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의 작사 작곡가이자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윤극영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2005년 현대문학 창간 50주년 기념사업도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출간된 전집. 그는 여러 장르에 걸쳐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집필하였으나 거의 대부분 미발표 원고로 남겨두었다. 전집에는 미완성작 일부를 제외하고, 동시, 동화, 동요는 물론 시, 소설, 시나리오, 회고록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전재하였는데 이는 고인의 며느리인 이향지 시인의 숨은 노력의 결과이다. 제1권의 동시는 근대의 우리 풍속―한가위, 봄, 설날, 어머니날, 어린이날, 오월 등―과 정서를 살필 수 있는 작품이 많아 원전을 충실하게 존중하여 당시 표기를 그대로 살렸으며, 총 142편이 수록되었다. 시는 264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발견된 320여 편 중 미완성작은 제외시켰다. 한 번도 시를 발표한 적은 없었지만 부단히 시작을 멈추지 않았고, 혼란한 시대를 시로 추스르며 넘겼음을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요는 발표 미발표를 포함 188곡을 악보와 함께 수록하였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미래이다. 윤극영 작품 전편에는 그러한 인식이 짙게 깔려 있으며, 그의 어린이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해맑은 문장은, 그가 살다 간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이념을 초월하는 그의 넉넉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화보 윤극영 전집을 엮으며 동시 동요로 불리는 동시 반달 ㅣ 고기잡이 ㅣ 설날 ㅣ 꾀꼬리 ㅣ 옥토끼 노래 ㅣ ...... 곡 붙이지 않은 동시 밤송이 ㅣ 고추잠자리 ㅣ 포도송이 ㅣ 눈보라 꽃보라 ㅣ ...... 시 창작연대가 표기된 시 1956년 과제 ㅣ 조망 ㅣ 미진 ㅣ 만세 ㅣ 나 혼자 ㅣ 낙엽 ㅣ ...... 1957년 높은 형식 ㅣ 잽히는 것 ㅣ 탄두 ㅣ 닭소리 ㅣ 새 ㅣ ...... 1958년 윤 ㅣ 치자 ㅣ 연 ㅣ 두더지 ㅣ 시련 1964년 굼벵이 ㅣ 사랑 ㅣ 자취 ㅣ 생일날 ㅣ 광강에게 ㅣ 감나무 ㅣ ...... 1965년 克榮아! ㅣ 계절진단 ㅣ 도시 ㅣ 대화 ㅣ 눈 ㅣ ...... 1968년 비석 ㅣ 노래비 ㅣ 그리움 ㅣ 제단 ㅣ 되풀이 ㅣ 불침번 ㅣ ...... 1969년 꿈 ㅣ 우정 1970년 집1 ㅣ 섬나라 ㅣ 모색 ㅣ 나팔 ㅣ 복조리 ㅣ 고궁 ㅣ ...... 단시, 병풍시 여치 ㅣ 여치 ㅣ 가을손 ㅣ 군매 ㅣ 매 ㅣ 국1 ㅣ ...... 동요 윤극영 111곡집(증보) 반달 ㅣ 고드름 ㅣ 할미꽃 ㅣ 꼬부랑 할머니 ㅣ 설날 ㅣ ...... 미수록 동요(초기 동요 발굴편 포함) 새떼 ㅣ 한가위 ㅣ 시냇물 ㅣ 새싹의 노래 ㅣ 귀뚜라미 ㅣ ...... 동시, 시 속의 속어풀이
■ 지은이 윤극영 1903년 서울 종로 출생으로 1921년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를 졸업하고 경성법전 중퇴. 동경 ‘동양음악학교’와 ‘동경음악학교’에서 작곡, 성악 등을 공부했다. 1923년 소파 방정환 등과 <색동회>를 창립. ‘어린이날’제정하였으며 1924년 한국 최초의 본격 동요인「반달」「설날」등을 작사·작곡하여 보급하였다. 그밖에도 1940년 <하얼빈예술단> 조직이었으며 1956년 ‘제1회 소파상’ 수상하였고 1988년 11월 15일 85세의 나이네 노환으로 타계하였다. 생애 통산 6백여 곡의 동요와 교가 등을 지었으며, 동시·동화·동요·시·수필·사회비평·소설·시나리오 등 다량의 미발표 유고를 남겼다. 서울 화양동 '능동 어린이 대공원'에 창경원에서 옮겨 세운 「반달 노래비」가 있다. * 생애 통산 6백여 곡의 동요와 교가 등을 지었으며, 동시럿옴?동요렘첨수필렌英맏綢脂소설렘처じ??등 다량의 미발표 유고를 남겼다. 서울 화양동 '능동 어린이 대공원'에 창경원에서 옮겨 세운 「반달 노래비」가 있다. ■ 엮은이 이향지 시인. 1942년 경남 통영생. 1967년 부산대 졸업. 1989년 《월간문학》등단.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 저서로는 『구절리 바람소리』『내 눈앞의 전선』『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등의 시집과, 『금강산은 부른다』『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산아, 산아』등의 산악관련 저서가 있다.
