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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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돌고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영혼이 맑아지고 가슴이 깊어진다. 몸속에서 소리의 시원始原이 깨어난다. 울음소리 한 소절 한 소절 다 시로 다가온다. 누가 부르는 것 같아 사방을 둘러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것보다 돌고래 울음소리 잠깐 듣는 게 마음에 백배 유익할 것이다.

 

지난여름. 고래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먼저 김해 천문대에 가 천상天上의 고래를 보고 울산에 가 방어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고래턱뼈 아치와 고래박물관을 볼 셈이었다. 그런 다음 반구대 암각화 바위 고래(진짜 돌고래?) 58마리를 찾아볼 계획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고래에 대한, 내가 가지고 있는 빈약한 자료들을 들췄다.

자산어보는 고래에 대해 짧게 기록하고 있다.

빛깔은 칠흑색이고 비늘이 없다. 길이는 백여 자, 혹은 이삼백여 자인 놈도 있다. 흑산 바다에도 흔히 나타난다. ……일본인들은 고래회를 매우 좋아하는데 화살에 약을 발라 잡는다고 한다. 지금도 표류해 온 죽은 고래 중에는 화살을 지니고 있는 놈이 있다. 이는 그 화살을 맞고 도주했다가 표류하게 된 것이다. 또 두 고래가 서로 싸우다가 한 마리가 죽어 바닷가에 표류하는 놈이 있다. 고래를 쪄서 기름을 내면, 기름 여 독을 얻을 수 있으며, 눈은 잔을 만들고 수염은 자를 만들며, 그 등뼈는 잘라 절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고금古今의 본초 本草에 이 기록이 없음은 이상한 일이다.”

 

고래에 대한 기록이 너무 간단해 책을 뒤적이다가 상광어를 찾았다. 상광어는 국어사전에 나와 있지 았고, 대신 상괭이가 있다.

돌고래과의 포유동물. 돌고래 무리 가운데 가장 작은 종류로, 등지느러미가 없고 머리가 둥글며, 주둥이가 튀어나오지 않은 것이 특징임. 우리나라 연해와 인도양 및 서태평양 해안의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데, 기름을 짜는 데만 쓰임.”

상괭이란 말은 흑산도(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곳) 근처, 임자도 출신 후배한테 들었었다. 강화도 앞바다에는 돌고래 비슷하게 생긴, 주민들이 혁지라 부르는 포유류가 있다. 혁지는 매우 빨라 날렵한 숭어를 잡아먹고 산다고 한다. 작은 배에 용량 큰 엔진을 부착한 선외기보다도 더 민첩하게 움직인다. 몇 마리가 떼를 지어 나타난다. 이런 특징을 임자도 출신 후배에게 말했더니, 그게 바로 상괭이라고 했다.

자산어보는 상광어(상괭이)를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큰 놈은 열 자 남짓 된다. 몸은 둥글고 길며 검은 빛깔이 큰 돼지와 비슷하다. 유방과 사처私處는 부인의 그것과 유사하다. ……흑산도에 가장 많다. 그러나 지방 사람들은 그 잡는 법을 모른다. 진장기陳臟器는 이르기를 상괭이(해돈)는 바다에서 나고 바람이나 조수를 살펴보고 나서 출몰하며, 모양은 돼지 같고 코는 뇌 위에 있다. 소리를 내면서 물을 곧장 위로 뿜는다.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짓는다. 그중에는 곡지曲脂가 있다. 이 곡지로 등불을 밝혀 도박장에 비추면 곧 환해지나 책을 읽고 공작工作하는 데 비추면 곧 어두워진다. 속담에 이 생물은 게으른 여자가 변한 놈이라고 했다.”

나는 자산어보에서 말하는 곡지를 강화도 사람들이 혁지라 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기름인데 도박장에서는 잘 타고 공부할 때는 어두워진다니, 참 재미난 기록이다. 나는 강화도에 살며 혁지를 여러 번 보았다. 혁지 기름이 피부병에 탁월한 치료 효과가 있어 옛날에는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혁지가 상괭이고 상괭이가 상광어가 확실하다면, 나는 살아 있는 돌고래를 내가 살고 있는 앞바다에서 여러 번 본 것이다.

 

김해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남아 천문대에 가긴 이른 시간이었다.

시간도 보낼 겸 김수로 왕릉에 갔다. 물고기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 쌍어문雙魚文 문양을 볼 생각이었다. 안타깝게도 관람 시간이 끝나 막 문을 닫고 있었다.

