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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세계문학 단편선 21) 大江健三郎自選短編 (2014)

  • 저자 오에 겐자부로 지음
  • 총서 세계문학 단편선
  • 부제 사육 외 22편
  • 역자 박승애
  • ISBN 978-89-7275-751-1
  • 출간일 2016년 01월 31일
  • 사양 776쪽 | 145*207
  • 정가 20,000원

오에 단편의 최종 정본定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손수 가려 뽑아 고쳐 쓴, 정수精髓 23편

개들은 몹시 지저분했다. 온갖 종류의 잡종이 거의 다 모여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 개들이 서로 굉장히 닮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대형견에서 소형 애완견까지 또한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간 크기의 비슷비슷한 잡종 개들이 말뚝에 묶여 있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닮은 것일까? 나는 개들을 살펴보았다. 모두 볼품없는 잡종인 데다가 바싹 말랐다는 점이 닮았나? 말뚝에 묶인 채 적의라는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린 점일까? 우리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 적의라는 감정은 완전히 잃어버린 채 무기력하게 묶여 서로서로 닮아 가는, 개성을 잃어버린 애매한 우리, 우리 일본 학생. 그러나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정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일들에 있어 열중하기에는 너무 젊었든가 너무 늙었다. 나는 스무 살이었다. 기묘한 나이였고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나는 개들의 무리에 관해서도 금방 흥미를 잃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

 

이 사자들은 죽은 다음 바로 화장되는 사자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조에 떠 있는 사자들은 완전한 ‘물체’로서의 긴밀성,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죽고 난 다음 바로 화장된 시체는 이토록 완벽한 ‘물체’가 되어 보지 못하는 거다. 그것은 의식과 물체의 애매한 중간 상태를 천천히 움직이던 중에 급하게 화장되어 버린 것이다. 거기에는 완전하게 물체화될 시간이 없다. 나는 수조를 채우고 있는, 그 위험한 추이를 완주한 ‘물체’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확실하고 견고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이나 수조, 혹은 천창처럼 단단하게 안정된 ‘물체’라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전율 비슷한 감동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그래, 우리는 모두 ‘물체’다. 그것도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완전한 ‘물체’다. 죽어서 바로 화장된 남자는 ‘물체’의 양감, 묵직하고 확실한 감각을 모르겠지.
그런 거다. 죽음은 ‘물체’다. 그런데 나는 죽음을 의식의 측면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다. 의식이 끝난 다음에 ‘물체’로서의 죽음이 시작된다. 순조롭게 시작된 죽음은 대학 건물 지하에서 알코올 용액에 잠겨 몇 년이고 버티며 해부를 기다리고 있다.

「사자의 잘난 척」

 

당황한 어른들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리며 채광창으로 지하 창고를 들여다보았다. 빨리빨리 자리를 바꾸느라 이마를 툭툭 부딪치며 난리가 났다. 지상의 어른들 태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처음에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돌연 조용해지더니 채광창에서 위협적인 총부리가 내려왔다. 검둥이 군인은 민첩한 동물처럼 나를 잡아채어 자기 몸으로 바짝 껴안고 총구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다. 나는 검둥이 군인의 품에 감금되어 고통스러운 절규와 몸부림 속에서 이 잔혹한 상황의 의미를 모두 깨달았다. 나는 포로였다, 그리고 인질이었다. 검둥이 군인은 ‘적’으로 변해 있었고 나의 아군은 뚜껑의 저편에서 허둥거리고 있었다. 분노와 굴욕감, 배신당했다는 슬픔이 내 몸속으로 뜨거운 불길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포가 부풀어 올라 나의 목구멍을 막으며 오열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억센 검둥이 군인의 품속에 갇힌 채 불타는 분노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렸다. 검둥이 군인이 나를 인질로 삼다니……

「사육」

 

