 아버지에게 이 일을 고백한다. 환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부모와 책임, 사람의 성장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
이 작품은 2002년에 《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픽션》에 실렸으며, 「환상소설가의 조수」와 마찬가지로 <세계환상문학상> 단편 부문을 수상했다.
계곡 밖으로 Out of the Canyon
《가제트》지 기자가 한 남자의 일기에 얽힌 신비롭고 섬뜩한 이야기를 취재해나간다. 일기의 주인공 엘리야 툼스는 신비한 효능을 가진 온천 물이 솟아오르는 계곡에서 독버섯의 환각작용에 취해 동물의 뼈들로 기이한 형상을 빚어내며 살던 사람이다. 어느 날 열일곱 살의 틸리아다가 계곡에 찾아오면서 그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그가 남긴 일기장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저주의 근원이 된다. 저주 이야기이자 작가의 유일한 서부 이야기.
이 작품은 다른 곳에 실리지 않고 작품집에 처음으로 실렸다.
판솔라피아 Pansolapia
한 남자가 임신한 아내를 집에 놔두고 바다로 나간다. 바슈메나라는 여인의 춤에 호응하여 바다는 움직이며 그 남자를 바슈메나에게로 데려가려 한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이 거울의 방 뒤에서 바슈메나의 환영을 취하여 임신시켰음을 기억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환상에다,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물리학 이론을 접목한 짧고 환상적인 이야기.
이 작품은 1999년에 《인피니트 플러스Infinity Plus》에 실렸다. 《인피니트 플러스》는 1997년부터 발행된 웹진으로서 SF, 판타지, 호러 소설과 작가 인터뷰와 리뷰를 수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단편소설을 싱글 전자책이라는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외골격 도시 Exo-skeleton Town
외골격의 벌레 모양 외계인들은 지구의 20세기 영화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들이 영화와 영사기를 받고 준 똥덩어리가 비길 데 없이 강력한 최음제로 판명되자, 지구에는 20세기 영화 무역 붐이 인다. 이 외골격 도시에서 지내기 위한 우주복의 모양을 사람과 똑같이 만들 수 있게 되자 지구인들은 아예 20세기 영화배우의 모습을 입고 외골격 도시를 방문한다. 이 무역 끝물에 한몫 잡으려고 조지프 코튼의 모습을 입고 간 주인공은 가져간 영화를 금방 탕진하고 마약에 빠져 외계인들에게 붙잡힌다. 외골격 도시의 시장은 조지프에게 <비는 그런 짓을 하지>라는 영화를 구해오면 살려주겠다며, 영화의 주인공 여배우가 혼자 사는 집으로 보낸다. 독특한 배경과 담담하면서도 낭만적인 전개가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사랑 이야기.
이 작품은 2001년에 《검은 문Black Gate》에 실렸고, 프랑스에서 번역문학상을 수상했다. 《검은 문》은 2000년에 창간되었으며, 판타지 소설을 중심으로 그래픽 노블과 롤플레잉 게임까지 다루는 잡지다. 비교적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하지만 마이클 무어콕, 마이크 레스닉, 찰스 드 린크, 코리 독토로 같은 작가들이 정기적으로 글을 싣는다.
자기 숨을 헤아리는 여자 The Woman Who Counts Her Breath
도로시 히멜라히는 모든 것의 수를 세며, 어느 것에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무엇이든 통제하에 있어야만 안심하는 데다 언제나 의심과 화를 낼 태세로 살아서 주변과 가족 모두를 피폐하게 만드는 여자다. 그런 그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성격의 근원을 파헤치는 이야기.
이 작품은 1994년에 《노스웨스트 리뷰Northwest Review》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잡지는 오레곤 대학에서 펴내는 잡지이다.
