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시인 김춘수가 이승에서 부른 생의 마지막 노래들을 엮은 시집. 시인이 쓰러지기 전 손수 편집한 이 시집에는 미발표작 「거지 황아전」외 1편을 포함하여 총 65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시인의 만년의 뜨거웠던 창작욕을 엿볼 수 있다. "꽃의 시인"답게 이번 시집의 제목 역시 꽃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친근하게 읽히고 있는 「꽃」을 비롯한 초기의 시편들과는 그 정서와 경향도 사뭇 다르다. 초기의 관념 위주로 흐르고, 의미 전달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던 작품들에 비해 후기시의 경향은 이따금 감정을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는 시어를 사용하는 등 한결 사실적이고 편안하게 읽힌다. <쉰한 편의 비가」에서 심화되기 시작한 죽음에의 절대적인 고독이 절정을 이루는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의 순수한 영혼과 마지막 정신적 실험의 궤적을 읽을 수 있다.
장 피에르 시몽 손을 잡는다고 옹두리와 뿌다귀 수나 La voyant 2004년 7월 2일의 비망備忘 시인의 어깨 비상飛翔 도리뱅뱅이 밝은 날 바위 발자국 S를 위하여 메르헨, 혹은 하이마트 슬픔은 이별을 위한 콘티 □ 불면不眠을 위하여 너 소리 또 하나의 소리 눈 그런 만추晩秋 패러디 키 작은 바람이 BYUN RAK 별 마당에 앉은 새를 보며 어디서 왔나 거지 황아전 메아리처럼 an event an event 만해 문학관 찢어진 바다 손과 손 하늘 위 땅 끝에 꿈에 본 잉구베이타 잉구베이타 장미, 순수한 모순 쥐오줌풀 만남을 위한 콘티 어느 날의 비망備忘 고향으로 가는 길 체 게바라 강설降雪 시안詩眼 앵오리 an event 통영 입추 지나면 나의 생가生家 여름밤 구두코를 위한 콘티 행간行間 또 새 두 마리 새 두 마리 바이칼호湖, 가보지 못한 봄밤 눈의 아리바이 춘일만보春日漫步 비망備忘 명정리明井里 그리움이 언제 어떻게 나에게로 왔던가 달개비꽃 후기 ㅣ 큰딸 김영희
■ 작품연보 1922년 경남 통영 출생. 1948년 『구름과 장미』(행문사) 1950년 『늪』(문예사) 1951년 『기』문예사) 1953년 『인인』문예사) 1954년 시선집 『제1시집』(문예사) 1959년 『꽃의 소묘』(백자사),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춘조사) 1969년 『타령조 . 기타』(문화출판사) 1974년 시선집 『처용』(민음사) 1976년 『김춘수 시선』(정음사) 1977년 『남천』(근역서재), 시선집 『꽃의 소묘』(삼중당) 1980년 『비에 젖은 달』(근역서재) 1982년 시선집 『처용 이후』(민음사), 『김춘수 전집』전3권(문장사), 1986년 『김춘수 시전집』(서문당), 1987년 시선집 『꽃을 위한 서시』(자유문학사), 1988년 『라틴 점묘 . 기타』(탑출판사) 1990년 시선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신원문화사) 1991년 『처용단장』(미학사), 시선집 『꽃을 위한 서시』(미래사) 1992년 시선집 『돌의 볼에 볼을 대고』(탑출판사), 시선집 『꽃의 소묘』(세계출판사) 1993년 『서서 잠자는 숲』(민음사) 1994년 『김춘수 전집』(민음사) 1996년 『호』(한밭미디어) 1997년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민음사) 1999년 『의자와 계단』(문학세계사) 2001년 『거울 속의 천사』(민음사) 2002년 『쉰한 편의 비가』(현대문학) 2004년 『달개비꽃』(현대문학) 2004년 11월 29일 별세.
