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제50회 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 이번 수상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으로 등단한 윤성희씨다. 성년에 이르도록 성장을 거부한 사람들의 슬프고도 황량한 동화같은 그의 단편 「유턴 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해체된 가족의 틀 밖으로 퉁겨져 나온 인물들을 통해 삶의 진행을 방해하고 있는 상실감이 어떻게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뿌리내리고 있는지 보여준다. 자신은 그저 소설 속 주인공들을 통해 우리의 상처를 두드릴 뿐, 위로나 그리움,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밝히는 윤성희.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떤 원망이나 원한도 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고독과 권태를 쓰다듬어준다. 수상작 외에도 예심과 본심에 올랐던 작품들과 역대 수상작가 윤대녕, 성석제, 김영하의 작품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수상작 : 윤성희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수상작가 자서전 : 윤성희 안녕! 물고기자리 수상후보작 권지예 산장카페 설국 1km 김경욱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이나미 파묘꾼 정영문 배추벌레 최수철 확신 역대수상작가 최근작 윤대녕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 성석제 고귀한 신세 김영하 은하철도 999 심사평 <예심> 이재룡·서영채·정혜경 다양한 모색들 <본심> 김윤식 무구함의 어떤 미학 김화영 그 누구의 것과도 혼동되지 않는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오정희 '업음'을 지주 삼아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성장통의 기록 수상소감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는 대장간
윤성희 1973년 수원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졸업하였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으로 등단하였고, 작품집 『레고로 만든 집』 과 『거기, 당신』이 있다.
■ 심사평 중에서 누에고치족모양 독방에 혼자 웅크리고 있는 두더지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캥거루족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코쿤족도 아닌 이 신종은 새삼 무엇인가. 여기에다 다음 한 가지 사실만 덧붙이면 가히 윤성희식 인간형이라 할 만하다. 씨가 등장시키는 인물이 순진무구하다는 사실이 그것. 「어린이 암산왕」(2002)이 그 원형을 이루고 있거니와 요컨대 순진무구함이란, 주변의 그 무엇도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음에서 유래한 것이기에 어떤 원망이나 원한도 생성시키지 않음을 특징으로 한다. 지독한 그리움이나 모진 사랑이 없는 것은 그런 것들이 한갓 상처에서 오는 과장된 몸짓임을 씨가 알고 있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윤식(문학평론가.명지대 석좌교수) 1999년 등단 이후 이미 그 누구의 것과도 혼동되지 않는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이 작가의 ‘분위기’와 어조, 그리고 모방할 수 없는 저 ‘무의미한 유쾌함’은 그 자체로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해체된 가족의 틀 밖으로 퉁겨져 나온 입자들과도 같은 인물들, 대개는 알파벳 이니셜로 지칭되는 이 4인조 인물들의 우연한 만남과 이들이 기차, 트럭, 찜질방, 소형차 등 무명의 공간으로 떠돌며 만두나 쫄면을 익혀 먹거나(음식을 함께 먹는 기쁨이 없다면 무엇 하러 살겠는가? 하고 묻듯이…) 자의적인 놀이에 신명나는 저 해학적이고 ‘즐거운’ 삶은 우리의 고독과 권태를 쓰다듬어주는 상쾌한 시선을 느끼게 하기에 족하다. -김화영(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윤성희의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없음’을 지주 삼아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성장통의 기록이다. 성년에 이르도록 성장을 거부한 사람들의 슬프고 황량한 동화로도 읽힌다. 그들의 성장과 삶의 진행을 방해하고 존재 자체를 삼켜버린 상실감이 어떻게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가의 눈길은 깊어, 그것은 또한 모든 ‘살아 있음’들이 공유한 근원적 죄의식이 아닌가 하는 데까지 닿아 있다. …… 한결같이 치명적인 상실감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는 소설 속 인물들은 존재감을 잃고 부유하는 상징성으로, 현대 사회의 우울하고 불길한 징후들을 서늘하게 드러내며 우리 안에 깃든 유령을 이끌어낸다. -오정희(소설가) ■ 수상소감 제가 가슴속에 담아두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흙으로 구워 만든) 화로, (누군가 버린) 풀무, (순도 100%의) 강철, (손때 묻은) 망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열심히 풀무질을 하고, 그 불에 강철을 달궈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빛을 만들고 싶습니다. 눈에 재가 들어가면 눈물이 나고, 손등에 불똥이 떨어지면 상처가 남겠지요. 물집이 잡힐 때까지 붉게 달궈진 철을 두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묻겠지요. 무얼 만들고 싶으냐고. 결투를 할 그날을 위해 검 한 자루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겠습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그저 두드리는 것. 그것만이 제가 할 일 같습니다. 두드리다 지치면 화장실에 홀로 앉아 노래를 부르고, 또 두드리다 지치면 소박한 음식을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또 두드리다 지치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몰래 훔쳐보겠습니다. 어리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결투란 이것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이미 거울을 보아버린 사람이니까요. 겁쟁이니까요. 거울 너머, 나와 당신들의 시선 너머,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저 국도변의 길 너머로 발걸음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과거형으로 위로하지 않겠다고. 현재형으로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미래형으로 희망을 말하지 않겠다고. 그저 가만히 당신들의 상처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