나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선실 잡동사니와 그 그림자 속에서 유령을 발견할까 봐 두려워 눈을 꾹 감고 겁에 질린 채 잠의 공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잠이 들기 직전 나는 언제나 공포에 사로잡혔다. 죽음의 공포, 나는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죽음이 무서웠다.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실제로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이 짧은 생 다음에 몇억 년도 더 무의식의 제로 상태로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 이 우주, 그리고 또 다른 우주가 몇억 년이고 존재하는데 나는 그동안 죽 제로 상태다. 영원히! 나는 사후의 무한한 시간을 생각할 때마다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나는 물리 수업 첫 시간에 이 우주에서 똑바로 로켓을 쏘면 그 너머에는 ‘무의 세계’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고 만다는 소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로켓이 결국은 이 우주로 돌아온다, 무한히 똑바로 멀어지는 동안 돌아오는 것이다, 라고 물리 선생이 설명하는 동안 기절하고 말았다. 오줌을 싸고 똥을 싸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공포에 질려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이 돌아온 다음에 엄습하던 수치심, 악취를 풍기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 견디기 어려운 여자애들의 시선…… 그러나 그보다도 나는 물리적 공간의 무한성과 무한의 개념으로부터 시간의 영원성과 죽음으로 제로가 되는 자신의 존재 등에 공포를 느껴서 기절하고 말았다는 말도 못 하고 선생과 반 아이들에게 내가 간질이라고 믿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로부터 나에게는 마음을 나누는 진실한 친구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한없이 먼 곳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다. 죽은 사람이라면 의식이 없으니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꿈속의 나는 무한히 먼 별에서 혼자서 눈을 뜨는 공포를 늘 의식하고 있었다. 악랄한 꿈 배급자의 간교한 발명이다. 죽음의 공포와 그 악몽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른 생각에 정신을 쏟으려고 악전고투를 벌이다가 비몽사몽 중에 회상에 빠져들었다.

「세븐틴」

 

그 분노에 대해서 예를 들어 다카야스 갓짱의 망령이 나타나 ‘넌 결국 자기를 위해서도 타인에게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긴 여행을 와서는 여자 청중에게 무시하는 말을 듣고도 대답 하나 시원스럽게 못 하고, 여행 목적이었던 약속은 바람맞고 그러고도 상대방 원망도 못 하고. 그 얼간이 같은 자신에게 화가 나는 거야’라는 소리를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무력감이라는 재에 파묻혀 있는 불같은 분노는 내 삶의 근본에 긴 세월에 걸쳐 장착된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소설을 써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이 경험을 소설로 쓰게 된다 해도 지금 내 속에서 솟아오르는 분노를 제대로 그려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우리 아버지가 급사했던 나이에 가깝다. 세는 나이로 쉰 살의 아버지는 한겨울 밤중에 윗몸을 일으켜서 옆에서 자고 있던 엄마가 너무 놀라 평생 두통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 정도의 분노에 불타는 소리를 지를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마침내 홍수가 진 강에 거룻배를 타고 나갔다가 죽었다. 그 아들인 나 또한 어정쩡한 자신의 삶을 끝낼 때 불쌍하게도 분노의 고함만 지르게 되지는 않을까? 사후에 원자 혹은 분자로 이 세상에 동화. 그 평안을 가져다주는 죽음에 관한 사상도 우리가 젊은 시절부터 동정이나 하고 진지하게 상대하지도 않았던 그 다카야스 갓짱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 생각이야말로 분노의 고함에 더불어 면할 수 없는 죽음을 응시하는 그 최후의 순간 유일한 위로일지도 모르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잘한 생각들도 어느새 뜨음해지고 나는 그저 분노의 덩어리가 되어 50미터 정도 되는 두 개의 방사제 둑 사이를 헤엄쳤다.

「거꾸로 선 ‘레인트리’」

 

그런 H를 지켜보고 있는데 불쑥 2주 전에 그가 했던 말의 의미가 이해되었다. 확실히 스나가와로 가는 버스에서 친구들에게 ‘혼의 이륙’ 연습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 시절 정형화된 일련의 꿈의 연장에서 본 또 하나의 꿈의 추억이었다. 숲 속 골짜기에 아이들이 모여서 여기저기 비탈에서 글라이더 활공처럼 지면을 뛰어가다가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연습을 했다. 죽을 때 혼이 원활하게 육체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혼의 이륙’ 연습인 것이다. 혼은 육체를 빠져나가면 골짜기의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의 껍데기인 유해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처리되는 걸 내려다보며 글라이더 활공을 계속한다. 그리고 더 큰 원을 그리며 올라가 골짜기를 둘러싼 숲의 꼭대기에 착지하는 거다. 혼은 숲의 수목 가운데서 오랫동안 머문다. 다시 새로운 육체로 들어가기 위해서 글라이더 활공으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날이 오기까지…… 이 죽음과 부활의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골짜기의 아이들이 비탈길에서 양팔을 벌리고 부웅! 하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혼의 이륙’ 연습.
이 꿈에 대해서 『동시대 게임』에 쓰지 않은 건 백혈병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H만큼 그 장편에 골몰한 동안의 나에게는 죽음과 부활에 관한 절실함이 없었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H는 생애 최후의 비평에서 그 점을 지적해 주고 떠났다.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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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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