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 브래드버리는 어떤 작가인가?
브래드버리는 70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50권에 달하는 책을 펴냈고, 특히 300여 편의 단편소설을 남기면서 ‘단편의 제왕’이라 불렸다.
이러한 브래드버리는 생전에 미국 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장르소설 작가로는 최초로 2000년 전미도서재단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도 미국예술훈장, 퓰리처특별표창, 프랑스문화훈장과 함께, 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의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비롯하여 브램스토커상, 프로메테우스상, 월드판타지상과 같이 SF와 판타지 분야의 거의 모든 주요한 상을 석권했다.
브래드버리의 많은 작품은 ‘만약What if’의 상상력에서 시작되었다. 명실공히 SF 문학의 대가인 그는, SF 소설은 실현 가능한 미래를 예측하는 장르이고, 자신은 불가능한 일을 그려 내기 때문에 『화씨 451』 이외의 작품은 환상소설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자책, 블루투스 헤드셋, CCTV, 대형 평면 텔레비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현금자동입출금기,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 주택 등 그의 기발한 상상력들은 수십 년 후 현실이 되었으며, 미디어의 선정성이나 그에 대한 중독과 같은 문제의식 역시 현대에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브래드버리의 사고는 오늘에도 유효한 생각거리들을 남기고 있다.
브래드버리가 다루고자 했던 핵심 주제는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나 로봇, 외계인이 아닌 ‘인간 그 자체’였다. “SF 소설은 실제로 미래에 대한 사회학적인 연구”라는 신념을 가졌던 그는 ‘끝없이 비가 내리는 금성’, ‘8일밖에 생존할 수 없는 행성’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이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신문팔이로 생계를 꾸리면서 일주일에 사흘씩, 꼬박 10년간을 도서관에서 보낸 습작 시절,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토머스 울프, 존 스타인벡, 시인 존 던 등이 쓴 순수문학 작품의 기법과 필치를 터득한 그는 인간의 오만과 기술의 위험성에 대하여 은유와 아이러니,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고하는 교훈이 담긴 ‘우화’들을 창작해 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하지는 않았다. 나는 미래를 막으려고 했다.” _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는 어떤 작품인가?
“이 책은 일리노이주의 작은 소도시에서 자라서, 자신이 희망하고 꿈꾼 그대로 우주 시대가 찾아오는 것을 목격한 소년의 회고록이다. 과거에 대해 궁금해하는 소년들, 현재를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소년들, 미래에 대해 크나큰 기대를 품은 소년들에게 이 이야기들을 바친다.
별은 여러분의 것이다. 별을 원하는 머리와, 손과, 심장을 가지고 있다면.”
_레이 브래드버리
단편집 『태양의 황금 사과』는 브래드버리에 대해 언급할 때 『화씨 451』 『화성 연대기』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사악한 존재가 이리로 온다』 『민들레 와인』과 함께 꼽히는 그의 대표작이다. 1953년 초판에는 22편이 실렸는데, 이후 브래드버리가 자신의 소년 시절 회고록이라고 서문을 적었던 단편집 『R는 로켓의 R』(1962)의 수록작들을 추가해 1997년 총 32편으로 개정판을 출간했다. 한국어판은 바로 이 1997년 개정판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다. ‘태양의 황금 사과’라는 제목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방황하는 잉거스의 노래」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브래드버리는 단편이라는 장르에서 SF, 판타지, 우화, 자전소설, 공포, 사회 희극, 살인 미스터리, 로맨스 등 온갖 형식과 소재를 선보였다. 그 다채로운 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이 단편집에는 특별히 목가적이며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두드러진다. ‘별’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담긴 「R는 로켓의 R」 「로켓」부터 오래전 멸종한 공룡이 등장하는 「안개 고동」 「우렛소리」, 그리고 작가 ‘레이 더글러스 브래드버리’ 본인의 분신인 소년 더글러스가 주인공인 「여름이 달려가는 소리」 「타임머신」 등 그 모든 생경하거나 익숙한 소재들은 놀라운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제시된다. 한편 더글러스가 등장하는 단편들은 그의 자전적 성장소설이자 연작소설 『민들레 와인』의 토대가 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일리노이주의 호반 도시 워키건에서 태어나고 자란 브래드버리는 자신의 많은 작품에서 이곳을 ‘그린타운’이란 이름으로 등장시킬 정도로 워키건에서 보낸 시절은 그의 70여 년 작가 생활에서 영감의 원천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는, 브래드버리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 세계에는 이와 같이 자연과 과거를 향한 그리움이 곳곳에 녹아 있다.