사십육 년간 허황옥(가락국 수로왕비)을 추적한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는 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란 저서에서 쌍어( 자연적인 능력이 있는 신어) 사상의 뿌리를 밝히고 있다. 책에 의하면, 기원전 7세기부터 형상이 나타나는 쌍어 사상은,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서 출연하여 페르시아, 인도, 운남, 사천을 거쳐 가락국에 전해지고 일본 야마타이로 전파된다. 쌍어 사상의 자취는 세계 도처에 널려 있다. 인도의 건물들, 파키스탄의 자동차, 재물 신을 모시는 이나미 신사의 수호신, 유대인들의 오병이어, 네팔 사람들의 부처님 심장을 보호하는 물고기 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릉 대문과 절의 수미단 장식, 고사 지낼 때 쓰는 북어 두 마리 풍습 등이 쌍어 사상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또 쌍어 사상의 전파 과정과 연관된 문화로 고인돌, 제주도 돌하르방, 언어(, , , , 가래, 메뚜기 등 사백 여개의 한국어가 인도 드라비다어 계통의 어휘라는 미국 언어학자의 주장) 등을 들고 있다.

쌍어문을 보지 못한 아쉬움 털며 하늘의 물고기 보러 택시 타고 김해 천문대를 향했다. 천문대에 올라가 여름에 볼 수 있는, 하늘에서 빛나는 돌고래를 보리라. 택시는 구불텅구불텅한 길을 한참 올라가 멈췄다. 택시에서 내려서 산길을 걸어 올랐다. 길 중간 중간에 사계절 대표 별자리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 이 분 정도 산길을 오르자 거대한 알처럼 보이는 천문대가 눈앞에 들어왔다.

 

날씨가 더워 바람을 쐬러 나와서일까, 천문대에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어떤 이들은 산악자전거를 타고 천문대 앞까지 숨을 헐떡이며 올라왔다.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마에 불빛을 달고 등산로로 올라왔다. 천문대에 모인 사람들 전체를 놓고 보면 아이들이 제일 많았다. 유치원에서 밤에 견학을 왔는지, 단체로 움직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보다 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김해시 불빛이 더 많았다. 김해시는 협곡을 따라 길게 발달된 도시다. 불빛이 켜켜이 쌓인 아파트 별자리도 있었고, 용처럼 긴 가로등 별자리도 내려다보였다. 또 유성처럼 움직이는 자동차 별자리, 교회의 붉은 자 별자리도 있었다.

노천극장에서는 별에 대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터져 나왔다. 관람 시간이 다 되었으니, 매표를 서두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표를 끊고 실내로 입장을 하자 사방이 어두웠다. 안내원이 여러 명 있었는데 그들은 레이저포인터로 관람객들을 안내했다. 관측실마다 특성이 있었다. 어떤 관측실은 창문만 열려 있기도 했고 어떤 관측실은 천장 전체가 개폐 가능해 보였다. 또 관측실과 관측실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에 망원경이 설치된 곳도 있었다.

 

별 해설사는 하늘을 보지 고도 레이저포인터를 머리 위로 쏴,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별을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해설사들이 쏘는 레이저 광선은 푸른 길을 내며 하늘로 길게 올라갔다. 마치 별에 닿을 것만 같기도 했다. 몇 명씩 팀을 짜 이동하며 별자리 해설을 듣고 그곳에 설치되어 있는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천체망원경은 보고자 하는 별의 이동속도와 방향을 감안하여, 자동으로 움직이게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렌즈를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주는 부모도 있었다. 키 작은 한 아이가 까치발을 하고 망원경에 힘을 주며 매달리자 안내원이 주의를 줬다.

백조자리, 사자자리, 북두칠성, 직녀성…… 등의 별자리 설명을 들었다. 여름 별자리를 이루고 있는 별들 중, 특징이 뚜렷한 별에 천체망원경 렌즈가 고정되어 있었다.

예상한 것과 달리 천문대의 모든 망원경 렌즈는 지정된 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크게 실망했다. 별자리 교육을 받고 나면, 망원경을 움직여가며 이 별 저 별 살펴볼 기회를 줄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러기엔 천체망원경은 너무 크고 다루기가 복잡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천체망원경으로 돌고래자리 별들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별들에게 돌고래의 탄력 있는 피부를 상상으로 붙여도 주고, 빛나는 돌고래의 깊은 울음소리에 귀를 적셔보고도 싶었다. 그러면서 내 말을 잘 안 듣는 나와, 깊고 푸른 삶을 살자고 허튼 약속이라도 하고 싶었다. 천상에 뛰어오른 한 마리 돌고래처럼, 외롭지만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자고 맹세를 하고도 싶었다. 하긴, 천체망원경으로 돌고래자리 별들을 못 보았다고 맘 약속들을 못할 것은 또 뭐 있겠는가.

 

강화도 앞바다에서도 돌고래의 일종인 혁지가 가끔 그물에 걸리기도 한다. 어부들은 혁지가 잡히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슬프게 울어, 맘이 짠해 살려준다고 했다. 어부들 말에 의하면, 혁지는 암수 짝을 지어 다니는데 한 마리가 그물에 걸리면 다른 한 마리가 도망가지 고 그 주위를 돌며 계속 운다고 했다.