■ 이 책은 『윤극영 전집』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학사적 의미를 던져준다. 그동안 우리 역사는 동요나 동시를 일종의 변두리 장르로 취급하여 균형을 잃을 정도의 홀대를 해왔고 문학사에서도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윤극영의 문학 세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근대 문학이 동요나 동시를 통해 형성되고 발전되었다는 유력한 실증을 갖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윤극영에게 주어진 역사적 의미가 사라져가는 모국어를 동요 또는 동시를 통해 지키고 되살린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 한국 근대 아동문학의 개척자 윤극영 문학세계에 대한 진실한 재평가 한국 근 * 현대 아동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 윤극영의 생애와 문학세계 전반을 심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윤극영 전집』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전집은 윤극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2005년 현대문학 창간 50주년 기념사업도서'로 출간되었다. 윤극영은 우리에게 「반달」의 작사 작곡가이자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문학의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여러 장르에 걸쳐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집필하였다. 그러나 그 스스로 아동문학가로 남기를 원해서인지 거의 대부분 미발표 원고로 남겨두었다. 전집에는 미완성작 일부를 제외하고, 동시, 동화, 동요는 물론 시, 소설, 시나리오, 회고록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전재하였다. 끝내 빛을 못 볼 뻔한 유고를 정리하여 전집 출간까지에는 고인의 며느리인 이향지 시인의 숨은 노력의 결과임을 밝혀둔다. 전집은 제1권 운문편(동시, 시, 동요)과 제2권 산문편(동화, 소설, 시나리오, 수필, 사회평론, 회고록, 연보)으로 구성되었다. 제1권의 동시는 근대의 우리 풍속―한가위, 봄, 설날, 어머니날, 어린이날, 오월 등―과 정서를 살필 수 있는 작품이 많아 원전을 충실하게 존중하여 당시 표기를 그대로 살렸으며, 총 142편이 수록되었다. 시는 264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발견된 320여 편 중 미완성작은 제외시켰다. 한 번도 시를 발표한 적은 없었지만 부단히 시작을 멈추지 않았고, 혼란한 시대를 시로 추스르며 넘겼음을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요는 발표 미발표를 포함 188곡을 악보와 함께 수록하였다. 제2권의 동화는 12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동극을 염두에 둔 작품들로 추측된다. 중편소설은 1960년대 중반에 씌어진 것으로 보여지며, 6?25 이후 사회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미완성 시나리오는 제목은 미정이지만 이야기의 결말까지 가 있는 미완성작으로, 분단 상황 속에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의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수필, 사회평론, 회고록 등은 윤극영 개인사와 개벽기의 아동문학과 어린이운동사 뒷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특히 회고록(「반달」노래에 실려온 반생, 사상계)에는 최근 일각에서 문제삼고 있는 그의 친일논쟁을 불식시킬 내용도 실려 있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미래이다. 윤극영 작품 전편에는 그러한 인식이 짙게 깔려 있으며, 그의 어린이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해맑은 문장은, 그가 살다 간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이념을 초월하는 그의 넉넉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 전집 중에서 노래는 적어도 삼천만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니라고 못한다. 노래가 혼자서 잘난 체 하더라도 시대 민중에 알맞지 않을 경우라면 싫어도 그때는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노래는 무언의 지도력을 발휘합니다. 마치 민중의 앙찬을 끌어당기는 침투공작 같습니다. 노래의 분한分限을 넓혀 이것을 예술이라고 부른다면 예술은 한층 더 정치에 방불합니다. 예술은 사기邪氣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감합니다. 창의는 항상 자기를 단순화시키며 방대한 세계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 자발력이야말로 민의民意와 민정民政에 깃드는 민지民知의 차원이 아닐까요. 예술은 자기의 불순을 미리 압니다. 그러므로 그 반성의식이라든가 내연적 발동이 누구보다도 강렬한 것입니다. 자기를 새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열중하는 것입니다. 예술은 남의 흉내를 싫어합니다. -“「반달」노래에 실려 온 반생” 중에서 ■ 엮은이의 말 중에서 선생은 돌아가실 때 보따리로 하나 되는 분량의 유고를 남겼다. 이 육필원고들은 선생의 책상 한켠에서 덮개도 없이 빛과 바람과 담배연기를 마시며 오랫동안 쌓여 있던 것들이어서, 손을 대면 푸설푸설 무너져내리는 상태의 것들이 태반이었다. 종이가 찌들고 잉크빛이 바래고 약어로 씌어진 한자가 다량으로 섞여 있어서 입력 작업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것들은 말끔히 제 모습을 찾아 새로운 공간에서 영생을 얻게 되었다. 한 가지 송구하고 아쉬운 것은 선생에게는 이런 일을 도맡아줄 제자나 후학도 없는 터여서 며느리인 제가 엮어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드러난 이름은 저의 것이나 유족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 집결되어 있음을 살펴주시기 바란다. 이 작품들은 진작에 사회로 환원시켜야 할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