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사리

페이스북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블로그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링크 복사하기

54 회

해 뜨기 전 바닷가 산책을 나섰다. 일 년 중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백중사리(음력 7월 보름)라 해수욕장 모래밭이 물속에 잠겨 있다. 긴소매 옷을 입었는데도 기온이 내려가 썰렁하다. 오랜만에 피서 인파에서 해방된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하다. 멀리 선두리 포구에서 출발한 새우 그물 매단 배 두 척이 선수 포구 쪽으로 젓새우 잡으러 가며 물살을 가른다.

그제는 모 병원에서 후원하는 보육원 초등학생들이 뻘 체험하러 해수욕장에 왔다. 친구가 학생들 인솔자로 온다며 내게 뻘 안내를 부탁했다. 학생들을 기다리며 나는 적잖은 고민을 했다. 어찌할 것인가. 뻘밭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이곳 뻘은 20007월 천연기념물 419호로 지정되었으니 그냥 바깥에서 구경만 하자고 할까. 멀리서 오기도 하고 뻘을 처음 보는 학생들도 있을 텐데…… 뻘 촉감을 한번 느껴보게 하는 게 좋기도 할 것 같고 여간 고민이 되는 게 아니었다. 고민 끝에 이왕에 학생들에게 뻘을 안내할 바에 살아 있는 뻘을 느껴보게 하자는 결심이 섰다. 여름내 사람들이 밟아 딱딱하게 굳어져 작은 게 한 마리 살지 않는 해수욕장 앞 뻘을 보여주는 것보다 근처 살아 있는 뻘을 보여주며 뻘은 여러 생명체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임을 일깨워주기로 했다. 그게 죽은 뻘을 보여주는 것보다, 뻘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데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이들은 드넓게 펼쳐진 뻘을 보고 좋아했다. 칠게를 잡아 와 이름을 물어보는 아이도 있었고 뻘에 자라는 풀이 신기한 듯 나문재 이름을 묻기도 했다. 처음 밟아보는 뻘의 촉감이 이상한지 금방 모래밭으로 걸어 나오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조심조심 뻘을 밟아보다가 옷을 조금씩 버리게 되고 한두 명이 넘어지자 서로의 몸에 뻘을 칠하고 뒹굴기도 했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반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나라 뻘은 세계 4대 뻘 중에 하나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좋아하는 기색이었고, 우리나라 뻘은 북한에 5분의 3이 있고 남한에 있는 뻘의 40퍼센트는 간척사업으로 이미 사라졌다고 하자 실망하는 눈빛이었다. 나문재는 왜 나문재라고 부르느냐고 묻는 아이가 있어 옛적에 먹을 것이 흔하지 않아 만날 나문재 나물만 해 먹어 밥상에 늘 남는 채소라 남는채 남는채 하다가 나문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고 하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송화처럼 생긴 나문재 잎을 따 먹어보라고 하자 잎을 씹어본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나문재 맛처럼 짭조름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아이들과 헤어진 후 나는 이래저래 가슴이 무거워졌다. 옷에 흙 묻혀 왔다고 부모에게 혼나보지도 못했을 보육원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짠해져서이기도 했고, 뻘 체험장으로 삼는 해수욕장 뻘들은 다 죽어가고 있는데 뻘을 좌우 또는 앞뒤로 나눠 한 달씩 교대로 들어갈 수 있게 하든지 길을 만들어 길로만 다니게 하든지 무슨 대책이 빨리 세워져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해서였다.

백중사리라 제방까지 그득 밀려들어온 물이 사람들이 밟아 굳어 진뻘을 품고 오늘따라 더 푸르고 맑게 일렁인다.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