어릴 적 좋아한 스페이스 오페라 만화 <벅 로저스 시리즈>를 모으던 걸 한 달간 중단했을 때,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던 브래드버리는 평생 소년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즐긴 작가였다. 그 시절을 그리며 쓴 이야기들이 담긴 이 책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오랜 팬들에게 그의 상상력의 시발점을 살필 수 있는 뜻깊은 작품집이, 나아가 SF에 낯설음을 느꼈던 이들에게는 새롭게 SF 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 레이 브래드버리의 세계를 향한 찬사
10대 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전혀 다른 결의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날지 못하는 모형 로켓 안에서 달을 보고,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유성을 만나고, 화성에 도착하는 상상을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설이 줄 수 있는 이야기의 아름다움이라고. –윤성희(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우리 문화를 다시 빚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그는 우리의 상상력이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한 도구, 변화를 위한 매개체,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의 표현으로 쓰일 수 있음을 잘 알았다. 앞으로도 레이가 그의 글로 더 많은 세대를 고무시키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버락 오바마(미국 전 대통령)
만약 우리의 세상에 브래드버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풍경은 지금처럼 멋지진 않았을 것이다. -닐 게이먼(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없었다면 스티븐 킹도 없었다. -스티븐 킹(소설가)
나의 SF 작품 활동 대부분에서 브래드버리는 내 뮤즈였다. SF와 판타지 그리고 상상력의 세계에서 브래드버리는 불멸로 남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영화감독)
보르헤스와 레이 브래드버리,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은 당신의 상상력이라는 지갑 깊은 곳에서 영원히 빛날 금빛 귀금속으로 주조되었다. -J. G. 밸러드(소설가)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만큼이나 꼭 필요한 존재다. 그는 비길 데 없는 세계적인 작가이자, 그의 글은 미국 소설의 얼굴을 여섯 차례는 바꾸었다. -할란 엘리슨(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는 우리의 멘토이자 우리의 영웅이었다. 그는 우리 모두를 무수히 많은 관대한 방법으로 도와주었다. 그는 장르의 격을 드높였고, 그것을 일류로 포섭시켰다. -리처드 매시슨(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처럼 쓰는 작가는 레이 브래드버리뿐이다. -클리프턴 패디먼(작가, 평론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작가 중 한 명. 위대한 이야기꾼이자, 때로는 신화 작가였던, 진정한 미국의 고전. -《워싱턴 포스트》
브래드버리는 현대 SF 소설이 문학적 주류에 포섭될 수 있게 된 데에 가장 큰 공이 있는 작가이다. -《뉴욕 타임스》
브래드버리는 SF계의 무관의 계관시인이다. -《타임스》(영국)
브래드버리는 진정한 오리지널이다. -《타임》
브래드버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존경을 얻을 만한 강력하고 신비로운 상상력을 지녔다.
-《가디언》(영국)
다른 어떤 작가도 브래드버리처럼 독창적이고 묘미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브래드버리는 절제미를 갖춘 미국의 딜런 토머스로 보인다. -《선데이 텔레그래프》(영국)
■ 책 속으로
“나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오브라이언 부인.” 그가 힘없이 말했다. “나 여기 좋아요, 여기 있고 싶어요. 나 일했어요, 돈도 있어요. 나 괜찮아 보이잖아요, 아닌가요? 나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유감이에요, 라미레스 씨.” 그녀가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브라이언 부인!” 그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눈꺼풀 아래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손을 뻗어 열렬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는, 악수하고, 움켜쥐고, 매달렸다. “오브라이언 부인, 나 당신 못 봐요, 나 다시는 당신 못 봐요!”
경관들은 이 말에 웃음을 지었지만, 라미레스 씨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_111쪽, 「나 당신 못 봐요」에서
“여기 기사를 보면, 시장이 이 지역의 모든 쓰레기 트럭에 송수신 장비를 설치하도록 하겠다는 거야.” 그는 자기 손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원자폭탄이 우리 도시에 떨어지면, 이 라디오에서 우리에게 말해 준대. 그러면 우리 쓰레기 트럭이 가서 시체를 수거하는 거야.”
“글쎄요, 합리적인 방식 같은데요. 만약……”
“쓰레기 트럭이 말이야. 그곳으로 가서 시체를 전부 싣는 거라고.” 그가 말했다.
“시체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아요? 어쨌든 다시 싣고 와야 할 거고……” 그녀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단 한 번, 그것도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는 아내가 천천히 한 번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강제로 몸을 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몸을 돌려 의자로 걸어가서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을 하듯 멈춘 후,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_230쪽, 「환경미화원」에서
그들은 함께 소리쳤다. 함께 일어섰다. 의자가 넘어져 잔디밭을 나뒹굴었다. 남편과 아내는 몸을 가누지 못하며, 서로 손을 더듬어 상대방을 찾아 그러안으려고 했다. 점차 밝은 빛으로 변하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10초 후, 혜성 같은 거대한 불줄기가 허공을 가르고 올라가며, 별빛을 꺼트리고, 불처럼 빠르게 날아가 천천히 되돌아오는 은하수 속의 별 하나가 되어 버렸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마치 자신들이 너무도 깊고 어두워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절벽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고개를 들자, 그들은 서로가 흐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_297쪽, 「시작의 끝」에서
태양 돔은 어둡고 텅 비어 있었다. 푸른 천장 가운데에 높은 가스 소리를 내며 떠다니는 노란 합성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음식물도 없었다. 동굴만큼이나 추웠다. 그리고 천장에 새로 뚫린 수백 개의 구멍에서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가 계속 들어와 두터운 양탄자를 적시고 육중한 현대식 가구를 타고 흘러내려 유리 탁자 위로 떨어졌다. 정글이 이 방 안에도 이끼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책꽂이 위에서, 침대 소파 위에서. 빗방울이 구멍을 가르고 들어와 세 사람의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_375쪽, 「끝없는 비」에서
샌더슨 씨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소년의 말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소년의 말이 이해가 되자 그 흐름이 그를 휘감았다. 그는 신발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발가락을 옴찔대고, 발바닥을 굽혀 보고, 발목을 돌려 보기 시작했다. 그는 몰래, 슬쩍, 열린 가게 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산들바람을 타고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양탄자에 깊게 박힌 테니스 신발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정글의 풀숲을 디디고 있는 것처럼, 탄력 있는 점토에 깊이 박힌 것처럼. 그는 말랑말랑한 뒷굽에 몸무게를 실어, 친절한 대지가 자신의 몸을 충실하게 되튕기는 느낌을 맛보았다. 수많은 색의 불빛이 켜졌다 꺼지는 것처럼, 온갖 감정이 빠르게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_564∼565쪽, 「여름이 달려가는 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