■ 이 책은 영원한 “꽃”의 시인, 투명한 詩魂을 살라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시집! 당대의 큰 시인, 대여 김춘수 시인은 1946년 「애가」를 『해방 1주년 기념 사화집』에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시집 『구름과 장미』에서 유고시집이 되는 이 시집 『달개비꽃』까지 모두 25권의 시집과 시전집을 상재하였다. 그 외에도 7권의 시론집과 7권의 산문집을 남기는 등, 생의 어느 한 순간에도 붓을 놓지 않고 집필을 계속하였다.(아래 작품연보 참조) 시인이 쓰러지기 전 손수 편집하여 건네준 시집 『달개비꽃』에는 미발표작 「거지 황아전」외 1편을 포함하여 모두 65편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곧 출간 예정인 [김춘수 대표에세이] 선집에서는 김춘수 문학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는 글과 시인이 응시했던 현실에 대한 이해의 글들로 채워져 있다). 놀랍기만 했던 만년의 뜨거운 창작욕의 결실인 이 시집은 투명하고 순수한 영혼의 전신을 가림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꽃의 시인”답게 이 시집의 제목 역시 꽃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친근하게 읽히고 있는 「꽃」을 비롯한 초기의 꽃을 소재로 한 시편들과는 사뭇 정서도 경향도 다르다. 초기의 ‘절대고독’과 ‘관념(존재)’이 주를 이루었던, 때문에 의미 전달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던 작품들에 반해 후기 시의 경향은 한결 사실적이고 읽기 편안하다. 그리고 이따금 감정의 직접 노출 방식을 선택하고 있기도 한데, 이러한 형식은 초, 중기 김춘수 시인의 시세계에 비해 파격적이다. 최근작들 속에서 그러한 흔적을 찾아보면, “내 눈시울은 눈물에 젖고”(「손을 잡는다고」) “가도가도 꿈이 보이지 않았다.”(「불면을 위하여」) “커튼을 흔들어 놓고/바람은 무안한 듯”(「an event」) “기다림만 제 혼자 기다리고 있다.”(「체 게바라」) “제 혼자 안절부절하던”(「비망」) 등에서처럼 직접적인 감정의 노출을 보이는 시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의 노출은 절제를 전제로 이루어고 있기 때문에 비속하지 않다. 그것은 무구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대상(존재)들에게로의 연민에서 비롯되고 있는 감정인 때문이다. 또한 그 시선이 천사의 시선이자 시인의 시선임을 시인은 행간에서 보이고 있다. “시에는 눈이 있다./가지 않은 사람의 발자국만 본다.”(「시안」) “식탁보를 걷어보니 거기/천사 한 분이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었다./릴케가 보냈다고 한다.”(「춘일만보」) 그리고 시인은 그렇게 순수함을 잃지 않고 전생애를 살다갔음을 여든이 넘어 남긴 다음의 시는 잘 나타내고 있다. “나의 다섯 살은/꽃눈보라처럼 왔다./……/나의 나이 다섯 살 때/시인 라이나 마리아 릴케가 나에게로 왔다갔다.”(「그리움이 언제 어떻게 나에게로 왔던가」) 시인은 늘 팽팽한 긴장과 엄격한 언어의 정련 과정을 쉼 없이 지속했음을, 이 시집 중간에 수록된 백지의 시와 하단에 단 주석을 통해 천근의 말보다 무겁게 증명하고 있다. “…나의 백지는 말라르메와는 다르다. 언어로부터의 해방, 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해방(백지)이 주는 불안을 독자도 나와 함께 느낄 수 있을까?” 시인에게 평생 백지는 의식의 해방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비어 있음의 불안과 비어 있음의 충만을 공감각하는 시인의 팽팽한 의식이 시를 쓰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근작들에서는 죽음을 예감하는 시구들이 유난히 많았다. “잠이 든다./잠이 들면 거기가 내 집,”(「장 피에르 시몽」) “시인이 된 릴케는 죽음 앞에서/한뼘 더 빳빳해진다”(「시인의 어깨」) “여보란 말이 가까이에 와 있다.”(「메아리처럼」) “시간이 어디론가 제 갈 데로 다 가고 나면 그때/장미는 눈을 뜨며/시들어 갈까,”(「장미, 순수한 모순」) “어린 염소가/길을 잃고 어쩌나/나더러 함께 울어 달라고 한다.”(「고향으로 가는 길」) “내 생가가 눈을 맞고 있다. 내 눈에/참 오랜만에 보인다.”(「강설」) 등의 구절들이 가슴을 울린다. 이전의 시에서 시적 형식을 실험했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 자신의 정신을 극한으로 몰아 정신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쉰한 편의 비가』에서 심화되기 시작한 죽음에의 절대적인 고독은 이 시집 『달개비꽃』에서 절정을 이루며, 그 절대고독을 초월한 존재로 소년(순수)을 키워드로 삼았었다. 그러나 이제 시인의 침묵과 함께 영언 속에 가리워져버렸다. ● 나의 다섯 살은 햇살이 빛나듯이 왔다. 나의 다섯 살은 꽃눈보라처럼 왔다. 꿈에 커다란 파초잎 하나가 기도하듯 나의 온 알몸을 감싸고 또 감싸주었다. 눈 뜨자 거기가 한려수도인 줄도 모르고 발 담그다 담그다 너무 간지러워서 나는 그만 남태평양까지 가버렸다. 이처럼 나의 나이 다섯 살 때 시인 라이나 마리아 릴케가 나에게로 왔다갔다. ― 「그리움이 언제 어떻게 나에게로 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