달콤한 매듭 The Honeyed Knot
주인공은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작문을 가르쳐온 작가 본인이다.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 중 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는데, 이 작가는 한 남학생이 소녀를 강간, 살해해서 잡혀간 이후로 그의 글에서 범죄의 징조를 읽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계속해서 시달린다. 시간이 꽤 흐른 이후, 작문 강좌의 학생으로, 남편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다가 두개골에 금이 가고 머리에 금속판을 달게 됐다는 에입스 부인을 만난 작가는, 이제까지 만났던 모든 이상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자신을 향해 소용돌이치는 느낌을 받는다. 제프리 포드 자신이 99.9% 실화라고 밝힌, 기묘하고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이야기.
이 작품은 2001년에 《매거진 오브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픽션》에 실렸다.
맬서지안의 좀비 Malthusian's Zombie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의 이웃에는 맬서지안이라는 특이한 노인이 산다. 그는 주인공과 체스를 두면서 자신의 과거를 밝힌다. 맬서지안은 국가기관에서 행동심리학의 원리를 통해 한 인간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려서 좀비와 같은 생물로 만들었으며, 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폐기했어야 할 좀비를 자신이 데리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수명은 얼마 안 남았으니 좀비를 맡아서 인간으로 돌아갈 때까지 보살펴달라는 청에 주인공은 도망치고, 얼마 안 가 맬서지안이 죽는다. 그리고 다음 날, 누군가가 주인공의 집 문을 두드린다.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지만 그저 이야기 자체로 흥미진진한 작품.
이 작품은 2000년에 웹진 《사이픽션SCI FICTION》을 통해서 발표되었다.
우아한 그이 The Delicate
우아한 그이는 생명력을 빨아들이고 나약한 자들에게 기나긴 잠을 대접하는 존재다. 그이의 정체를 알아채는 이는 먼저 소멸에 이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이를 우아하고 귀족적인 자비스 씨라고 안다. 그러나 우아한 그이 또한 자신이 빨아들인 피 속에 든 무언가 때문에 개로 변신하는 수모를 당한다. 극야에 사냥꾼을 따라 숲 속에 들어간 사냥개 우아한 그이는 마지막 순간에 개의 옷을 벗어던지고 무자비한 죽음으로서 돌아온다. 굉장히 짧고 압축적이지만 방대한 이야기가 숨어있을 듯한 이미지 단편.
이 작품은 판타지, 호러, SF를 다루는 계간지로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잡지 《공간과 시간Space and Time》을 통해 2002년에 발표되었다. 작가가 직접 후기에서 언급하기로 이 작품은 발표연도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썼으며 『골상학』으로 시작되는 장편 3부작의 씨앗과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레파라타에서 At Reparata
세상의 모든 죄인을 데려다가 자신만의 칭호를 주고 자리를 만들어주어서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풍족한 레파라타 궁정. 이곳의 평화는 왕비인 조제트가 죽고 잉게스 왕이 슬픔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깨졌다. 왕년의 범죄자이자 현재의 신하들은 명성이 자자한 치료사를 데려오고, 치료사는 잉게스의 몸 안에 벌레를 넣어 슬픔의 진액을 짜내는데, 이것이 더 큰 재앙의 시작이었다. 동화의 계보를 잇지만 어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씁쓸한 깨달음과 예상을 벗어나는 희망이 공존하는 특별한 이야기.
이 작품은 1999년에 SF, 판타지 웹진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에 실렸는데, 이 웹진은 현재 폐간되었다.
쥘 베른과 오후의 차 한 잔 High Tea with Jules Verne
대작가 쥘 베른은 어린 시절에 달까지 날아간 마술사에게서 이야기의 영감을 받았으나, 그 일화를 평생의 두려움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의 집에는 이야기 속에서 도망간 등장인물들이 발버둥치며 갇혀있다고 한다. 작가가 자신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가상으로 되살려내서 인터뷰 형식으로 쓴 소품.
