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약도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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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회

택배 아르바이트 하는 동네 형님 차를 탔었다. 강화도에 십여 년 살고 있으면서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았고 그곳들을 가보기에는 택배차만 한 것도 없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라는 강화도는 생각보다 넓었다. 산골에 숨어 있어 처음 가보는 마을도 많았고 멀리서 보면 산자락에 간신히 붙어 있는 마을도 실제 가보면 그 규모가 상당히 크기도 했다. 동네 형님은 운전을 하고 나는 전달할 물품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택배라고 하고 위치 묻기를 반복했다. 몇 마을을 지나자 사람들이 위치를 설명해주는 말에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집을 설명하는 기준점을 한결같이 교회로 잡고 있었다. 교회를 지나 몇 번째 길로 들어오라든가 아니면 교회를 향해 쭉 올라오라고 하거나 교회로 마중을 나온다는 등의 대답이 거지반이었다. 아마 교회가 시골에서는 제일 큰 건물이기도 하고 마을의 중심에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해서, 운전하는 형님에게 일단 마을 교회를 먼저 찾고 전화를 하면 된다는 아이디어를 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왠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오류내 마을은 마을 이름처럼 냇가를 기준으로, 삼동암리는 바위를 중심으로, 쑥밭다리는 쑥밭을 기준점으로 설명해준다면, 하는 다소 낭만적 바람이 내심 있어서였다.

일본의 한 학자는 약도를 묻는 방법으로 사람 심리를 연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같은 곳에서 같은 지점을 물어도 사람마다 약도를 그려주는 것이 다 다르다는 점이 연구의 출발점이다. 어떤 사람은 생맥줏집, 삼겹살집, 해장국집에, 어떤 사람은 미용실, 의상실, 화장품 가게에, 또 어떤 사람은 서점, 가로수, 전통찻집에 기준을 두고 약도를 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 약도에는 그 사람의 생활과 심리가 충분히 묻어날 만도 해 일본 학자의 연구에 쉽게 수긍이 갔었다.

그날 택배차를 타면서 참신하게 고목나무를 중심으로 집 위치를 설명하는 할머니 목소리를 접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오후 늦게서부터는 천둥 번개가 치고 세찬 비가 내렸다. 시골 마을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고 전화기는 대부분 꺼져 있어 애를 먹었다. 어렵게 찾아가 왜 전화기를 꺼놓았냐고 물으니 낙뢰 맞을까봐 아예 뽑아놓는다고 했다. 바닷가 마을이라 벼락이 많이 치기는 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보면 강화도에서 벼락 맞아 죽은 사람 기록이 유난히 많기도 하다. 인위적인 전화 벨 소리를 끄고 자연의 소리 중 가장 크고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어른이신 천둥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의 뜻을 헤아려보고 있는 듯한 촌부들을 찾아 그날 택배는 밤 게까지 이어졌다.

함씨는 고향이 어디요? 누군가 물을 때면 나는 중앙탑하고 광개토대왕중원비 있는 충주 중원군이라고 대답했었다. 그곳이 요즘, 대운하 물류 터미널이 들어서고 대운하 최고 수혜지가 될 것이라는 말로 시끄럽다. 걱정이다. 수 억 년 걸쳐 만들어진 물길보다 더 긴 물길을 오 년 안에 만든다는 사람들의 발상이 무섭다.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은 광속도의 전이 속도를 가진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우리 시대 우리 정신의 약도는 무엇일까. 정말 건강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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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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