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알랭 레몽 알랭 레몽Alain Remond은 프랑스의 유명 주간지『텔레라마(Telerama)』의 편집국장으로 이 잡지에 이라는 제목의 고정란을 집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사랑에 대하여, 밤에 대하여』(1971)『이브 몽탕』(1977)『내 눈의 기억들』(1993)『당신의 말을 막지 않았어!』(1994)『이미지들』(1997)『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2000) 등이 있다. 역자 : 김화영 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문학 상상력의 연구』『행복의 충격』『바람을 담는 집』『소설의 꽃과 뿌리』『시간의 파도로 지은 집』『어린 왕자를 찾아서』 등 10여 권의 저서 외에 미셸 투르니에, 르클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장 그르니에, 로제 그르니에, 레몽 장,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실비 제르멩 등 프랑스 주요 작가들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였고, 『알베르 카뮈 전집』(전18권) 『섬』『뒷모습』『율리시즈의 눈물』『내 생애의 아이들』『걷기 예찬』『마담 보바리』『지상의 양식』 등 다수의 역서를 내놓았다.
혁명이 휩쓸고 지나간 파리에서 젊은 날 의지하고 있던 신의 집을 나와 홀로서기까지의 숨찬 행로, 폭풍 같은 성장과 구도의 길. 삶의 중심에서 타오르는 한 젊은이의 열정! 알랭 레몽의 추억에 관한 3부작 중 1부『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김화영 역)은 99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고, 국내에도 소개돼 독자들에게 깊고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었다. 이번에 다시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소개되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2002년에 출간된 그의 연작 중 2부이다. 전작이 어느 날 문득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나서며 소년 시절 아버지와 가족에 얽힌 애잔한 기억들을 담았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소년에서 성장한 한 젊은이의 질풍노도와 같은 청년기의 열정과 고뇌를 담고 있다. 아직 정립되지 못한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격렬한 열정만이 가득한 모든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축전처럼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 그렇게도 사랑하고 싶었지만 끝내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스물한 살에 모로코에서 군복무를 하며 보냈던 백여 통의 편지를 우연히 집 안에서 발견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가난하고 식구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화자)은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수도원이 운영하는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착실하게 수업을 받는다. 가톨릭 집안 분위기에 젖어 너무도 자연스럽게 신부가 꿈이었던 소년은 ‘지옥’이라 생각하는 도시의 빈민굴이나 인도, 파키스탄으로 선교 순례를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일곱 살, 고교졸업반 시절 주인공은 ‘대변혁’을 맞는다. 그 대변혁의 도화선은 현실적인 사회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통일사회당(PSU)의 일원으로 활동중이던 철학선생 샤를르 블랑셰. 그를 통해 주인공은 철학, 문학, 인생 등 총체적인 가치들을 돌이켜보며 ‘어지간히도 얌전하게만’ 살아왔다고 각성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캐나다의 수도원과 로마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신과 종교에 대한 의혹과 회의에 빠져든다. 그러던 중 로마의 학생 시네클럽에서 상영이 금지된 영화 <알제리 전투>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 때문에 군복을 입는 군인은 되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해외파견 공익요원으로 알제리로 떠난다. 그는 알제리의 오지에서 배움의 열정 가득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초교육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알제리는 군부정권이 장악한 혼란 그 자체인 나라이기도 했지만, 주인공에게는 광막한 자연의 언어를 배우는 공간인 동시에 생에의 열정과 용기를 ‘비축’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알제리에서의 파견생활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온 주인공은 자유와 혁명이 회오리치는 파리에서 마침내 자신의 자유를 찾아 나선다. 자동차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삶이 나를 대신해서 결정을 내린’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게 된다. 견습사제 경력,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것이 고작인 그의 홀로 서기는 그렇게 전진한다. 신문사의 정기구독자 카드정리부터 통일사회당에서 정치적인 활동까지 온갖 체험의 시간을 갖는다. 또한 1965년 로마에서 처음 접하게 된 전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밥 딜런의 음악과 사상에 반해 『밥 딜런의 길』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크게 성공하기도 한다. 순탄치 않던 행로를 거침없이 헤쳐가며 세상으로 나온 한 젊은이의 삶의 궤적은, 이미 중년 신사가 되어 있음에도 힘찬 전진의 외침으로 끝을 맺는다. “달려라, 달려라, 삶이 전진한다.” “희망과 신념을 저버린 적이 없고 변함없이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렉스프레스(L‘express)지 편집자의 평처럼, 이 책은 생의 에너지가 넘치고 있는 책이다. 본문 중에서 주르주라의 오솔길들에는 지프와 트럭의 잔해, 땅에 새겨진 목숨을 건 싸움의 상처 같은 전쟁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다. 보잘것없는 것으로 연명하면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위하여 가난하게 맨손으로, 그러나 자랑스럽게 부자처럼 싸우기를 그치지 않았던 저 산악의 주민들. 저녁에 내 방에서 학생들의 숙제를 고치고 수업준비를 마치고 나면 나는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밤이 되어 어두워지고 가스 난방이 쉭쉭 휘파람 소리를 낸다. 유령들이 나타나는 시간. 트랑에서의 어린 시절, 내 형제자매들, 우리 부모님들의 싸움, 아버지의 죽음 등 마치 내가 벌써 너무 늙어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너무나 많은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시간이다. 내 나이 스무 살. 나는 카빌리아에 와 있다. 나는 이 모든 추억들, 여기 카빌리아에서 나를 찾아드는 이 모든 것들을 무엇에 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글을 쓴다.--- pp 96-97 영원은 현기증이 난다. 나를 빨아들이는 나선형과 같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영원한 삶, 항상 계속되는 삶을 어떻게 상상한단 말인가? 숨이 막힌다. 심장이 솟구쳐 목구멍에 걸리는 것만 같다. 나는 미루나무들이 늘어선 길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마치 몽유병자처럼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항상”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삶은 어쩔 수 없이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항상이란 불가능하다, 하고 트랑에서 나는 어느 여름 날 빌라르무아로 가는 길 위에서 혼자 생각한다.--- pp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