4등성 별 다섯 개로 되어 있는 돌고래자리는 견우성 근처에 있다. 별자리 모양은 다이아몬드 형이고 여기에 꼬리라는 뜻의 데네브별이 연결되어 있다. 돌고래자리는 이 형상이 마치 돌고래가 물을 차고 오르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돌고래의 마름모 형상을 서양에서는 옛부터 욥의 관이라고도 했는데 그 정확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마름모꼴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는 몇 개가 있다. 그중 하나는 견우와 직녀의 부부 싸움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을 하고 나자 견우는 일을 하지 않고 매일 놀기만 했단다. 화가 난 직녀는 베틀을 돌리다가 창밖에서 놀고 있던 견우에게 베틀의 북을 던져버렸다. 돌고래자리의 마름모가 바로 그 북이라고 한다. 아무튼 그 일이 원인이 되어 옥황상제가 둘을 떼어놓게 되었다고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에 실려 있다.

또 이와는 다른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중국신화전설 1에 있다. “선녀가 은하의 동 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주 신기한 실을 베틀에 걸어 아름다운 빛깔의 감들을 첩첩이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빛깔이 변하는 감으로 천의天衣라고 하였는데 바로 하늘에게 바치는 이라는 뜻이다. 하늘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을 입었던 것이다. ……그 맑고 야트막한 은하를 사이에 두고 인간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를 치는 우랑牛郞이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소는 그에게 직녀와 다른 선녀들이 은하에 와서 목욕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들은 하늘하늘하고 가벼운 들을 벗어놓고 맑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푸른 물결 일렁이는 수면에 하얀 연꽃들이 피어난 것 같았다.”

여기부터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과 유사하게 전개된다.

직녀는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쓰라린 이별을 하고는 천신에게 잡혀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어지는 글은, 칠월 칠석에만 만나는 견우와 직녀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런데 한 가지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직녀와 견우가 나눈 서신에 대한 이야기다.

하얀 비단을 깔아놓은 듯한 은하수 양 에서 반짝반짝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그것이 바로 견우성과 직녀성이다. 그리고 견우성 직녀성과 직선을 이루고 있는 작은 별 두 개는 그들의 아들과 딸이다. 그보다 조금 먼 곳에 네 개의 작은 별들이 사각형 모양(돌고래자리)으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직녀가 견우에게 던져준 베틀 북이라고 한다. 또 직녀성에서 좀 떨어진 곳에는 세 개의 작은 별이 있는데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우랑이 직녀에게 던져준 소의 코뚜레라고 한다. 그들은 베틀 북과 코뚜레에 편지를 묶어서 던져 서로의 그리움을 전했던 것이다.”

 

별을 보는 내내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별에는 사람들 맘을 들뜨게 하는 어떤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본 마지막 천체망원경은 달을 잡고 있었다. 달이 점점 기울고 있어, 나무 뒤로 숨어버리면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렌즈를 통해 들어온 달은 너무 선명했다. 분화구 모양이 또렷이 보였고 달에 반사되는 빛은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 색득했다. 천문대를 나서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달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나는 시간의 벽 머에서 들려오는 돌고래 울음소리를 떠올리며 천문대 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내 상처와 내가 만난 사람들의 상처가 떠오르며 마음속에 상처의 별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멀리 푸른 하늘을 가고 있는 돌고래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이 오염되면 영영 사라질 돌고래야, 는 언제까지 푸른 하늘을 항해할 것이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실려 있는, 인간이 고래의 삶에 어떤 치명타를 주고 있는가에 대한 글을 인용하며 객설을 접는다.

긴수염고래는 이 헤르츠의 소리를 아주 크게 낸다. 이 헤르츠는 피아노가 내는 가장 낮은 옥타브의 소리에 해당한다. 바다에서 이렇게 낮은 주파수의 소리는 거의 흡수되지 않는다. 미국의 생물학자 로저 페인의 계산에 따르면 이 헤르츠의 소리를 이용한다면 지구 상에서 가장 먼 두 지점에 떨어져 있더라도 두 마리의 고래가 상대의 소리를 알아듣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즉 남극해의 로스 빙붕氷棚에 있는 고래가 멀리 알류샨 열도에 있는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고래는 자신들의 역사의 거의 전 기간 동안 지구적 규모의 통신망을 구축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광대무변한 심해에서 15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고래들은 사랑의 노래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증기선이야말로 고래들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소음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상선과 군함의 숫자가 점점 증가하면서 대양의 소음 수준은 눈에 띌 정도로 높아졌다. ……긴수염고래의 최대 교신 거리가 지금부터 200년 전쯤에는 대략 1만 킬로미터였다. 이렇게 멀던 거리가 오늘날에는 수백 킬로미터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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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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