이 작품은 2001년에 《처칠 부인의 장미 봉오리 팔찌Lady churchill's rosebud wristlet(RCRW)》라는 잡지에 발표되었다. 이 잡지는 1996년에 1호를 26부 찍으면서 시작한 소규모 출판 잡지로, 사변소설과 환상소설, 경계소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바닷가에서 일어난 일 Something by the Sea
매기는 퇴역군인인 아서 삼촌과 삼촌의 개 수학이를 좋아한다. 엄마는 정신병 때문에 불을 내서 정신병원에 있고, 아빠는 그런 엄마 때문에 매기에게 신경 써줄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기는 삼촌과 피크닉을 가서 삼촌이 어렸을 때 배를 탔던 이야기를 하다가 깜박 잠이 든다. 삼촌 또한 꿈의 세계로 접어든다. 그리고 둘은 꿈속에서 만나, 매기 엄마의 정신병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꿈이 때로는 뒤엉킨 진실의 반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적인 이야기.
이 작품은 이 단편집에서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 단편 제목은 제프리 포드의 어머니가 쓰던 추리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이름은 괴짜 할아버지의 선원 시절 이야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린드레툴에 떠서 Floating in Lindrethool
과학은 발달했으나 인간의 생활방식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고, 화석 에너지에 대한 조심도, 서로에 대한 믿음도 없는 근미래. 슬랙웰은 린드레툴에서 가전제품을 파는 외판원이다. 성적이 너무나 신통찮아서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 상관에게 매달리자, 상관은 최신제품으로 사람의 뇌를 가지고 만든 고성능 유기체 컴퓨터를 슬랙웰에게 준다. 그러나 아무리 최신제품을 가지고 있어도 각박한 먼 곳 린드레툴에서 슬랙웰은 제품을 팔기는커녕 죽도록 고생만 한다. 외로움에 지치고 여기저기서 치인 몸이 아픈 어느 날 슬랙웰은, 절대로 뇌 컴퓨터에 말을 걸지 말라던 금지조항을 어기고 만다. 누아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
이 작품은 2001년에 웹진 《사이픽션SCI FICTION》을 통해서 발표되었다.
뉴이집트로 가는 길에서 In the Road to New Egypt
집으로 운전해가는 길에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던 예수를 태우게 된다. 예수는 뉴이집트까지 어떤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하며 주인공이 집에 돌아가는 일정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안심시킨다. 그러나 중간에 역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던 악마까지 태우게 되고, 악마와 약도 피우고, 예수와 악마가 눈여겨보고 있던 성녀 후보를 보러 가는 데까지 휘말리게 되면서 주인공은 집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성녀 후보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종교적인 소재와 문화를 바탕에 깔고 있지만, 교리에서 자유롭고 풍자적인 이야기.
이 작품은 1995년에 문학잡지 《일탈Aberratiions》에 수록되었는데, 이 잡지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만 발간되었다.
눈부신 아침 Bright Morning
‘나’는 카프카를 수식어로 너무 많이 달고 있어서 괴로운 작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카프카에 얽힌 특별한 추억이 있기는 하다. 어린 시절 괴짜이자 천재인 베틀먼이라는 친구를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추천해준 카프카의 단편집이 나를 문학과 작가의 세계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틀먼은 갑작스레 기이한 행동을 보이더니 학교를 떠나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반납한 카프카의 단편집은 사라진다. 이후로 「눈부신 아침」이라는 작품이 실린 카프카의 작품집을 찾을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카프카가 그런 작품을 쓴 일은 없다고 말하고, 「눈부신 아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고나 자살로 사라진다. 문학에 푹 빠지고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면서 「눈부신 아침」에 대해서는 잊고 있던 ‘나’는 창작의 샘이 고갈된 느낌에 다시 그 책을 찾고 싶어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서 혼란스러우면서도, 카프카와 포의 전통을 잇는 듯한 신비로운 이야기와 작가 자신을 대상으로 한 유머가 결합되어 즐거운 이야기.
이 작품은 이 작품집을 위해 새로 쓴 글로, 심지어 그 일화가 글 중에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